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조선 땅을 내게 주소서!" - 초기 선교사 편지에 담긴 이야기 (4) 어려운 상황속의 믿음과 지혜
글 : 조진모 목사(전 합동신학대학원 교수)
<지금까지의 줄거리>
1884년 9월에 조선에 입국한 의료 선교사 의사 알렌(1858-1932)은 같은 해 12월 갑신정변에서 중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한 계기로 입지를 확실히 굳히자, 최초의 서양식 병원을 개원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앞에 놓인 장애물
하나님의 일을 맡았을 때 어떤 마음을 지녀야할까요? 굳센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겠지요. 주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에 맡기신 사역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현장은 곧 영적전쟁터입니다. 넘어야 할 장애물이 앞에 놓이기가 일쑤입니다. 그러기에 어려운 일을 만나나도 낙심하지 말고 담대해야 합니다. 일을 맡기신 주님께서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고, 목적을 이룰 때 까지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모든 과정에 함께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알렌 선교사는 복음전파를 위해 파송을 받았지만, 의사였던 그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의술을 통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민영익을 치료한 일을 계기로, 하나님께서 조선 정부로부터 허락을 받아 병원을 개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결국 서서히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서양 의학의 효력을 경험한 뒤 정부차원에서 그에게 의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시작할 수 있도록 주선해 줄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의대를 설립하고 인재를 발굴하여 의술을 가르칠 수도 있었겠지만, 알렌은 자신에게 주어진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병원을 설립하는 것을 우선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될 수 없었던 두 가지 중대한 이유가 있었는데, 모두 그가 미국인이라는 사실과 연관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미국에 대한 조선인들의 태도였습니다. 조선은 1882년에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은 상태에 있었지만, 보수 세력의 완강한 저항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서양식 의술에 관심을 지닌 자들은 소수에 불과하였고, 대부분 한의들은 자신들의 입지에 지장을 받는 것을 우려하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복잡한 국제정세였습니다. 조선을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 등의 주변 강대국의 이권다툼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미국인 알렌이 근대식 병원을 설립하는 것을 두고, 조선 정부가 미국과 손을 잡는 정치적 행보라고 해석하고 적극 방해할 것이 분명하였던 것입니다. 더욱이 그가 선교사로서 종교적 목적으로 조선을 찾았다며 그의 신분을 공개하게 된다면 알렌은 모든 활동을 접을 수도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가장 위험한 인물은 독일 출신의 외교 고문 파울 묄렌도르프(Paul Mőllendorff, 1847-1901)였습니다. 그는 고종 고종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위치에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투철한 반미주의자였습니다.
지혜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알렌은 어려운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서울에 병원을 설립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가 1885년 1월에 조선 정부에 제출한 제안서를 자세하게 읽어보면, 그가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였음을 알게 됩니다. “민영익이나 중국인 부상병들의 경우와 같이 환자들이 부자인 몇몇 경우에는 저희 집 근처에 방을 얻어 제가 매일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적절한 시설이 없어 돌아가야 했습니다.” “미국 시민으로 저는 조선 사람들을 위하여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쁘게 할 것입니다.” “모든 미국 도시에는 하나 이상의 병원이 있습니다. 서울에도 병원이 하나 있어야 하고 적은 비용으로 설립할 수 있습니다. 저는 조선 정부 산하의 병원을 기꺼이 맡아 무료로 봉사하려 합니다.” 현재 설립을 계획하고 있는 병원의 목적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사랑의 손길을 베푸는 것임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모든 의료 선교사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지요.
그런데 알렌은 자신이 의료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후원 단체를 소개할 때 지혜로운 방법을 선택합니다. “.. 월급을 받지 않고 일하고 생활비는 미국의 자선 단체의 후원으로 충당할 것입니다. 이 자선 단체들은 현재 북경, 천진, 상해, 광동 및 다른 중국 도시에 있는 병원들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선교 단체가 아닌 “자선 단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또한 이런 단체들이 이미 중국에 병원을 설립하여 돕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미국인들의 후원으로 조선에 병원을 세워지면 재정적인 어려움 없이 운영이 가능하며, 이런 자선 활동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을 알리려 한 것입니다
자신의 신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선교사로서 주어진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입니다. 알렌이 미국 선교 본부에 편지를 보내 자신이 작성한 제안서에 담긴 의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보시다시피 선교적인 특징이 두드러지지 않도록 ‘자선적인 조항’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선교 병원들을 언급했는데 조선 사람들은 중국을 모든 좋은 것의 근원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사역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으나, 어려운 정치적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지혜를 발휘했던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알렌은 제안서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만일 이 병원이 허락되면 그 이름을 ‘왕의 병원’이라 부를 것입니다. 곤궁에 처한 백성들이 적절한 도움을 받는 것을 보시면 분명히 왕께 기쁨이 되며 백성들의 마음도 더욱 왕께 열릴 것이고 여러 가지로 백성들의 위치가 향상될 것을 확신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병원의 이름입니다. 그가 ‘왕의 병원’이라고 부르려 하는 것은, 미국의 정치적 입김이 작용하거나 또는 선교 기관의 특징을 앞세우려는 목적이 전혀 없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개입
알렌의 선교 사역은 곧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알렌에게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서 조선의 상황에 친히 개입하신 것을 역사를 통해 증거를 받을 수 있습니다. 1885년 1월에 1993년부터 파견 근무 중이었던 미국 공사였던 루시어스 푸트(Lucius Foote, 1826-1913)가 사임하고, 그 자리에 미 해군사관학료 출신 조지 푸크(George Foulk, 1845-1893)이 부임하였던 것입니다. 푸크는 언어에 천재적인 소질을 지니고 있었기에 중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조선 정치인들과 친분을 맺게 된 것도, 한국 최초 외교 사절단이 미국을 포함하여 여러 나라를 방문할 때 통역사로 그들과 함께 여행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푸크가 통역했던 사절단 가운데 민영익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민영익을 치료하여 친분관계를 맺은 알렌은, 푸크 공사를 통해 조선 정부에 제안서를 제출하게 됩니다. 푸크 공사는 자신이 작성한 신청서에 알렌을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 “알렌 씨의 병원 설립 제안은 실질적인 채널을 통하여 기획되었고 왕의 백성들을 이롭게 하려는 순수하게 이타적인 의도로 작성되어 매우 칭찬할 만합니다. 최근 서울에서 성공적인 의료 시술을 보여 줌으로써 알렌 의사의 성품과 능력이 검증된 바가 있어 더 이상 추천의 글이 필요하지 않을 줄 압니다.”
커다란 방해물이었던 뮐렌도르프를 의도적으로 피해 간 것이지요. 나아가서 알렌은 자신이 뮐렌도르프와 대화 중에 병원 설립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알림으로 상황을 무마할 수 있었습니다. 영적전쟁터에서 강한 믿음과 함께 요구되는 것은 지혜로운 생각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마태복음 10:16)
* 2022년 5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2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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