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계를 뛰어 넘어 힘차게! Hop beyond the limit!
본문 : 빌 4:13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창 18:14 전반).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나타나시어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능력의 예수님도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에게 반문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막 9:23 전반). 성령님도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의 권능”(눅 4:14)
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은 자신 자체가 전능하신 분이기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천명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들은 결코 전능할 수 없는 피조물이기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감히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오늘 본문처럼 우리 신앙인들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간간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 9:23 후반; 요 14:12). 맞습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놀랍게도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 인간을 만드셨고,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사용할 수 있도록 우리 신앙인들을 최고로 대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본문은 문맥상 전능하신 하나님이 일하시는 전능한 능력과는 동일하지 않은 제한된 능력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 제한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1.“모든 것을”의 해석이 제한적이어야 함에도 문맥을 무시하고 한 구절만을 뽑아 내어 취급함에 따른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본문 후반 “...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구절에서 “모든 것을”(판타)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모든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단어들의 실제적인 의미는 사용된 문맥에 의하여 결정되어지듯이 “모든 것을”은 자기가 무슨 일이든지 행할 수 있으며, 그의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바울의 진의를 그릇되게 전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사용되어 있는(판타)라는 용어는 단지 오늘 본문 앞 절들 11-12절에서 이미 언급한 좋고 나쁜 '이 모든 상황들' 즉,한 개인이 일상생활에서 직면하게 되는 '모든 좋은 환경들과 나쁜 환경들' 을 가리키는 것일 뿐입니다. 성경의 문맥의 흐름에 따라 바울이 앞 절에서 밝힌 자신의 자족을 재확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2.“할 수 있다” 안에도 제한된 의미가 내재해 있습니다. 본문 후반 “... 할 수 있느니라”
여기서 “할 수 있다”라는 능동태 동사 (이스쿠오)는 아쉽게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뜻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연관해 서두에서 언급한 막 9:23에서 사용된 “할 수 있다(, 뒤나마이)”는 단어와 다른 단어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바울이 자기가 처해진 그 모든 상황들을 능히 다룰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풀어서 언급한다면, "나는 낮은 자리나 높은 자리나 풍부함이나 궁핍이나 부요함이나 빈곤이나 그와 유사한 모든 외적인 상황들, 즉 인생의 모든 상황들에 대해서 대처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견디어 내며 그것들을 지배할 자질들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다."의 의미입니다.
사실 이러한 능력만 해도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이긴 합니다. 우리 모두 이와 같은 바울의 능력! 즉 어떠한 처지와 형편에서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주인공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자족의 일체의 비결을 배우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3.그런데 이 제한된 능력의 “할 수 있다”는 단어는 스스로 즉 자력으로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문 전반 “내게 능력 주시는 이 안에서...”
바울의 능력의 비결은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의 능력에 있었습니다. 바울의 독립의 비결은 다른 존재에 대한 의존이었습니다. 실제적으로 그의 자족은 모든 것에 있어서 풍족하신 존재와의 생동적인 연합으로부터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에 있어서 풍족하신 다른 존재는 과연 누구입니까? 바울은 이에 대하여 아무런 말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능력 주시는 자' 라는 말을 통하여 그의 존재를 밝히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능력주시는 (엔두나문)” 이라는 동사는 그의 서신의 다른 곳들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적 활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많이 사용되어 있습니다 (엡 6:10; 딤전 1:12; 딤후 2:1; 4:17). 따라서 이 구절에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첨가하여 해석한 편집자들은 바울의 원래 의도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우리 신앙인들이 능력주시는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위해서 먼저 밟아야 할 선행 과정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 모두 이 과정들을 오늘 잘 깨달아 알게 되고 하나 하나씩 실행하여 2024년 새해에 어떠한 한계든 뛰어 넘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의 신앙인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선행되어야 할 것들은 과연 무엇들일까요?
1.첫째는 “내려 놓기 또는 버리기”입니다
바울은 그 자신의 삶이 그리스도께 완전히 사로잡히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예수님과 모든 것을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고, 그외 부활의 능력을 알기 원했습니다 (빌 3:4~11). 바울은 출생, 종교, 사회적 지위 등과 같은 인간적 이점들과 인간적 업적들은 궁극적으로는 무가치한 것들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갑자기 그 추종자들을 박해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 결과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바울은 즉시 가치 평가의 근본적인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그 동안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애써 노력해 왔던 '선한 것들’이 결코 '유익들'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그를 파산으로 몰아 간 '손실들'이었습니다. '배설물' 즉 혐오스럽고도 피하고 싶은 것들이었습니다. 그것들은 그의 패망을 도모하는 ‘악한 것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진정한 의의 필요성에 대한 자각을 둔하게 만드는 아편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눈을 멀게 한 빛이(행 9:3~5)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올바른 관점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자신의 주님으로 알고 섬기는 것이 삶에 있어서 궁극적 가치를 지닌 유일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내 것은 그대로 소유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알 것은 그릇이 비어져야 담을 수 있듯이, 자신은 비우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울 수 없다는 진리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으시길 원하십니까? 특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길 간구하십니까? 우리 모두 사도 바울이나 아브라함, 모세 등 믿음의 선진들처럼 이 세상에서의 귀중한 것들을 배설물처럼 먼저 버려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예화) 이용규 선교사의 책 제목 “내려 놓음” ... “더 내려 놓음”
2.둘째는 약한 것들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 안에 강하고도 전적으로 독립적인 능력이 깃들어 있다고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절대적인 힘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그와의 연합을 통해서 자신의 삶에 힘있게 대처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이 오히려 완전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힘을 보다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 12:9~10).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아니하거나 불가능한 일을 시도해 보지도 아니할 수 있는 핑게거리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의 연약함들은 그의 풍성한 삶의 가장 큰 자산들이 되었습니다. 그는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하나님께 기도로 알렸습니다. 바울은 그의 모든 연약함들을 그리스도께 맡김으로써 그 자신의 연약함들이 그 자신의 풍요로움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풍요로움으로 변화되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연약함들을, 즉 한계들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주위의 이웃들에게 알리어 중보기도하여 달라고 알리시길 축원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 이웃 또한 우리의 힘이 됩니다. 결국 우리가 한계를 뛰어 넘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하여 주십니다!
우리 모든 신앙인들에게 개인적 한계(영적, 심리적, 정서적, 육체적, 환경적 한계 등)들이 있을 것입니다. 가정적 한계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교회적 한계 등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한계들을 힘차게 뛰어 넘는 2024년 새해가 되길 축원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 하나님을 보다 더 의존하십시다. 예수님과 보다 더 연합하십시다. 우리 모두 이 세상의 자랑거리들을 배설물처럼 버리십시다. 자신의 약한 것들을 하나님께 기도로 알리십시다. 이웃들에게도 알리십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아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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