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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경] 왜 우리는 찬양해야 하는가?

복음뉴스 0 2022.04.15 08:46

찬양 이야기 ②  왜 우리는 찬양해야 하는가?

글 : 이선경 (퀸즈프리칼리지 지휘자)



8년 전의 일이다. 그 날은 퀸즈 칼리지 교수 제임스 죤 (James John) 박사가 상임으로 지휘하던 때의 일이다. 합창단 멤버 구성은 20 대에서80대에 이르는 광범위한 계층이었다. 200여명의 합창단 단원들과 100 여명의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함께 연주하는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Lucio Vivaldi 1678-1742)의글 로리아(Gloria) 연주였다. 

 

낮아짐의 찬양


리허설을 하는 도중에 한 할머니가 리허설 무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일하다 말고 온 느낌의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잠시 후, 휴식시간에 함께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정말 놀란 것은 그 할머니의 나이 때문이었다. 또 하나는 합창에 대한 그 분의 열정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전공자인 나 보다도 더 숭고한 예술적 태도에 감동 받았다. 잠깐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 할머니 앞에 내 자신이 작게 느껴졌다. 할머니께 물어 보았다. “악보를 거의 외우시나 봐요. 특별히 레슨을 받으시나요?”

 

그 할머니가 대답했다. “매일 노래하고 찬양하는 게 평생 하는 일인 걸”. 딱히 하실 일이 없으셔서 열심히 하시나 보다 생각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이젠 쉬셔도 되는 연세가 아닌가. 노래가 없으면 아마 벌써 이 세상에 없었을 거라고 미소지으며 말씀하시던 그 할머니의 모습이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인생이 노래이고, 삶의 간증이고, 에너지라는 것을 리허설 하는 내내 그 할머니의 맑은 시선은 말해 주고 있었다.

 

퀸즈 칼리지 코랄 소사이어티(Queens Col-lege Choral Society)그룹은 평생 합창하는 멤버들이 대부분이다. 멤버들의 헌신은 노래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이웃을 향해 열려 있다. 늘 섬기고 돕는 일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럴까, 멤버들을 만나면 마음이 늘 따뜻해진다. 멤버 중 누군가가 말했다. “힘들수록 더 노래 해야지, 찬양하면 더 젊어지고 예뻐지잖아”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서로의 아픔도 나누고 작은 기쁨과 웃음이 있는 공간 안에서, 합창은 예술 행위를 뛰어 넘어 하나의 커뮤니티 공동체가 된다. 또 누군가가 말했다. “친구가 아플 때 가서 노래해 줘요. 이웃이 어렵고 힘들 때 우리는 가서 신나게 노래해요. 요청하는 사람이 있건 없건, 우리는 그냥 해요. 왜냐면 노래로 하나가 되니까요.”

 

노래할 수 있다는 건 순수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다 노래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노래하기 전 먼저 마음이 움직인다. 가슴속 깊은 영혼의 파도가 오선지의 선율로 터져 나온다. 슬픔은 기쁨이 되고 오해는 이해가 되고 어두움은 찬양의 빛에 흡수되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그렇다. 찬양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지극히 참된 인간의 형상으로 우리를 회복시킨다. 찬양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감성을 경험하게 해준다. 그 속에 희로애락이 있다.

 

찬양을 통해 우리는 개인에서 타자를 향한 공동체의 삶으로 변화하게 된다. 좀 더 아름답게 좀 더 숭고하게 더 은혜롭게, 한마디로 찬양은 삶 자체이다. 찬양을 통해 우리 일상의 삶이 풍요롭고 어떤 의미 부여를 한다면 가치 있는 인생이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찬양의 가사와 멜로디는 삶의 이야기가 되고 리듬과 박자는 인생의 발걸음이 된다. 또 화음과 텍스쳐는 삶의 빛깔을 표현해 준다. 이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다운가. 그 작은 것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찬양을 창조해 낸다.

 

찬양이 더 필요한 이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거의 초 단위를 가늠케 한다. 감성과 공감은 점점 메말라가고 눈물 없는 메마른 종이 소리만 넘쳐 난다. 더군다나 지속되는 팬데믹으로 찬양이 위축되어 있다. 우리는 이럴 때 일수록 찬양해야 한다. 지금이야 말로 노래해야 하는 때다. 이 순간이야 말로 일어나 찬양해야 할 시간이다. 넘어져 일어날 힘 조차 없을 때 노래해야 한다. 2022년 올 해에는 찬양이 활성화 되고 우리 시대의 찬양의 무브먼트가 필요하다.

 

시편 150편은 찬양해야 하는 이유, 찬양을 통한 회복, 은혜롭고 아름답게 찬양해야 하는 까닭을 말해 주고 있다. 찬양은 사라지지 않는다.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 찬양의 주제이시고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아무리 물리적인 현상으로만 정의 내리려 한다 해도 찬양은 영원하리라. 시편 150편은 이 렇게 노래한다.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 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시편 150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을 맺는다. 다시 말하면 찬양으로 시작해서 찬양으로 끝을 맺는다는 의미이다. 호흡이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라고 시편 기자는 촉구하고 있다. 찬양이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것, 찬양은 쉬지 않고 울려 퍼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시편 기자는 찬양할 이유가 하나님의 창조성과 구속사역이 보여 주는 위대하심과 광대하심을 선포하며 찬양하는 데 있다.

 

찬양의 방법에는 모든 악기가 동원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상의 그 어떤 것도 찬양의 도구로 쓰임 받는다는 의미다. 찬양은 찬양 자체가 목적이고 또한 찬양하는 성도의 의무이자 존재이다. 찬양은 복음 전파의 목적을 가진다. 찬양을 통해 구원의 메시지가 선포되고 복음의 능력이 증거 된다.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여호와 하나님, 시대와 사조를 뛰어 넘어서, 연령과 계층을 무너뜨리고, 인종과 문화를 아우르는 하늘의 거룩한 찬양임을 시편 150편은 재차 강조한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

할렐루야

 

시편 150편은 우리가 호흡이 있는 그 날까지 온 생명으로 찬양하는 은혜의 사건이 되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찬양하는 것은 모든 것이 ‘사랑의 관계’라는 것을 은유하는 것이다. 무엇을 경험했고 어떤 일을 소망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성을 통찰하는 깨달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 2022년 2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9호에 실린 글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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