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삼상31:1-6
제 목: 하나님 떠난 인생의 말로(末路).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날에 함께 죽었더라.(삼상31:6) So Saul died, and his three sons, and his armourbearer, and all his men, that same day together
(1 Sa 31:6)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세계 81억의 인구에게 모두관심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를 구주로 섬기는 구원받을 자에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을 악인이라 표현합니다.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6)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오리라.(요5:29)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에서 15년간 통치했던 ‘네로황제’ 가 있었습니다.
네로는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로마희대의 폭군’ 으로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어머니나 임신한 아내를 살해하거나, 로마시에 불을 지르고 불타는 도시를 바라보며 노래부르는 과대망상증에 사치스러운 미치광입니다.
그가 살던 왕궁은 복도의 길이만도 1마일(1600 미터)나 되는 호화찬란한 궁전이었다고 합니다.
집안의 모든 벽은 상아와 자개로 장식되었고, 천정은 특별샤워기로 찾아오는 손님에게 향수가 이슬처럼 뿌려지도록 되어 있었답니다.
네로 황제가 머리에 쓰고 있던 왕관은 순금으로 만들었고, 그가 사용하던 노새와 조랑말에게도 은으로 장식된 신발을 신겼다고 합니다.
그가 출타할 때면 천여명 정도의 경호원과 마차, 말들이 뒤따랐답니다.
네로가 낚시질을 할 때에는 금으로 만든 낚시 바늘을 썼다고 합니다.
1000여명의 후궁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극치의 부귀영화를 다 누렸지만, 네로 황제는 결코 행복하거나 만족한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네로는 늘 허무와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은 자살로 일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말로는 쾌락을 누리면서도 공허하고, 소유를 가지고도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소수자의 인권이라는 명분으로 동성애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바른 성문화 사무총장이란 사람이 동성애자들은 동성애가 주는 쾌감이 너무 크다며, 군인들도 동성애를 허락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동성애는 성적 쾌락에 중독된 결과라고 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수만 명의 동성애자들이 몰려와 별 해괴한 모습으로 옷을 벗고 거리를 행진하며 퍼레이드를 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도 퀴어 문화축제라고, 동성애자 1만 여명이 팬티만 입고 퍼레이드를 버리는 축제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동성애는 분명히 하나님을 떠난 죄악이요, 후천선 면역결핍증(에이즈)등 많은 끔찍한 질병이 생깁니다.
세계 에이즈환자가 3천8백60만여명, 대한민국은 1만4천5백38명으로 (남자가 93.5%, 13,589명, 여자 6.5% 949명)입니다.
이들은 전액 국고나 지방비에서 치료해 줍니다.(1년 치료비 1000억)
하나님께서 혼자 사는 아담의 모습이 좋지 않아 하와를 주신 것은, 남녀 결합의 창조원리입니다.
그런데 남자가 남자끼리 여자가 여자끼리 동성애는, 레위기에 땅의 정결을 더럽힌다고 했습니다. (레20:13)
창18장에서 남색(男色)이란 말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처음 동성애가 유래되었습니다.
소돔(Sodom)은 소도미(Sodomy)라는 남색, 동성애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남색하는 자를 남창이라 했습니다(신23:17, 왕하23:7, 욥36:14)
롬1:26-32에는 하나님의 진노에 속한 죄로 분명히 나열돼 있습니다.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 하신 것을 알고도 행한다. 라고 하셨습니다.(롬1:32)
동성애는 종교적 타락, 윤리적 타락으로 지적되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수용할 수 없는 어려운 일입니다.
남녀 간 결혼을 기본으로 한 사회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아들이 남자를 데리고 와서 나하고 결혼할 며느리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동성애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죄악의 극치입니다.
로마에 ‘폼페이 최후의 날’ 을 맞이한 영화를 보았습니다.
로마의 한 도시가 화산이 일어나서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남자가 남자끼리 여자가 여자끼리, 사람이 짐승과 섹스를 하는 모습이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벌써 동성애가 있었습니다.
그곳을 발굴하던 사람이 하나님이 어찌 이런 죄악을 보고 심판하지 않았겠느냐면서 이것이 역사의 거울이라고 하는 말에 공감을 했습니다.
동성애는 창조질서를 거역하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류의 문명이나 과학의 무서운 발전, 결과는 인간심판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쾌락과 탐욕에 빠져 지향(指向)하며 삽니다.
자신도 불행하고 다른 사람도 불행으로 빠뜨리게 되고, 결국은 모두가 망하게 되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그러했습니다.
잘 살지도 못한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삼상11:5)
왕이 되겠다는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사람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어 암몬이 쳐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되어 지도자 됨을 알게 했습니다.(삼상11:6)
본문에 사울 왕이 블레셋 사람들과 전투가 매우 맹렬했습니다.
