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장 15-18절 말씀 묵상 [김경열 목사]

마가복음 11장 15-18절 말씀 묵상 [김경열 목사]

복음뉴스 0 2023.07.31 17:02

본문말씀: 막11:15-18

제  목: 본질회복이 중요합니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막11:17) And he taught, saying unto them, Is it not written, My house shall be called of all nations the house of prayer? but ye have made it a den of thieves. (Mak 11:17)


로마시대에 왕이 백성들을 향해 선포를 했습니다. 


누구든지 죄를 지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두 눈을 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사랑하는 아들이 먼저 죄를 지었습니다. 


왕은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아들을 잡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한 쪽 눈을 뺏습니다. 


나머지 한 쪽은 자신의 눈을 뺏습니다. 


공의를 실천하기 위해 두 눈을 뽑되, 한 눈은 자식의 눈을 뺏고 한 눈은 왕의 눈을 뽑아서 공의를 실천하고, 또한 자신의 한 쪽 눈을 빼서 아들의 사랑을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랑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불의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입니다.


1) 용서하는 것과 타협은 다릅니다. 


잘못을 뉘우치는 것은 끝없이 용서하셨지만, 불의에 대해서는 단호한 의분을 나타내셨습니다. 


용서하라고 말씀하신 분이 외식하는 바리세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때로는 열린 무덤 속과 같다고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화를 내는 감정의 표현 속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분노가 있고, 의분이 있습니다. 


때로는 의분이 필요합니다. 


의분은 불의를 보고 분을 내는 것입니다.


여중학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어른들이 못 본체 하거나 피해가는 것을 보면, 이것은 관용이 아니라 비굴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가 갈수록 무질서 해지는 것은, 어른들이 잘못을 보고도 내 자녀가 아니라고 무관심하거나 외면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회가 그만큼 악해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요즘 학생들이 학교 폭력에 시달려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습니다.


선생님이나 부모까지도 확실히 책임져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예 말을 하지 못하고 고민하며 시달리다가 자살까지 몰고 갑니다. 


어쩌다 이 사회가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탄식할 노릇입니다.


이 시대는 의분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지도자급에 있는 분들이 수천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돈 문제로 매일 기사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철면피한 모습에 분노가 생깁니다. 


중국은 우리정권이 바뀌면서 온갖 추태를 다 부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태인, 한국 등 서방국가들이 다 분노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일에 분노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정의이며 사랑입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을 양육하는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자녀를 하나둘 키우다 보니, 자녀가 우상이 되었습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선악의 구분을 모릅니다.


4대 독자가 사람을 몇 명 죽이고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기 어머니를 직접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포승줄에 묶여서 특별면회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끌어 않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아들도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만 흘렸습니다.


면회시간이 다 되어서 헤어져야 한다고 하니, 아들이 어머니 손을 내 얼굴에 대 주세요. 


그 순간 아들이 어머니의 손을 물어뜯었습니다. 


상처가 나고, 피가 흘렀습니다.


간수가 말릴 때 울면서 하는 말이, 어머니의 그 손으로 내가 남의 가계에서 물건을 훔쳐올 때, 잘못이라고 매 한번만 제대로 때려 줬어도 나는 사형장의 죽음으로는 가지 않았을 겁니다. 하면서 울더랍니다. 


4대 독자라 너무 귀해서 나쁜 짓을 해도 보상해 주면서 무조건 잘했다잘했다고 한 것이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결국 사형수가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도 많이 반성했습니다. 


요즘 교회도 너무 좋은 소리만 하고, 쓴 소리는 없어졌습니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요즘 강단에 회개하라는 말씀이 없어졌습니다.


요즘 교회의 권징조례가 없어졌습니다.


수술을 해야 하는데 진통제만 먹이면 안 됩니다. 


수술이 필요한 곳은, 메스를 대고 수술을 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도 점점 시들어 가는 화초처럼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지난번 한국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만해도 금식을 하면서 애절하게 부르짖는 성도들로 가득 찼던 성전이, 지금은 썰렁하게 비어 가고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이 지금 한국교회의 현주소가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교회가 십자가와 부활의 본질을 놓치고, 하늘의 소망보다는 땅에서의 번영만이 성공의 법칙인 것처럼 변질되어 가면서, 교회는 자꾸 세속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다가 순교를 당하면서도 이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삼았던 것이 우리믿음의 선진들이 걸어온 신앙의 발자취입니다. 


주님 까닭에 집을 빼앗기고 직장을 잃고 매를 맞으면서도, 우리는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감사했습니다.


전에 중국에서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밤을 새가면서 교육을 한일이 있었습니다. 


한 분이 간증을 하는데, 공안에게 붙잡혀서 너희들의 조직을 말하라고 고문을 하는데, 머리를 망치로 때려서 이렇게 머리가 없다고 보여주는데 가운데 머리뼈가 없었습니다.


기절을 하고 물을 퍼 부어서 깨어났는데, 다시 고문을 하면서 너희들의 모이는 곳을 불라고 하더랍니다. 


더 이상 나를 괴롭히면 혀를 깨물어 잘라 버리겠다고 했더니, 예수쟁이들은 독한 것들이라고 하면서 고문을 멈추더랍니다. 


그 분이 나는 주님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주님 앞에 갈 때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를 생각한다는 고백을 할 때,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신앙은 어떠합니까? 


신앙의 기준이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영적인 눈을 뜨고 하나님을 갈망하기 보다는, 땅의 것만 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기 보다는, 내 뜻에 하나님이 동의해 주기만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일들이 이뤄지면 오히려 나태해 지고, 하나님과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십자가는 버리고 영광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십자가의 고난이 없이는 부활의 영광도 누릴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사랑인 동시에 공의가 분명하십니다. 


