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직도 실수하면서 삽니다
본문 : 디모데전서 1:12-17
우리가 살면서 많이 경험하는 것 중에 하나가 실수 입니다. 실수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실수를 반복 합니다. 그러다 보면 “또 실수 했어. 실수가 너무 잦아.. 정신 차려. 자꾸 실수하면 안돼 “ 라는 지적을 받습나다. 칭찬을 들어야 하는 데 자꾸 핀잔만 들으면 무시 당하기 쉽습니다.
일터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실수가 잦습니다. 실수는 관계를 어색하게 합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줍니다. 실망하게 만듭니다. 이런 사실들을 잘 알기에 실수하면 안된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실수 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결심 합니다. 그런데 실수가 너무 잦습니다.
친구간에, 부모와 자식간에, 성도 간에 실수가 반복 됩니다.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실수가 줄어들지 않고 왜 자꾸 반복이 될까요?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정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감정은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감정이 아름다운 순간은 믿음에 근거할 때 입니다. 믿음은 감정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는 감정은 죄를 남발 하기 쉽습니다.
더 나아가 믿음 없는 감정은 그리스도의 정신에서 벗어난 길로 가게 합니다. 이기적인 생각과 자기 유익을 위한 감정으로 남발합니다.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다 보면 감정이 앞서게 됩니다.
양보하면 되는 데 양보가 어렵습니다. 자기 주장으로 목소리가 커집니다 .주워 담을 수 없는 감정 섞인 말들이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듭니다. 관계를 소원하게 만듭니다.
사실 자신과 별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대상은 굉장히 나이스 합니다. 친절 합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양보가 쉬운데.. 또래나 .. 경쟁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는 양보가 쉽지가 않습니다 .
우리 삶에는 타인 보다는 자아에 대한 생각이 더 강합니다. 그러다 보면.. 실수가 끊이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많이 하는 실수 가 원망 입니다. 불평 입니다. 툭하면 원망과 불평을 쏟아 붓습니다. 왜 이런 실수가 자꾸 반복이 될까요?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어렵고 힘들면 아무 생각없이 원망과 불평을 쏟아 붓습니다 .
과거에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보기 보다는 그저 편안했던 삶에 눈이 집중됩니다.
그리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조금만 자기 뜻에서 벗어나면 투정 부리고 난리를 칩니다 .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준 모습들의 바톤을 받고 살고 있지는 않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런 실수들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성도들 간에도 불평과 원망이 앞을 다툽니다. 신앙 생활은 십자가 입니다. 십자가의 정신은 나를 버리는 삶입니다. 나를 비우는 삶입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삶입니다.
자연히 성도들 간에도 배려나 양보, 참을성 이 텅비어 있습니다. 서로간에 격려 하고 극복 해 가자는 말들은 안중에 없습니다 .그저 상대방을 깎아 내리려는 생각이 앞섭니다. 자연히 말을 함부로 합니다. 실수 투성이 인생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비단 성도들 간 뿐만 아니라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불평과 원망은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방해만 할 뿐입니다. 열등감과 자격 지심은 절대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좋은 행동은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자연히 실수 연발을 합니다. 예수를 믿게 하기 보다는 예수와 멀어지게 하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바울의 이전과 이후의 삶이 어떻게 변화 되었는지 확연하게 보여 줍니다 .
첫째, 바울은 스스로 실수 많은 인생이었음을 시인합니다 .
딤전 1:13에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고 시인합니다.
참으로 실수 많은 인생이었음을 아주 구체적으로 고백 합니다.
행 8:3에 보면 “그러나 사울은 교회를 없애기 시작했습니다. 집집마다 다니며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가두니라” 고 말씀 합니다.
사울이 보여준 이픔과 상처를 준 흔적들을 보세요.
비방자요.. 남을 쉽게 비방하는 자였다. 남이 자신과 의견이 다르거나 딴 주장을 하면 박해합니다.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폭행을 일삼은 것이 습관화 된 사람입니다.
