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애1:1-2
제 목: 지금은 눈물이 필요한 때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령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리로다.(시126:5-6) They that sow in tears shall reap in joy. He that goeth forth and weepeth, bearing precious seed, shall doubtless come again with rejoicing, bringing his sheaves with him.(Psa 126:5-6)
하나님이 천사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을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맨 처음 천사는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의 반응이 별로...
두 번째 천사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 가지 다 흥미를 느끼지 못했답니다.
세 번째 천사는 ‘죄인들이 참회할 때, 흘린 눈물을 담은 그릇을 가지고 왔다.’ 고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보시고 흡족히 여기시며 ’네가 가장 귀한 것을 가지고 왔도다.‘ 라고 칭찬하셨답니다.(탈무드)
성경에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마11:17) 고 하셨습니다.
영적감각이 잠을 자면 눈물이 메말라집니다.
하나님 앞에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눈물을 화확적으로 분석해 보면 약한 소금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실이 담긴 눈물은 굳게 닫힌 천국문도, 돌같이 굳어진 사람의 마음도 녹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마스겔) 사람들이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시42:3)
눈물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슬픔의, 아픔의, 반가움의, 환희의, 참회의, 억울한, 승리의, 생리적인
모든 눈물은 다 나름대로 값진 눈물입니다.
이 눈물 가운데 가장 값진 눈물은 어떤 눈물입니까?
서양에서는 시집가는 딸에게 엄마가 진주(Pearl)를 주는 풍습이 있답니다.
아마도 딸이 시집살이 하다가 속상할 때, 조개 살 속에 모래알이 박힌 고통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잘 참고 견뎌내라는 뜻이랍니다.
진주는 조개 안에서 만들어 지는 보석입니다.
조개 몸속에 들어온 모래알은 조개 살 속에 박혀 고통을 줍니다.
그 때 조개는 진주층(nacre) 이라는 생명 즙을 짜내어 주변을 덮어 싸고 또 덮어 쌉니다.
그렇게 몇 달, 몇 년이 흐르면 바로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이런 크고 작은 모래알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시련(試鍊) 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런 시련이 당할 때, 내가 값진 진주를 품고 있구나, 내가 당하는 고통이 크면 클수록 내가 품고 있는 진주도 더 크고 값지겠구나! 라고 생각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흘리는 눈물이, 내일이면 아름다운 진주로 바뀔 것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126:5)
하나님의 사랑은 국경이 없지만, 우리는 국경선이 있습니다.
우리는 국가관이 확실해야 합니다.
지난 날 나라를 빼앗겼던 우리민족 수난의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36년 세월동안 나라를 빼앗겼을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일본을 용서는 하되, 그들의 만행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선조들은 성과 이름을 빼앗겼고, 언어와 정신까지 모두 짓밟혔습니다.
어린 소녀들은 정신대로 끌려가서 위안부가 되었습니다.
몸이 병들면 산채로 땅에 묻어버리고, 임신이 되어 아이를 낳으면
자루 속에 담아 죽였답니다.
일본은 이런 몹쓸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고 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생떼를 부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쓰라린 역사를 결코 잊지 말고 후대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 동족들끼리의 전쟁입니다.
우리민족은 8.15 해방의 기쁨이 사라지기도 전에, 동족끼리 6.25전쟁의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해방 후 70 여 년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의 위협 속에서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있습니다.
우리민족은 숱한 내전과 외세의 침공을 당한 고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런 전쟁의 폐허 속에서 가장 가난했던 대한민국이 세계경제 강국으로 성장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요, 선조들과, 국민들의 저력입니다.
우리는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내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해야 합니다.
개인의 성공도 가정의 행복도 기업의 발전도 나라가 없이 존재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국가관을 분명히 하고, 애국심이 더욱 필요한 때에 살고 있습니다.
애국심이란 자기가 속해있는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자기가 사는 환경,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땅에 대한 애착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파괴하려는 외부세력으로부터 이 땅을 지켜내려고 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지금 북한은 핵 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면서 국민을 불안한 사회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북한 핵에 볼모로 잡혀서 처절하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중국은 한국에 공개적으로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1시간이면 파괴시킬 수 있다고 하면서, 위협하는 오만함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옛말에 짖고 있는 개는 물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국력이 앞서 있다면 어디 이런 소리를 함부로 하겠습니까?
국력을 키우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힘이 없으면 당하는 것입니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는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우리를 타격 목표라고 하는데도, 테러 방지법도 통과시키지 못하는 국회를 보면서 국민들은 너무 가슴이 답답합니다.
