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3장 7-11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출애굽기 33장 7-11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복음뉴스 0 2023.07.18 07:09

제목 : 하나님과의 교제_묵상1_영적 훈련(2)

본문: 출 33:7-11


우리 신앙인의 삶에 있어 인생의 성공과 실패, 즉 신앙생활의 승리와 패배는 과연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요? 돈, 권세, 명예, 지식? 아닙니다.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느냐? 없느냐? 즉 하나님과의 교제 여부로 결정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영생과 축복입니다. 평안과 안식, 만족과 기쁨 등을 누립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영멸과 저주입니다. 불안과 초조, 불만과 슬픔 등입니다. 우리 모두 늘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마귀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훼방하며 축복받지 못하게 합니다. 소란함이나 조급함, 혼잡함을 통해 훼방합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간구하는 우리 신앙인들은 재창조의 침묵 속이나 묵상의 깊은 세계 속으로 들어 가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회막(오엘 모에드, ohel moed; The Tent of Meeting (정관사가 있는 대문자)은 회집의 장소로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는 장막을 가리킵니다. 성막의 또다른 명칭이었습니다. (출 29:42, 44기타). 성막은 하나님께서 임재를 보여주시기 위한 거룩한 처소였습니다(25:8). 성막 안의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안치되었고, 그 증거판 위에 하나님이 거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시은좌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 성막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사이에 거하신다는  표상(表象)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등장하는 회막은(tent of meeting 소문자)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지시하신 성막(tabernacle, mishkan) (출 25:1-31:18)이 아닙니다. 금송아지 숭배사건 이후 성막을 완성하기까지 모세가 임시로 사용한  장막(tent, ohel)입니다. 성막, 곧 정식 회막은 출애굽한지 11개월 15일만인 출애굽 2년 정월 초하루에 세워졌습니다 (출 40:17, 참조 35-40장).


그런데 이 임시회막에서 모세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고, 하나님과 대면하여 교제하며 하나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후 모세는 진으로 돌아 오곤 했으나, 수종자 여호수아는 이 임시회막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즉 주님의 임재 속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는 말입니다.


본문은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이 어떻게 해야 모세와 여호수아처럼 하나님 앞으로 나아 가고, 함께 교제하며, 대면하여 말씀을 들을 수 있는지, 즉 하나님과 어떻게 할 때 함께 친밀히 교제할 수 있는지를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하나님과의 교제 훈련” 중 묵상 훈련의 첫 번째 단계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go to the presence of God

본문 7절 후반 “...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본문 8절 전반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


모세와 여호수아는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 중 하나님을 앙모하는 자는 진 바깥에 있는 회막으로 나아갔습니다. 진 안의 장막에 머무는 자들은 자기 장막문에 서서라도 모세가 회막문에 들어가기까지 바라 보았습니다.

본문 8절 “...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우리 신앙인들도 하나님과 함께 하며 대면하여 교제하며 말씀을 들으려면 가만히 있으면 아니 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로 나아 가야 합니다. 때문에 주일예배는 물론 교회의 모든 공예배와 모임에 참석함은 매우 바람직합니다. 이유는 두세 사람이 예수님 이름으로 모일 때, 그 자리에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부득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모임에 참석치 못할 지라도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까지 자기 장막문에 서서 바라보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적어도 교회모임들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루 24시간 교회 모임에 모여 생활하지는 않지요? 대부분의 시간을 개인적인 활동에 많이 할애하지요? 그렇다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할 수는 없지요? 때문에 공적 모임으로 함께 모이지 않는, 개인적인 일상에서 활용할 좋은 신앙적 도구가 있습니다.

바로 “묵상”(meditation)이란 신앙활동입니다. (“묵상”을 뜻하는 두가지 히브리어 (하가(시 1:2), 쑤아흐(창 24:63))는 약 58회 사용되었습니다).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듣는 신앙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거나 하나님의 법을 반추함 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묵상이 일상 생활 가운데 중요한 이유는 묵상을 통해 깊이 있게 삶을 성찰하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명상과 묵상은 근본적인 차이가 많습니다. 동양의 명상Eastern meditation은 마음을 비우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묵상Christian meditation은 마음을 채우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전혀 다릅니다. 일반 명상은 세상에서 떨어짐을 detachment 목표로 합니다. 반면에 신앙적 묵상은 초연도 필요하나 그를 넘어 접착으로 attachment 나아갑니다.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하나님께 드리는 내적 완전함으로 이끕니다. 


이삭은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했습니다 (창 24:63). 시편기자들은 노래했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2).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떳나이다” (119:148). 


예수님은 그 바쁘고 분주한 사역 중에도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는 습관을 가지셨습니다 (마 14:13). 한적한 곳에 가셔서 그는 성부 하나님과 만나고 음성에 귀기울이시며 대화하며 교제하셨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도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능동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신앙적 묵상을 위해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시작하며 준비해야 할까요?

먼저 적절한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하루하루의 일정 가운데 “거룩한 여가”를 가져야 합니다. 이 거룩한 시간을 통해 우리는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며, 평화로울 수 있는 능력, 쉬면서 삶을 즐기는 능력, 자신의 페이스를 조절하는 능력 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에는 잠자고 일어난 새벽이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예수님도 습관적으로 새벽 시간을 활용하셨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 1:35).


다음에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조용한 장소를 찾아야 합니다. TV나 인터넷, 핸드폰이 없어야 합니다 (*핸드폰 금식). 주님과 깊이 교통할 수 있는 은밀한 장소를 고르십시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6). 


그리고 몸과 마음과 감정과 심령을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하고 주위를 산만케 하지 않는 자세를 가지십시오. 우리 모두 일상 생활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축복을 누리도록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먼저 나아가십시오. 그를 위해 신앙적 묵상을 위한 거룩한 시간과 장소, 태도를 마련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새롭게 시작하십시다. 시작은 예고편과 같습니다. 시작은 씨앗처럼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묵상을 준비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임재하시고 교제하시려 준비하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실 말씀을 마련하실 것입니다. 결국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의 삶 현장 가운데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기대하며 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을 새롭게 시작해 보시길 다시금 축원합니다.


“Something good is about to happen!” 좋은 일들이 곧 일어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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