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마14:22-32
제 목: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 지라. (마14:31-32) And immediately Jesus stretched forth his hand, and caught him, and said unto him, O thou of little faith wherefore didst thou doubt? And when they were come into the ship, the wind ceased.(Mat14:31-32)
찬양사역자 김석균 씨가 작곡한 복음성가에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슬퍼하지 마세요. 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하필 나냐고요, 하면서 원망합니다.
불평불만 하면서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환경은 항상 풍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크고 작은 풍랑은 언제라도 일어났습니다.
주님이 늘 다니던 갈릴리 바다에도 예상치 못한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환경에만 풍랑이 있는 것 아닙니다.
마음에도 풍랑이 있고, 정신세계에도 있고, 영적인 세계에도 있습니다.
보이는 풍랑도 있고, 보이지 않는 풍랑도 있습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사공이 풍랑이 전혀 없는 날을 기다린다면 평생 한번도 항해하지 못 할 것입니다.
인생을 사는 동안 크고 작은 풍랑이 문제가 아닙니다.
바람은 언제든지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평안은 폭풍 없는 평안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 누리는 평안입니다.
어느 화가가 그림을 풍랑 속에서 위험에 처해 있는 배를 그렸답니다.
많은 사람을 태우고 항해하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직전에 있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도, 그 안에 탄 사람들이 다 웃음이 있고 기쁨이 충만한 모습이었습니다.
도대체 배가 침몰하는데 어떻게 기쁨이 있고 웃음이 있을까요?
그림 속을 자세히 보니 키를 잡고 있는 선장이 바로 ‘주님’이었습니다.
주님이 선장이셨기 때문에 풍랑 속에서 배가 침몰되어도 사람들은
걱정이 없고, 불안도 없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배를 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질병 위험 사고 실패의 항로 속에서 누가 여러분의 선장이 되십니까?
인생의 항로에서 여러 가지 풍랑을 만날 때, 주님이 선장이 되신다면, 어떠한 풍랑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풍랑이 문제가 아니라, 풍랑을 잠잠케 하실 주님이 계시느냐? 아니냐? 가 중요합니다.
마치 전쟁 속에서도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있으면 평안하듯, 성도는 주님과 함께 있어야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오늘 말씀에 사역을 마치고 주님은 육지에 계시고, 제자들 끼리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풍랑을 만나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오셨습니다.
베드로는 너무 기뻐서, “주여! 나를 걸어오라고 하소서”. 하니
예수님께서 걸어오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시선을 집중하고 거침없이 물위를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강풍이 불어왔습니다.
베드로는 바람에 의해 산더미 같이 생긴 파도를 바라보았습니다.
순간적으로 두렵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람이 불든 태풍이 일든 주님만 바라보면 되는데 바람을 보았습니다.
순간 .... 바람을 보고 무서워 물에 빠져가는 지라. (30절)
‘바람을 보고’.. 입니다.
무엇을 보느냐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장래가 결정됩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큰 바위에 얼굴이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는 주홍글씨로 유명한 ‘너새니얼 호손’ 의 소설이었습니다.
미국 작은 마을에 큰 바위 얼굴이라 불리는 거대한 얼굴 모양의 바위산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로부터 언젠가 저 바위산을 닮은 얼굴의 위대한 인물이 등장할 것 이라는 전설을 굳게 믿고 어린 시절부터 꿈꾸며 자랐습니다.
주인공 어니스트가 바라던 큰 바위의 얼굴의 사람으로 자기가 닮아 집니다.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기도하면 그대로 됩니다.
청년 때 스승인 조용기 목사님의 ‘바라봄의 법칙’ 이라는 설교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바람을 보면서, 믿음을 잃고 물에 빠졌습니다.
주님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베드로를 건지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면서 베드로의 손을 잡고 함께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31절)
주님은 믿음이 없는 자라고 하지 않고, 믿음이 적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풍랑이 문제가 아니라,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코로나가 문제가 아닙니다.
바람은 언제라도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믿음과 직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느 환경에 있든지 주님과 함께 있으면 됩니다.
‘예수 없는 시간, 예수없는 장소’ 에서 풍랑을 만날 때 문제가 됩니다.
풍랑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1. 풍랑이 문제가 아니라, 주님이 없는 환경이 문제였습니다.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24절).
1) 주님과 떨어져 있는 시간에 풍랑을 만났습니다.
주님은 육지에 계셨고, 제자들끼리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풍랑을 만났습니다.
주님과 제자들이 떨어져 있는 시간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없는 시간에, 예수님이 없는 장소에서 풍랑을 만날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풍랑은 언제라도 일어납니다.
풍랑이 문제가 아니라 주님과 떨어져 있는 환경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신앙은 항상 주님과 함께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하나님도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약4:8)
시73:28에도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느 때 풍랑이 불어올지 모르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있으면 두려울 것 없습니다. 평안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주님과 함께 동행 하고 계십니까?
주님은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찾아오셨습니다.
찬432)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저 등대 불빛도 희미한데
이 풍랑에 배 저어 항해하는 이 작은 배사공은 주님이라.
나 두렴 없네 두렴 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리라.
2) 주님이 찾아오시는 방법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님이 먼저 제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25절)
풍랑에 시달리며 고난당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1) 주님은 병든 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2) 울고 있는 마리아를 찾아 오셨습니다.
(3) 빈 그물만 끌어올리고 있는 밤새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4) 삭개오야! 내려오라, 고 부르셨습니다.
(5) 선악과를 따먹고 불안해 떨고 있는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셨고,
(6) 제사를 실패한 가인에게도 찾아오셔서 네가 분노함은 어찜이냐? 고 깨우쳐주셨습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를 먼저 찾아오십니다.
