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높은데서 내려다 보면서 선택하라
본문 : 창 37: 1-4
우리들은 늘 수 많은 선택 속에서 삽니다. 어떤 때는 선택하기가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이것저것 생각하거나 고려 하다 보면 타이밍을 놓칩니다. 선택 자체가 힘들때가 많습니다. 왜 빨리 결정을 하지 못하느냐는 주변의 독촉과 성화에 못이겨 억울한 선택을 할 때를 많습니다 .
각자가 선택을 할때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주로 익숙한 자신의 생활 방식 입니다. 굳어진 생활 패턴이나 습관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선택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지금까지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뭘 선택해도 상당히 자기 밖에 모르는 선택을 합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에도 이건 좀 심하다 할 정도로 그저 자기 밖에 모르는 선택과 결정을 합니다.
예를 들어 .. 남에게 시키는 것이 익숙한 사람은 자기가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시킵니다. 그럴때마다 따라 붙는 그럴싸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좀 피곤해서, 내가 지금 좀 아파서, 내가 지금 기분이 안좋아서 는 식으로 남에게 모든 걸 다 시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몰라요.. 그러다 보니까. 툭하면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명령적인 선택을 합니다.
선택을 함에 있어서 우리들에게 지극히 방해적인 요소들도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편견과 선입견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편견과 선입견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편견에 빠져 버리면 올바르고 정당한 선택이 어려워 집니다 .
또 하나, 쉽게 선택이나 결정이 느린 사람입니다. 사람마다 느린 사람도 있습나다. 미적 거리는 사람을 향해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뭐 그거 하나 결정 하는 데 …왜 그렇게도 머뭇 거리느냐, 왜 빨리 하지 않느냐 , 선택이 뭐 그리 어렵다고 질질끄냐..난리를 침니다.
배려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 삶 속에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늘 진지하게 한번 생각하고 선택해야 하는 일들도 많습니다 .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동산에 있는 모든 열매들을 먹어도 된다. 하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열매는 따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해서는 안되는 일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가 선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 그런데 마귀는 그런 걸 이용해서 성도를 넘어트립니다. 결코 선택해서는 안되는 일을 선택하게 합니다. 그래서 무너지는 광경을 마귀는 굉장히 좋아 합니다 .
오늘 본문에는 지극히 편견을 갖고 누군가를 선택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악 영향을 미치게 합니다 .
바로 야곱이 선택한 요셉 입니다 . 12형제들중에 유별나게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만들어 입히는 선택을 합니다. 왜 그 이전의 자녀들에게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궁금해 집니다 .
요셉은 야곱이 늦은 나이에 라헬을 통해서 낳은 아들입니다. 유난히 라헬을 사랑했던 야곱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요셉에게 더 치중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채색옷을 선택했던 결과는 다른 자녀들에게 미움이나 질투를 발생하게 합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힘들게 합니다.
4 절에 보면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야곱의 자기 중심적인 선택이 형제들로 하여금 요셉을 미워 합니다. 요셉을 힘들게 합니다. 너무 챙겨 주다 보니까.. 교만해 집니다.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요셉이 툭하면 고자질 하고.. 그러니까. 형들의 입장에서는 무슨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혹시 고자질 하지는 않을까,,
그러다보면 형제간에 대화가 줄어 듭니다
신뢰 보다는 불신이 앞서게 됩니다. 사랑하기 보다는 미움이 더 깊이 뿌리 박게 될 뿐입니다.
요셉이 형제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 하면 할수록 형제들은 요셉을 향한 미움의 깊이가 깊어질 뿐입니다.
한 사람을 향한 편견의 선택이 주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부축입니다. 악한 감정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각해 집니다.
형제들은 눈엣 가시같은 요셉이 꼴도 보기 싫습니다. 형제들이 다른 궁리를 합니다. 형들이 보여주는 선택을 보십시오.
