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령을 위하여 심자_영적 훈련(개요)
본문 : 갈 6:7-8
우리 인간의 일반적인 삶은 물론 신앙생활에 초월할 수 없는 큰 법칙이 하나 있습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법칙입니다.
본문 7절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인과응보(因果應報)’, 또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란 말이 있습니다. 자기가 저지른 잘못의 결과를 자기가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는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또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둡니다. 이것은 자연법칙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법칙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심지 않고는 거둘 수 없습니다. 반면에 심으면 거둘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착각된 거짓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안타깝지만 종종 있습니다. 콩을 심고도 팥을 구합니다. 악한 것을 심고 선한 것을 기대합니다. 적게 심고 많이 거두려고 합니다. 아예 심지도 않고 열매를 거두려고 합니다. 땀 흘리지 않고 일확천금을 기대합니다. 이는 오늘 말씀처럼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을 만홀히 여겨 속이는 죄악된 일입니다. 우리 모두 정직하게 부지런히 많이 심으시어, 심는 대로 풍성히 거두시길 축원합니다.
한편 이와 같이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심는 대로 거둘 때 우리 신앙인들에게 나타나는 두 가지 대표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1.첫째는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둡니다
본문 8절 전반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
이 구절에서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라는 표현은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으로서 인간의 욕망과 죄성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바울은 이 표현을 “옛사람,” 곧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의 사람이 제멋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참고: 엡 4:22). 또한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으나 이전의 악행과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를 일컬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로지 이 땅의 것, 세상적인 것, 육체적인 것을 위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돈과 명예, 권력, 쾌락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이 떨어지게 됩니다 (벧전 1:24). 이처럼 육체를 위하여 쏟아 부은 모든 것이 그 육체가 썩게 될 때에 함께 썩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사환 게하시는 엘리사를 통해 문둥병을 고침받고 본국 아람나라로 돌아가는 나아만 장군을 좇아가 은 한 달란트와 옷 2벌을 요구했습니다. 그리하여 나아만 장군으로부터 은 2 달란트와 옷 2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를 가져다가 숨기고 엘리사를 속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이 게하시에게 발하여 눈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왕하 5:20-27).
한편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한 자가 거두는 '썩어진 것'은 단순한 현실의 물리적, 도덕적, 영적 부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썩어진 것'엔 타락의 결과로 초래되는 영원한 죽음인 지옥 불못, 둘째 사망까지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계 21:8, 참고 22:15).
우리 모두 육체를 위하여 심지 않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받지 않고, 종국적으로는 영원한 멸망을 받지 않으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반면에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둡니다
본문 8절 후반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란 ‘성령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성령님의 감화감동을 따라서 성령님이 원하시는 것,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을 성령님께 맡기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자신과 아들이 마지막으로 만들어 먹고 죽으려고 했던 가루 한 웅큼과 병의 기름 조금으로 작은 떡을 만들어 엘리야를 공궤했습니다. 그러자 가뭄이 해결될 때까지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않고 병의 기름도 없어지지 아니했습니다 (왕상 17:8-16).
이처럼 주의 종을 섬긴 구약시대 과부의 생활을 도우신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 모든 신앙인들의 생활 또한 돌봐 주십니다.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을 육신으로 이 땅에 보내시어(성육신) 우리와 함께 계시게 하셨습니다 (임마누엘 God with us).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우리를 깨끗게 하시며 자녀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더 가까운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심지어 성령하나님은 우리 옆에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 심령 안에 거주하십니다.
때문에 우리가 믿음과 감사로 하나님께 먼저 드리면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하나님께 헌신하며 성령님을 위해 심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30배, 60배, 100배로 보답해 주십니다.
기도도 성령님을 위해 심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얻기를 바라시지요? 그러나 알 것은 기도하며 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법칙입니다.
“...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약 4:2 후반). You do not have, because you do not ask God
하나님으로부터 문제해결 받거나 축복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구하셔야 합니다. 기도로 간구하셔야 합니다. 혹시 이러저러한 것들을 구해도 응답하실까? 라는 의구심이 들더라도 무조건 먼저 구하셔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후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이 알아서 정리하십니다.
또한 우리 모두 자신을 의의 병기로 드리시려 힘쓰시길 바랍니다 (롬 6:13; 13:14).
축복과 영생을 위해 주님을 위하여 먼저 심으시길 축원합니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마 19:29, 참고: 눅 18:30).
결론적으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심고 무엇을 거두어야 하겠습니까? 위에서 살펴 본대로 당연히 육체가 아닌 성령을 위하여 심고 영생복락을 거두어야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이 진리를 들었음에도 종전처럼 계속 지낸다면 그 전과 달라지는 것이 없게 됩니다. 뭔가 다르게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다못해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도 체육관에서 운동하거나 또는 걷기 운동을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그러한데 하물며 금세와 내세에 유익한 경건의 훈련은 더욱 힘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 4:8).
그러려면 우리는 특별히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특별한 영적 운동이 있습니다. “영적 훈련”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이 영적인 훈련을 특별히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죄아래 있을 때 ‘우리 삶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산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의 비극인 피상적 생활에서 벗어나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적 훈련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보다 풍성히 받도록 성령님을 위해 씨를 뿌려 심고 물주는 일을 훈련하는 것이 됩니다 (고전 3:6-9). 이 영적 훈련은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입니다. 훈련을 통해 성령님의 사람으로 영적인 미덕이 저절로 흘러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즉 “훈련으로 은혜받는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삶의 훈련이 사역자들 만이 아니라, 우리 일반 신앙인들에게도 이루어지길 원하십니다. 우리들이 교회에서 잠깐 갖고 누리는 영성이 아닌 일상의 삶에서도 나타나는 “일상(생활)의 영성”을 갖길 바라십니다.
우리 모두 육체가 아닌, 성령님을 위하여 심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영적 훈련을 시행해 나가시길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을 보다 풍성히 누리시는 우리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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