안보를 위해서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선거철을 앞두고 국민을 불안정국으로 이끌기 위한 수단입니다.
일본이나 미국은 자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는 똘똘 뭉쳐 하나가 되어 대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북한은 남남갈등을 일으키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어제의 형제가 원수가 되고, 원수도 형제가 됩니다.
쿠바하고 대한민국이 수교를 맺었습니다.(2024,2,14)
쿠바는 북한의 가장 우호적인 공산국가였습니다.
안보는 혈맹만 의지해도 안되고, 정치에 이용물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안보는 국민의 생존 문제입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국민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비결입니다.
모든 국민에게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더해야 합니다.
1. 나라를 잃은 슬픈 모습을 보세요.
1) 조국을 잃은 예레미야의 눈물입니다. (애가1:1-2절)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1절)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망하고 나니, 그토록 많았던 친구도 떠나가고
이웃도 떠나고, 누구도 돌아보는 자가 없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밤마다 슬피 울며 눈물이 뺨에 흐른다고 했습니다. (2절)
더 비참한 것은 이렇게 슬퍼하고 있지만 누구도 위로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였다고, 슬피 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힘없는 민족의 설움입니다.
예레미야의 비극적 눈물은 나라를 잃은 눈물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눈물이 많이 나옵니다.
느헤미야의 눈물도 그러했습니다.
큰 환란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은 불탔다. 하는지라(느1:3 하)
느혜미야는 내가 이 말을 듣고 노구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주저앉아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여러 날을 슬피 울었다. 고 했습니다. (느1:4)
애국자들은 나라의 멸망을 보고, 들으며 탄식했습니다.
예수님도 벳바게 언덕에서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질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2) 지금 눈물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말 못하는 어린아이의 가장 큰 무기는 눈물입니다.
울면 다 해결됩니다.
배고파도 울고, 아파도 울고, 괴로워도 웁니다.
아이가 울면 엄마는 아이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울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눈물에 약하십니다.
그래서 눈물의 기도에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한나의 눈물의 기도는 사무엘을 주셨고, 다윗의 눈물의 기도에 그를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고국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4월 10일 총선이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크리스챤이라면 교회영성을 위해서 울어야 합니다.
코로나 이후의 교회들이 병든 것, 누굴 탓하겠습니까?
우리 가족의 구원문제를 놓고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눈물은 진실을 말합니다.
눈물이 있는 곳에 용서가 있고, 화해가 있습니다.
진실한 감정이 눈물로 나타납니다.
슬플 때도 울고, 그리울 때도 울고, 기쁠 때도 웁니다.
눈물은 거룩한 전염을 시킵니다.
눈물은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감동을 전합니다.
눈물자체가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눈물이 메마를 때, 삶이 삭막해 집니다.
제 3공화국 초기 박정희 대통령 때, 많은 젊은이들이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송출되었습니다.
정부는 이들의 월급을 담보로 독일에서 차관을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독일정부에서 우리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타고 갈 특별기조차 없어서, 독일정부가 제공하는 비행기를 빌려 타고 가야만 했습니다. (1964년12월6일)
대통령은 먼저 광산촌을 방문했습니다.
고국의 대통령이 오셨다는 소식에 일하던 광부들이 석탄가루를 쓴 채 모여 들었답니다.
그들 앞에서 연설을 하던 대통령은 ‘조국이 못 살고 가난하여 여러분이 고생을 한다.’ 라는 말을 하다가 슬픔에 목이 메여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울었습니다.
대통령이 울자 함께 있던 광부들도 서로를 끌어안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대통령은 계속눈물을 흘렸답니다.
옆에 있던 독일 뤼브게 대통령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며 ‘울지 마시오. 당신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시오’ 라며 위로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지도자의 진실한 눈물은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시켰고, 가장 짧은 시간에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현대에는 IQ가 높은 지성적인 사람보다, EQ가 높은 감성적인 사람이 성공한다고 합니다.
두뇌는 명석한데 인간미가 말라버린 사람보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 감성이 풍성한 사람이 인간관계를 잘 맺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를 향해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울지 않는다. 고 탄식했습니다. (마11:17)
감성이 메마르고 마비되었다는 지적입니다.
지금은 눈물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2. 우리는 무엇을 위해 울어야 합니까?(눅23:27-28)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울면서 따르던 여인들에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네 자녀를 위해 울라.’ (눅23:28)
1) 주님은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울라고 했습니다.(28절)
가장 큰 은혜는 자신을 보는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의 수직적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주님도 너와 네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향한 눈물이 필요합니다.
은혜는 먼저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거룩한 빛 앞에서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고, 자기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울었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부정한 것을 제하고 사명을 부여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회개를 통한 자신의 돌이킴입니다.