창 37장 18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사람들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신 30:19에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에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라고 삶 속에서 두 가지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선택을 할 것인지 아니면 사망을 선택할 것인지.. 복을 선택할 것인지. 저주를 선택할 것인지..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선택을 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요셉의 형들은 어떤 선택을 하나요? “죽이기를 꾀하여” 모두가 죽이자고 합창을 합니다 . 요셉을 죽이거나 노예들한테 팔아 넘기는 생각을 합니다. 결국 형들이 취한 선택은? 요셉을 페르시아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 버립니다 .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이 모두에게 아픔과 상처를 가져다 줍니다 .
편견과 자기 중심적인 선택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도 부정적이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자기 위주의 선택은 주변 사람들에게 거부 반응을 갖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때에 성도의 선택과 결정은 굉장히 신중해야 합니다 .
가족들 간에도 ,, 성도들 간에도 , 이웃 간에도 ..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선택의 힘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둘째, 당신의 인생 속에서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야곱이 요셉을 향한 사랑이 다른 형제들에게는 미움이 되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너무 자기 중심적이고 편견적인 사랑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 많은 선택을 했습니다. 선택에 대한 결과를 맛보았습니다.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적도 있습니다. 반면에 나의 선택으로 인해서 부정적인 결과를 얻었던 경우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선택하는 일에 대한 책임도 중요 합니다 .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택한 결과로 육체적 수고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
성도로서 신중하지 못한 선택들을 관계를 망가트리는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 한 순간의 욕심과 정욕이 나중에 후회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로서 제대로된 선택을 하는 영적 습관을 키워가야 합니다 .
어떻게 제대로된 좋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그 해답을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 바로 이 말씀입니다 .
거룩은 자기 중심적이지 않습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
사람이 갖고 있는 편견이나 선입견이 좋은 사람들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알량한 자존심이 자신의 삶에 너무나 도움이 되는 사람을 못 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습니다 .예수를 그렇게도 박해하고 저주하던 사울을 부르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누구 십니까? 나는 내가 저주하는 예수니라.. 예수님의 편견과 선입견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사울을 향해 먼저 손을 내미십니다. 먼저 찾아 오시는 거룩한 선택을 하십니다 .
성도는 자기 위주의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제한된 금을 긋고 관계를 만드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복음은 그어진 금을 깨트리게 합니다.벽을 허물게 합니다. 우리가 짧은 인생을 사는 데.. 스스로 그어 놓은 줄로 좋은 사람들을 놓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
우리 주변에 자신에게 힘을 주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이기심과 편견으로 산다면 놓치기 쉽습니다. 얼마나 손해 인가요!
예수님처럼 먼저 손을 내미는 거룩한 선택을 취하는 성도가 되시길 축복 합니다.
마지막 악의 선택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선택
성경을 읽으면서 강렬하게 다가오는 느낌, 은혜, 깨달음이 뭔가요?
죄를 지은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찾아 오시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인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범죄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는 선택을 합니다 .
이기적인 편견이 야곱의 나머지 자녀들에게 힘들게 했습니다.
또한 이기적인 요셉은 채색옷이 벗겨지고.. 노예의 옷을 입게 됩니다.
요셉의 입장에서는 타인들에 의해서 선택되어 집니다. 세월이 흘러 가면서 요셉이 입은 옷들은 물갈이를 합니다. 그러면서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생각의 깊이가 깊어져 갑니다. 동시에 형들은 눈에 가시였던 요셉이 사라져 살 맛이 납니다 . 물론 아버지 야곱에게 요셉이 동물들의 먹잇감이 되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마음이 씁쓸 했을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야곱이 살던 지역에 큰 흉년이 듭니다. 그래서 양식을 얻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 갑니다.
애굽의 국무총리였던 요셉이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온 것을 알게 됩니다. 나중에 이 사실이 형들에게 알려지게 되자.. 형들은 이젠 죽었구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
그런데 요셉은 형들에게 어떤 말을 선택합니까?
창 50:19-20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라고 말을 합니다.
요셉은 자기가 당했다는 복수심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생각을 선택합니다. 하나님이 선으로 바꾸사..생명을 살리는 선택을 하도록 나를 여기에 세워 두셨다고 고백 합니다 .
복수의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앙갚음의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들에게 위로의 선택을 합니다 .
편견과 미움으로 일관했던 야곱의 가정에 하나님이 바꿔 가시는 축복의 선택을 봅니다.