결국 길보아 전투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였습니다.(31:2-5)
하루에 아버지와 아들 셋이 함께 죽었습니다.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던 사울이 왕이 되니, 하나님을 떠나면서 시기와 질투로 마음이 야료(惹鬧) 했습니다,
야료(惹鬧) 는 생트집을 하며 함부로 떠들어대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사울에게서 떠났고, 인생의 말로가 비참하게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사울이 겸손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을 잃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나 버림받는 비참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앞 보습 보다 뒷모습이 더 아름다워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있을 때 보다 떠난 후에 아쉬운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살았느냐는 더 중요한 물음입니다.
사울은 갈수록 인생의 말로가 비참했습니다.
그 원인은.
1. 신앙의 변질입니다.(15:17-19)
1) 변화와 변질은 전혀 다릅니다.(19절)
변화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고 본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질은 본질에서 벗어나 빗나간 것을 말합니다.
변질되면 썩고 부패합니다.
음식물도 변질되면 버리게 됩니다.
사람도 변질되면 마찬가지입니다.
변질되면 존귀했던 사람도 천박한 사람이 됩니다.
높은 자리에서도 내려와야 하고 수취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사울은 변질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에베소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굉장히 사랑했습니다.
순교를 당하면서도 신앙을 지키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삶이 풍요해 지면서, 처음사랑을 잃은 것이 아니라 버렸습니다.
잃은 것과 버린 것은 전혀 다릅니다.
잃은 것은 무의식적인 실수라면, 버린 것은 의도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풍요가 하나님의 사랑을 버리도록 변질시켰습니다.
어려울 때는 신앙생활 잘하고 축복해 달라고 기도하더니, 복을 받고선 너무 바빠서 교회 나올 시간도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가난할 때 보다, 부요할 때 더 조심해야 합니다.
병들 때 보다 건강할 때 더 무너지기 쉽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고 환란을 당하고 있을 때는 오히려 신앙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삶이 안정되고 평안할 때, 쉽게 무너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에서 영적인 해이함이 굉장히 무서운 것입니다.
다윗이 무너졌던 때가 영적으로 해이 할 때였습니다.
나라가 편안할 때 대낮에 낮잠을 자고 일어나 왕궁 뜰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고 음욕이 불일 듯 하여 범죄를 하게 되었습니다. (삼하11:1-27)
편안할 때, 잘될 때 이제 문제가 없다고 느낄 때, 영적인 해이함이 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조지 바너가 쓴 주전자속의 개구리란 글이 있습니다.
현대문명에 휩쓸려 영적인 잠에 들어가는 미국교회를 예리하게 지적한 것입니다.
주전자속에서 물을 따뜻하게 데우니, 개구리가 나른하게 잠이 드는 것입니다.
점점 뜨거워오지만 느끼지 못하고 결국은 죽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미국교회는 풍요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면서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유럽교회는 거의 예배당이 텅텅 비어 있습니다.
성도들이 다 떠나고 이제 술집으로 변했답니다.
지난번에 메사츄세추에 청교도 출신 조나단 에드워드가 시무하던 노샘프턴 제일교회(The First Church Northampton)를 가보았습니다.
그 교회는 영적각성운동의(1730-1740) 중심으로 미국의 가장 큰 부흥 운동을 일으켰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령이 떠나고, 동성애를 지지하는 깃발만 펄럭이는 교회가 되어 있었습니다.
노인 20여명이 주일날 11시에 한번 예배드리고는 문을 닫아놓아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신앙이 변질되지 않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은 겸손할 때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지파 중 가장 작은 베냐민 사람이요, 가장 미약하지 아니 하나이까. (삼상9:21)
스스로 작게 여길 때 머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처음과 나중이 같아야 합니다.
처음과 나중이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끝까지 존귀하게 쓰셨습니다.
겸손할 때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노아가 120년간 방주를 지으면서도 처음 먹은 마음이 변함없었습니다.
결국 자신이 만든 방주를 통해 자신의 가정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가던 첫날의 마음이 삼일 길을 가면서도 변하지 않을 때,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축복하셨습니다.(창22:3-4)
그런데 사울은 시간이 가면서 믿음이 변질되었습니다.(13:12)
부득이 하여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입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약속한 시간이 되어도 사무엘이 오지 않았습니다. (삼상13:8-14)
적들은 이미 믹마스 국경에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5절)
싸우겠다고 나섰던 병사들은 전쟁의 두려움에 자신감을 잃고, 하나씩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8절)
사무엘이 오지 않으니 사울이 대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9절)
다급한 나머지 자신이 제사를 드리고 돌아서는데 사무엘이 도착을 했습니다.(10절)
사무엘이 왕이여! 무슨 일을 하였나이까? (11절)
사무엘을 본 사울은, 선지자여! 어쩔 수 없어서 부득이하여 내가 제사를 드렸나이다.(12절)
사무엘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다고 했습니다.(13절)
그러면서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 하였도다’.(13절) 라고 했습니다.
