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6:1-34 말씀 묵상
제목: 패역한 이스라엘 왕조
1) 바아사에 대한 예후의 예언(1-7)
바아사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도록 섭리하셨지만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 숭배로 범죄케 하는 죄악을 멈추지 않았다. 따라서 선지자 예후는 여로보암의 집같이 멸절케 될 것을 예언하였다(1-4). ‘예후’는 그는 여호와이시다라는 뜻이다. 바아삭 진토에서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여로보암의 집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14:14)에 의해서 였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3대 왕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집을 본받아 우상 숭배을 섬겼다. 바아사는 우상을 섬기고 이기적인 동기에서 여로보암과 그의 가문을 살육한 사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책임을 바아사에게 돌리셨다(5-7). 하나님께서 결코 바아사를 불러서 왕으로 삼은 것이 아니였다.
2) 이스라엘의 엘라의 통치(8-14)
바아사를 이어 그의 아들 엘라가 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남유다는 아사 왕의 즉위 26년째 되는 해로, 엘라는 자신의 군대 장관인 시므리가 왕위 찬탈의 야욕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 채 먹고 마시며 육체적 쾌락을 탐닉하였다. 그러다가 그만 시므리에 의해 죽음을 당하여 엘라는 2년 동안만 왕위에 있었다(8-10).
시므리는 바아사가 여로보암 집에 행했던 살육보다 더 잔인하게 바아사 집안과 바아사 집안의 친구들까지도 모조리 죽였다(11-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므리의 왕권은 곧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3) 시므리의 칠 일 천하(15-20)
시므리가 엘라를 죽이고 왕으로 즉위할 때에 군대 장관이었던 오므리는 깁브돈에서 블레셋과 대치 중이었다. 깁브돈은 원래 단 지파에 분배된 성읍이었으나 블레셋이 점령하였던 곳으로 오므리는 이곳을 탈취하고자 깁브돈에 진을 쳤다. 이때 백성들은 시므리의 모반 소식을 듣고서는 군대 장관인 오므리를 새 왕으로 추대하였는데. 오므리를 중심으로 한 백성들은 시므리가 머물고 있는 수도 디르사를 포위하였다. 그러자 시므리는 자신이 더 이상 왕위를 소유할 수 없으며, 죽게 될 것임을 감지하고 왕궁에 불을 놓아 자살하였다. 시므리는 7일 천하를 끝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에도 우상을 숭배했다.
4) 오므리 왕의 악한 통치(21-26)
시므리의 죽음 이후 북이스라엘은 오므리와 디브니를 따르는 두 패로 나뉘어졌었는데 몇 년 만에 왕권 싸움은 오므리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제 공식적으로 왕이된 오므리는 수도 디르사에서 6년을 다스렸고 후에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겼다. 이곳은 세멜에게서 은 두 달란트를 주고 산 곳으로 그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라 불렀습니다. 오므리는 12년 동안 강력하게 통치하였으므로 훗날 앗수르인들은 북이스라엘을 가리켜 오므리의 집이라 부르기도 하였다(21-24).
오므리는 북이스라엘의 왕들 중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모압을 쳐부술 만큼 힘도 있었던 왕이었으나 그는 토지 매매를 금하는 율법을 어기고 사마리아를 사기도 하였다. 또한 그 역시 여로보암와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를 지속하였다(25-26).
5) 아합의 즉위(28-34)
오므리의 죽음 이후에 그의 아들인 아합이 유다왕 아사 38년에 왕으로 즉위하여 사마리아에서22년을 다스렸는데 전 왕들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더욱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받는다. 이전의 왕들은 우상을 숭배해도 아합처럼 이방 종교를 도입하지는 않았다. 그는 베니게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고 사마리아에 바알의 신당을 건축하고 단을 쌓았으며, 아세라 목상을 세워 숭배하였다.
오늘의 기도: 우상숭배는 자신과 자손들이 망하는 지름 길임을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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