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엡4: 22-32
제 목: 성령이 온전케 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 심을 받았느니라.(엡4:30) And grieve not the holy Spirit of God, whereby ye are sealed unto the day of redemption.(Eph4:30)
본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새사람은 온전한 사람을 말씀합니다.
지난 시간에 새사람(그리스도인)은 온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새사람은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새사람은 거짓을 버리라고 합니다.
거짓은 마귀 자식의 증거가 됩니다.
새사람은 정직하라고 했습니다.
정직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입니다.
새사람은 분을 내어도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는 말입니다.
새사람에게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2)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했습니다. (엡1:23)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입니다.(엡4:15)
성도들은 그 몸에 붙어 있는 지체들입니다.(고전6:15, 고전12:12-31,
엡4:16)
주님을 교회의 머리라고 한 것은, 모든 중심이 예수그리스도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15절)
머리로부터 인지 능력을 전달받고, 모든 지체의 기능이 제 역할을 잘 해야 건강한 사람입니다.
몸의 지체는 각각 중요한 역할들이 있습니다.
얼굴에 아름다움이 있듯이, 말에도 아름다운 말이 있습니다.
음식에 맛이 있듯이, 언어에도 맛있는 언어가 있습니다.
우주 만물에 조화가 있듯이, 말에도 조화가 있습니다.
분노를 일으키고 절망을 주는 말이 있는가 하면,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말을 주로 사용하십니까?
어느 날 주인이 종에게 시장에 가서 가장 맛있는 것을 사 오라고 했답니다.
종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혓바닥을 사왔답니다.
의아해서 왜! 혓바닥을 사왔느냐고 물으니, 가장 맛있는 것으로 말하면 혀에서 나오는 말보다 더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가장 맛없는 것을 사오라고 했더니, 또 혀를 사왔답니다.
화를 내는 주인에게 가장 맛없는 것으로 하면, 혀보다 나쁜 게 어디 있겠습니까? 하더랍니다.
혀는 아주 작은 지체입니다.
그런데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작은 혀가 행복을 만들기도 하고, 불행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삶의 용기와 희망을 줄 수도 있고, 절망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혀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말은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엄청난 위력이 있는 혀를 하루도 생각 없이 움직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약 3:4-8에 말의 위력을 세 가지 비유로 말씀했습니다.
하나는, 혀를 배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큰 광풍에 밀려가는 배를 작은 키로 항로를 따라 방향을 잡는 것처럼, 작은 혀도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면, 인격이 파괴되고 인생을 불행으로 침몰시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약3:4)
또한, 혀를 불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고 했습니다.(약3:5-6)
작은 불씨가 온 세상을 태우는 것과 같이 우리의 혀도 작은 지체인데, 온 몸을 더럽히기도 하고 인생을 불사르고 삶을 황폐하게 파괴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혀는 길들일 수 없는 지체라고 했습니다.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길들일 수 있으나,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않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7-8)
TV에서 호랑이 사자 같은 맹수들이 어린아이와 함께 노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자의 목덜미를 어린 아이가 끌어안고, 사자 등에도 탑니다.
조련사에 의해서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짐승이나 벌레나 하물며 물고기까지 길들여지지 않는 생명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길들여지지 않는 지체가 있는데, 사람의 혀라고 했습니다.
혀는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잘 사용하면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립니다.
잘못 사용하면 나도 망하고 남도 죽이는 독이 됩니다.
생명을 살리는 좋은 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1. 말에 의한 경고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29절)
말로 인한 상처가 가장 큽니다.
사람이 한번 내 뱉는 말이 가슴속에서 평생 지워지지 않고 남을 때가 있습니다.
손에 의한 폭력보다 말에 의한 폭력이 더 무섭습니다.
말은 칼보다도 무서운 지체입니다.
칼에 찔린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말에 의한 상처는 평생 치료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성도 간에도, 말에 의한 상처가 가장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말의 위력을 지적했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29절)
성도가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해야 할 말이 무엇인가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1) 성도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은 무엇입니까?
(1)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29절)
유익되지 않는 말. 탐욕적인 말, 음란한 말, 상처 주는 말, 남을 비방하고 헐뜯는 말, 불신앙적인 말을 더러운 말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 왜냐하면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불신을 주고, 삶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2) 성도가 해야 할 말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말을 하라, 입니다.
덕을 세운다는 말은 집의 기둥을 세운다는 말입니다.
즉, 기둥을 잘 세우는데 사용되는 재료처럼 쓰이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세워주고 이웃을 세워주는 말이 덕을 세우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2) 또 하나는 선한 말을 하라, 입니다.
선한 말이란 듣는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말입니다.
듣고 나면 용기와 희망이 생기고 위로가 되는 말입니다.
긍정적인 말입니다, 높여 주는 말입니다. 세워주는 말입니다.
(3)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세요.
‘은혜를 끼친다.’ 는 말은 (29절)
하나님을 생각하게 만드는 말입니다.
믿음의 말입니다.
믿음을 떠난 것은 어떤 것도 은혜가 아닙니다.
