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겔37:1-10
제 목: 치유와 회복이 필요합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겔37:5) Thus saith the Lord GOD unto these bones ; Behold, I will cause breath to enter into you, and ye shall live (Eze 37:5)
사람이 희망을 잃는 것은 참 무서운 일입니다.
희망을 잃으면 인생의 방향을 잃게 되고, 삶의 의욕이 없어집니다.
희망을 잃으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과 생각이 부정적으로 변합니다.
희망을 잃을 때 건강한 사고력이 상실되고, 모든 일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희망을 잃으면 적은 일에도 쉽게 절망을 잘하고, 적은 일에도 분노하기를 잘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문제를 만나면 해결하려는 의식보다, 자신을 방어하며 합리화시킵니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대안 없는 비판을 잘하며, 남을 잘 정죄하기도 합니다.
희망을 잃은 사람일수록 심리적으로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굉장히 심합니다.
육체적인 장애보다 더 무서운 것은, 희망을 잃은 정신적 또는 성격적 장애입니다.
전에 연쇄살인을 저지른 유영철를 기억하십니까? (20명)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에서 부터 성격적 결함이 있었습니다,
결혼생활은 파탄에 이르고, 여성들에 대한 증오가 무차별하게 범죄행위로 나타난 것으로 압니다.
희망을 잃은 절망이 미움과 증오와 분노로 표출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 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희망’ 이라고 생각합니다.
치유와 회복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희망찬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데에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내일에 대한 꿈이 있어야 어려워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요즘 청년들은 당장 직장선택하기가 너무 어렵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이 3포, 5포 한다고 합니다.
(연애,결혼,출산,직장,내집)
결혼도, 출산, 내 집 장만할 희망도 없답니다.
운명이라 체념하고, 팔자이러니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꿈(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시간은 흘러가고 초조해 합니다.
어른들은 노후가 불안해 집니다.
삶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없고, 날카로워져서 대부분 아주 신경이 예민해 있습니다.
요즘 길거리가다 쳐다만 봐도, 왜 쳐다보느냐고 싸움을 합니다.
차를 몰고 가다가 앞서가든지 하면, 입에 거품을 물고 거친 욕을 서슴없이 해댑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없고, 신경이 예민하고 날카로워져 그렇습니다.
요즘 가정파탄이 심해지고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습니다.
전에 아내가 신용카드를 무분별하게 썼다고, 아내를 흉기로 찔러 죽였습니다.
이 시대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치유와 회복입니다.
나라에 정책도 백성이 무엇에 신음하고 있는지, 빨리 직시하고 바른 방향과 희망찬 비전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은 강한 민족이고, 위기를 잘 극복하는 민족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시절도 잘 극복해 왔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모두 희망찬 비전 제시가 필요한 때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 오랜 포로생활을 하다 보니,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
국가는 남북으로 갈라졌고, 열두지파는 다 흩어졌습니다.
소생할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백성들은 절망에 빠져있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희망을 보여 주시면서, 치유와 회복을 시켜 주시는 내용입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에, 골짜기에는 마른 뼈들이 뒹굴고 있었습니다.
이 뼈들은 그 당시 희망을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향해, ‘에스겔! 이 마른 뼈들이 능히 살아나겠느냐’ 고 물었습니다.(겔37:3)
에스겔은 나는 모릅니다. 주께서 아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향해, ‘이 마른 뼈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고 대언하라. 하셨습니다.(37:4)
그리하면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그러면 너희가 살리라.(5절) 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모여들어 제자리를 찾았습니다.(7절)
그리고 힘줄이 붙고 살가죽이 붙으면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37:6)
하나님은 또 다시 에스겔을 향해 생기를 대언하라고 하셨습니다.
생기가 들어가니 움직이는 큰 군대로 회복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10절)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다시 돌아오고, 남북이스라엘이 통일되는 희망찬 비전을 환상 속에서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바짝 마른 뼈들 속에 생기가 들어가 살아났듯이, 우리도 다시 생기가 들어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가정적으로 회복되고, 생업이 일어나고 민족이 치유되는 회복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에스겔이 본 치유와 회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1. 에스겔이 본 마른 뼈들은 무엇입니까?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2절)
그 당시 바벨론에 포로생활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절한 모습입니다.
뼈가 아주 말랐다는 말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심령에 은혜가 마르고, 기쁨과 평안이 메마르고, 기도가 마를 때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삶의 현장도 마른 뼈와 같을 때가 있습니다.