충성할 때도 찾아오시고, 잘못 살았을 때도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에도 찾아오십니다.
혼자 힘겨워 하지 말고, 울지만 말고 예수님 품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영안이 열려있고, 깨어 있는 자들의 축복입니다.
왜 찾아오십니까?
위로해 주시려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찾아오십니다.
우리는 찾아오신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만나는 길이요. 주님과 교제를 회복하는 방법입니다.
25절에 주님은 밤 4경에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밤 4경은, 새벽3-6시를 말합니다.
(1) 아직 먼동이 터오지 않은 캄캄한 밤입니다.
(2) 가장 힘들고 지쳐 있을 때였습니다.
(3)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고난을 당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4) 이럴 때 주님은 제자들을 홀로두지 않으시고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축복이요 은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이 함께 있을 때,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여러분은 항상 주님과 동행하시길 축복합니다.
2. 풍랑을 만날 때 무서워 하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30절)
1) 바람을 보면 빠집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향하던 시선이, 풍랑을 보는 순간 두려움이 찾아왔고, 믿음을 잃고 말았습니다.
바람을 보면 빠집니다.
환경을 보면 그 환경에 동화됩니다.
사람을 보면 실망합니다.
걷잡을 수 없이 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문제를 만날 때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님께 시선을 집중해야 합니다.
히12;2에 믿음이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예) 전에 민속촌에 가면 외줄 타는 분이 여러가지 묘기를 보였습니다.
한복을 입고 부채를 흔들어 가며 외줄 탈 때, 위험천만 했습니다
줄을 탈때 반드시 위를 바라봐야지, 아래를 보면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인생 살면서 어디를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시선을 집중하지 못하고, 바람을 보는 순간 빠져 버렸습니다.
2) 주님께 시선을 집중할 때 바람을 이 길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를 바라보며 살아가십니까?
희랍사람들은 인간을 ‘안드로포스’ 라고 했습니다.
위를 바라보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 고 했습니다.(골3:2)
위에 계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평안을 얻고, 지혜를 얻고, 풍랑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파도를 보고 두려워 할 때,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바라보며 평안을 얻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바람이 불든 말든 주님께 시선을 집중했다면 파도 위를 걸어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람을 보고 풍랑을 보았기 때문에 빠졌습니다.
여러분은 시선을 어디에 두고 사십니까?
바람을 바라봅니까? 주님을 바라봅니까?
주님께 시선을 집중하시길 축복합니다.
이라크 전투 때, 제퍼 패튼이란 중령이 전투기 편대를 이끌고 이라크 국경을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제트기가 미사일 레이더망에 걸려들었습니다.
그는 몸부림치듯 제트기를 조작해서 레이더망을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너무 긴장하다가 그만 귓속에 평형감각을 잃었답니다.
귓속에 달팽이관을 고장 났습니다.
자신은 제트기가 상승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계기판을 보니까, 땅을 향해 60도로 곤두박질을 치면서 내려가고 있었답니다.
바깥은 칠 흙 같이 어두웠습니다.
패튼 중령은 제트기가 상승하고 있으니 기수를 더 올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계기판은 정반대였습니다.
이때에 자신의 생각을 신뢰할 것이냐? 계기판을 더 신뢰할 것이냐를 선택을 하지 않으면 죽음이 오는 순간입니다.
패튼 중령은 자기의 경험 생각을 내려놓고 정확한 계기판을 보았답니다. 그리고 제트기를 올렸답니다.
700미터 고지를 그대로 추락하려는 순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건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환경과 조건을 넘어 하나님을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생각과 정 반대가 될지라도, 계기판을 선택한 조종사처럼, 내 생각 내 방법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계기판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3. 주님은 문제의 본질이 작은 믿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의심하느냐 하시고 배에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 지라.(31-32절)
1) 믿음이 적은 게 문제였습니다.
31절에 ‘믿음이 없는 자라고 하지 않고, 작은 자’ 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믿음이 없는 게 아니라, 믿음이 작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믿음이 없는 게 아니라, 믿음이 적은게 문제입니다.
(1) 믿음이 작다는 말은, 믿음이 가볍다는 말입니다.
가벼우니까 잘 흔들립니다.
기분에 흔들리고, 감정에 흔들리고, 환경에 흔들립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잘 흔들립니까?
주님은 흔들리지 않는 큰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백부장을 향해 큰 믿음이라고 하셨고, 가나안 여인을 향해 큰 믿음이라고 칭찬하시며 “네 소원대로 되라” 고 하셨습니다.
적은 믿음이 큰 믿음이 되시길 바랍니다.
큰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기세요.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행동하세요.
그러면 믿음대로 됩니다.
2) 또한, 주님과 한배를 타야 안전합니다.
‘주님과 함께 배에 오르니 바람이 그쳤더라.’ (32절)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 모든 바람이 그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KWMC 상임회장 고석희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성공적 선교대회를 마치면서 100세 어머님께 마지막 기도를 부탁했답니다.
어머니께서 몇 명이나 오셨소? 하고 묻더랍니다.
네, 5천명이나 등록했습니다.
선교사님들은? 네, 1천 2백 명이요. 먼 곳에서 많이 들 오셨네.
하시면서 “예수님도 오셨겠지”? 라고 묻더랍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 예수’ 모신 곳이 천국입니다.
내주 예수 함께 하는 곳에 하늘 평안이 임합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자리. 이곳이 평안하고 안전한자리입니다.
축복의 자리요. 은혜의 자리입니다.
세상이 요동치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큰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달려가기를 축복합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