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말로 30여년 이민 목회 생활이 끝나게 된다. 참 긴 세월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고, 하나님의 돌보심과 붙들어 주심이 있어 그 목회 생활이 가능했다. 지난 날을 돌아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했음을 마음으로 고백하고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요즘은 사도 신경의 내용을 주일 마다 강해하고 있다. 오늘 주일은 우리 주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에게 탄생하신 사건의 의미를 살펴 본다.
우리 주님이 성령으로 탄생하신 이유, 첫째는 인간의 원죄에서 자유하기 위해서다, 남자, 여자의 관계를 통해 태어난 모든 인간은 원죄로부터 자유할 수 없다. 원죄의 영향아래 있는 사람은 자신도, 다른 사람도 구원할 수 없다. 주님은 성령으로 탄생하심으로 인간의 원죄로부터 자유하셨다.
원죄, 죄란 무엇인가? 죄의 가장 깊은 속성은 "자기 중심성"이다, 죄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평생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만사를 자기 중심적으로 판단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살려고 한다. 원래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도록 지음을 받았었다.
인간 삶의 모든 갈등의 뿌리에는 자기 중심성이 있다. 원죄의 타락한 성품을 안고 태어난 사람은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 이유는, 오직 성령의 감화, 감동 인도하심 속에서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성령의 감화, 감동,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가치있는 삶을 살게 된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교회 안에 앉아 있어도, 여전히 "육의 사람"으로 살게 된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목사의 이름을 가졌어도 여전히 자기 중심성 속에 살고, 자기 만족을 좇아 살 수 밖에 없다. 그런 사람은 천국, 하나님의 통치에 들어갈 수 없고,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
동정녀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자기의 안일한 삶을 비운 여인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드림으로 성령을 모시고,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에 동역자로 쓰임을 받게 되었다. 동정녀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자신을 비우고 드린 사람이 성령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동역자로 쓰임 받은 사람의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자신의 만족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을 비우고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의 동역자가 되고, 성령의 도움 속에서 귀하고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성령의 감화 속에서 사람은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을 위해 드려진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은 그 나라와 구원의 사역을 위해 마리아처럼 자신을 비우고 드리는 사람을 찾고, 그런 사람을 사용하신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다 지나가지만,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산다"
죄인된 인간 속에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으로 변화를 체험한다. 마리아는 성령을 모시고,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 속에 내어 주었다.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이 빚어 지고,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 성령의 임하심과 역사를 떠나면, 사람은 육의 한계 속에 살다 허망하게 떠나게 된다.
육이란 죄와 허무와 죽음의 존재를 가리키는 성경적 용어이다.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떠난 모든 종교는 육의 종교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성령 없는 기독교 신앙 생활도 육의 생활을 떠나지 못한다. 평생 자기 만족과 성취를 좇아 가다가 허무하게 끝날 뿐이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 하셨다. 우리 신자들은 날마다 성령의 도움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비로서 살아가게 된다. 우리가 날마다 성령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여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