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장 1-4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마태복음 8장 1-4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복음뉴스 0 01.06 07:34

제목 : 믿음의 전진이 있었나요

본문 : 마태복음 8:1–4


마지막은 앞을 보는 것도 중요 하지만 지나온 날을 되돌아 보는 시간도 필요 합니다. 

 

지나온 시간은 경험이 됩니다.  앞으로 살면서 반면교사로 삼는 겁니다. 과거의 경험은 다양한 상황속에서 좀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준이 됩니다. 그때에 경험이 지금 내가 직면한 문제 앞에서 좋은 선택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길을 걸어 왔는지 흔적이 있습니다. 그 흔적속에서 깨달음도 있고, 후회도 있고, 아쉬움도 있습니다. 신앙인이라 말하면서도 비신앙적인 삶에 치중했던 것도 보입니다. 거짓말 하지 말아야지, 남을 속이지 말아야지, 남을 미워하지 말아야지, 날마다 믿음을 자라게 해야지 결심하면서도 곁길로 빠졌던 시간들이 많았음를 인정 합니다. 

 

내가 걸어온 삶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하나님의 일하심 입니다. 손 하면 행동의 대명사 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언제나 내미사 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손을 내미십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잡아 일으켜 세우기 위함입니다. 잡아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축쳐진 자를 뛰게 하기 위함 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향해 손을 내미시는 데 나는 손을 내 밀기는 커녕 , 스스로 꽉  움켜 잡고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보면 좋겠습니다. 

 

손을 꽉 쥐고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 보다는 세상에 더 관심과 욕심에 사로잡혀 살았다는 의미 입니다. 이런 삶은 우선 하나님을 향한 믿음 없는 삶을 살았다는 증거 입니다. 하나님과 평행을 그리면서 누가 이기나 하는 식으로 살아온 방식 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불신과 의심이 가득차 있는 상태 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기 보다는 내가 스스로 뭘 하겠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순종하기 보다는 내 고집과 아집에 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왜 순간순간마다 손길을 내미시는가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양떼들을 그냥 내버려 두면 온갖 위험한 곳과 위기에서 하루라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돌보심 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사시는 방식은 늘 동행 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내미시는 손길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미시는 손길에는 대상을 차별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모든 사람입니다.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병든자나 잘 사는 자나.. 누구를 막론하고 손을 내미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미십니다.

그는 나병 환자라는 사실로 인해서 갇혀 살아왔습니다. 나병에 걸린 것도 속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까지도 무시 합니다. 사람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열악한 환경속에서 살던 나병 환자 입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 속에 용기가 생겨 났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만나면 답이 생길 것이라는 확신 이었습니다. 

 

사실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정상인들도 앞에 나서게 되면 긴장 합니다. 움츠립니다. 하물며 나병 환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다는 걸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를 뚫고 예수께 나아 갑니다. 

 

예수께 나아가는 길이 결코 쉬운 길은 아닙니다. 중도에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식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주님 앞에 나아와  질문 합니다. 2절에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님의 능력을 신뢰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소원을 아룁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 진지라..

 

이 상황을 지켜 본 수 많은 사람들은 놀랐을 것입니다. 

곁에 졸졸 따라 다니는 사람들도 이런 믿음은 없었습니다. 곁에 있으면서도 예수님의 능력을 보는것으로 만족했을 뿐입니다. 

 

한 나병 환자의 용기 있는 시도가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 도미노 현상을 가져 오게 합니다. 

한 무명의 나병환자의 용기 있는 시도는 이후로 수 많은 병자들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불러 일으킴니다. 나도 주님 앞에 가면 고침을 받을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겨 납니다. 확신이 그들의 내면을 꿈틀거리게 합니다. 

 

나병환자의 믿음의 발걸음이 오늘 나에게 어떤 도전을 주고 있나요?

우선 믿음없이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그저 나 만을 위한 삶을 살뿐 주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삶을 살았는지 되돌아 보는 겁니다. 많은 경우에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남 신경쓰고 돌 볼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주변을 돌아볼 줄 모르는 인생 살이는 결코 성도의 삶이 아닙니다. 