이것을 신앙의 두 기둥으로 삼아야 합니다.


본문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데 성전 안에서 비둘기를 팔며 돈 바꾸는 자들로 성전을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상을 엎어버리고 채찍을 들고 단호하게 이들을 내쫓았습니다. 


성전을 정화하시면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 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의분을 볼 수 있습니다. 


의분은 불의한 일을 보고 모른 체 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분노를 갖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의분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본질을 생각하면서, 우리 마음의 성전도 정리할 것을 정리하고 깨끗하게 정화하는 기회가 되길 원합니다. 무엇보다


1. 성전에 공의가 실행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 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 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15절)


1)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을 내쫓았습니다.


거룩한 성전에서 행해지는 잘못된 것들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이들은 신앙을 이용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 돈 바꾸는 자들, 제물이 아닌 것을 가지고 들어오는 자들을 내쫓았습니다.


성전은 예배(제사) 드리는 곳입니다. 


백성들이 제사하려고 짐승을 가지고 옵니다. 


그러나 멀리서 오는 순례 객들은 짐승을 가지고 올수가 없어서, 돈을 주고 제물을 사서 제사로 드렸습니다. 


이것을 이용하여 장사를 하였습니다. 


이들은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돈을 바꿔주며 제물을 팔면서 이익을 챙기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주님이 이런 모습을 보시고 상을 엎으셨고 이들을 내 쫓았습니다. 


그리고 ‘내 집은 기도하는 집’ 이라고 성전의 목적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한 곳을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목적에서 빗나갔기 때문입니다.


2) 성전은 거룩한 곳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성전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구약은 제사였기에 직접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신약에는 예수님이 세상 죄를 모두 지시고, 단번에 제물이 되심으로 신령한 제사를 드립니다. 


여기에서 가시(可視) 적인 성전과 동시에 마음의 성전을 보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가장 소중히 여겼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에 머리를 묻고 눈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통곡의 벽’ 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집을 지어도 동서남북 어디에 있든지 성전을 향해 방향을 정합니다. 


철저히 성전 중심한 삶을 살았습니다. 


성전 중심한 삶이란 하나님 중심한 삶을 말합니다.


이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을 중심해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거룩한 성전이요, 신앙의 본질입니다. 


이 거룩한 성전 안에서 신령한 예배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도 드려야 하는데,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거룩함이 사라진 형식적인 의식으로 변했습니다.


거룩한 영의 역사보다는 교회조직과 직분에 관심이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상인들과 결탁해서 순례 객들을 착취하였을 뿐 아니라 성전의 거룩함을 더럽혔던 것입니다. 


주님은 상을 엎어버리고 이들을 내 쫓으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고, 주님이 계시고,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이 거룩해야 합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거의 물질이나 정신문제 이전에 마음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마음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문제를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의 성전이 무너지면 은혜도 떠나고, 기쁨도 떠나고, 평안도 떠나고, 하나님도 떠나십니다.


우리는 늘 영적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롬12:1-2)


영적인 예배가 무엇입니까? 


마음중심으로 드리는 예배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맞춰진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입니다. 


우리도 영적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거룩함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재림복음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와 같은 성령의 역사를 강권적인 역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성전의 본질로 돌아가 하나님과 영적교통이 회복되길 축복합니다.


2. 성전의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하지 아니 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17절)


성전에는 사랑이 실행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성전을 두 가지로 소개하셨습니다.


1) 성전은 ‘주님의 집’ 이라고 하셨습니다.


‘내 집’ 이라고 하셨고, 반석위에 ‘내 교회’ 를 세우리니...(마16:16)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전은 주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성령이 계시는 거룩한 아버지의 집입니다. 


누가 헌금을 많이 했다고, 그 사람이 주인이 아닙니다. 


개척을 했다고 그 사람이 주인이 아닙니다. 


주인이 주님이 십니다.


교회를 내 몸이라 하셨습니다.(엡1:23)


성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거룩한 집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별별 일을 다 봅니다.


오래 전에 부흥회를 갔는데, 설교를 하려는데 강대상이 없고, 성가대가 찬양을 하는데 피아노가 없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성물을 해 놓은 장로가 시험이 들어 교회를 떠나면서 자기가 해놓은 성물이라고 다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전은 주님의 몸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집입니다.


2) ‘만민이 기도하는 집’ 이라고 하셨습니다.


성전의 목적을 알려주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 하는 집’(17절)... 이라. 


그러므로 성전은 사람의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라, 세미하게 주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깊은 기도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깊은 기도는 감사를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묻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내가 구한 것이 이뤄져야만 응답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구한대로 이뤄졌다면, 나는 수없이 실패했을 것입니다.


진정한 응답은 내 뜻대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원을 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주님의 마지막 겟세마네 기도를 보세요. 


땀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셨지만, 기도의 결론은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길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눅22:44)


그럴 때 천사가 하늘로부터 나타나서 예수를 도왔다고 했습니다. (눅22:43)


다윗은 불레셋과 전쟁을 할 때, 무조건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불레셋을 치리이까, 말리이까? (대상14:10)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물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불레셋을 치라, 내가 너희 손에 붙이리라고 하셨습니다. 


소원을 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깊이 묻는 기도를 드리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든지 본질이 중요합니다. 


신앙은 본질에 충실한 것입니다. 


본질만 흔들리지 않으면 가정도 사회도 인생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주님이 성전에서 채찍을 들고 상을 엎으시며 쫓아냈던 의분은 성전의 본질에서 빗나갔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아버지의 집에서 예배가 회복되고 기도를 회복하면서 본질로 돌아가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만 듣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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