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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현] 이른바 ‘작은 계명’과 ‘큰 계명’이 따로 있습니까?

복음뉴스 0 2022.04.11 09:26

왜 하나님? ⑥   이른바 ‘작은 계명’과 ‘큰 계명’이 따로 있습니까?

글 : 한삼현 목사 뉴저지 빛과 소금교회


“모세의 율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성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겉모양(≡안식일에 일하시거나 움직이시는 모습)으로 판단하지 말고 올바른 판단력(≡법조문보다 법정신)으로 판단하라.”(요 7:23∼24) 얼핏 예수님과 유대인 사이의 사소한 언쟁 같이 보이나 사실은 매우 중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쉽게 말하면 결국 어느 쪽이 정말로 율법을 부정하는=파괴하는 자인가? (요 7:19)를 가리고자 하는 논쟁입니다. 모세를 통해 율법을 소유한 유대인들과 참 하나님과 참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사이에서 누가 과연 참으로 율법에 충실한 자인가? 누가 율법의 진정한 계승자(실현자)인가?를 가리고자 하였던 심각한 논쟁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다소간 연륜과 성경에 관심을 가진 몇몇 신자는 여기서 ‘안식일’ 법과 ‘할 례’ 법이 서로 충돌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럴 경우에 둘 중에서 우선되고 중요한 법을 지켜야 할 것이며 작고 사소한 법은 무시되어도 괜찮을 것이라고 흔히 판단합니다. 어떤 기준(시간)에 따라서 할례(아브라함에게 명하신 규례) 가 우선되고 안식일(제4) 계명은 후대에 규정된 법이기 때문에 무시되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안식일 계명이 결코 작거나 사소한 계명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안식일 계명은 전체 율법의 요약이라고 할 만큼, 십계명 한 가운데 위치할 뿐만 아니라 창조와 재창조의 관점에서도 우월하게 취급됩니다(창 2:3, 마 11:28∼30). 또한 그 분량에서도 말할 필요가 없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출 20:8∼11, 찬송가의 커버 페이지에 수록된 십계명 목록을 보라).

 

여기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주는 관행을 사례로 들어서 자신에 대한 그들의 판단(안식일 파괴자)이 일관성을 잃었다는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는 유대인들의 관습과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자신의 행동을 비교한 것은 이 두 가지 일이 동일한 원칙에 따라서 행해진 일이란 사실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라는 율법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한 계명에 구애받지 않고 (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였다면, 내(Jesus)가 병든 사람을 고쳐 건강하게 하고자 안식일에 병을 고친 일을 어떻게 이해하지 못하느냐?” 하는 뜻이었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할례를 명한 율법을 범하지 않기 위하여 안식일 계명을 지키지 않은 일을 옳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조심스럽게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얼핏 판단해서 두 법이 충돌할 때 반드시 둘 중에서 하나를 필히 희생해야 하는구나! 여기서 ‘할례’ 법과 ‘안식일’ 계명 중에서 더 크고 중요한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작고 사소한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오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흔하게 안식일 계명을 가볍게 여기기 쉬운 이유는 그저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정도로 아주 단순하고 피상적으로 이해할 뿐이고 그 참되고 깊은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늘날 신자들이 어느 한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계명을 가볍게 희생시켜도 괜찮다/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옳지 않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고 지키고자 하는 신자는 아래의 두 가지 경우를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곧 ‘작은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더욱 ‘중요한 큰 계명’을 무시하였던 경우와 그 반대로 ‘ 크고 중요한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다소 ‘사소한 작은 계명’을 무시하였던 경우를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첫째, 이른바 ‘작은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 중요한 큰 계명’을 버리거나 무시하는 경우입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십일조를 바치는 일은 아주 사소한 부분(박하, 허브, 미나리)에 이르기까지 충실하게 지키면서도 이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義, 정의) 인(仁, 긍휼) 신(信, 믿 음)을 버린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것만 지킨다면 사소한 것은 지키지 않아도 좋다고 결단코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강조하여 가르치시기를 “이것도 행하고 또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마 23:23). 나아가서 안(inside)은 깨끗하게 하고 겉(outside)은 더럽게 내버려두어도 좋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안을 깨끗하게 한다면 겉도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3:26). 결국 두 계명 중에서 어느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택하라는 그런 태도나 자세를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어느 하나도 버리지 말고 다 지켜야 할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를 범한 자가 됩니다”(약 2:10)하는 교훈은 우리에게 아주 유익한 말씀입니다.

 

둘째, 이른바 ‘크고 중요한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사소한 작은 계명’을 버리거나 무시하는 경우입니다. 

 

바로 위의 경우와 반대된 것으로 ‘중요한 큰 것’을 지키기 위해서 ‘사소한 작은 것’을 희생시켜도 좋다/괜찮다 하는 생각이나 판단에 대하여, 예수님은 아주 잘못된 관행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좋은 예로서 ‘하나님 공경-하나님 사랑’(제1계명)과 ‘부모 공경-부모 사랑’(제5계명)을 생각할 수 있다. 고르반(offer-ing to God=하나님께 드림)을 핑계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은 죄를 분명하게 드러내어 지 하셨습니다. 쉽게 설명한다면, 아주 중요하고 큰 대상인 하나님께 바쳤으니 다소 작은 대상인 그 부모에게는 (공경의 의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는 유대인들에게(막 7:11), 예수님은 그런 판단이나 가르침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가르침과 사람의 계명에 불과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막 7:13, 너희가 전한 전통[소위 ‘장로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 헛되게 한다). 즉 너희가 실제로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범하는 죄라고 분명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아무리 사소한 계명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공경 - 사랑을 핑계로 부모 공경 - 사랑의 계명을 희생시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작은 계명도 하나님의 계명이라는 점에서는 큰 계명과 결코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맺음말

 

오늘날 신자가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는 관행과 예수님도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신 것을 핑계 삼아서 이른바 큰 계명과 작은 계명이 서로 충돌할 때, 현재 우리의 형편이나 유익에 따라서 하나를 취하거나 하나를 버리는 잘못을 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로서는 어느 것이 작은 계명이고 어느 것이 큰 계명인지를 명쾌하게 구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작게도 크게도 보이겠지만, 모든 율법은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계명 하나라도 어긴다면, 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7계명)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6계명)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였을지라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약 2:11)

 

[편집자 주 : 2021년 12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7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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