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잠15:16-22
제 목 :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의 모델.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 보다 나으니라.(잠15:16-17) Better is little with the fear of the LORD than great treasure and trouble therewith. Better is a ginner of herbs where love is, than treasure and trouble therewith.(Pro 15:16-17)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먼저 아담을 만드시고, 하와를 만든 것이 가정공동체 시작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행복해 질수만 있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가정 안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정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육체와 정신에 안식이 되고, 행복의 뿌리가 됩니다.
가정이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사는 곳입니다.
부부가 함께, 부모와 자식이 함께, 형제가 더불어 행복을 누리는 곳이 가정입니다.
가정은 하나의 공동체임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작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찾으려고 거리를 나섰답니다.
무엇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가를 생각하다가
(1) 전쟁터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을 그려 보았습니다.
(2) 또 두 젊은이가 결혼하는 장면을 그려 보았지만 마음에 흡족하지가 않았습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가 정성껏 음식을 마련해 놓고 자녀들과 식탁에 마주 않아 집을 떠나 있는 자기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답니다.
이 화가는 그 모습을 그렸고,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 가정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내 가정에!
하나의 공동체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 안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 가정은 굉장히 행복할 것이다. 라고 부러워합니다.
저 사람하고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육체와 정신에 안식이 되고, 행복의 뿌리가 됩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머리가 둘이고, 몸이 하나인 기형아를 데리고 랍비를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이 아이가 한 사람인가요? 두 사람인가요?
랍비가 하는 말이 한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 보세요.
이쪽머리에 부었는데 다른 쪽은 반응이 없다면 두 사람이고, 이쪽에 부었는데 다른 쪽도 뜨거워서 고통을 하면 그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정(家政) 이란 함께 모여 행복을 만드는 공동체입니다.
아픔과 괴로움도 같이 나누고, 기쁨과 즐거움도 함께 나누는 곳입니다.
교회도 가정과 같은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도들을 영안의 가족이라고 부릅니다.
가족이라는 말 자체가 사랑 공동체입니다.
사랑으로 이뤄진 공동체가 가정입니다.
더불어 연결고리가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기 고집만 주장하거나, 권리만 주장하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가정의 모델을 소개한다면, 구약은 노아의 가정입니다.
노아는 120년 방주를 지으면서도 아들들 뿐 아니라, 자부들까지 변함없이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창9:18-19)
노아의 가정은 믿음의 가정입니다. 의로운 가정입니다.
홍수 때 유일하게 구원받은 가정입니다.
또 하나는, 신약은 고넬료의 가정을 꼽고 싶습니다.(행10:1-8)
고넬료는 백부장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중대장 정도의 계급이면, 넉넉함 보다 평범한 가정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에 나올 정도로 모범적인 가정입니다.
(1) 온 식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었습니다.
(2) 이웃을 구제하는 가정입니다.
(3) 하나님과 깊은 기도의 교제가 있는 가정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두 가정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의 모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치유 상담원에서 발표한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십계명 중에 몇 가지를 보면,
1) 가족을 변화시키는 힘은, 칭찬과 감동입니다.
2) 잔소리는 배우자나 자녀를 바꾸지 못합니다.
3) 가족의 결정에 대해 나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5) ‘엄마도 아빠도 너만큼 못 했어’ 라며 자녀들과 눈높이를 맞추어야 합니다.
6) ‘사랑해요, 고마워요’ 라고 먼저 표현하면 가족이 행복해 진답니다.
이것을 하나로 요약하면 서로의 배려와 사랑입니다.
솔로몬은 마른 떡 한 조각만 있어도 화목한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 보다 낫다고 했습니다.(잠17:1)
제육이란 진수성찬이란 말입니다.
마른 떡 한 조각을 먹으면서도 웃음과 즐거움이 있는 가정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으르렁거리면서 먹는 것 보다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이게 잠언의 지혜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되기를 축복합니다.
솔로몬은 잠언에 행복한 가정의 본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 이라고 했습니다.(16절)
1) 경외란 말씀이 45회나 나옵니다.
경외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비록 소유가 넉넉지 못해도 행복한 가정이 있는가 하면, 많은 소유를 가지고도 싸늘한 냉장고 속처럼 갈등으로 뒤엉킨 가정이 있습니다.
