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러므로
글 : 김혜영 목사(RN @Jaisohn Madical Center)
유투브를 통해 설교를 들었다. 설교자는 종교화된 신자 개인의 문제와 가난한 사람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교회 공동체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는 신앙인들 사이에서조차 자신의 신앙을 설명하는데 미숙해 같은 종교를 믿고 있는데도 신에 대한 이미지가 제 각각이라며 종교의 이름만 가리면 불교와 같은 형태라고 말했다. 교회가 요구하는 헌신의 종류와 수준들 그리고 헌금의 종류와 양들이 너무 많아서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에 올수 없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중산층들만 남아 있는 예배당이 되었으며, 그 중산층 평신도 권력들과 목회자들이 결탁해 그리스도가 계셔야 하는 교회가 인간들이 주인이 된, 인간들 중에서도 제법 잘 살고 세상적인 권력을 가진 자들이 교회 권력까지 가지게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말았다고 말하면서 종교 형식주의에 매몰되어 종교생활에만 열심이고 정작 예수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일예배참석하고 새벽기도하고 큐티를 하며 교회를 다닌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사람이 따뜻해지거나 온유해지거나 사람을 이해하는 깊이가 자라지 않고 오히려 더 사나워지고 정죄하기를 좋아하는 현상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은 애당초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그냥 종교생활에 충실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설교의 댓글들을 살펴보았다.
교회 다니는 게 목적인 경우가 많다. 종교보다 신앙의 본질을 생각하겠다.
장로, 권사, 안수집사 등 항존직을 없애야 교회가 쇄신할 수 있다. 목회자들도 신앙을 전수하는 방식을 바꿔야.
교회 다니면서 지식은 늘어가고 열심은 있지만 서로에 대한 긍휼한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따뜻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열심히 무엇을 했다는 것을 의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
토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이제 염증을 느낀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아보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요
(생략) 본인은 돈이 없어 권사 안한다고...돈 없어도 권사, 장로 될수 있는 교회 있을까요? 금액도 천자 만별 인걸로 알고 있는데 권사, 장로 안되면 천국 못갑니까?
신앙생활 오래한 분들의 교만. 권사님들 때문에 시험에 드는 사람 많습니다. 특권을 가진 것처럼 계급이 높아진 것처럼 임직 받으면 목이 곧아져서..
목사님도 쥐락 퍼락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권사 장로들이다. 직분이 아니라 계급으로 알고 계신 듯
신앙을 지키기 위해 교회를 안 나가는 모순된 현실. 강한 자는 교회가 추구하는 종교적 성취에 유연히 대처할 수 있지만 대부분 사람은 열심을 강요받다 지쳐 자기 신앙에 대한 회의와 확신 없음과 실망으로 나가 떨어진다.
현 교회의 잘못된 모습을 말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까? 분명 잘못된 것들이 많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반성을 하고 고쳐야 함이 맞다. 어디부터 무엇을 고쳐야 할까? 어떤 행위를 하려면 그 행위를 하게 하는 믿음이나 신념이 필요하다. 예수를 믿기에 교회에 모이는 것이고, 믿음과 신념을 따라 다양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바른 믿음의 전제 없이 행위에 주목하게 되는 경우 바리새인, 율법주의, 종교인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는 “그러므로” 라는 단어가 제법 나온다. 어떤 것을 설명하고 “그러므로” 이렇게 행해라. “그러므로” 이렇다,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형태가 제법 많다. “A” 그러므로 “B” 공식인 셈이다.
교회를 다니면서 사람들은 “말씀을 못 읽어서, 기도를 못해서, 사랑하지 못해서, 돈을 사랑해서, 용서하지 못해서..등등”과 함께 자책하고 또 다른 사람을 정죄한다. 강단에서 외친다. “여러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십시오. 서로 사랑하십시오. 이 세상 것에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늘의 시민권자입니다. 나그네 삶을 사십시오.” 선포되는 말씀대로 살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해라”라는 “B”를 위해서는 “그러므로”를 주도하는 “A”에 대한 바른 믿음이 필요하다.
삼위하나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바른 이해, 예수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이 우선되지 않은 채, 오래 교회를 다녀서,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학습된 지식으로 발생되는 행위라면 그것은 율법이요 짐이요 내 신앙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고 만다. 교회를 다니며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성령에 의해 나의 지정의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학습된 예수를 믿는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어릴 적 엄마의 손을 잡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교회는 익숙한 공간이었다. 매주 설교도 듣고 봉사도 하고 각종 수련회, 세미나, 기도회 등에 참석도 했다. 그러나 큰 시련을 마주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을 때, 내 믿음은 세상과 하나님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믿음임을 알았다. 기도는 열심히 했으나, 말씀을 알지 못했다.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했어도 성경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했다. 말씀을 읽기 시작하며, 삼위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성품, 사랑, 은혜를 가지고 십자가와 부활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자 “B”를 바르게 잘 행하기 위해 더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게 되었다.
신앙을 전제로 한 행위들은 기본적인 것들이면서 중요한 것들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그것을 왜?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한번쯤 돌아봐야 한다. “A” 가 분명하면 “그러므로” 뒤의 “B”는 더 이상 짐 같은 율법이나 내 믿음을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저 당연한 삶이다. 그러기에 그것을 자랑하거나 그것으로 남을 정죄하지 않는다.
* 2022년 9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6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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