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신문

[한준희] 주일 성수

복음뉴스 0 2022.04.10 15:50

한준희 목사의 성도들과 함께 생각할 신앙 칼럼 ⑤  주일성수

글 : 한준희 목사 (뉴욕 성원장로교회)

 

나는 목사가 된 이후에도 1년 6개월을 직장 생활을 했다.

회사 직원들이 내가 목사가 되었다는 것을 다 안다. 그래서 나는 언행에 특별한 신경을 썼다. 하지만 나의 경건된 언행을 무너뜨리게 한 것은 주일성수 문제였다.

 

사장 비서실에서 근무를 했던 나는 사장의 스케줄에 맞추다 보니 때로는 주일에 회사를 출근해야 할 일이 가끔씩 있곤 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없이 주일성수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되었고 담임목사님은 나의 이 같은 행동을 이해해 줄만큼 관대하지 않았다. 어느 날 담임목사님은 나에게 최후의 경고를 하였다,

“목사를 그만두던지, 회사를 그만두던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경고였다.”

 

회사를 그만두자니 당장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고, 더욱이 장남으로 부모님을 도와드려야 할 입장에서 경제적인 여유가 줄어들면 부모님에게도 삶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결단은 회사를 그만둘 각오로 회사에 선전포고를 하게 되었다.

“전 이제 주일에는 일하지 않습니다.”

그후 난 주일에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결국 그것이 문제가 되어 윗사람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고 결국 난 다른 부서로 갈 수밖에 없는 결정이 내려지면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주일성수는 오늘날 직장 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는 정말 무척이나 지키기 어려운 믿음의 시련이다. 정말 주일성수는 꼭 해야만 하는 것인가, 주일에 일을 하면 안 되는 것인가. 이런 질문에 성경은 단호하다. 주일, 안식일을 범하지 말라 이다. 성경 어디를 들여다봐도 주일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구절은 한 곳도 없다.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주일의 모체인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성경의 가르침에는 변함이 없기에 타협의 여지는 없다, 때로는 어떤 분들은 시대가 변했는데 신구약시대에 지켜졌던 안식일 규례를 지금도 지킨다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 율법적 규례다, 주일성수 안해도 구원에 문제 없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맞는 말이다. 구약적 안식일 규례는 신약으로 오면서 주일로 바뀌었듯이 주일의 개념도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논리다.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주일에 교회를 갈 수 없게 되자 성수주일에 대한 개념이 깨졌고, 공동체 모임이 이루어 질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올바른 주일성수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일 년 이상을 공동체 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었어도 신앙적 삶이 무너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수주일에 규례를 율법적으로 적용하지 말자는 것이 이 시대적 요구라 해도 그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여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보여진다.

 

그렇다면 공식적으로 주일성수를 성도들 자율에 맡겨도 될 것인가, 그렇다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성경 말씀을 어기면서 주일성수를 성도들 자율에 맡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럼 성경이 우리에게 주일성수에 대한 가르침은 무엇일까 연구해 보면서 시대의 흐름과 비교해 보면 어떨까?

분명히 주일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날이다. 안식일에 규례가 단호하다고 주일의 규례도 단호한 것일까? 안식일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성도라면 주일의 규례는 자율적이다.

 

주일을 기념하기 위해 직장에서도 두세 사 람이 모여 찬양과 기도로 주일성수도 할 수 있고,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날이 될 수도 있고, 아픈 성도들을 방문한다거나 봉사의 일도 할 수 있고, 직장을 다녀 온 후 부부가 함께 주일 예배도 드릴 수 있다. 왜 주일성수를 꼭 공동체 모임으로만 규정하여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규례를 만들어 율법화 시켜 놓느냐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주일성수에 대한 자율권이 개인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을 합법화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주일에 일을 해도 되고, 교회에 안 나와도 되고, 집에서 혼자 예배드려도 된다는 자율적인 신앙을 합법화시켜 놓으면 기독교는 무엇을 기준으로 성도라 하고, 무엇으로 믿는 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주일성수만은 지켜야 한다는 그 믿음의 행동이 기독교를 기독교 되게 하지 않았던가? 아마도 우리 기독교가 2,000년 교회역사 속에 지금까지 굳건하게 지켜왔던 초석은 목숨을 내던지면서 주일성수를 했던 믿음의 선조들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성수주일은 우리 신앙의 마지막 보루이다.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럼 초점을 주일성수를 못하시는 분들에게 맞춰보자. 주일성수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일성수를 못하고 직장에 출근했다고, 주님의 날인 주일을 맞이한 성도의 믿음마저 막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한마디로 직장 안에서 주님을 향한 나의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비록 교회는 못나갔고, 같은 공동체 모임에 함께 할 수는 없어도 일하면서 떨쳐버릴 수 없는 믿음의 자세만이라도 흐트러지지 않으면 얼마든지 주일성수를 하는 분들과 다른 바가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주일에 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주일에 교회 안갈 수도 있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순간부터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나도 모르게 망각하게 되고, 주님을 상실하는 순간, 신앙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일성수! 그래도 직장을 포기하는 결단까지 주일을 지키려는 자세만 있다면 때가 되면 주일성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은혜도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5:16-17)

 

[편집자 주 : 2021년 10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5호에 실린 글입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Comments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