김형석 교수는 행복한 가정은, 글 읽는 소리, 일하는 소리, 웃음소리가 들리는 가정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해서 성도의 가정에는 찬송과 기도소리가 들려야 행복한 가정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2) 행복의 출발점은 믿음입니다.
믿음을 떠난 행복은 모래위에 지은 집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믿음처럼 귀한 게 없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며 정신적 존재이기에, 육신의 소욕만으로는 만족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만족과 평안이 오고, 진정한 마음에 안식이 오고 행복이 옵니다.
그래서 하나님 잘 믿는 것이 행복의 기초가 됩니다.
자녀들의 가슴에 믿음을 심어주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공부를 잘 시켜 주고, 재산을 물려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믿음위에, 기초를 든든히 세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기초가 든든해야 무너지지 않습니다.
마7;24-27절에 두 건축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두 사람이 집을 짓는데 한 사람은 기초를 반석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또한 사람은 기초를 모래위에 세웠습니다.
건축이 다 완성된 겉모습만 보면 똑같은 집입니다.
오히려 반석을 다듬어 세운집이 시간도 경비도 더 들었을 것입니다.
평안할 때는 모릅니다.
그러나 비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던 날,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기초를 반석위에 둔 집은 창수가 나고 비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았다.(마7:25)
기초가 반석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기초를 모래위에 세운 집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습니다.(마7:27)
문제는 기초에 있습니다.
기초가 반석이냐? 모래위에 있느냐?
비바람이나 창수가 문제가 아닙니다.
비바람과 홍수는 언제라도 불어오고,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기초가 튼튼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유1:20절에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자기를 건축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기초는 믿음입니다.
가정도 믿음 위에 서야 합니다.
성경 속에 훌륭한 인물들이, 믿음으로 자란 자녀들입니다.
모세나 사무엘이나 다니엘이나 디모데 같은 훌륭한 인격과 지도력이, 모두 믿음위에 기초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위에 세워진 여러분의 가정이 축복의 통로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2.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라고 했습니다.(17절)
1) 가정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사람은 의식주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빵으로만 살 수 없고 옷 잘 입고 명품 걸쳤다고 행복한 게 아닙니다.
속이 공허한데, 겉모습만 화려하다고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정신과 영혼과 인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유와 평안과, 사랑을 느낄 때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자녀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탈선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지식수준이 낮아서 빗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탈선하는 가정을 보세요.
부요한 집안이 많습니다.
부모가 지식수준이 높은데 자녀가 더 빗나가 있습니다.
가정 속에 보이지 않는 따뜻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패전하고 나서 미군들이 전쟁고아들에게 먹을 걸 제공해 주었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하나씩 죽어갔습니다.
원인을 조사해 보니까 그들에게 비타민이나 영양소가 부족한 게 아니라, 사랑의 결핍이었답니다.
그들에게 따뜻하게 품어줄 부모의 사랑이 없었습니다.
사랑에 굶주리고,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아이들이 죽어 가더랍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정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함께 사는 공동체 속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부부가 더불어, 부모와 자식이 더불어, 형제가 더불어 즐거움이 있어야 됩니다.
함께 모여 행복과 고통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가 가정입니다.
교회도 가정 같은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도들을 영안의 가족이라고 부릅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기쁨도 슬픔도 함께하며, 더불어 하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2) 솔로몬은 ‘서로 사랑하라’ 고 했습니다.(17절)
‘서로’ 라는 말씀을 주목하세요.
서로 양보와, 이해와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고집만 주장하거나, 권리만 주장하면 더불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한 쪽에선 사랑하는데, 한쪽에선 무관심 한다든지 짐이 된다면 행복한 관계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특히 서로 오고가는 사랑의 대화 속에서 이뤄집니다.
지혜로운 말 한마디가 행복을 만듭니다.
가정에서도 말 한마디가 천국을 만들 수도 있고, 지옥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3. 그러면서 행복을 막는 장애물 입니다. (18-22절)
행복을 파괴하는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 있습니다.
1) 분노입니다.(18)
분노는 행복을 파괴시킵니다.
아담의 가정은 자식들이 화목하지 못하고, 결국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결국 가인도 행복하지 못하고, 일생을 엉겅퀴를 헤치면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창4:11-12)
매일 보도되는 끔찍한 사고들의 대부분이 분노를 절제하지 못해서 발생합니다.
