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그들에게 일어난 일들이 우리의 본보기가 되나니
본문:고전 10장 6-11절, 이러한 일들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죄악 된 4가지 사건(금송아지 우상숭배, 모압 여자들과의 음행, 원망과 불 뱀의 공격, 고라를 가혹하게 심판한 것에 대한 투덜거림과 멸망)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들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바울은 고린도의 교인들에게 옛적 히브리인들의 일들을 거론하면서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옛적 히브리인들의 일(모세 때의 역사적인 사건)을 신약의 고린도교인들(바울 때의 신자)에게 적용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말세를 맞은 현대의(21세기) 신자에게까지 깨우침을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밝힌다(11절을 참고하라).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사건을 어떻게 읽고 대해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1. 먼저 여기서 마치 “창문으로”(by the window) 성경의 역사(저기의 그들의 일)를 이해하고 파악하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성향과 기질로 이런 것을 좋아하는 분이 계십니다(사건을 분석하고 객관화 시키는 분). 그때 거기서 그들에게 도무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성경과 역사를 읽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들이 이렇게 살아서 실패했구나! 분석하고 핵심을 파악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쉽게 말하면, 집 안에 있는 내가 여기서 “창문을 통해서”(through the window) 집밖의 일, 저기의 일이 어떠했는지를 살피고 확인하는 것과 닮았습니다. 그런데 무게의 중심이 항상 그들의 일(the things happened to them)을 살피는데 있습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진짜는 무엇이었는가, 팩트(사실이나 진실)는 무엇이었는가? 물론 정확한 역사적인 사실을 확인하면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런데 항상 무게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 그들의 것을 살피고 확인하는데” 머물러버릴 한계나 위험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다른 한편으로 내가 마치 “전신거울 앞에(before the mirror)” 서있는 사람처럼, 성경의 사건을 통해서 나를 비추어 보고 가슴을 치고 울며 회개로 곧바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공감 능력이 아주 뛰어난 주관화에 능한 분입니다). 기본적인 성향으로서 성경과 사건을 읽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나에게서 일어났던 일(과거)이 연상되는 분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본문 자체의 의미(과거 그들의 사건의 의미)보다는 내게서 일어난 비슷한 일을 가지고 묵상하는데 치중한다는 뜻이다. 만일 역사(사실)가 없는 것을 가지고 나와 우리의 일을 연결해서 적용/묵상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성경의 역사적인 기록을 가지고 나/우리를 살피는 일은 지극히 올바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을 향하여, 구약 히브리인들의 일을 “우리에게”(=신약성도와 말세의 신자에게) 비추어볼 것을 매우 강조합니다. 바로 우리를 위한 본보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구약의 과거의 실패나 기록은 사실 이후 세대를 위한 본보기로 기록되었다는 뜻입니다(우리의 전신거울로 주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경을 읽는 자에게서 반응(찔림, 절규, 회개…)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성경읽기는 무미건조한 분석과 객관화만 추구하는 일로 추락하고 말 것입니다. 바라고 소망하기는 풍성한 성경읽기를 통해서(=객관적 사실과 의미파악을 넘어서 전신거울 앞에선 나 자신보기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실패, 조상의 죄, 이웃의 슬픔과 고난에 대하여 공감하시는 중보자(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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