건강이 무너지고, 사업이 무너지고, 가정이 깨지고, 사회가 혼란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에 북녘이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중국 연변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적이 있었습니다.
두만강 변의 북녘은 저녁만 되면 캄캄하고 적막이 찾아옵니다.
우리 옛 말에 눈에 밟힌다는 말이 있었는데....
낮에는 어이들이 학교에서 떠들고, 주민들은 집단농장에 일도 합니다.
개간하여 산에 나무가 전혀 없습니다.
아침에 연기는 피어올라 굶지 않고 밥은 지어 먹는지.....
전기불이 없어 저녁이면 암흑천지로 변합니다.
평양외의 북녘의 도시는 척박하기 이를 때가 없습니다.
시민들의 모습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평양은 제 2의 예루살렘이라 할 만큼 신앙이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이 예배당을 헐어버리고 십자가를 떼어버린 요즘모습은 마른 뼈와 같았습니다.
자유와 평화가 없고, 서로를 의심하며 감시를 당해야 하고, 바짝 마른 주민들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군정치를 외치면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에스겔 골짜기에 뒹구는 마른 뼈들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가슴속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의 모습을 아시고 에스겔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아나겠느냐? (3절)
에스겔의 대답이 주께서 아십니다. 난 모릅니다. (4절)
에스겔의 눈으로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희망의 눈으로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문제를 만날 때 환경만 보지 말고 신앙의 눈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통일도 환경만 바라보면 너무나도 멀리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킨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손이었습니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 전문가들도 2-30년이 되어도 희망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손을 대시니 동,서독을 가로 막고 있던 베를린장벽이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일제 치하의 광복이 우리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태극기 흔들고 독립운동으로 해방을 한 것이 아닙니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했습니다.
그것을 본 일본 왕이 그냥 항복을 해서 우리가 해방된 것입니다.
세계에 유일하게 남은 분단된 우리민족의 통일도 우리는 준비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이 38선의 장벽을 거두어 주셔야 합니다.
155 마일 휴전선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으로 통일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압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는 날, 반드시 통일은 이뤄 질 것입니다.
환경을 보면 민족의 문제나 우리 개인의 문제나 육신의 눈으로만 보면 마른 뼈들 같다고 절망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신앙의 눈으로, 마른 뼈들과 같은 환경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질병도 의사의 눈에는 절망이라 할지라도, 신앙의 눈으로 보면 희망일수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예수님은 잔다고 하셨습니다.(막5:39)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었도다.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11:11)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인생의 문제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면 희망이 됩니다.
열 두 지파에서 대표를 뽑아서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열 정탐꾼은 탐정하고 돌아와서 우리는 못 들어간다고 보고했습니다.
그 땅은 장대만한 사람들이 지키고 있고,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절대 못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희망을 품고 달려왔던 백성들은 순간 모든 꿈이 깨지고 희망이 무너졌습니다.
주저앉아 통곡을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를 원망했습니다.
조금 후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도착하였습니다.
포도송이를 어깨에 메고 오면서, 그 땅은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붙여준 땅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라고 힘주어 소개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땅이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다. 고 했습니다.
결국은 신앙의 눈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본 갈렙과 여호수아, 그리고 20세 미만의 젊은이들만 가나안 땅을 들어갔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신앙의 눈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바로 믿음이요, 신앙이란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에스겔을 향해 이 마른 뼈들이 살아나겠느냐?
이 말씀은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합니다.
우리도 역경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희망을 갖고 일어나야 합니다.
저는 성경인물 중 갈렙을 무척 좋아합니다.
당시 갈렙은 85세 노구에 ‘이 산지를 내게 달라’ 고 (수14:12) 했습니다.
그 산지는 좋은 땅이 아닙니다.
모두 가기 싫어하는 헤브론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이 땅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땅임을 믿었기에 그 땅을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도 마른 뼈와 같은 현실일지라도 치유되고 회복되는 비젼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2. 마른 뼈들을 누가 살렸습니까?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덥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5-6절)
1)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
5-6절에 ‘너희가 살리라’ 고 두 번씩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근본적으로 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의 포로에서 치유하시고, 회복시켜줄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못하실 일이 어디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사람의 능력과 도움은 항상 한계가 있음을 절감해야 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식이라 할지라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어느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는 유치원을 다니는 자녀가 있었답니다.