바울은 스스로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말합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 라고 얼마나 악랄한 인간이었는지 스스로 감추지 않고 까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수를 하고도 딴전 피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수를 하면 시인할줄도 알아야 하는데 , 시인하기 보다는 책임 전가를 합니다. 자신이 실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나 환경 혹은 상황이 그래서 하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둘러 될 때가 많습니다 .
바울은 분명하게 자신이 과거에 어떤 실수를 범했는지 상세하게 나열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긍휼하지 못한 마음으로 가득차 있었다고 말합니다.
내 안에 긍휼의 마음이 없으면 비방 박해 폭행은 멈춰지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내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주홍빛 같은 붉은 죄를 희게 되도록 긍휼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고 고백 합니다.
14절에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무엇이 바울 내면속에 이런 은혜가 충만하게 만들었을까요? 바로 주님이 베풀어 주신 긍휼 입니다 .
바울의 내면속에서 꿈틀 거리는 영적 엔진은 바로 긍휼 입니다 .
16절에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 고백 합니다.
바울은 박해자 폭행자로 더 이상 살지 않습니다 .
오히려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살아갑니다 .
긍휼의 핵심은 오래 참음 입니다.
그리스도의 오래 참으심이 사울을 바울되게 했습니다.
오래 참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실수를 줄이는 힘입니다. 긍휼의 힘으로 배려 합니다. 양보 합니다. 인내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호되게 한번 당하거나 어려움을 겪으면 속으로 결심 합니다. 다음 부터는 조심해야지..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실수 한번으로 엄청난 고생을 했던 사람들이 보여 주는 이후의 모습들입니다.
은혜가 충만하면 하나님이 원치 않는 삶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마지막, 실수를 줄이고 그리스도의 본을 증명하는 그리스도인
12절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라고 말씀 합니다.
바울이 처음부터 능력이 많고 잘나서 일군이 되게 아닙니다.
바울 스스로가 고백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실수가 많은 인간이었는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임을 고백 합니다 .그런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실수를 줄이게 했다고 간증 합니다 .
그리스도인은 그냥 세상 속에서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분명한 미션과 사명을 갖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 그런 인생이 되려면 여러 부분에 있어서 실수를 줄여야 합니다.
하나, 말의 실수를 줄여야 합니다. 믿음 보다 감정이 앞서는 말 실수를 줄여야 합니다. 말이 너무 많습니다. 말로 절대로 남에게 질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말 실수가 많아지는 건 당연합니다. 세상 속담에도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습니다. 침묵은 금이다 는 말도 있습니다. 굳이 불필요한 말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보다 조금 덜 말해도 됩니다. 그런다고 무시 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입이 무거운 사람으로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
바울의 입에서 나오는 긍휼의 말들을 보세요.. 실수는 줄어 들고, 관계는 친밀해 집니다 .
바울이 실수를 범할 때는 자기가 인생 주인이었습니다. 자기 맘대로 결정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긍휼을 통해서 깨닫습니다. 인생은 내 맘대로 사는 게 아님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는 것이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유익함 이라고 고백 합니다.
내 인생, 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 라는 고백 속에는 나의 알량한 자존심이나, 자기를 드러내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의무가 뭔지 압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가장 멋진 인생임을 알려 줍니다.
그리스도인의 긍휼이 담긴 말 한마디는 생명을 살리는 영적 약이 될 것입니다. 말을 함부로 해서 그리스도를 멀어지게 하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
둘, 용서하지 않는 실수를 줄여라
바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실수 입니다 .
우리는 각자마다 용서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대상들이 꼭 있습니다. 그 사람만 보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웬지 .. 아무런 잘못도 없는 데 강렬하게 다가오는 시기와 질투입니다. 그러다 보면 함부로 비방합니다. 욕을 합니다.
예수님처럼 용서의 힘을 발휘해야 합니다. 일곱번 뿐만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는 겁니다 .
