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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훈] 우리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복음뉴스 0 2022.06.25 17:55

쉼표 7

제목 : 우리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글 : 박시훈 목사 (뉴욕함께하는교회)

 

미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라 불리는 뉴욕에 산지 올해로 딱 20년째다. 그동안 뉴욕에서 유명하다고 꼭 가봐야 한다고 한 곳 중 가본 곳보다 못 가본 곳이 더 많은데감사하게도 카네기홀은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2017613일 극동방송이 창사 60주년을 맞이하여 개최한 나라 사랑 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잠시의 기다림 끝에 무대의 막이 열리고 수백 명의 어린이 합창단이 나와 첫 곡으로 고향의 봄을 부르기 시작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귈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흘러내려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함께 갔던 아내나 성도들 모두 울고 있었다. ‘고향의 봄이 이렇게 슬픈 노래였던가?’ 아니다. 고된 이민 생활 속에 늘 고향을 그리워하던 마음이 건드려졌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추억이 있고, 마음껏 그리워하고 또 언제라도 가볼 수 있는 고향 아니 조국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나라를 잃을 뻔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수많은 침략을 받았고,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중에서 6.25 전쟁을 생각해보자. 1950625일 새벽 4시에 북위 38°선 전역에 걸쳐 북한군이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 전쟁이다. 이후 1953727일 휴전이 성립되기까지 만 31개월 2일간 전쟁은 계속되었고, 국군과 UN군을 합쳐 무려 약 175801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부상자와 실종자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엄청나다. 만약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6.25 전쟁을 위해 목숨걸고 싸우다 전사하신 수많은 호국영령(護國英靈)들에게 빚을 진 것이다.

 

6.25 전쟁만 관련해서가 아니다. 돌아보면 오늘의 나와 우리 가정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는가? 부모, 가족, 선생님, 친구, 직장의 동료, 이웃, 신앙 공동체 등등. 더욱이 이민 생활 초기에 도움받지 않았던 이민자들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나도 처음 유학생으로 미국에 왔을 때 차도 없었고, 차를 마련할 형편도 안되었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학교에 다녔었다. 이민 생활에 필요한 것들 중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많았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었다. 그런데 이웃에 살던 어떤 한국분께서 우리 마트에 가는데 같이 가실래요?”라고 물어봐 주실 때면 한 편으로는 미안하면서도 한 편으론 또 얼마나 감사했던가! 그리고 수개월 만에 섬길 교회를 찾았을 때, 담임목사님과 성도들이 병원 가는 것, 휴대폰을 마련하는 것, 운전면허을 취득하는 것, 소설 번호 받는 것도 도와주고, 쓰던 중고차를 거저 주었을 때 못 걷던 자가 다시 걷게 된 것처럼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던지! 그런데 이는 우리 가정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대부분의 이민 가정들이 경험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오늘의 나와 우리 가정은 수많은 사람에게 빚을 진 결과이다. 어떤 빚일까? 선비박수의 중당유고(中堂遺稿)1상간재선생(上艮齋先生)에 보면, 우리 삶에 두 가지 빚의 종류를 이야기 하는데, 하나는 상환을 전제로 남에게 빌린 물질적인 빚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든 서로 신세지고 도움 받으며 사는 마음의 빚이다. 그렇다. 우리가 여러 사람들에게 진 빚이란 곧 마음의 빚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빚의 종류가 무엇이든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마음의 빚을 어떻게 갚으며 살면 좋을까?

 

1. 감사하며 살자.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오늘의 나와 우리 가정은 누군가의 사랑에서 비롯된 배려와 수고 그리고 희생에 의한 결과이니 감사해야 한다.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 분들에게 감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범사에 감사해야한다. 왜냐하면 인식할 수 있는 것보다 인식하지 못하는, 기억하는 것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마치 오늘의 자신과 가정이 스스로의 힘과 노력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교만을 떠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죄송하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아직 인생의 깨달음이 부족한, 곧 철이 덜 든 것이다. 사람을 뜻하는 한자를 보라 ’, 반드시 두 획이 서로를 받쳐줘야만 설 수 있는 모양이다. 그와 같이 사람은 결코 혼자 설 수도 살아갈 수도 없는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까지 나와 우리 가정은 누군가에게 빚을 져왔고 또 빚을 지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의 배려와 수고 그리고 희생을 해준 이들이 바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닐 것이다. 그저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니 감사하며 사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성도에게는 감사가 선택일 수 없다.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8) 하나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께 우리가 진 빚은 또 얼마나 많은가? 감사로 은혜 주신 하나님께 그리고 도움을 준 많은 이들에게 빚을 갚으며 살아가자.

 

2. 서로 돕고 살자.


내가 미국 유학 와서 처음 다녔던 학교에서 한인학생회 회장을 맡았을 때, 처음 미국 땅에 정착해야 하는 후배 유학생들을 많이 도와주었다. 대가 없는 도움에 너나 할 것 없이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하냐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때마다 나는 도움 받은 것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시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라고 했었다. 아마도 오늘까지 우리와 우리 가정을 도와주었던 이들의 마음이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 곧 우리가 누군가의 진 빚은 다른 누군가에게 대가 없이 도움을 주는 것으로 갚으면 되는 것이다.

 

예전보다 지금은 훨씬 삶의 질도 생활 환경도 좋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소외당하고, 어려운 삶의 여건들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힘겹게 겨우 삶을 버텨나가는 사람들, 가정들이 있다. 어린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를 생각해보라. 다리 힘이 약해 이것저것 붙잡고 또 부모의 손을 잡고 일어서고 걷는다. 마찬가지다.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설 수 없는 누군가, 또 어떤 가정이 우리의 작은 관심과 도움으로 살아가고 설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도움받은 가정이 자신들이 진 빚을 또 다른 누군가 어떤 가정을 돕는 일로 갚아간다면 얼마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름답게 변할까? 그런데 히브리서 1316절은 놀라운 사실을 한 가지 전해준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우리는 누군가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남을 돕는 것인데, 그 모습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단다. 곧 우리가 빚을 져서 갚기 위함만이 아니라 성도라면 마땅히 하나님이 기뻐하시기에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갖고 도와야 하는 것이다.

 

어느새 2022년도 6월이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간다는 것이다. 지난 반년 동안 아니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진 여러 마음의 빚을 돌아보자. 그리고 남은 반년 또 남은 인생 감사로, 누군가를 돕는 모습으로 마음의 빚을 갚으며 살아가자!

 

* 2022년 6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3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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