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Field 단상(斷想) ⑩ 언제까지 이옵니까?
글 : 문갈렙 선교사 (GMP/한국개척선교회 소속)
타 문화권 사역지에서 일하는 중에서 간혹 언제까지 지금 있는 이곳을 섬겨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의 기도를 드릴 때가 있다. 광야의 이스라엘 민족처럼 진퇴가 여호와께 있으므로 여쭈는 것은 불충한 기도는 아니라 생각한다. 전하고 섬기는 일에 있어 딱 언제까지다 하고 기한을 두고 끝내고 마는 일이 아님을 성도라면 다 잘 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이라면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마땅히 충성스럽게 이어가야 할 사명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친히 부탁하시며 명령하신 지상 대명령(The Great Commission)이기 때문이다. 묵묵히 섬겨가면 될 것을, 하지만 어느 한 지역을 오래 섬겨가다 보면 ‘ 주님은 언제까지 나로 이곳에서 일하기를 원하실까?’하는 질문이 있게 된다. 안달하는 마음에 때로는 열매가 수고와 땀보다 너무 미미하다고 느낄 때 그런 질문을 하기도 하고, 혹은 장기간 한 지역에서 같은 일을 해 타성에 젖고 매너리즘에 빠진 자신을 보면서 무언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느낄 때도 그렇다.
올해 들어 이 문제에 대하여 년 초부터 기도하며 주님께 여쭈고 있다. 왜냐하면 시골에서 서울로 와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주님께 약속 드린 바 있는 25년간의 헌신의 연한이 찼기 때문이다. 비록 나 혼자서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주님께 기도로 약속드린 헌신의 기간이지만 주님께서 이 나의 약속의 기도를 기쁘시게 받으셨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 나이 45세 때 주님은 분명한 음성으로 그 약속을 상기시키시며 불러 주셨기 때문이다. 이로서 나의 헌신을 위한 기도는 주님의 뜻에 부합되어 기뻐하심을 입은 것이라 믿게 되었다. 주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자마자 주저하지 않고 순종하여 다니던 직장에서 나와 오직 전하고 섬기는 일만을 위하여서 작년 말까지 25년 간 수행한 것이다. 그 후에 여쭈기 시작한 것이 바로 ‘언제까지 여기서 섬겨야 합니까?’라고 여쭈는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헌신 기간의 출발 시점을 회상해 보니 만 45 세의 나이에 직장에서 나왔다. 문득 그 당시 내 나이가 지금 나의 자녀들의 또래라는 점에서 놀라웠다. 큰아이가 46살, 둘째가 44살, 셋째가 41살이다. 생각이 이어지면서 지금 나의 자녀들의 형편을 볼 때 셋 중에 한 아이도 나와 같은 헌신의 생각과 계획을 아직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 마치 대가 끊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 믿음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세 아이가 고맙고, 안도하지만, 나의 여망은 적어도 한두 아이는 나처럼 선교적 헌신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권위로 명령해서 억지로 조성될 일은 아 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이 오직 선교사로 파송 받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획일적인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나 자신을 추스르기도 한다.
최근 나는 파송 선교단체와 이 나라에 와 있는 일꾼들의 모임인 한인 선교사협의회에다 나의 캠프를 인수하여 이 지역을 계속 섬겨갈 일꾼을 찾아 보내달라는 요청서를 보낸 바 있다. 지금의 일을 지겹게 생각하여 벗어버리고 이 지역에서 떠나고 싶은 의도에서 그런 것이 아니다. 연한이 찼고 더구나 다분히 매너리즘에 빠진 나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이 이유의 하나이다. 누군가 나보다 더 성실한 땀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겨 간다면 내가 떠남으로써 오히려 더 아름답고 충실한 열매들이 맺히게 되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 것이 또한 일단 지금까지 이어 오던 이곳에서의 사역을 누구이든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일꾼에게 이양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이곳에 도착한 초기에 현지 언어를 배우면서도 어찌하든 빨리 사역에 착수하여 본국의 성도님들에게 가시적으로 보고할 만한 실적을 이루어 내야겠다는 조급한 열정으로 지나쳤다. 그렇게 시작하였던 초창기를 생각하면 혼자서도 얼굴이 붉어진다. 영혼 사랑이라는 이유로 무엇으로든지 있는 대로 영혼들에게 베풀려다가 보니 지혜롭지 못하게 물질을 베풀어 그 일로 좋은 열매가 있기보다는 오히려 좋지 못한 성향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등 물질을 주님의 뜻대로 잘 사용하지 못한 실책도 있었다. 열심히 일하여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관건인 양 일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막상 기도와 말씀 묵상을 등한시하는 앞뒤가 바뀐 어리석은 사역 태도 또한 부끄럽기 그지없다. 나보다 앞서 이곳에 와서 섬기는 여러 일꾼들이 범했던 시행착오의 전철을 똑같이 밟게 됨으로 인한 뼈저린 아픔과 실망도 맛보아야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서야 속도와 열심보다 방향성과 주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을 따라 섬겨가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잘못을 알게 된 후에야 모든 면에서 전과 다른 과정과 알찬 열매를 보게 되었다.
‘방귀 질 나자 보리양식 떨어진다!’라는 우리 나라 속담을 인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잘못을 깨닫고 올바른 방향으로 일을 하기 시작하자 빠른 세월의 흐름에 벌써 주님과 약속한 연한이 다 지나가 버린 것이다. 성경에서 갈렙의 끝까지 충성하는 그 마음을 닮고 싶어 이름도 갈렙으로 정하였건만 중간에서 자꾸 ‘언제까지 이옵니까?’ 여쭈는 기도가 심히 송구스럽다. 성도의 인생 노정에서 주님 품에 안기기까지는 끊임없이 다듬어져 가고 성화 되어 간다는 점에서 25년이라는 세월이나 인생 70이라는 나이가 영적 성숙의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라고 결코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세월을 살아오면서 잘못된 길에 대한 깨달음을 갖게 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한 것으로 인해 그 수치가 헛되거나 부질없는 세월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착각과 오해와 자만과 자기과신, 그로 인한 실수와 실패, 실패로 인한 상처의 아픔을 경험했다는 것들은 살아온 세월에 있어 헛되지만은 않은 소중한 것이요 교훈적 체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주님의 마음에 들기까지는 아직도 요원하지만 한 발짝씩 주님의 뜻에 더 근접해 가고 있음으로 인해 부족한 중에서도 소망을 품고 여생을 살아갈 용기를 갖게 된다. 그래서 감사 감격하며 더욱 주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까지이든 어디를 향해 주님이 가리키시든 주님의 얼굴을 뵐 때까지 올바른 방향성을 갖고 사명의 땅을 향해 주님의 발자국을 나도 밟으며 천천히 전진하리라. 갈렙처럼 충성스러운 마음을 추슬러 여전히 새 땅을 구하며 믿음의 발을 내디딜 것이다.
“은혜 가운데서 지금까지 걸어오게 하신 주님, 앞길도 인도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 루야!”
[편집자 주 : 2022년 3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0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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