셋, 자기 욕망의 덫에 머물러 버리는 실수를 줄이라
성경에도 보면 요나에게 주신 말씀은 니느웨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자신이 진로를 결정 합니다. 자기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보다 앞섰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성령의 지시를 따라 움직여야 하는 데 불순종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 합니다.
말씀 묵상의 게으른 실수를 줄여야 합니다 .
성경을 읽는 것이 왜 중요 합니까?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답하시고 계시는 겁니다 .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제게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최근에 성경을 읽으셨나요 라고 다시 묻습니다. 누군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다면 성경을 읽으십시오 .. 하나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싶다면 성경을 소리내어 읽으십시오 “ 라고 말했습니다 .
말씀은 생명의 양식 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범하는 실수입니다. 말씀은 일주일에 교회가서 먹는 게 다가 아닙니다. 매일 주시는 영의 양식을 통해서 자신이 성숙해져야 합니다. 매일 양식을 통해서 타인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져야 합니다 .
왜 그리스도인은 실수를 줄이며 살아야 할까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 해답을 17절에서 언급 합니다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 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은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살면서 “ 저 놈 누구 아들이냐.. “ 왜 이런 말을 듣나요.. 함부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버릇이 없다는 겁니다 .
우리 안에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바울은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면서 바울은 실수를 줄여 갑니다. 내 안에 사시는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삽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 나의 큰 실수를 용서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말합시다.
바울은 고전 1:23-24에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 말합니다.
내 안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십니까?
내 안에 생명력 넘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를 이끌고 가게 합시다.
십자가 없는 인생은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습니다 .
십자가를 바라 보지 않는 한 계속해서 실수 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 자아가 몰입될 때에 능력과 지혜가 넘쳐 날 것입니다 .
십자가 지고 삶을 만들어 갈 때에 실수 보다는 칭찬받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것입니다 .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버릇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지금 자신을 되돌아 봅시다.
진정한 신앙인은 체하면서 사는 위선적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진정 예수님을 닮아가는 실제적인 그리스도인 입니다.
바울도 실수를 줄이기 위해 자신을 쳐서 복종지켰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스스로 낮출줄 알 때에 주변에 사람들이 넘쳐 날 것입니다 자신 보다는 그리스도를 높일 때에 삶의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이제 실수를 줄이는 모험을 할 준비가 되셨나요?
미지근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은 자로서 살아갑시다.
적당한 그리스도인으로 양다리 걸치는 삶에서 벗어납시다.
자주 타인으로부터 왜 그렇게 실수가 많지..실수많은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피성을 허락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용서하심입니다 .
실제로 요한일서 1:9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다”고 말씀 합니다.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
실수가 많다면 자신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서 멀어져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영적 은사나 사명을 거부한 것입니다 .
이스라엘 민족에게 도피성을 만드셨기.. 그 곳으로 피하는 자에게는 구원의 기회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였던 바울에게도 용서와 사명을 부여하신 그리스도..
큰 실수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바울에게 임한 긍휼의 은혜..예수님은 그의 삶을 변화시키셨고, 바울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세상에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바울에게 직분을 부여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나에게 부여하신 역할이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는 자신을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미션을 감당하도록 부르셨습니다.
왜 새상이 여전히 어두운가
그리스도인의 실수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너희는 새상의 빛이라
실수는 원망 불평 시기 질투다
용서 사랑 이 실수를 줄이는 삶이다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실수가 없는 삶
아직까지 자아가 꿈틀거려 실수가 끊이지 않나요?
내 안에 긍휼이 넘쳐나시길 기원합니다.
내 안에 넘쳐 흐르는 긍휼의 에너지를 밖으로 표출합시다. 긍휼로 실수를 줄이고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 갑시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인간이 사는 목적은 분명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삶입니다.
오늘을 살면서 실수 보다는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만이 올려지는 복된 인생을 사시길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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