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가라
본문 : 창 3:1-6
우리는 살면서 고민이 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좋은 고민도 있습니다. 삶에 활력을 불어 넣는 행복한 고민도 있습니다. 자기 욕심과 이익에 눈이 멀어 생겨나는 고민입니다. 때론 어찌해야 할지 막막한 고민도 있습니다. 두 갈래 길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저울질 하는 고민도 있습니다.
개중엔 굳이 고민할 이유가 없음에도 시간 낭비성의 고민도 있습니다. 이걸 해야 돼 말아야 돼 하는 갈등속에서 고민도 합니다.
문제는 믿음을 속여 가면서 하는 고민 입니다. 겉은 의젓한 경건의 모양을 갖춥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군침이 도는 것에 “이러면 안되는 데 하면서도” 유혹을 꺾지 못하고 갈등 합니다. 그냥 내치면 됩니다. 그냥 포기하면 됩니다. 그런데 세상의 유혹이라ㅛ는게 말처럼 쉽게 내치지 못하게 합니다. 자꾸 군침 돌게 합니다. 자꾸 생각나게 합니다. 자꾸 연관 지으려고 합니다.
고민이 생길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거야,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거야 하는 발빠른 생각은 쉽게 고민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꾸 고민이 된다는 것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뱀이 하와에게 슬며시 다가와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합니다.
사탄은 고민을 뛰어 넘어 강렬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그물을 쳐 놓습니다. 그 내용이 창 3;1에 나옵니다. “..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라고 질문을 합니다.
뱀이 하와로 하여금 의문형으로 질문을 합니다. 뭔가 선택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떠난 선택을 하도록 유도 합니다. 하와는 뱀의 질문 앞에서 하나님의 지시명령을 줄줄 외우면서 대답을 합니다. 하와의 대답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감지하기 어렵습니다. 강렬한 믿음으로 밑바탕이 된 신앙 고백이 아닙니다. 굉장히 형식적이고 사무적인 답변처럼 들려 집니다 .
뱀이 하와의 말을 쭉 듣고 있다가 다시 질문을 합니다. 4절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5절에 계속해서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허무하게 무너지는 하와의 믿음…
하와는 뱀의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하나요.. 6절에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우선 뱀이 주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하와는 사탄의 거짓말을 내쳐야 하는 데, 내 치지 못합니다. 결국 하와는 거짓말에 하나님과 관계를 끊어 버립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무시해 버립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인격 조차도 팔아 버립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 보다는 뱀이 주는 허황된 욕심에 눈이 멀어 덥석 미끼를 잡아 버립니다. 유혹에 눈이 멀면 세상은 다르게 보이기 마련 입니다. 당장 모든 걸 다 얻은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 열매를 따먹습니다.
왜 하와는 뱀이 말하는 것이 분명 틀렸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울 기세를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허황된 욕심에 눈이 멀면 거품 인생으로 돌변해 버립니다.
왜 하와는 뱀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나무를 본즉.. 넘어가면 안돼..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정녕 먹는 날에는 죽는다는 메시지가 자신의 기준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와는 싸우지 않습니다. 허무하게 영적 전쟁에서 패배자로 둔갑해 버립니다.
결국에는 하와가 범죄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함으로 하나님을 거짓말 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왜 우리는 자꾸 세상과 타협할까요?
타협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왜 세상과 타협하는가? 내 안에 내가 계산하는 방식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 세상이 주는 승리와 희열에 너무 연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기쁨 보다는 세상이 주는 기쁨에 더 마음을 빼앗겨 삽니다. 세상이 주는 유익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시들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화려해 보이고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결국에는 파멸의 원인이 됩니다. 분리의 원인이 됩니다. 서로 싸움박질하고 책임전가하는 사악한 순간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둘, 생각의 게으름 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에덴 동산에서 삶의 지침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라.. 이걸 어기는 순간..어떻게 될 것인지.. 하와는 한 글자도 빠짐이 없이. 줄줄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뱀이 주는 유혹에 홀딱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줄줄 외우던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졌습니다. 하와는 별로 고민한 흔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조리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믿으라고 말쌈하지 않으셨습니다.
분별력을 갖고 믿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심이 그래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면 고민 될 게 하나도 없습니다 .
우리 삶에도 생각의 게으름이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지금 고민 하는 이유가.. 많은 경우에 생각의 게으름 속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셋, 허황된 생각은 금물입니다.
