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3장 1-10절 말씀 묵상 [김경열 목사]

사도행전 3장 1-10절 말씀 묵상 [김경열 목사]

복음뉴스 0 2023.07.27 22:22

본문말씀: 행3:1-10

제   목: 예수 이름이 해답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라. (행3:6) Then Peter said, Silver and gold have I none; but such as I have give I thee: In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rise up and walk. (Act 3:6)


 

그리스도인들은 팔자나 운명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운명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인생의 문제를 만날 때, 방법을 찾다가 안 되면 운명이나 팔자라고 체념합니다. 


원수마귀도 운명이라고 속삭입니다. 


마귀는 자꾸 너는 그렇게 살 팔자야! 그 모양으로 살다 갈 운명이야.


이렇게 자꾸 속삭이면서 소망을 빼앗아 가고 체념하게 만듭니다.

 

속지 마세요. 


운명을 뛰어 넘는 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지옥 갈 인생이 예수 믿으면, 천국백성이 됩니다. 


죄인이 예수 믿으면 의인의 신분으로 변화됩니다. 


신앙인은 인생을 운명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공생애 기간에 주님이 직접 하셨던 치유사역이 오순절이후 사도들을 통해 일어난 사건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내일에 대한 꿈이 있어야 어려워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40년 동안 평생을 걷지 못하고 날마다 성전미문에 앉아서 남에게 손을 내밀어 살아가는 이 사람은 아무런 소망도 없고 꿈도 없었습니다. 


평생을 똑같이 남의 도움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평생 결혼도, 가정을 가질 수 없으니, 내 집 장만할 희망도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 들이 3포, 5포 한다고 합니다.


(연애, 결혼, 출산, 직장, 내 집)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운명이라 체념하고, 팔자이러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돈 몇 푼 도와준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기를 안 갖는다고 뭐라 할 게 아닙니다. 


양육할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그 날도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구걸하고 있는데, 

기도하러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습니다.


희망없이 몇 푼 구걸하기위해 내미는 손이 이제는 만성이 되었습니다.


머리를 푹 숙이고 손 내밀고 있는 이 사람에게 베드로와 요한은 다가왔습니다.


우리를 보라고 합니다.


네가 원하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잡아 일으켰습니다. (행3:6)


그랬더니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일어나 40년 동안 한 번도 걸어보지  못했던 절망적인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행3:8)


그는 평생 한번만이라도 걸어보는 것이 소원이었을 것입니다.


날마다, 한번만 제대로 걸을 수 있다면 별생각 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로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꿈이야 생시야 하면서, 영원히 깨어지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너무 신기하여 그는 걸어보고, 뛰어보고 힘도 주어보았습니다.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었기에 걷는 것 자체가 신기합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놀라워합니다.


사람들은 놀라워하면서 박수를 치며, 내 일인 양 축하해 주었을 것입니다.


성전으로 들어가서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환자는 눈물범벅이 되어 빨리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운명이라 체념하던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금이나 은이 아닙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해답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가지신 가장 귀하고, 존귀한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바로 하늘에 권세를 버려두시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천국 백성 만드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입니다.


그 이름 속에 하나님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 이름이 온 땅을 다스리는 하늘의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만 위력 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죽은 후에는 단지 그 이름이 상징적 가치만 가질 뿐입니다.


아니, 그 자리에서 물러나기만 해도 파워가 떨어집니다. 


그런데 예수의 이름은 십자가에서 죽음 뒤에 더욱 위력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는 모든 이름위에 가장 뛰어나고 가장 존귀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파워를 나타내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입니다.


지금도 마스터 키(Key) 로, 항상 모든 곳에 통하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우리 크리스천들이 기도할 때,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사와 표적을 행하는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께서 많은 이적과 표적을 보이신 것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요20:31)


여러분도 때때로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 앞에서 지치고, 넘어지고, 

상처가 나서 주저앉아 운명처럼 체념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고 일어날 수 신앙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본문 말씀은 베드로와 요한이 

1. 기도 할 때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1) 정해진 기도 시간이었습니다.(1절)


제 구시 기도시간에...라는 말은 정해져 있는 기도시간이란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시간을 정하고 기도합니다. 


유대인의 정해진 기도시간은 3시(행2:15) 6시(행10:9), 9시(시55:17)로 우리 시간으로 오전9시. 낮12시, 오후 3시에 기도 시간입니다.


다니엘도 정해진 기도시간에 기도한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단6:10)


제 구시는 우리 시간으로 오후 3시입니다. 