*서로 궂은 일들을 통해서 서로 배워 갑니다
선택의 소중함을 말입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선택..
사랑입니다. 죄 있는 자를 향한 죄 없는 자의 베푸시는 사랑의 선택입니다 .
아무리 주홍같은 붉은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흰눈 같이 씻어 주시는 용서의 선택 입니다 .
하나님이 보여주신 선택의 힘
죽을 수 밖에 없던 나를 살려주신 사랑의 선택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
셋의 아들 에노스 때부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에노스라는 말의 의미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자 라는 의미 입니다.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자 임을 깨달은 에노스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삶의 다양한 순간 속에서.. 선택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럴때마다 인간적인 편견과 이기심에 사로잡혀 선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의 관점에서 선택하며 살겠다는 각오요 결단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좋은 선택을 하면서 사는 삶입니다. 여기엔 지혜가 필요 합니다. 여기엔 십자가의 정신이 필요 합니다. 벼랑끝에 서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만 신뢰하는 선택을 하는 겁니다 .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겁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높은데서 바라보는 겁니다. 높은데서 낮은 데로 바라 보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분명합니다. 모두가 작아 보인다는 겁니다 .
평지에서는 커 보이는데 높은 데서 바라보면 너무 작습니다.
인간들이 사는 평지에서 그저 바라보면서 시기, 편견에 얽매이지 맙시다.
눈을 크게 떠서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세상을 봅시다.
제가 종종 양로원이나 재활원에 종종 갑니다. 가서 느끼는 건.. 늙은 건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늙더라도..나를 건강하게 하는 선택을 지금부터 잘 해야 겠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종종 우리는 하나님을 신경쓰기 보다는 사람에게 더 치중합니다.
우리의 시선은 사람에게 있는게 아닙니다. 하나님께 늘 고정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선택이 너무 사람들에게 치중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선택을 합니다.
아닙니다. 우리의 선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시선에서 우리의 선택은 파워가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과 이웃을 보라.
*나에게 손해 끼치고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비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겁니다
좀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우리의 선택의 폭은 넓어질 것입니다. 깊어질 것입니다.
미움이 아니라 사랑의 선택을 하는 겁니다
선택의 수준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시선에 머물러 버리면.. 위축 됩니다. 자신감을 상실합니다. 세상을 향한 도전의식을 포기합니다. 자연히 선택의 폭이 좁아 집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어떠해야 할까요?
오늘도 우리는 또 선택해야 할 일들 앞에 서 있습니다.
분명 이전에 선택했던 결과로 인해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고달픔이 있습니다. 후회도 많습니다.
세상에 바둥바둥 거리면서 속 좁은 인생이 아니라, 넓게 보고 깊게 보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안에 충만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선택
악한 선택을 했던 요셉의 형제들에게 용서의 선택을 결정하신 하나님..
속이는 자로 살아왔던 야곱에게 이해와 용서로 삶을 바꾸시도록 이끌었던 에서의 마음..
우리는 지금까지 서로 보여주었던 선택들이 얼키고 설킨 상태 속에서 살아 갑니다
그렇게 친했던 관계들이 어정쩡한 관계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자신들이 선택한 일들에 대한 나름대로 이유들도 많습니다.
이제 우리는 제대로된 선택을 하는 거룩한 습관에 가져야 합니다. 삶은 늘 선택 입니다 .선택이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늘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통해서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우리는 거룩한 길을 가는 자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생명이냐 사망이냐.. 저주냐 축복이냐.. 선택..칼자루를 내가 쥐고 있다 할지라도..
어떤 선택을 함에 있어서 선택의 기본은 늘 하나님의 거룩성을 인지 합시다
예수님의 십자가 선택은
포기 그러나 끝까지…
지금 걸어가는 십자가 의 길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걸어가는 인내의 삶.
하염없이 골고다 언덕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 그리고 수고 했어 정말 멋진 십자가 선택이었지…
하나님의 십자가 선택은 나를 살리는 선택이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누군가를 살리는 힘이 되는 선택이 되면겠습니다. 또한 우리의 선택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현명한 선택들이 되도록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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