그 이유는.. 허황된 생각 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하나님과 같이 되어 .. 라는 불가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능성 앞에 넘어간 하와의 모습 입니다. 우리도 종종 큰 돈 벌수 있어.. 얼마든지 가능해..이번 기회를 놓치면 더 이상은 없어.. 세상이 주는 절묘한 말… “ 가능성” 이라는 불가능을 마치 가능한 것처럼 넘어지게 하는 마귀의 전략 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언제까지 이 모양 이꼴로 살거야..허황된 욕심입니다.
죄로 물든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세요.
남의 생명을 함부로 여깁니다. 존중이나 존경이 없습니다. 무시 일색 입니다. 몰인정한 모습들..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세상으로 둔갑해 갈 뿐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빛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눈이 멀어 자기 정체성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더 어둠으로 만드는 데 한 몫하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하와는 그 순간에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 된 기분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얼른 남편에게 가져다 줍니다. 아담 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을 새까맣게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잠시뿐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행위를 보시고 말씀 하십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서로 좋아하다가 책임 전가를 합니다.
하나님을 불신함으로 나의 사악함을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살면서 타협 할 때가 많습니다. 저 사람들도 하는 데 나라고.. 스스로 타협 합니다. 일종의 자기 정당성을 강조 합니다.
타협후에 얼룩진 삶의 현장들을 보라
무엇보다 하나님이 이런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 계셨다는 점입니다.
나중에 하나님이 아담을 찾으실때도 .. 나는 안 보이려고 숨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은 피할 수 없습니다.
부부간에 보여주는 책임전가 입니다 .
서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죄는 분리 하게 합니다. 정 떨어지게 합니다. 급기야는 하나님을 향해 손가락질 하면서 책임 전가를 합니다.
어느 것 하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들만 난무할 뿐입니다.
가정에 파탄이 시작됩니다. 서로를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욕심에 눈이 멀어 저질렀던 결과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엉뚱한 욕심이 가져다 준 결과 입니다.
우리는 하와와 아담을 보면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들을 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타협하지 않는 영적 습관을 갖고 사는 겁니다.
늘 날마다 생각의 게으름에 넘어지지 않도록 말씀 묵상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둘째, 나의 믿음을 하찮은 마귀와 타협하지 말라
어떻게 해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하나, 우리의 영적 삶을 위협하는 세상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혹이라는 위협앞에서 넘어지지 않으려면 세상을 거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유혹은 달콤함입니다. 겉만 보게 합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과 타협하다 보면 .. 우리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중요한 것들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세상이 주는 헛된 것에 묶여 있으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가 없습니다.
세상의 타협이 생각의 게으름 으로 인해 따 먹고 .. 인생으로 전락 합니다. 내리막길로 치닫기 시작 합니다.
둘, 성경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생각의 게으름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이 말하는 말에 검증이 없습니다. 검증은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점검하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마귀와 타협하면서 산다면 존재가치를 하락 시키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시선에 각자는 너무나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육체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져서는 안됩니다. 늘 우리는 생각의 게으름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주는 간교함에 눈이 멀어서는 안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마귀의 간교함 입니다. 뱀이 하와에게 보여준 믿음에 도전장을 내미는 계략을 보라.
1절에 ..가장 간교하니라..”간교함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합니다. 헛된 것을 보게 합니다. 뱀의 간교함에 넘어간 하와를 보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우리는 늘 이런 간교함에 경계해야 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간교함에 넘어가는 이유는 분명 합니다.
바로 세상 헛된 욕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하와가 뱀의 간교함에 넘어간 것은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라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욕심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타협은 욕심 입니다.헛된 욕심이 하나님의 말씀을 게으르게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에 의심이 들때마다 우리의 분별력은 날카로워져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없으면 생각의 게으름에 질질 끌려 다닐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타협하지 않는 희망을 집요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에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옳은 길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
하와는 제일 먼저 하나님께 질문하는 시간을 놓쳐 버렸습니다. 사탄이 주는 말에 의심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이 열매를 먹으면 죽으리라 하셨는데.. 마귀는 죽지 않으리라 하였다면.. 누구의 말이 옳은 건가.. 진지하게 되물어 보아야 합니다 .
사탄과 싸울때에 조급하면 집니다. 인내심은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길입니다.
