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야망을 갖고 사십니까? 비전을 갖고 사십니까?
글 : 오종민 목사(뉴저지우리교회)
야망과 비전이란 단어를 많은 분들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야망이라는 뜻을 첫째는 큰일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 둘째는 그릇된 야심을 품은 욕망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정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야망에서 말하는 희망의 대상은 주로 권력이나 재력을 의미하는데 야망이 클수록 그만큼 행동력도 커지게 되며 무엇보다 목표를 향해 그 누구보다 발 빠르게 나아가게 되는데 야망이 변질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면 지옥의 문이 열리듯 힘든 상황을 맞이할 수 있게 만드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전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내다보이는 장래의 상황이라고 정의 합니다. 덧붙이자면 지금의 현실은 어렵고 힘들지만 앞으로를 내다보면 희망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위 두 가지 단어가 비슷해 보이는데 야망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부분이 있고 비전이라는 단어에는 희망과 긍정이 포함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지나온 인류의 역사 속에서 많은 분들이 비전에서 시작해서 야망으로 인생을 마감한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되다 보니 흔히 사람들이 말이 있습니다. 저 사람 변했다고.... 이 의미는 처음에는 순수했었는데 어떤 상황을 통해 그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고 실망을 주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두 단어를 보면서 제 나름대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야망이라는 단어는 다른 사람이야 어떻든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이고 비전은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행동이라고 말이지요.
언젠가 어떤 분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장사치와 사업가의 구분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그래서 주저 없이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장사치는 자신과 가족의 행복만을 위해 돈을 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신이 만드는 물건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고 어려움을 당해도 개의치 않고 오직 돈 버는 것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주위 사람들을 돌아 볼 줄 모르고 자신의 마음이 완악해져 가는 것도 모르고 돈에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업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업을 통해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사회를 이롭게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자로서 그 사람 때문에 사람들이 행복함을 느껴 닮아가고자 하는 희망을 주는 자라고 말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야망을 비전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안타까워 그것을 지적해 주면 화를 내고 서운해 하고 좋았던 관계를 끊고 자신만이 옳게 살고 있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봐도 비전이 아닌 야망에 사로잡혀 자신도 힘들게 하고 주변 사람의 마음도 아프게 하는데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야망으로 살고 있는가? 비전으로 살고 있는가? 를 구별하는 방법은 아주 쉽고 간단합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거나 계획하는 일이 주변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가? 그리고 그들이 나에 대하여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것인가? 아니면 걱정하고 말리고 있는 일이가? 를 생각하면 됩니다.
비전은 사람을 살리고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지만 야망은 사람을 죽일 수 있고 절망감을 가져다주며 희망을 빼앗아 갑니다.
목사가 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 목사가 되면 교회가 힘들어지고 교인들이 상처받고 동역하는 목사들에게 아픔을 주며 교계와 사회에 분란을 일으키고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갖게 만듭니다. 사업가가 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 사업가가 되려하면 사기꾼이 되어 버립니다. 선생이 되지 말아야 할 인격을 가진 사람이 선생이 되면 사람의 꿈을 빼앗아가 버리고 올바른 인성을 갖추지 못하게 만듭니다.
야망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고 소모품으로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만 이루면 된다고 생각하다 보니 자신 때문에 누군가가 고통을 당하고 마음이 병들어 가는 것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 비록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룬다 할지라도 인생의 말년에 가서는 불행해 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수 없이 역사를 통해 배워 왔습니다.
비전을 갖고 세상에 살다보면 외롭고 힘들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고지식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고 융통성이 없다는 핀잔을 들을 때도 있고 손해 보는 삶을 살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삶을 사는 분들 주위에는 올바른 인성을 갖고 함께 하는 진실한 친구들이 있을 뿐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에 가서 후회 없이 살았음을 본인도 인정하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사실 역시 역사를 통해 배웁니다.
여러분들의 지금 삶은 어떻습니까? 야망을 가지고 오늘도 살아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비전을 갖고 사십니까? 요즈음 들어 인생 일장춘몽이라는 옛말을 되새기며 삽니다. 한 발짝 물러나서 인생을 보니 미워할 사람도 원망할 사람도 없음을 깨닫습니다. 한번 왔다가는 인생 사랑하기에도 짧은 삶이라는 사실도 이제야 깨닫는 것 같습니다. 야망을 이루려 하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을 잃어버리는 삶이 아닌 좋은 분들과 차 한잔을 나누고 한 끼 식사를 하며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희망을 주며 비전의 삶을 살아보면 어떻습니까?
인생 긴 것 같은데 나이 들어가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짧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가을의 문턱입니다.
언젠가 다가올 여러분들의 삶의 마지막 자리에서 살아 온 인생의 발자욱들을 볼 때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상처를 주었고 미움을 주었고 절망을 주었다고 후회하는 삶이 아닌 비전을 나누는 삶을 살아 왔음에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죽음 뒤에 살아온 삶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까지 야망으로 살아왔다 할지라도 오늘부터 비전으로 사는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가 우리들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2022년 10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7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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