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1-11절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즉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이 초막절 기간 동안에 적당한 구실만 있으면 예수를 잡으려고 시도하고 있었습니다(요 7:45-52). 그러다 마침 간음한 여인을 현장에서 잡은 사건이 발생하자 그들은 이 사건을 예수를 시험하여 체포할 구실을 마련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기로 하고 그 여인을 예수 앞에 끌어왔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3, 4절).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5절).
율법은 간음한 자를 돌로 쳐 죽이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레 20:10 신 22:21, 22, 24 겔 16:38). 이러한 율법의 조항에 따라 교권을 장악하고 있는 그들은 간음한 여인을 재판하여 사형언도를 내리면 되었을 것이고, 로마의 권력은 사형을 집행했으면 될 일이었는데, 이 여인을 예수께 데리고 왔습니다.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6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시험 속에는 함정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만일 그 여인을 율법에 따라 처형하라고 했다면 ① 세리와 창기들을 용납해 왔던 예수의 언행을 실추시키게 될 것이며, ② 온유한 성품을 지닌 구원자, 해방자로서의 메시아의 이미지와도 모순되는 일이며, ③ 그러한 결정은 사형 집행권이 없는 유대인으로서 로마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누명을 씌워 고소할 조건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만일 그 여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언하거나 변호하는 입장에 서셨다면 ① 모세의 율법에 대한 명백한 도전으로 신성한 율법의 적으로 정죄될 것이며, ② 간음을 장려하고 범법자를 보호한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치밀하게 계산된 함정이요 간악한 음모였습니다.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6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시험에 대하여 예수께서 처음으로 보이신 반응은 잠잠히 몸을 굽혀 땅에 글씨를 쓰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잠잠히 침묵하신 이유는 인간을 정죄하고 살해하는 일에 대하여, 죄인을 취급하는 비인도적 잔인성에 대하여, 그리고 악의에 찬 음모에 대하여 반성케 하기 위한 침묵으로 이었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7 절). 이 말씀은 죄 없는 자만이 죄인을 정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아무도 타인을 판단할 만큼 선하거나 외롭지 못합니다. 간음할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다고 주장하는 인간들의 양심을 향해 쏘신 하나님의 화살이었습니다(시 7:12).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11절). 율법은 정죄하지만 복음은 용서합니다. 인간에게는 과거보다 미래가 더 소중하고, 죄인이라 할지라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주님의 크신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죄와 육신의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고(롬 6:6, 갈 5 24), 육신을 전에는 불의의 병기로 드렸지만 이제는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며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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