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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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음

한준희 목사 0 2023.05.25 13:17

오래전 맨하튼에서 장사를 하는 집사 한분이 우리교회를 열심히 다닌 적이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우리 사모는 가끔 이 분의 이야기를 한다. 그 이유는 이 집사가 교회를 출석하는 동안 우리교회 재정의 1/3를 감당할 정도로 헌금을 많이 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이 집사의 이야기를 한다, 언젠가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교회를 안다닌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나더러 전화한번 해 보라고 한다. 난 이미 그 집사를 내 마음에서 내려놓은 지가 십여년이 되었는데 사모는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는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하는데 사실인 것같다. 나이가 70대에 들어서 있으면 철없던 청소년 때 경험했던 첫사랑 정도야 잊을 만한데 50-60여년이 지났는데도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에 짐이 있는 모양이다.

 

사람의 모순이 그런 것인가 보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서 받은 긍정적인 면이나 부정적인 면들이 마음에 머물게 되는 모양이다. 20여년이 지난 집사를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마음에 머물고 있다는 것, 50여년이 지난 첫사랑이 아직도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바로 내려놓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

 

나는 목회를 하면서 목회에 성공해야만 한다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그 목적을 향해 달려왔다. 그런데 그 목적을 향해 일평생 달려오면서 내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목회를 방해했던 모 목사가 마음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그 인간만 안 만났어도 목회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한마디로 아직도 내가 내려놓지 못하고 마음에 머무르고 있는 그 억울함이 자리 잡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리고 보니 내 마음에 머무르고 있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참 나이가 어린 후배목사가 좀 친해졌다고 막말을 해대는 그 언행이 마음에 남아 있어서인지 그 후배를 만나면 늘 마음이 편치 않다.

어린시절 나의 아버지와 말다툼을 한 큰아버지가 우리를 향해 악담같은 욕을 해 대었던 그 말이 아직도 마음에 머무르고 있어서인지 한국에 가면 큰집 식구들은 아예 찾아보지도 않는다, 내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상처가 지워지지 않아서인가 보다,

 

내려놓지 못한 내 마음속에 머무르고 있는 것들이 마음에 상처만이 아니다.

교회협의회를 운영하는 몇 사람의 무지한 행동과 명예욕 때문에 진정으로 교계를 변화시킬 기회를 놓치고 엉뚱한 곳에 시간과 물질을 허비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분통이 터진다. 그런 분노가 바로 교협에 대한 애착이라 할까, 뭔가를 해 보고자 하는 열정이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도무지 교협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런 마음이 바로 아직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무지한 인간의 모습인 것 같아 나 자신도 답답하다.

몇 년전 젊은 선교사 한분이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던 적이 있었다. 그분은 선교지에서 인터넷을 통해 음란영상을 자주 본다는 것이다. 이제는 중독이 된 것같아 자신이 하나님의 종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질문을 했다, 목사님도 그런 음란영상을 자주 보느냐고?

 

그때 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말이 루터가 한 말을 대신했다. “새가 머리위로 지나갈 수는 있으나 머리에 둥지를 틀게 할 수는 없다.”우리가 음란물 홍수 속에서 살고 있어 피할 수는 없지만 그런 영상이 내 마음에 머물면서 둥지를 틀게 할 수는 없다는 말로 대변한 것이다.

보고 들은 것이 마음에 스쳐지나가게 되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타나는 일이지만 내려놓는 것은 내가 인생을 살면서 해야 할 책임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 책임을 일찍 깨달았느냐 늦게 깨달았느냐 차이일 뿐이다, 왜냐하면 삶의 모든 것은 어차피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인생을 넓게 보면 사람이 높고 낮음이나, 있고 없음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할 수 없는 것이나, 미스코리아에 당선되었던 할머니나, 농사나 짓고 살았던 할머니나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대기업 간부를 했던 친구나 평생 종업원으로만 살던 친구나 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내려놓아야 할 걸을 가지고 서로 비교 하면서 평가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왜 우리는 내려놓지 못할까, 사람이 살면서 끊임없이 취하려는 욕심 때문에 이것도 내것, 저것도 내것, 그렇게 정신없이 취해 논 모든 것들 때문에 얼마나 자신의 인생을 종노릇하면서 살아왔던가, 결국 평생을 이룬 모든 것들은 다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좀 일찍 깨달은 사람은 일찍 자유를 얻었을 것이고 늦게 깨달은 사람은 죽을 때나 가서 깨닫는 차이인 것 같다.

 

목회, 교회건물, 물질, 자식, 손주들 어차피 나이 들면 다 내려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교회라는 건물 때문에, 아니 일평생 이룬 내 목회였기에 죽어도 내려놓을 수 없는 머무름이 얼마나 큰 고통과 괴로움을 동반하고 있었던가. 어차피 내려놓을 것들이다. 하루라도 빨리 내려놓으면 내려 논만큼 자유자가 되고 또 다른 사명이 주어진다는 것은 성경이 가르친 진리 아니던가,

 

우리는 원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존재 아닌가, 일평생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한량없이 풍성한 은혜로 채우시고 또 채우셔서 지금까지 누리고 살았다면 그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 그게 원래 우리 모습이다.

내려놓자, 아무것도 없었던 내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자. 다 내려놓고 다시 빈손으로 하나님 앞에 서 보자. 인생의 마지막이 오기 전에......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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