 

용기가 없어서 믿음을 사용할 줄 몰랐던 경험들이 다가오는 새해에는 용기있는 믿음의 삶을 실천하는 겁니다. 사실 용기가 없어서 믿음의 첫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주저하거나 미루었던 것은 너무나 아쉬움을 남김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고침을 받고 회복 되었습니다. 비결은 단지 하나 입니다. 바로 믿음 입니다. 주님이  만났던 수 많은 사람들에게 하셨던 말씀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믿음은 환경을 극복하게 합니다. 믿음은 내 삶의 방향을 바꿔 놓습니다. 

 

믿음은 복잡함 속에서 답을 찾게 합니다. 

믿음은 당황케 하는 현실 속에서 정답을 찾아 전진하게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용기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말씀이 말하는 것만을 믿습니다. 허무 맹랑한 믿음이 아닙니다. 고후 4;13에 기록된 바 우리가 같은 믿음을 가졌으니 기록된 바 믿었으므로 내가 말하였느니라..

 

나병환자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이 옆에 오는 걸 싫어 하는 걸 압니다. 그런데 나병환자는 주님께 나아가는 힘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믿음은 계속해서 말씀을 바라봄으로 답을 보게 합니다.

 

자신을 향한 논란과 욕설이 난무한다 할지라도 답이신 그리스도를 향해서 전진하는 겁니다. 잠언 4;21에 보면 그것이 당신의 눈에서 떠나지 않게 하십시오. 믿음이 주님을 향해 손을 터치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워 줍니다. 

 

나병환자가 보여주는 믿음은 대가를 치루더라도 주님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 입니다. 

예수 주변에 몰려 있는 사람들은 믿음은 있어 보이는 데 뭐가 없나요? 행함이 없는 겁니다. 야고보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담대하게 말합니다.

옆에 졸졸 따라 다니기는 하는 데.. 믿음이 없다 보니까.. 그저 구경꾼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나병환자가 보여주는 영적 상태는 

믿음으로 보고,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행함을 보여줍니다. 

2절을 볼까요..한 나병 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니까, 믿음의 말로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라고, 믿음으로 예수님 앞으로 나아옵니다.

 

나병환자가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은 

자기의 모습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나 보다 크신 주님의 능력을 바라보면서 전진하고 있습니다. 

내 눈에 시선이 머물면 전진이 어렵습니다. 더 나아가 문제 해결을 절대로 경험할 수 없습니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는 것 뿐만 무성할 뿐입니다.

 

어느 덧 신앙생활을 한 지 수 십년이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통해서 열매를 맺었던 일이 희미하기만 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교회 생활을 했지만 만족이나 기쁨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믿음이 고갈 되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언제나 지금이다. 

나병환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 보다는 주님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수 많은 사람들 사이를 뚫고 주님 앞에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나병환자가 보여주는 영적 시선 즉, 자기를 보기 전에 먼저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도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시선은 세상이 볼 수 없는  답을 봅니다. 

나병환자와 달리 우리가 갖고 있던 잘못된 생각, 잘못된 믿음, 잘못된 말이 자신을 패배시킬 것입니다. 

 

나병 환자의 믿음의 전진은 전혀 뜻 밖의 결과를 초래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런 결과가 생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병 환자가 보여준 믿음의 전진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믿음은 헛탕이라는 게 없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믿음은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믿음은 결코 헛발질 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타이밍에 맞춰 역사 하십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믿음을 재료로 삼아 결과를 맛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어떻게 사람들을 인도해 오셨는지 성경 여러 부분에서 소개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며 두려워 할 때에 

수 4;23-24에 보면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손이 가능하게 하는 힘을 제공합니다.

행 11:19-21에 보면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로 돌아오더라

 

때로는 여호와의 손이 나를 이끌고 갑니다.