여기까지 온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고백이 은혜를 끼치는 말입니다.
듣는 사람에게 소망을 주는 말입니다.
칭찬하는 말입니다. 자녀를 칭찬하세요.
아내를 남편의 장점을 칭찬하세요. 교회를 칭찬하세요.
성도를 칭찬하고. 목사를 칭찬하세요.
이것이 은혜를 끼치는 말입니다.
감사를 고백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은혜를 끼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2.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말라.(30-32절)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30절)
하나님의 성령이 근심한다는 말은 부모가 삐뚤어진 자식 때문에 근심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은 단순히 능력이나 감화력만이 아니라, 인격적인 분이기 때문에 더럽거나 옳지 못한 말을 할 때, 성령을 근심되게 하고 슬프게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근심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가 잘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 받은 사람의 속에는 영이 깨어 있습니다.
잘못 살 때, 성령의 탄식이 속에서 들려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다섯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 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31절)
(1) 악독입니다. 독기를 품고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말합니다.
(2) 노함입니다. 악독에서 나온 격정적인 분노를 노함이라 합니다.
(3) 분 냄입니다. 분을 품고 보복하려고 격분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4) 떠드는 것입니다. 분쟁을 일으키는 것. 트러블 메이커입니다.
(5) 비방하는 것이다. 악의를 품고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적한 다섯 가지는 성령을 근심되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며, 악의 뿌리가 됩니다.
이런 것을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했습니다.
2) 그러면, 성령이 근심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 내적인 증거
영이 깨어 있는 성도는, 성령이 근심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평안하지 않습니다. 안식이 없고, 악몽을 꿉니다.
말씀이 들어오지 않고, 기도 줄이 안 잡힙니다.
영감이 오지 않고 입에서 찬송이 끊어집니다.
(2) 외적증거
생각지 못한 문제가 자꾸 생깁니다.
길이 자꾸 막힙니다. 고난이 옵니다.
관계가 뒤틀립니다. 이럴 때 우연이 아닙니다.
세미하게 들려오는 성령의 탄식을 듣는 것이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럴 때 금식도 하고 작정기도 하면서, 영적 주파수를 하나님께 맞춰야 합니다.
영적인 감각이 없는 사람은, 아예 성령이 근심하시는 것도 모릅니다.
성령이 근심하시는 것을 안다는 것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신앙이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입니다.
3. 서로 용서하며 사는 것입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납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 같이하라(32절).
용서는 상대에게 은전을 베푸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1) 복수는 복수를 낳습니다.
용서를 하지 못할 때, 세상이 얼마나 불행한지 모릅니다.
미국 이민 온 사람이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밀주 업을 시작했습니다.
술을 팔아서 큰 과수원을 사들였습니다.
그는 딸이 있었는데 딸을 무척 사랑했고. 오직 딸과 돈만이 최고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폭도들이 과수원에 불을 지르고 재산을 약탈해 갔습니다.
딸의 아버지는 불길에 휩쓸려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후에 그의 딸은 대부호인 남자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런데 후에 그 남편이 바로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는 남편을 증오하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중병에 걸린 남편에게 복수하려고 외도하고 임신을 했습니다.
남편이 병상에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아내가 지금 임신 중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아이가 아닙니다.
남편은 아내를 증오하며 “그때 너도 너희 아버지처럼 태워 죽였어야 했는데” 라고 하며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불행으로 끝이 났습니다.
마음에 분노를 계속 품고 용서하지 않을 때,
(1) 정신세계가 황폐해져서 신경질을 잘 내고, 남을 증오하며 인격이 무너집니다.
(2) 불면증, 우울증, 피해망상증 같은 질병이 많아지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성이 파괴됩니다.
진정한 용서만이 모든 관계가 회복됩니다.
2) 용서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1)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깁니다.
불쌍히 여기며... (32절 중)
손양원 목사님이 자식을 죽인 원수를 오히려 교도소를 찾아가 석방을 시키고 자식을 삼았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자들을 용서하신 것은 단순하게 기억에서 지워버린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해 저들에게 벌을 내리지 말아달라고 중보기도를 드리신 용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성도를 온전케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시는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엡4:12)
그러기에 새사람(그리스도인)은 온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직히 행하라고 했습니다.
분을 내어도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분을 해가 지도록 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렇게 하므로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엡1:23)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입니다(엡4:15)
온전한 교회를 만드는데 가장 무서운 것이 ‘말’ 입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29절)
성도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은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29절)
유익되지 않는 말. 탐욕적인 말, 음란한 말, 상처 주는 말, 남을 비방하고 헐뜯는 말, 불신앙적인 말을 더러운 말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 왜냐하면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불신을 주고, 삶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마셔야 합니다.
세미하게 들려오는 성령의 탄식을 듣는 것이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럴 때 영적 주파수를 하나님께 맞춰야 합니다.
성령이 근심하시는 것을 안다는 것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30절)
바울이 교회에 권면한 말의 실수들, 성령을 근심되게 하는 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신앙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영육 간에 모든 장애물을 푸는 열쇠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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