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짜리 설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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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짜리 설교인가요?

한준희 목사 0 2023.07.31 18:15

미국에 전직 대통령이 중국인 커뮤니티에 초청을 받아 연설을 하였단다, 몇 시간을 연설했는지는 모르지만 들려지는 소문에 의하면 초청사례비 100만불을 주었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을 지낸 분의 연설 가치는 100만 불짜리이다. 

 

몇 년전 한국에 유명 목사님을 초청해 할렐루야 대회를 하였었다. 그때 내 기억으로 3번의 설교를 하였었다. 그런데 사례금으로 몇 만불을 드렸다고 한다. 물론 그 사례비는 그분이 다시 교협에 내 놓고 갔단다. 그분의 설교 가치는 만 불이 넘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인기 있고 유명한 신학자가 있다. 책도 많이 썼고 젊은 목사님들이나 신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분을 한번 초청해서 신학 강의를 듣는데 그 사례금이 몇천 불이다.

 

나는 몇 년전 한국에 갔을 때, 몇 개 교회에 초청을 받아 설교를 하게 되었었다. 한번은 잘 모르는 교회에 추천을 받아 가게 되었는데 그 교회도 처음이고 목사님도 처음이다. 수요예배에 설교를 맡아 했다. 그리고 사례비를 받았다. 그런데 봉투에 넣어 준 사례비 외에 또 다른 봉투를 받게 되었다. 먼저 것은 교회에서 주시는 사례비이고 뒤에 것은 여전도회에서 너무 은혜를 받았다고 즉석에서 헌금하여 드리는 것이란다. 봉투를 열어보니 달러로 계산하여 몇백불이다. 난 내 설교가 몇백불짜리 설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 후에도 많이 받은 적도 있었고, 적게 받은 적도 있지만 평균 몇백불짜리이다.

 

연설이나 설교 한마디가 돈이라는 가치로 평가를 한다, 얼마짜리라고... 그런데 그 가치를 평가하고 있는 기준이 바로 세상 잣대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수만명의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이기에 한번 설교에 그 가치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그렇게 평가해야 당연하다. 대통령을 지낸 분을 초청했는데 몇백불을 드린다면 그분의 가치를 평가절하 시킨거나 다름없다.

 

왜 이렇게 가치를 평가받아야 하나, 그 이유는 그만큼 쌓아 논 스펙이 크기 때문이다. 수백억대에 가까운 첨단 비행기가 고장이 났다. 전문기술자가 한 시간이상을 여기저기를 점검해 보고 한 개를 부품을 교체하였다. 그렇게 수리가 완료된 시간은 고작 10, 수리비 청구서가 날라왔다. 1억의 청구서다, 아니 겨우 10분 수리하고 한 개의 부품을 교체했을 뿐인데 1억이라니 순 사기 아닌가, 말들이 많다. 전문가가 한마디 했단다. 부품 교체비 1, 그 부품이 잘 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한 값 99999999, 수리가 중요한 것보다 그 수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까지 40년의 가치가 1억짜리로 평가한 것이다. 이것이 세상 기준이다.

 

그런데 목사님들의 설교가 그런 세상 잣대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천불 대 목사가 와서 설교했는데 백불짜리로 대우해 주면 그 목사를 낮은 수준으로 보았다는 말뿐이 안 된다. 그래서 그 가치대로 대우를 하고 사례를 한다. 이것이 이제 목사들 세계에서 보편화되어 버렸다.

돈으로 평가되는 설교자의 가치가 과연 옳은 제도인가 의문이 든다.

 

언젠가 모 목사님의 설교집에 이런 글이 쓰여져 있었다. “시골집 마당에서 키운 닭이 난 계란 한 꾸러미를 5일장에 처음 내다 파는 심정으로 설교집을 낸다.” 라는 글이 기억에 남는다. 부끄러운 계란 한 꾸러미같은 설교, 아직 대중들 앞에 내 놓을 만한 설교도 아닌데 설교집이라니 부끄럽단다. 그런 가치가 설교하는 자의 자세가 아닐까 본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을 부탁하신 것은 내가 말씀을 전할 가치가 있는 자였기에 나를 설교자로 삼으신 것이 아니라고 본다. 나 스스로도 그렇다. 젊었을 때 얼마나 못난 짓을 많이 했던가!


차마 글에 옮겨 담지 못할 언행을 서슴지 않고 했던 과거를 기억한다면 지금 내가 하나님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라는 것이 창피하고 부끄러워 강대상 위에서 설교할 때마다 긴장하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해야 나의 나됨을 인정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일까 목사님 오늘 말씀에 은혜 받았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마치 의자 밑으로 숨고 싶은 그런 심정이 원래 초심 때 했던 설교자의 자세 아니었던가.

 

그런데 언제부터 내 설교가 몇 백불짜리가 되었고, 몇 천불짜리가 되었단 말인가.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다 해도 하나님말씀을 전하는 설교마저 자본주의 가치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세상 가치와 동일한 존재로 전락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30, 40년 목회를 하면서 외쳤던 설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외쳤던 설교를 통해서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바른 자세로 살았나, 얼마나 그 말씀대로 하나님 앞에 서 있나, 정말 부끄 러움이 없는 설교이었는가, 그것이 말씀에 가치요 평가가 되어야 진정한 하나님짜리 평가가 아닐는지,

 

스데반이 피를 토하듯 외쳤던 설교에 마음에 찔려 회개하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와야 정상일진데 오히려 자신의 설교로 인해 돌에 맞아 순교의 길로 갔던 그 설교를 얼마로 평가하겠는가,

 

어쩌면 설교는 40여년 인생 삶의 여정과 그 많은 학문과 경험, 그리고 터득한 모든 것에 종합체이기에 한번의 설교가 수만불의 가치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가치가 물질로 평가되는 순간 이미 자기 상을 받았느니라.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 놓아야 할 것이다.

 

설교란 나를 통해 하나님의 가치가 들어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이 증명되는 것이지 내가 이 세상 것으로 받아야할 평가는 아니라고 보여진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7: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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