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 받은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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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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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너로 인해 저주받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신 말씀이다. 아담의 죄로 인해 이 땅이 저주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가온 적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 받던 시기였다. 5월의 더운 날에 먼지가 이는 땅에 구르고, 흙먼지 속에 조교의 무서운 위협을 받으면서 훈련을 받을 때였다. 그때 이 땅이 무고한 피와 눈물로 더렵혀진 땅이었다는 것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것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땅이 저주받았다는 말씀은 자연 속의 양육강식의 현장을 주목할 때 실감난다. 몇년 전 남아 공화국의 국립 공원을 방문했을 때, 나무 사이로 영양 몇 마리가 숨어 있었다. 그 맑은 눈동자가 지금도 기억된다. 그 곳에는 사자, 표범, 악어들이 살고 있었고, 이 순하고 힘업는 양들은 장차 사자 먹이가 될 것이다. 그 맑고 순한 눈을 들여다 보면서 아픈 마음과 함께, 이 땅은 정말 못되 먹은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약한 동물들이 두려움 없이 살 땅은 어디 없을까? 뉴저지 들판을 걷다가 갈대 사이에 숨은 주먹만한 어린 토끼를 보면서도 같은 마음이 들었다. 이 땅은 맹목적인 양육강식의 땅이라는 것을 아무 생각없이 바라볼 수는 없지 않은가?
땅이 저주 받았다는 생각을 공법이 무너지고 거짓과 불의한 인간들이 자기 뜻을 이루는 대한민국을 생각할 때, 또 갖게 된다. 무슨 나라가 공법이 무너지고, 악인들이 자기 뜻을 이루는 나라가 되고 말았을까? 마땅이 법을 세워야 할 사법부는 불법을 용인하고, 좌경화된 판사들이 자기 뜻을 이루는 나라가 되었던 말인가? 정작 악인들보다 악을 비호하고 방조하는 사법부의 존재가 더 가증스럽다. 무능, 태만, 불법의 소굴이 된 사법부는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있다. 권위의 자리에 앉아 있지만, 사실은 불법의 내시들 아닌가? 힘있는 자들에게 양심을 파는 기회주의자들 아닌가?
이런 절망은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처형된 그날과 안식일에 유대 떵에 가득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소망을 두고 따랐던 제자들의 절망은 얼마나 컸을까?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하여 그를 따랐던 여인들의 절망과 탄식은 얼마나 컸을까? 그러나 제 삼일 처절하게 죽었던 그가 다시 살아 돌아왔을 때, 그들의 기쁨은 얼마나 컸을까? 그를 죽이고 득의만만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두려움과 절망의 시작이었고, 그를 처형했더 빌라도는 그를 따르는 성도들이 고백하는 사도 신경 속에서 두고 두고 그 죄악상이 기억되고 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죽으시고."
작금에 대한만국에서 벌어지는 희극이자 비극의 현실을 보면서, 먼저 이 땅이 저주받았다는 성경의 말씀이 되살아 난다. 과연 이 땅은 인간의 불법과 악으로 인해 저주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저주받은 땅에 자기 백성을 불러내고,자기 집을 세우신 하나님은 이 저주 받은 땅을 포기하지 않고, 때가 되기 전에 구원받을 백성들을 불러 내어 이땅의 소망과 등불을 삼으신다. 거짓과 불법의 인간들 속에 공의를 세우고, 심판을 경고하는 백성을 삼으신 것이다. 이땅이 어두어가는 데는 자칭 하나님의 백성이라 부르면서 불법과 거짓을 일삼는 거짓 백성, 거짓 지도자들도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닌까울 뿐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이 적은 무리의 백성들은 이 어둠의 현실 속에서도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가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로 살아 계시기 때문에, 이 세상은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땅이 아니고, 악이 자가 뜻을 이루는 땅이 아니라, 그의 간섭과 섭리 속에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과, 악인들은 반드시 처벌받고 수치에 이른다는 것, 이 땅은 하나님의 통치와 공의가 살아 있는 그의 무대라는 것을 드러낼 것이다. 역사는 그가 살아 활동하시는 무대요, 현장이라는 것을 믿기에, 아 캄캄한 현실 속에서 그의 나타나심과 활동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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