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일터 속에서 그리스도인
본문 : 사도행전 11:24-26
사람은 늘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 중에 말에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행동에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수시로 말과 행동이 바뀌면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용을 잃어 버립니다. 신뢰가 깨집니다.
자기 스스로도 이랬다 저랬다 하면 사람들이 분명 자기를 싫어할 것임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덕이 죽 끓듯 합니다. 왜 그럴까요. 거기엔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자존심 일 것입나다. 사람은 자존심으로 살기 보다는 자존감을 갖고 매사에 충실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 접한다 할지라도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지 않는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인가?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은 사람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이며, 각자의 생활 터전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충실히 임하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증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보고 듣고 믿고 경험한 것을 선포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
교회 생활과 사회 생활이 이중적이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배운 대로 일터에서 적용하며 사는 겁니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막상 일터에서 그렇게 살려고 하면 왜 그리 방해가 많은지요.. 너무 잘난체 한다느니,, 그저 적당히 살면 되지.. 그렇게 산다고 덕 되는 게 있나요.. 뒤에서 수군덕 거리며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를 든다면 괜스레 교회 다닌다고 했다가 손해 보거나 부당한 처사를 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일 것입니다.
성도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며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신있게 그리스도인임을 밝히는 겁니다. 그리고 삶으로 증명해 보이는 겁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불필요한 것들은 과감하게 가지치기 하면서 오직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빌 2;15-6에서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하면 너희가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아 하늘의 별과 같이 그들 가운데서 빛나리라
그리스도인들이 일터에서 굳건한 신앙인으로 자라가려면..
하나는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잡는 다는 것은 모든 일에 말씀으로 대처 한다는 의미 입니다. 상황에 따른 변명이나 적용이 아니라, 모든 일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처해 가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때는 고지식 해 보일 수 있습니다. 꽉 막힌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면서 대처해 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면..우선 길을 잃지 않습니다. 세상속의 일터는 잡다한 생각들로 수두룩 합니다. 까닭 잘못하면 길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세상을 따라 가기 쉽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누구인지 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말씀에 굳게 서면 혼돈 속에서도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부정과 부패를 떠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얻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삶을 사는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빛으로 빛나야 합니다.
마태는 마 5:16에서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고 했습니다.
빛과 같이 빛난다는 말의 의미는 뭘까요? 바울은 이것을 복음을 굳게 붙잡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복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겁니다.사람이 본다고 누가 본다는 달라지는 게 아닙니다.
성경이 왜 중요 한가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위력이 어떠한지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일터 속에서 빛나야 합니다.
잘난체 하는 게 아닙니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서도 성실함을 유지 하는 겁니다 .
말씀에 충실하는 겁니다. 말씀에 스스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도록 인내하며 삽니다.
안디옥 교회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왜 안디옥의 사람들은 세상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워졌나요?
삶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그리스도인이라 부른게 아닙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사람들이 무엇을 보았기에 그리스도인라고 불렀을까요?
크리스찬(Christ + ian= 그리스도 + ~에 속한 사람 = 그리스도의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먼저 철저한 말씀 공부에 충실했던 사람들입니다.
두 리더자의 철저한 말씀에 입각한 가르침입니다.
행11:26절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두 사람은 바로 바나바와 사울입니다. 두 사람은 한 사람은 부자 입니다. 한 사람은 율법에 충실한 자입니다. 자기 방식을 고집하거나 주장하지 않습니다. 서로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결코 교만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을 통해서 큰 무리들은 말씀을 배웁니다. 말씀을 토대로 해서 세상 일터에서 그대로 적용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일터는 변합니다.
하나는 인간 존중 입니다.
큰 무리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큰 무리라면 엄청난 사람들 입니다. 이들 중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겉으로 사람을 평가 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눈으로 사랑합니다. 이들이 말씀을 통해서 변화를 받습니다.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행 13:1에 보면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한 내용이 나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래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큰 그림으로 볼 때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말씀은 사람을 존중하게 만듭니다.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걸까요? 복음에 굳게 섰던 사람들이 세상에 나가서 어떻게 사람들을 대했는가를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비판은 눈을 멀게 하고 사랑은 눈을 뜨게 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비판은 외형주의에 빠져 사는 사람입니다. 겉모양만 보고 쉽게 비판 합니다.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인되고.. 평가해 버립니다.
그러나 사랑은 내면을 봅니다. 외형적으로 너무나 허물 투성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감싸 줍니다. 길을 열어 줍니다.
둘, 섬김과 나눔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면서 강조하셨던 삶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배운 대로 삽니다. 주는 자가 복되도다.. 자신에게 있는 것을 남에게 줍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섬김을 자처 합니다.
무엇인가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공간과 시간을 초월 합니다. 사람을 파견합니다. 필요한 물질을 전달 합니다.
넷, 삶의 현장에서 태도 입니다.
어느 곳이나 사이에서 드러납니다. 부지런함과 게으름 입니다. 열정과 무관심입니다. 사이 속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가 정말 중요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일터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부지런함과 열정을 갖고 사는 겁니다.
그리고 영적 분위기가 충만해지면서 다가오는 박해
안디옥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칭찬을 받을 때에 소위 영적으로 적군들은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요? 그냥 가만 둬서는 안된다는 생각들이 지배적이었을 것입니다.
박해가 시작 됩니다.
박해 속에서도 기도와 금식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바로 기도 입니다.
요약해 본다면
안디옥 사람들이 안디옥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안디옥교회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전도하고 자주 모이는 것을 흔하게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과연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워 지는가? 하는 점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 이런 급박한 상황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순종이 식어졌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불신자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 속에 속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겁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마음 가짐입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붙잡고 살겠다는 굳건한 각오와 결의가 필요 한 때 입니다.
불신자들 속에서 성도는 말이 아닌 삶으로 드러내는 겁니다. 저 사람은 말은 별로 없는 데 너무 신실해.. 저 사람은 가만히 보니까.. 너무 괜찮아.. 성도는 불신자들 사이에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먼저 말씀으로 철저하게 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검 곧 말씀을 갖고 불신자들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필요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협력하는 삶입니다.
자신에게 솔직하게 질문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세상 직업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일을 하든 삶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즐겁게 그리스도를 높이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을 크게 높이는 일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을 자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높이는 삶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하는 중에 하나님과 즐겁게 교제하는 일입니다. 창의성과 근면을 통해 하나님을 기뻐하며 사는 겁니다 .
복음을 통해 우리의 하는 일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일을 드러내는 겁니다. 그리고 경제적 보상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일을 기뻐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일터에서 복음을 전하고 실제적으로 도움을 주며 인간 존중을 하면서 사는 겁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삶의 현장에서 살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일터라는 영적 전쟁터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매 순간마다 그리스도를 높이는 마음 가짐입니다. 그럴때에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질 것입니다.
비판 과 평가 보다는 사랑으로 감싸 줄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 생겨날 것입니다.
일터는 불신자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만들어 가십시오..
불신자들이 여러분들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접할 수 있도록 행동하십시오
여러분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주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만 드러내는 겸손한 성도가 되시길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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