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란 참 특이하다.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어도 모든 피조물을 지배한다. 사람은 시간 속에 태어나서 시간 속에 장성하다, 결국 늙고 쇠패하고 죽음의 길로 들어선다. 마치 피대 줄에 늘어선 통조림 통이 상자 속으로 뚝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도 어느날 죽음과 함께 영원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 시간은 언젠가 주님이 오시는 날에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영원으로 이어진다. 그때는 낳고 늙고 죽는 일이 없어진다.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도 없어진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고, 악한 사람들,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영원 속에서 영원히 고통 받는 삶을 산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기독교 복음 속에는 이런 끔찍한 메시지도 들어 있다. 우리는 그 영원이 도래하기 전에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시간은 왔다 지나가고, 그 사이 우리 나이든 사람들은 노쇠와 죽음의 길로 더 깊이 들어선다.
시간은 우리 피조물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는 하루 하루 새 시간을 받아, 그 시간 속에 자기만의 기록을 남기게 된다.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언어, 행위가 그 시간과 함께 하나님의 책에 모두 기록된다고 한다. 두렵기도 하고 신기한 일이다. 장차 시간이 정지되고 영원에 참여하는 그 날, 우리는 우리의 지난 날들의 모든 언어, 행위가 기록된 책을 보게 될 것이다. 어떤 기분일까? 놀람과 두려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는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른 종교는 장소를 신성시한다. 시간의 의미를 알고, 그 중요성을 아는 민족과 종교가 세계를 선도해 왔다. 이 시간은 반복되지 않는 일회성이다. 불교나 흰두교는 윤회를 말하면서, 시간의 의미를 상대화시킨다. 그런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시간의 의미, 역사의 의미를 설명하지 못하고, 역사 속에서 후진의 삶을 살게 되었다.
하루 하루 창조주 하나님이 주시는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과제로 남는다.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대답하는 사람이 시간을 가장 의미있게 사용할 것이다. 후회없이 종말의 그 날을 맞기 원하는 사람마다, 의와 진실의 가치를 알고 실천해야 하고, 역사 속에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참여하며 살아야 한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다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신다"고 하였다. 신속히 와서 사라지는 이 시간, 어떻게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할까? 모두가 가진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