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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배운 것 없는 놈이 뭘 가르치려 하느냐

복음뉴스 0 2022.11.17 18:26

제목 : 배운 것 없는 놈이 뭘 가르치려 하느냐

: 김정호 목사(후러싱제일교회)

박노해 
시인의 해거리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 해 가을이 다숩게 익어가도 우리 집 감나무는 허전했다. 이웃집엔 발갛게 익은 감들이 가지가 휘어질 듯 탐스러운데. 학교에서 돌아온 허기진 나는 밭일하는 어머님을 찾아가 징징거렸다. 왜 우리 감나무만 감이 안 열린당가. 응 해거리하는 중이란다. 감나무도 산목숨이어서 작년에 뿌리가 너무 힘을 많이 써부러서 올해는 꽃도 열매도 피우지 않고 시방 뿌리 힘을 키우는 중이란다. 해거리할 땐 위를 쳐다보지 말고 발아래를 쳐다봐야 하는 법이란다.”

 

요즘 몸 여기저기가 만만치가 않다. 내가 옛날에는 이랬는데 저랬는데 생각을 많이 한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자주 이런 말을 하니까 친구가 뭐라한다. “너 착각 그만해라. 60중반을 넘었는데 왜 자꾸 40대 때 하던 것 지금도 할 것처럼 그러냐. 정신차려라. 조금 더 그러면 미친놈 소리 듣는다.” 잔인하게 현실을 지적해 준다.

 

어쩌면 해거리라는 것도 욕심이다. 박노해 시인이 숨고르기에서 해거리를 말한 것이다. 숨고르기라는 말 참 좋다. 자꾸 사람들이 언제 은퇴할 것이냐고 묻는다. 그래서 그래야 하는가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내가 은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잘 적응이 안된다. 아내는 벌써 은퇴를 하고 너무 좋다고 난리다. 같이 놀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는데 난 목회하는 것이 좋다. 힘든데 뭐가 좋으냐고 하지만 난 힘드니까 좋다. 뉴욕 목회가 다른 곳에서 목회하던 것보다 몇배 힘들다. 쉽지 않으니 정신 바짝 차리게 되고 어려우니 도전하는 재미가 있다.

코로나 기간동안 내가 내 숨쉬는 소리를 듣는 시간이 많았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 내 입에서 그런 고약한 냄새가 그리 진동한다는 잔인한 현실을 알았다. 얼굴에 조폭같이 고약한 인상을 주는 주름이 여기저기 보이고 작고 큰 버섯이 얼굴에서 피어나고 눈꺼풀에 작게 났던 점같은 것이 커져서 흉하게 보이기도 한다. 남 앞에 어떻게 보이는 것에 예민하던 것이 없어졌다. 아무리 애써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뉴욕 목회가 좋은 것은 내 마음대로 잘 안된다는 것이다. 이 나이가 되어 가지고 내 마음대로 되는 목회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추한 것인데 안되니 좋다. 항상 설교를 하면 팬클럽의 환호가 분명하게 들려오던 목회를 했었는데 뉴욕에서는 팬클럽이 아니라 앤티클럽이 여기저기 모여 활동한다. 이것도 괜찮다. 방심하지 않고 나를 정신차리게 하니 좋다. 요즘 월요일 오전이면 교회력 설교 공부모임을 한다. 주 멤버는 미국교회에서 목회하는 30대 후반이다. 옛날 나에게 야단맞고 채플에 들어가서 손잡고 하나님, 우리들 담임목사님에게 야단맞지 않고 잘하게 해주세요.” 울며 기도하던 친구도 있다. 다른 멤버들은 실력은 있는데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목회를 지지리도 어렵게 하는 친구들이다. 너무 좋다. 성경 본문을 읽어내는 시각이 나와 너무 다르기도 하지만 신선하다. 아무리 애써도 교인이 늘어나지 않는 목회를 하다 보니 오히려 그들은 아픔 바닥의 현장에서 복음을 발견해 내는 삶의 지혜가 넘친다. 다른 모임은 빠져도 월요일 설교준비 모임은 웬만해서는 안 빠진다. 에모리 신학교 설교학 톰 롱 교수가 매학기 나를 초대 설교학 강사로 불렀었다. 설교 잘 하는 목사인 줄 알았다. 요즘 진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심정으로 겸손히 배운다.