특히 분노는 건강, 신앙, 인격에 치명적인 장애물이요. 무서운 독입니다.
그래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엡4:26-27)
(2) 또 하나의 행복을 막는 장애물은 게으름이라고 했습니다.(19절)
성경은 게으름을 죄악이라고 했습니다.(잠26:13-16)
부지런하고 근면하게 살아야 합니다.
게으른 자는 땀을 흘리지 않고 쉽게 얻으려는 불로소득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불로소득은 축복이 아닙니다.
학생은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일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롬12:11)
신앙생활도 게으르면 나태해집니다. (잠6:9-11)
가정도 게으르면 빈궁이 강도처럼 밀려온다고 했습니다. (잠24:33-34)
땀 흘린 대가를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3) 또한 가정관계가 뒤틀리게 하는 지혜 없음입니다.(20절)
기독교는 효의 종교입니다. (신5:16)
유교는 죽어서 제사를 잘 지내는 것으로 효를 강조합니다.
그런데 절을 천만번하고 묘를 잘 썼다고 효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효는 살아 계실 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연세가 들면 사사로운 말에도 외로워지고 돌아서서 눈물을 짓습니다.
몸도 마음도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작은 관심에도 기쁨을 갖는가 하면, 또 작은 말에도 노여워하기도 잘합니다.
잡지에서 본 기사인데 늙으신 어른들이 제일 좋아하고 싫어하는 말은
(1) 부모가 가장 상처받는 것은, ‘말이 안 통해’ 라고 무시해 버리는 말이랍니다.
(2) 반대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3) 제일 듣고 싶은 말은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말에 가장 행복을 느낀답니다.
그런데 요즈음 노인 학대하는 가정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답니다.
요즘 하루에 자살하는 노인이 평균 열세명이라고 합니다.
목매어 죽고, 물에 들어가서 죽고, 약을 먹고 인생을 마감해 버립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모를 귀찮은 존재로 여깁니다.
이것은 불행한 사회입니다.
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소설 중에 ‘황혼의 반란’ 이란 가슴 저린 글이 있습니다.
레스토랑에는 70세 이상 노인 출입금지 팻말을 걸어 놓았습니다.
정치인들은 노인들 때문에 국가재정이 바닥난다고 반노인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일정 기간 소식이 끊어진 노인들은, 안락센터로 데리고 가서 강제로 죽음의 주사를 놓고 생을 마감 시킵니다.
한 노부부가 안락센터로 끌려가다가 도망을 했습니다.
뒤를 이어 많은 노인들이 탈출을 해 저항을 합니다.
그러나 노인들의 항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독감 바이러스 균을 투입시켜서 노인들을 무력화시켰습니다.
저항운동을 이끌었던 노인은 진압군에 잡혀서 안락사를 당하면서 죽게 됩니다.
노인은 죽음의 주사를 놓는 젊은이를 향해 이런 말을 남기고 죽습니다.
‘너도 언젠가는 나처럼 늙은이가 될 것이다, 네가 지금 젊다고 나에게 죽음의 주사를 놓고 있지만 너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될 것이다‘.
맞습니다.
이것은 황혼의 반란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기고 합니다.
너도 언젠가는 나처럼 늙은이가 될 것이다.
우리도 늙는 날이 올 것입니다.
노인문제는 언젠가 우리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됩니다.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저는 뉴욕실버미션 훈련원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가에 주께서 맡기신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우리가 더 잘 섬길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른이 없는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는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때 통일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원인은, 원로들의 말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대하10:8)
당시 다윗 솔로몬 때 있었던 원로들의 경험과 지혜를 버리고, 젊은 신하들의 잘못된 자문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때 보다 더 강압적인 정책을 펴고, 아버지는 가죽채찍을 썼으나, 나는 전갈채찍으로 쓰리라.(대하10:14)
결국 통일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대하10: )
교회에서도 어른들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장로님들, 권사님들의 말은 인생의 경륜과 영성에서 길어 올리는 마중물 같은 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라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로들의 말에 귀를 기울려야 합니다.
지금 나라의 위기도 이와 같다고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행복은 저절로 이뤄지는 산물이 아닙니다.
행복한 가정을 서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초를 둔 가정, 서로 양보와 배려가 있고 사랑이 있는 가정이 될 때 행복한 가정이 이뤄집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어린이 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
여러분의 가정이 그런 가정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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