그 자녀가 2층 베란다에서 떨어지면서, 그만 뇌에 손상을 입고 혀가 잘라지고 뼈가 부스러졌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에게 마취를 놓으면 의식을 잃을 수도 있고, 또 치료가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 아이의 손과 발을 침대에다 묶어놓고 생으로 뼈를 맞추면서 수술을 집도했답니다.
마취도 놓지 않고 생으로 살을 찢는데, 아이가 아버지만 쳐다보면서
아빠! 살려줘, 아빠! 살려줘 애절하게 울부짖더랍니다,
정작 자식이 위기일 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고 있는 아버지의 무기력한 모습을 처음 느꼈답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울부짖으면서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데, 아버지로서의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이 너무 처절하기만 했노라, 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도움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만이 무한한 능력입니다.
하나님만이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에서 해방시킬 수 있듯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고백하세요.
사람이나, 환경이나, 세상 조건에 너무 의지하지 마세요.
세상 것들은 의지한 만큼, 실망으로 돌아올 때가 너무 많습니다.
자식 기대했다가 자식 때문에 상처받은 이가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 손에 붙들려야 합니다.
하나님 손에 인생을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난공불락이던 홍해를 가르시고(출14:21-25) 철옹성 여리고성을 무너
뜨렸습니다. (수6:1-27)
광야 40년도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셨는데, 우리의 갈 길도 인도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기드온이 기도할 때에 지는 태양도 머물게 하셨습니다.(수10:12-14)
아무리 세상이 불황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붙여 주시고, 열어주시면 호황이 됩니다.
의사에게 도움을 받지 못했던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셨고, 죽었던 나사로를 야이로의 딸을 살려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옥문도 열리고 쇠사슬도 풀리지 않았습니까?
마른 뼈를 살리신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길도 치유하고 회복시켜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3. 마른 뼈가 어떻게 살아났습니까?
마른 뼈가 사는 방법 두 가지가 있습니다.(7절, 9절)
1) 하나님 말씀을 대언할 때 살아났습니다. (7절)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7절)
대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에 이 뼈 저 뼈가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명령대로 생기에게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큰 군대더라.(9절)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대언할 때입니다.
마른 뼈처럼 희망을 잃은 이 사회를 향해 말씀을 대언해야 합니다.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다니엘이 21일 금식하고 났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은총을 크게 입은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힘이 나서 이르되 내주께서 내게 강건하게 하셨으니 말씀하옵소서. (단10:19)
주께서 말씀하실 때 힘이 났다고 했습니다
이 힘은 육체의 힘만이 아니라, 영적인 힘입니다.
말씀을 들으면 힘이 나는 것입니다.
말씀은 생명의 씨앗이기 때문에 떨어지는 그곳에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말씀을 전할 때에 마른 뼈들이 살아났듯이, 말씀은 시편119:105절에 내 발의 등이요, 내 인생의 길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히4:12절에 말씀은 수술도와 같아서 살았고 생명력이 있어서 어떤 예리한 칼보다 더 예리하다고 했습니다.
못된 성격, 못된 사람도 하나님 말씀이 속에 들어가면 새사람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속에 들어가면 새사람을 만듭니다.
오늘도 우리는 세상을 향해서 말씀을 대언해야 합니다.
2) 마른 뼈들이 생기가 들어갈 때에 살아났습니다. (9절)
생기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성령입니다. 예수의 영입니다.
사람을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 생기를 넣었더니 생령이 되었습니다.
즉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달리 영적인 존재입니다.
생기가 들어가야만 살아납니다.
이 생기가 우리의 심령에, 가정에, 이 사회에, 들어가면 심령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이 사회와 민족을 살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너희를 치료하시는 여호와임이로다. (출15:26)
‘
육체와 영혼에 치료와 회복을 위해 찾을 분이 ‘여호와 라파’ 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치유될 수 없는 마른 뼈들도 회복되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절망적인 환경일지라도 하나님이 하시면 딥니다.
무슨 문제를 만났든, 신앙의 눈으로 마른 뼈가 살아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다가운데도 길을 만드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마른 뼈와 같은 메마른 심령을 향해, 메마른 사회를 향해 말씀을 대언하세요.
예수이름으로 대언하세요. 생기를 불어 넣으세요.
그러면 다시 치유되고 회복됩니다.
심령도, 가정도, 사회도, 민족도 다시 일어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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