 

한국 목회멘토링사역원에서 가을에 와달라고 한다. 내가 뭔가 잘하고 있고 젊은 목회자들에게 줄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사에게 부탁하는 내용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강사에게 부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잘난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 자랑해서 그렇지 않아도 목회 어려운 목사들 기죽이지 말란다. 실수한 것 잘못한 것 말해달라고 한다. 그리고 강의하고 사라지지 말고 배우려고 온 사람들과 같이 밥먹고 커피 마시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란다. 가만히 내용을 보니 나를 교육시키려는 훈련의 자리이다. 나에게 이런 당돌하고 당황스러운 주문을 하는 교회개혁의 확신을 가진 분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교회는 소망을 찾아야 한다.

 

코로나 기간 숨고르기가 하나님 주신 은혜의 시간이었다. 아무와도 말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었기에 바다에 나가면 10마일씩 아내와 걸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만히 나 자신을 들여다 보는 기도를 할 수 있었다. 내가 많이 말하고 내가 뭘 잘하는 것이 드러날 때와는 다른 하나님과의 만남이 가능했다. 교인들에게 감동을 주고 뭘 잘해서 교회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지니 참 자유가 있다.

 

코로나 기간 시간이 넉넉하게 되면서 동네 교계신문에 글쓰는 분들 글을 읽어보게 되었다. 솔직히 그전에는 유명한 미국 저널이나 보고 웬만한 수준 아니면 거의 읽지 않았었다. 그런데 시간이 남아돌아 동네 목사님들 글을 들여다 보니 뉴욕에 좋은 목사님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좋다. 페이스북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서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남의 사생활 들여다 보는 재미가 솔솔했다. 나의 것으로 가득찼던 인생이 사실은 정말 재미없는 것이라는 것 알게 되었다.

 

난 요즘 숨고르기가 재미있다. 날숨을 하면서 내 속에 버려야 할 것들 버리고 들숨을 쉬면서 좋은 것을 들여마신다. 날숨을 하면서 분노와 더러운 것을 내뿜고 들숨을 하면서 감사와 기쁨을 마신다. 아무도 안보이는 곳에 끌고 가서 손을 보고 싶던 인간들이 내게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생각도 한다. 못되게 하는 인간들을 통해 하나님은 나를 단련시켜주시고 인간에게서 보는 배신과 잔인함을 보면서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었던 것 지금도 있는 것을 보게 하신다.

 

얼마전 어느 모임에서 다른 사람들과 단체사진을 찍고 어린시절 친구에게 사진 둘이 찍짜고 했다. “가만히 보니 너하고 찍은 사진이 없는 것 같다. 하나 찍자.” 그랬더니 그 친구가 우리 내년이면 미국에 온지 50년이다.” 그런다. 세월 참 빠르다.

 

보스톤에서 목회학석사(M.Div.)를 마치고 시카고에 가니 당시 그래도 미국 이민교회에서는 최고 엘리트 목회자로 알려졌던 보스톤한인교회 홍근수 목사님 밑에서 4년 목회공부를 한 나를 곽노순 목사님이 어느날 부르셨다. 곽 목사님은 홍 목사님 신학교 동기 가까운 친구이셨기에 나를 자신 밑으로 와서 배우도록 하셨다. 시카고지역 6개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성경공부도 하고 예배도 드리고 그러느라 정말 열심이었던 때다. “이놈아 너는 배운 것도 없는 놈이 뭘 그리 많이 가르치려 하느냐. 다음 주에 이 책 읽고 뭘 배웠는지 나에게 보고해라.” 하셨다. 매주 책 한권씩을 주시며 공부해 오라 하셨다. 나는 목회학 매스터 학위를 받은 배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어른에게는 배운 것도 없는 놈이었다. 요즘 나를 가르치신 스승들이 많이 고맙고 그립다.

 

가을이다. 하늘을 보기 좋은 때다. 은퇴할 때가 되면 하겠지만 난 다시 열매맺기 위해 숨고르고 해거리를 하련다

 

* 2022년 10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7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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