인내를 보일때마다 마귀가 조급해 합니다. 빨리 넘어트려야 하는데 .. 넘어지지 않으니까.. 더 센 사탕발림의 이야기를 계속해 될 것입니다.
조급함으로 무너지지 말고 인내심으로 마귀의 계략을 이겨내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하와는 속아 넘어 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와는 아담에게 말할 때에 아담이 분별력을 갖고 깨어 있었더라면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지막 ,우리는 매 순간 영적 전쟁에 서 있습니다.
하와가 보여주는 영적 생활 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 동산에서 뱀처럼 사탄이 활동을 한다는 점입니다.
세상엔 하나님의 말씀에 의심이 들지라도 섣부른 욕망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분별력을 갖고 참된 믿음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쉬지 말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하와는 한 번 들은 걸로 자기 상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해서 듣고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자랍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듣지 않으면 믿음은 자라기는 커녕.. 사라질 뿐입니다. 내 안에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느낄때마다 깜짝 깜짝 놀랄뿐입니다 .
우리는 마귀를 피해서는 안됩니다. 마귀의 존재를 무시해서도 안됩니다. 성경은 마귀를 대하는 태도를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벧전 5:8-9에 보면 마귀를 대적하라 고 알려 줍니다 .
마귀는 거짓말과 속임수의 명수 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우리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을 말씀으로 풍성케 하라
참된 그리스도인의 일상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먹고 삽니다. 말씀이 에너지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나의 길을 결정하는 나침반이 되어야 합니다.
하와를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 씀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 입니다 .
하와는 거짓말과 속임수에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늘 말씀속에서 세상이 주는 유익들, 이익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말씀 조리개로 생각해야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딤후 2;15에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고 했습니다.
사실 매 순간..유혹의 손길이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합니다. 그럴때마다. 분별력이 무너지지 않는 한..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영적 분별력에 근거 합니다.
분별력은 우리 내면의 나침반 합니다. 나를 살게 하느냐 .. 아니면 나를 죽게 하느냐 입니다. 우리의 영적 분별력이 왕성하게 활동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고민이 생길때마다 조급해서는 안됩니다. 인내를 갖고 하나님의 조치를 기다리는 여유로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위기에 처할수록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에게 하신 첫 번째 말씀이 들으라 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경청하라는 의미 입니다.마지막으로 응답받을 때까지 구하는 기도 입니다.
이런 영적 습관을 통해서 내 안에 분별력이 살아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적 길을 이탈하지 않고 옳은 길로 전진해 갈 수 있습니다. 마귀는 자꾸 우리는 넘어트리려고 합니다. 옳은 길에서 미끄러지도록 잡아 끌어 당깁니다.
세상과 타협하게 하는 일들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과 타협은 한 순간 입니다. 지속성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걸려 넘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일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검은 색깔이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타협하지 않는 희망을 집요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영적 무감각에서 늘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도 감각이 무디어지면 제대로된 선택이 어려워 집니다. 그러다 보면 쿠사리(잔소리)를 먹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속임수에 눈이 멀지 않도록 깨어 있는 신앙인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포스트 팬더믹 시대에 진짜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의 믿음을 보일 때 입니다. 진짜 믿음이 뭔지..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합니다.
참된 믿음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습니다.자기 유익을 위해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다. 자기 만족을 위해서 죄와 타협 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영광만큼 위해서 살 뿐 입니다.
그 길을 걸어 감에 있어서 십자가의 고난이 다가 올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서는 모진 고난조차 감당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은 있다는 사실 입니다.
힘든 과정 속에서 끝까지 견뎌낸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
과정은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피니쉬 라인에 도달하는 순간에 느꼈던 감정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영적 희열 입니다.
올 한해도 언제 어떻게 유혹의 손길이 다가올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것에 굳이 시간 낭비하면서 고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는 길이라면 연연해 하지 말고 과감하게 훌훌 털어 버려야 합니다.
한 순간의 달콤함에 당신의 영원을 팔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한 순간의 견뎌냄은 영원한 길로 가게 할 것입니다. 물로 그 순간은 힘들 수 있습니다.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
하지만 하나님은 계속해서 도우실 것입니다. 응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이 딴 길로 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 동반자가 되기를 기대 하십니다 . 삶의 어떤 순간 속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멋진 한 해를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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