제목 : "조선 땅을 내게 주소서!" - 초기 선교사 편지에 담긴 이야기 (6) - 선한 목적을 지닌 예배 공동체
글 : 조진모 목사 (전 합동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
<지금까지의 줄거리>
최초 상주 선교사 의사 알렌(1858-1932)이 조선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다음 해인 1885년부터 복음 선교사 언더우드와 의사 선교사 헤론이 합류하여 동역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선한 목적
알렌 선교사는 의대를 졸업한 1883년에 미국 북 장로교로부터 의료선교사로 중국에 파송되었습니다. 그가 조선에서 사역을 시작했을 때 27세에 불과한 젊은 청년이었지만 신앙적 열정이 대단하였습니다. 19세기 말,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발전되어온 기독교를 “땅 끝까지” 전하자며 강하게 불었던 선교의 열풍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 당시 중국이나 조선은 서구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나라였습니다. 그나마 중국은 유럽과의 연관으로 세계사에 관심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낯설지 않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이에 비해 주위 강대국에 의해 끊임없이 침략을 당하던 조선은 서구인들에게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어찌 알렌이 갓 결혼한 아내와 함께 중국으로, 후에는 출산한 아내와 함께 조선 땅을 향하기로 결정할 수 있었을까요? 그의 가슴에 담겨있던 선한 목적이 그의 마음과 발을 빠르게 움직이게 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분명하게 믿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이 자신을 섬세하게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놀랍게도 미지의 세계에 도착하자마자 사역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미 이전 호에 설명한 대로, 조선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1885년 4월에 ‘광혜원’의 전신인 ‘제중원’이 설립된 것입니다.
의사 알렌이 지녔던 궁극적 선한 목적은 의술을 통한 복음 전파였습니다. 속한 시일 안에 병원이 설립됨으로 조선인의 복지 향상이 시작되는 모습에 감사하면서도, 복음을 받아드린 신앙인들이 공동체를 이뤄 예배드리는 모습을 항상 꿈꾸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날을 목적으로, 먼저 허락하신 병원에서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치료했던 것입니다. 병원과 교회는 분명 서로 독특성을 지닌 기관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알렌에게 허락하셨던 선한 목적은 섭리하시는 그 분의 계획대로 차분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갈등의 길
선한 목적에 이르기 까지 언제나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인내하는 것입니다. 잘 참는 다는 것은 무조건 견뎌내는 것과 다릅니다. 사실 대단한 의지와 집념을 소유해도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일반입니다. 단지 선교 현장에서 인내할 수 있는 동기, 또는 삶의 현장에서 잘 참아낼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 때문입니다.
제중원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것을 확신하고 사역하던 알렌에게도 늘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그를 고뇌하게 만들었던 일들과 씨름하며 항상 갈등의 길을 걸어야 했던 것이지요. 의술에 필요한 시설과 물품이 크게 부족했고 일손도 모자랐습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잘 쉬어야 다음 날에 힘 있게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거주하던 집을 포함하여 이방 땅에서의 삶 자체가 고달팠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렌에게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역시 인간관계였습니다. 그가 경험해야 했던 갈등의 원인이 대부분 함께 일을 하던 사람들로부터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함께 사역하던 선교사 일부가 병원 사역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향후 이를 통해 복음을 전하게 하실 것이라는 근본적인 선교정책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중원이 시작 된지 2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기에 알렌이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습니다. “어떤 선교사들은 병원이 선교사일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이 병원을 운영하려 합니다. 그러나 병원은 선진화된 서양 문명의 첫 단계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어떤 선교일도 이 나라에서 허락되지 않은 것을 고려할 때 그렇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 기관을 선교사로 알려진 사람의 손에 넘겼고 이와 같은 다른 봉사도 수랗합니다. 어느 선교단체든 의사를 공급하는 것은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병원에서 선교사역이 수행되지 못한다는 말이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가 준비될 때 병원에서 적극적인 (복음)사역을 할 것에 대해 저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병원을 통한 선교정책에 동의하였고 심지어 함께 동역하였지만 인간적인 갈등을 겪어야 했던 대상도 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선교본부에 보낸 편지에 알렌은 자신의 상황을 보고하면서 매우 불쾌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합니다. “헤론 의사가 올 때까지 병원 일을 하도록 제가 임명한 감리교회의 스크랜턴 의사에게 저는 완전히 당했습니다. 그는 아주 이상하게 행동했고 저에게서 모든 것을 얻으려고 할 뿐 아니라 저를 밀어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사실 여부를 위해서는 양쪽 말을 모두 들어봐야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알렌이 심한 갈등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예배 공동체
알렌이 고대하던 의사 헤론 선교사가 도착한 뒤부터 병원 일을 분담할 수 있었습니다. 연세대학교를 세운 교육가로 알려진 언더우드 선교사 역시 초기에는 제중원을 중심으로 협력하였습니다. 이 두 선교사는 알렌에게 대단히 큰 힘이 되었습니다. 병원은 선교지 상황에 따라 복음전파를 이루기 위한 초석이란 선교전략에 대해 동감하고 있었기에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복음을 중심으로 협력한 세 선교사들이 항상 같은 마음으로 사역에 임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같은 선교단체 출신이었지만, 자라난 배경과 교육환경이 달랐던 만큼 성격과 일을 처리하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일이 생길 때마다 지혜와 믿음으로 풀어나가 했던 그들이었기에 의견차이로 인한 갈등 요소가 항상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예상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세 선교사 사이에 서로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갈등거리가 등장하였습니다. 사역을 위해 형성된 공동체가 약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난 것이지요.
제중원은 조선의 복음화를 위한 하나님의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알렌이 선교지에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고, 다른 선교사들이 입국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선교지 사이에 갈등을 최소화 하며 동역에 임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그들을 예배 공동체로 묶어주셨습니다. 1885년 6월,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 가족이 함께 모여 공식주일예배를 처음으로 드렸습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선교지에 형성된 신앙 공동체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그들이 먼저 자신들을 보내신 하나님 앞에 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첫 예배를 드린 이틀 뒤에 적은 편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새 친구인 헤론 부부에게 매우 만족합니다. 그들이 감사를 잘하는 것에 기운이 납니다. 그들은 제가 이곳에 먼저 와서 그들을 위해 장소를 마련해 놓게 된 것에 매우 감사했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신앙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상대의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게 됩니다.
“...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 17:11하)” 어떤 신앙 공동체라도 부패한 인간이 모인 곳이기에 항상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항상 공동체를 형성시키시고 중심이 되어 이끌어 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지속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예배가 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무엇을 하느냐 보다 어떤 신앙인이 되느냐를 더욱 중요시 여겨야 합니다. 또한 이를 위해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예배에서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편집자 주 : 2022년 7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4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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