가장 바쁜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기도시간으로 정하고 베드로와 요한도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한 사람과의 만남을 허락해주셨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위해 하나님은 사건을 예비해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떤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는지 모르고 있어도, 

우리가 기도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천사들이 바빠집니다.(계8:3)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런 영적인 사건을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그 영적인 체험이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을 만나는 사건이었습니다.


규칙적인 기도나 작정기도는 영적생활에 굉장한 유익을 줍니다.


여러분도 시간을 정하고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정해진 제 9시 기도시간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시간으로 오후 세 시는 가장 바쁜 시간입니다.


기도는 바쁘다고 미루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초대교회에 가장 소중히 여긴 특권이요, 직무였습니다. 


기도할 때 오순절의 역사를 경험했고, 어둠의 영을 몰아내고, 담대하게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지금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을 만나고 있지만, 이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 매일의 삶이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미문을 통해 매일 성전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베드로와 요한은 그 수많은 사람들 중 두 명일 뿐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과의 만남이 그에게는 최대의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축복과 기적의 사건이었습니다.


우리교회가 매일 같이 새벽예배를 중시 여기고 “새벽에 너를 도우리라” 는 주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합니다.(시46:5)


하나님이 돕겠다는 시간에 목숨 걸어야 합니다.


우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아직까지 예배를 생명같이 드렸습니다, 


폭풍 주의보가 내려지고, 눈보라가 몰아치고, 눈이 아무리 많이 쌓였어도 예배의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예배는 생명입니다.


예배는 성령이 임재 하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코로나 펜데믹 중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울부짖었습니다.


이런 기도가 쌓여서 영성이 회복되었고, 우리교회 영적 에너지가 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성장하는 교회들, 그냥 부흥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우선순위가 예배요, 기도입니다.


여러분도 나름대로의 기도시간이 정하시길 바랍니다.


2)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으로 기도하기 위해 올라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1절下) 


‘제 구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 갈 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으로 올라갔다는 말은 미완료 형입니다. 


늘 성전에 기도하러 가는 거룩한 습관입니다.


즉, 한번으로 멈춘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늘 성전을 올라가는 거룩한 습관을 말합니다.


(1) 성도는 성전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성전보다 더 소중한 게 없습니다. 


성전은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요2:21)

 

하나님의 전이며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막11:17)


솔로몬이 성전을 7년 동안 지었습니다.


솔로몬은 많은 허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역대서에 보면, 솔로몬의 허물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솔로몬이 성전 짖느라고 수고한 공로만 칭찬하는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인다고 했습니다.  (대하7:15)


내 이름을 이곳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음이라.(16절) 할렐루야!


솔로몬이 기도하는 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해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가장 큰 위기는 성전예배가 무너지고, 성전 기도가 멀어져 가는데 있습니다. 


다시 성전예배를 회복하고, 성전기도를 회복하고, 성전에서의 찬양과 사랑의 교제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2. 연합하는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3절)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와’ 라는 글은 연합의 고리입니다.

 

1) 연합과 혼합은 다릅니다.


혼합은 뒤섞이고 무질서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연합은 하나가 되고 일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는 자꾸 연합해야 합니다. 


저희 교단은 연합운동에 적극적입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백석)은 연합운동으로 대 교단이 되었습니다.


신학적 모순만 없으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이단이 아니면, 가능한 함께 연합을 생각합니다.


신앙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함께 더불어 해야 합니다.


성경에 주도 하나, 성령도 하나, 믿음도 하나 라고 했습니다.(엡4:4-6) 


베드로와 요한이 하나가 되어서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연합하는 ‘와’ 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사실 베드로와 요한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여러 가지 하나가 될 수 없는 요소들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1) 이들은 세 가지 차이점이 분명했습니다. 


하나는, 성격의 차이입니다.


 베드로는 성격이 다혈질에 급하고, 요한은 차분합니다. 


또 하나는, 나이의 차이입니다.


 베드로는 나이가 많았고, 요한은 연소한 자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는, 지식의 차이입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어부출신입니다. 


 어부의 생활을 하면서 많은 학문을 쌓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지성인이었습니다. 


성격적인 차이, 연령의 차이, 지식의 차이, 이런 여러 가지 하나가 되기 어려운 조건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와 요한이 하나가 되어서 성전으로 늘 기도하러 둘이 같이 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2) 둘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네 가지입니다.


믿음으로 하나가 된 것입니다. 

믿음은 항상 하나 되게 만듭니다.


영적인 속성이 같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조건들을 뛰어넘었습니다. 