명령을 지켰더라면 왕의 나라가 영원하였을 텐데, 이제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13-14절) 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전쟁이 이기고 지는 승패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명령을 지켰어야 하는 것입니다.
백성이 흩어지든지, 적들이 국경을 넘었든지 끝까지 하나님의 방법대로 기다려야 했을 텐데 믿음을 잃었습니다.
사울이 부득이 하여 어쩔 수 없이 내가 드렸다고 할 때, 사무엘은 왕이여 망령된 일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의 손에 있거늘 어찌 망령된 일을 하였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지키지 아니 하였으므로.(삼상13:14)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삼상15:11)
왕이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삼상15:23 하)
신앙에서 변명과 타협은 믿음을 무너트리는 치명적인 요소가 됩니다.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있음을 상실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떠나면서 믿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은 왕 세운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사울은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왕 세운 것을 후회한다고 하셨습니다.(15:11)
‘후회’ 란 기대에서 빗나갈 때, 충성에서 배신할 때, 세워서는 안 될 사람,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을 세웠을 때를 말합니다.
호스피스 전문가인 ‘오츠 슈이치’ 박사가 죽음을 앞둔 말기 암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선생님도 인생을 후회한 적 있나요?
하고 물으면 환자들은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답니다.
‘후회’ 라는 말이 임종을 앞둔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답니다.
암 말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가해진 답니다.
그러나 그 고통보다 더 깊이 환자의 가슴을 후벼 파는 화살촉이 지난날에 대한 ‘후회’ 랍니다.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고 하셨습니다.(삼상15:35)
그 이유는
1)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15:19절)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제멋대로 행동했습니다.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면 아말렉에서 잡온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조리 죽이겠다고 약속을 했기에, 하나님은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나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왕궁 뒤뜰에 짐승들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어찌 왕궁에서 시끄러운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리느냐? (14절)
하나님께 제사들 들일 때, 제물로 쓰려고 가두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라고 하셨습니다.
2)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15:22-23)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도 왕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23절)
우리가 먼저 말씀을 버린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버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유 없이 버리지 않습니다.
성경에 버림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자들입니다.
다니엘서의 벨사살 왕이 이스라엘에서 가져온 성전의 성물로 술을 마시면서 객기를 부리며 하나님을 조롱했습니다.
술 파티 장에 별안간 손가락하나가 나타나 벽에 글씨를 쓰는데 ‘메네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란 글씨가 나타났습니다.
아무도 해석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시 유대에서 잡혀온 다니엘이 해석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달아보시니 부족해서 나라를 빼앗아서 ’메데 파사‘ 로 쪼개 버리겠다는 뜻’ 입니다.
이때 ‘메데 파사’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벨사살 왕을 죽이고 나라를 빼앗아 둘로 나뉘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며 우습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울도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할 때 사무엘 선지자가 와서 당신을 버린다고 경고를 했습니다.(삼상13:13-14)
3. 하나님을 떠난 결과를 보세요.
1) 인생을 번뇌하며 살았습니다.(16:14절)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말로는 비참했습니다.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고, 삶이 불안해졌습니다.
시기 질투로 악령에 잡혀 살았습니다.(19:9-10)
자기정체성을 잃었습니다.
자신의 관리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악령이 그를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2) 사울은 길보아 산에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31:6)
전투에서 하나님은 적에게 사울의 생명을 넘기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길보아산 전투에서 패하게 되었습니다. (31:1)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 세 자식들과 함께 마지막 칼을 세워놓고 엎드러져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31:2-5)
사울의 인생은 말로가 비참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자살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만족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던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서 인생의 말로가 너무 비참했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3) 사후에 그가 어디로 갔겠습니까?
가룟 유다에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했습니다.
바로, 헤롯, 아합, 웃시야, 왕과 함께 사울왕은 어디로 갔겠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떠난 사울은, 인생의 말로가 비참했습니다.
권력도 헛되고 명예도 헛되고, 소유도 헛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육적인 안타까움보다 ‘영원한 지옥 불’에 버림받습니다.(계21:8)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 했습니다.(마7:21)
여러분 한 달란트 받은 ‘악하고 게으른 자’ 는 천국과 지옥 어디에 간다고 생각하십니까? (마25:30)
등(燈)은 준비되었지만 기름준비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마25:1-13)는 주님 재림하실 때 주님 맞이할 수 있습니까요?
염소에게 이르되 저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마25:41)
하나님 떠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쁨도 떠나고 행복도 떠나고, 소유도 떠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후(死後) 까지도 비참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울의 말로를 역사의 거울로 보면서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기를 기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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