회개는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영혼을 맑게 합니다.
영혼이 맑아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깨달았을 때, 침상이 젖도록 회개하면서 울었습니다. (시6:6-8)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6:6)
내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 생각하니, 내 뼈가 떨리고 내 영혼도 떨린다고 했습니다.(시6:2-3)
하나님은 이렇게 철저히 회개하는 다윗의 인생 후반기를 더 귀하게 축복하셨습니다.
성군이 되어 성경의 가장 중심에 그를 세웠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이라 하셨습니다(마1:1)
우리는 자신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2) 주님은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했습니다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 (눅23:28 하)
우리의 자녀들은 다음 세대의 꿈나무들입니다.
이들이 건강한 정신과 가치관을 가지고 잘 자라야 내일에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세대보다 더 나은 세대로 자녀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으로만 자녀교육을 해결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믿음의 줄을 놓치지 않도록 키워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떠나면 죽는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노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 아이에게도 예수가 그리스도라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는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의 복음을 체험해야 세상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부모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뱃의 기도로, 히브리민족을 해방시켰습니다.
탕자 어거스틴이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로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부모의 진실한 기도가 있으면 반드시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
3. 울면 해결됩니다.
히스기야는 병들어 살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홀로 남아 통곡했습니다.
(왕하20:2-3)
왕의 체면도 내려놓고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이 통곡의 눈물로 변했습니다.
이사야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히스기야의 진실한 기도를 들으셨고, 네 눈물을 보시고 하나님은 감동하셨습니다.(왕하20:5)
‘히스기야에게 15년의 생명을 연장해 준다고 알려주라.’고 했습니다.(왕하20:6)
하나님을 떠나 방탕하던 한 청년이 눈병으로 심히 고통을 당하다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청년의 눈을 진찰한 의사는, 긴장된 표정으로 눈에 살인적인 독이 감염되었으므로 두 눈을 뽑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므로 내일 즉시 두 눈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절망 속에 처한 청년은 하나님을 떠난 자신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밤 지난날을 회개하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참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밤새도록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음날 청년은 두 눈을 뽑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는데, 진찰을 하던 의사가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토록 심하게 번졌던 독균이 깨끗이 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의 눈물을 통해서 영과 육의 질병을 깨끗하게 치료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울어야 할 대상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1) 주님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가까이 오사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우셨다.(눅19:41))
주님은 머지않아 멸망할 예루살렘의 미래를 아셨습니다.
주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난 예루살렘성이 돌 하나 남지 않고 황폐하게 무너질 것을 생각하시면서 안타깝게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마24:2, 막13:2)
지금도 주님은 타락한 이 시대를 보시고 울고 계실 것만 같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쓰러져 가고, 교회 문이 닫혀져 가는 모습을 보며 내 이름을 둘만한 교회를 찾고 계십니다.(왕상8:29,대하8:16)
또한, 나사로의 죽음을 보시고 우셨습니다.(요11:35)
한 인간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눈물입니다.
영혼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도 영혼을 사랑해야 합니다.
안 믿는 식구가 집안에 있을 때, 견딜 수 없이 괴로워야 합니다.
천국에 가서 부모 자식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눅16:19-31)
때로는 금식도 하며, 철야도 하며,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영혼을 사랑하시는 눈물입니다.
또한,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셨습니다.(마27:46)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을 부르면서 죄의 댓가를 지불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주님도 우셨습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 수 있습니다.
죄는 세 가지 관계를 파괴시킵니다.
하나님과 은혜관계를 파괴시킵니다.
죄를 짓고 나면 마음에 안식이 없습니다.
죄는 기도의 응답을 파괴합니다.(사59:1-2)
죄는 축복관계를 파괴합니다.(창3:1)
주님은 하나님과 가로막힌 죄 값을 치루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우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는 자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사순절은 주님의 십자가를 향해 다가가는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3.1절을 지났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민족을 가슴에 안고 자기 생명과 바꾸겠다고 고백했던 모세와 에스더와 바울과 같은 애국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을 바라보고 흘리는 공허한 눈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울면 해결됩니다.
울어야 하는데 눈물이 말라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시대에 진실한 눈물이 필요합니다.
특히 자신을 돌아보고 흘리는 회개의 눈물, 또한 다음세대 자녀들을 위해 밑거름이 되어야할 기도의 눈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내나라 내 조국을 가슴에 품고 흘리던 예레미야나 느헤미야와 같은 눈물이 이 시대에 필요합니다.
이런 눈물 후에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고, 기도의 응답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는 길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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