예수님이 중심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인인 인간과 하나님이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성령이 역사할 때 하나가 되었습니다.


모든 성격도, 나이도, 조건도, 뛰어 넘어서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처럼 너와 나,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 성도와 성도의 ‘와’ 의 고리가 잘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길 축복합니다.


하나가 될 수 없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역사가 일어납니다.


3. 예수의 이름이 자원입니다.(6-10절)


1) 무엇을 얻고자 할 때, 돈을 요구할 때 우리는 은과 금이 없다. 고 했습니다. (5-6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 있다고 했습니다. 


만약에 베드로와 요한이 은금이 있어서 돈으로 도와주려고 했다면 평생 구걸하는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앙은 은과 금으로 해결하는 것 아닙니다.


돈으로 구제나 하려고 했다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는 평생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마중물의 역할은 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입니다. 


성도는 예수의 이름이 자산이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1) 우리는 믿음의 손을 잡아줘야 합니다.


인생의 문제를 않고 지친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데리고 오면, 책임은 주님이 지십니다.(6-7절) 


이번 2023 뉴욕선교대회(7월20-22) 에, 강사 류응렬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엄청난 메시지를 쏟아 내셨습니다.


애즈베리를 부흥운동처럼 갈망이라는 말씀으로, 예수 십자가 없는 기독교의 모습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세계 선교지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이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선교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사명의 문제요, 처음 사랑을 잃은 영성이 문제라고 열변을 토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홍해를 내리칠 때, 갈라지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리고 성을 믿고 돌 때, 무너뜨린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죽은 나사로의 돌문은 우리가 열어야 하지만, 살리는 것은 주님이 하실 일입니다. 


주님이 하실 일. 하나님이 하실 일까지,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고민하고 근심하고 절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하실 일이라면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기세요.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오직 믿음으로 행동하는 일입니다.


베드로가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의 손을 잡고 일으킨 것처럼 여러분도 믿음으로 지치고 넘어지고 실패하여 쓰러진 인생의 손을 잡아 주시길 축복합니다.


(2) 일으키는 힘은 주님이 주십니다.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일어났습니다.(7절)


주님이 힘주시면 됩니다. 


확신을 가지고 일어나세요.


난공불락이던 요단강이 갈라지고, 철옹성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무슨 질병에 있든지, 주님이 일어난다면 일어납니다.


성령의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게 하세요.


모세가 홍해를 지팡이로 내리치니, 동풍이 불어와 물이 갈라졌습니다.(출14:21)


만나와 메추라기가 날아 왔습니다.


이번 뉴욕선교대회를 주제를 기도하는 중에 ‘복음으로 비상(飛上) 하자’ 로 정했습니다.


초대교회 마가의 다락방 같이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코로나를 완전히 몰아내고 닫쳐진 교회 문들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이 땅에 성령의 바람 불어와 다시 새롭게 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이 부흥의 불길이 뉴욕뿐 아니라, 전 세계, 선교지마다.


예수 생명으로..


전 세계에 성령의 불이, 바람같이 불길 바랍니다. 


불같은 성령이 임하시길 바랍니다.


‘에바다’ 의 열리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이 힘주시면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치료하시면 어떤 질병에서든 일어납니다. 


낙심하지 말고 주님의 힘을 의지하세요.


(3) 구걸하던 생활을 청산하게 되었습니다.(10절)


예수이름으로 40년간 안고 있던 근본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과거에 멈추지 않고, 지금도 일어났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일어 날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이름으로 인생의 무거운 문제가 청산되길 축복합니다.


2) 오직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12절) 


앉은뱅이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몰려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왜 나를 주목하느냐? 내가 한 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여러분이 봉사를 하고, 충성을 많이 하고, 헌신을 많이 했을지라도 주님이 마음에 감동주신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이 더 크게 역사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베드로처럼 주님의 이름을 높이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가 자원입니다.


연합하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인생의 해답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꽉 붙잡으세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불구자의 운명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운명에 인생을 맡기지 않습니다. 


운명 철학원가서 내 운명을 고정화 시키지 마세요. 


그 사람의 팔자겠지, 운명이겠지 말하지 마세요.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군 줄 아세요? 


점쟁이한테 점 한번 보고, 예언자한테 예언기도 한번 받고, 운명 철학원에, 가서 한마디 듣고, 자기 일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성전 밖에서 구걸하며 운명이라 생각하면서 평생 살던 자가 인생이 고침 받고 성전 안으로 들어오게 만든 위대한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예수이름 안에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해답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문제를 던지세요.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일어납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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