겔 37:1에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여호와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뼈가 가득한 골짜기 가운데 두셨으니

 

 여호와의 손이 나를 데리고 가셨다고 고백 합니다. 바로 에스겔 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을 데리고 가신 곳은 바로 마른뼈들이 즐비 하게 있던 곳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손길은 에스겔로 하여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현장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현장으로 가야 합니다. 멀리서 짐작으로 상상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은 직접 사람을 필요한 곳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해야 할 일이 뭔지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로 하여금 마른뺘들이 즐비한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에스겔로 하여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심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질문 합니다. 이 뼈들이 살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질문은 우리의 행동을 위해 결심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환난에서 보호를 제공합니다.

대상 4:10에 ..주의 손이 나와 함께 하여 나를 지켜 환난에서 벗어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의 손길은 영원한 보존을 제공합니다.

요 10:27-29에 보면 ..그리고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행하신 일들 입니다.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질문을 합니다. 누가 자비를 베푼자냐?  질문을 합니다. 질문은 대답을 요구 합니다. 대답은 믿음의 상태에 따라 다양합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통한 믿음의 전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분명 변화 시킴니다. 

하나님의 손길로 건짐을 받은 자는 많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믿음으로 주님의 손길을 잡지 못하고 살아왔다면 달라져야 합니다. 이제는 주님이 손길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  믿음은 승리를 보게 합니다. 

고후 5:7에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하니라 는 말씀에 귀울 기웁입시다. 우리의 눈이 믿음을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이 행동하는 손을 주저 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의심은 장애물을 보는 반면 믿음은 기회를 봅니다. 의심은 거인을 보는 반면 믿음은 하나님을 봅니다. 의심은 어려움을 보고 믿음은 승리를 봅니다. 의심은 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믿음은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의심은 길을 보지 못하지만 믿음은 하나님께서 길을 만드시는 것을 봅니다. 의심은 도망치라고 말하고 믿음은 우리에게 가만히 있고 용기를 가지라고 일깨워 줍니다. 시편 37:5에도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리라 

 

차가워진 믿음, 식어진 믿음으로 새해를 맞이해서는 안됩니다. 새해가 되었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믿음의 상태가 바뀔때 자신도 변화될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질 것입니다. 

 

신체나 어떤 일에든지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슴을 소홀히 할 때에 뜨거운 신앙은 사라집니다. 차가운 신앙.. 믿음이 식어진 상태로 전락합니다. 무엇을 해도 열정이 없습니다. 

 

손도 그렇습니다. 오늘날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말은 잘하는 데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말을 빠르게 발전하는 데 반해 행동은 저 멀리 뒤쳐져 있습니다. 그래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향해 손을 내미십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우리는 보조를 맞추며 살아야 합니다. 그 보조를 맞추는 리듬이 바로 믿음입니다. 

 

지난 한 해를 되돌아 볼 때에 믿음의 전진 보다는 믿음의 후퇴는 없었는지요, 믿음이 식어져 무기력한 인생ㅐ을 살지는 않았는지.. 다가오는 새해에도 여전히 식어진 믿음의 상태로 산다면 불행 입니다 

 

나병환자의 결단에 도전받자

나병환자는 믿음의 전진을 이루었습니다. 주님앞까지 도달하는 힘은 믿음이었습니다. 무디어진 신체들..하지만 그 안에서 꿈틀 거리는 믿음은 사람들이라는 방해를 뚫고 주님을 향해 전진하는 모습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믿음에는 타협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을 갈망하는 마음의 상태 입니다. 나병 환자에게 주변은 암울합니다. 살 소망이 사라진지 오래인지 모릅니다. 세상은 거칠고 험해도 내 안에 계신 주님을 향한 믿음은 환경을 뚫고 나가도록 형통케 하십니다. 

 

날마다 1mm 씩 자라가는 믿음으로 영적 감각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믿음없이 살겠다는 얕은 생각은 실패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늘 불안감과 초조감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의 깊이를 더 하십시오. 더 탄탄하고 안정적인 신앙의 상태를 만들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만만하지 않습니다. 

 

더 깊은 신앙의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영적 무감각에서 벗어나 목적 있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인생, 말씀으로 무장한 믿음의 삶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삶을 풍미 할 것입니다. 낯설은 숫자인 2024, 믿음으로 경주해 가시는 축복의 해가 되시길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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