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딤돌아카데미(대표 양춘길 목사)가 주최한 '2024 이민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세미나'가 8월 15일(목) 오후 6시 50분에 필그림선교교회에서 열렸다.
윤명호 목사(뉴저지동산교회)와 양춘길 목사(필그림선교교회)가 강의를 맡았다. 윤명호 목사는 '한인 이민 교회 상황과 위기'라는 주제로, 양춘길 목사는 '창의적 목회의 실천 방안'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양춘길 목사는 '창의적 목회의 실천 방안'이라는 주제의 강의에서 1) 한인교회의 역할과 기능에 변화가 일어났다. 초기 이민교회가 담당했던 정서적, 사회적, 교육적 기능의 상당 부분을 다른 단체와 조직들이 대체하고 있다. 이민교회는 이제 본연의 종교적, 영적 기능에 더욱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2) 이민자와 유학생의 감소로 1세 한인 인구가 격감하고 있다. 1세 교회의 고령화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는 한인교회로서의 존재 목적이 되기도 한다. 실버 세대를 위한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사역 개발과 함께 다민족을 품는 교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3) 신학생 및 교육전도사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일학교 및 Youth Group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 평신도 사역의 활성화와 함께 평신도 사역자 양성이 절실하다. 4) 포스트 모더니즘 및 다원주의의 영향으로 Anti Church라는 사회적 정서가 강해졌다. 절대적 진리 및 가치관이 상실되었고, 교회의 영향력이 무시되고 있고, 영적 권위가 상실되었다. 성경적, 절대적 진리를 고수하고, 말씀과 기도 중심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고, 선교적 교회의 본질과 교회의 목적이 회복되어야 하며, 진정한 영적 권위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강의했다.
다음은 양춘길 목사의 강의 내용이다.
창의적 목회의 실천 방안 - 강의 양춘길 목사
이런 이슈는 전 이민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이에요. 그런데 지금 교회 장로님들이나 저랑 비슷한 목회자들은 이민 교회의 성장기를 경험한 사람들이예요. 그러니까 우리 생각에는 우리 이민 교회가 잘 성장했는데 왜 지금은 성장이 안되는가 이런 생각이 들기가 쉽습니다.
제가 캘리포니아에 알고 있는 교회들, 동부지역 시카고에 있는 교회에 문제가 생기고 목사님이 사임하게 되고, 이런 이야기를 들은 가운데 물론 목회자의 개인적인 문제인 경우도 없지않아 있지만, 교회가 부흥이 안됩니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교회가 부흥이 안되는데는 재정이 과거와 같이 넉넉치 않습니다. 목회자에게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이런 얘기들이 시작이 되면서 일종의 서로 책임 추궁이 이루어지다가 목회자가 사임하고, 사임하는 가운데 지지하던 사람들은 같이 나가서 새로 시작을 하고, 그래서 우리가 현주소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과거의 성장기를 지나온 기억 이것만 가지고 있으면 사실은 앞으로 우리가 헤어나지를 못하는 거죠. 장로님들이 오셔서 참 감사한데 앞으로 목회자와 현 교회 리더들이 같이 해결해 나가야 될 문제라 생각이 들구요 . 또 하나는 여기에 책임 추궁을 한다면 1.5세들에게 책임이 크다, 왜냐하면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우리보다 이민 역사가 먼저 시작된 Chinese, Japanese 리더들 전도사들이 우리 한국 교회를 참 부러워 했어요. 왜 부러워했냐 하면 1.5세 제너레이션이 있다는 것에 1세와 2세의 교량 역활을 해 줄 수 있는 1.5세가 있기 때문에 한국 교회의 미래는 매우 밝지 않느냐, 그들에게 SNS 그런 컨셉트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1.5세의 해야 될 역활이 굉장이 크고, 브릿지 역활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2세들을 많이 잃어버린 것에는 어쩌면 1.5세들의 책임이 크지 않나? 제가 고등학교때 미국에 와서 1.5세로 살면서 제 자신을 돌아본 거죠. 여기 '이미준'이란 거 있죠? 이건 사실 20년 전에 이미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민 교회의 미래 준비라는 그때 미 전역에 목회를 잘하는 분들이 모여서 이민 교회의 미래를 같이 준비하자. 그때 절반 정도가 1.5세였습니다. 그때 '이미준'을 형성하고 같이 모였던 사람들 중에 절반 이상이 한국으로 나갔습니다. 1.5세들에게 있는 장점이 있으면서 바닥에 약점이 있다면 기회주의적인 선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게 꼭 나쁜 것이 아니라 1세 쪽에 더 기회가 많이 있고, 성장에 포텐셜이 크다, 그러면 1세 쪽으로 가서 KM쪽으로 할 수 있어요. 근데 상황이 2세 쪽으로 더 유리하면 2세 쪽으로 가서 붙을 수 있어요. 중간에서 교량 역활을 하는 것보다 더 쉽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명이 있었는데 거기에 개인적인 생각을 먼저 하고 시대적이나 역사적인 이민 역사를 볼 때 책임감을 잃어버리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1903년도 하와이 이민으로 시작되었잖아요? 그러다가 한인 교회가 급속도로 늘어납니다. 바로 그 시점에 1973년도에 제가 미국에 왔습니다. 1973년도부터 이민 교회가 막 성장하는 그 시기를 지나서 그 성장이 완화되다가 2013년이후로 하락 곡선을 이루고 있고, 지금 게속 하락이 되고 있는 성장기와 정체기, 하락기 쇠퇴기까지 같이 경험을 하고 있다고 보구요. 이런 총체적인 경험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여럿 있다고 봅니다. 윤명호 목사님께서 마지막에 위기는 기회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기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은 한인 교회의 역활과 기능에 변화가 일어났죠. 전에는 커뮤니티센터 역활을 했습니다. 초기의 이민 교회는 정서적 사회적 교육적 기능의 상당 부분을 교회가 다 감당했습니다. 근데 이제는 사회적 기능이라던지 교육적 정서적 많은 기능들이 이민 동포 사회의 다른 단체들이 다하고 있습니다. 초기의 한국 학교는 교회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지역의 한국 학교들이 훨씬 더 사이즈도 크고 퀄리티도 높습니다. 꼭 교회에 나와야 할 이유도 없고 이 모든 것들이 전에는 교회 중심으로 움직였는데 이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러면 기회는 뭐냐? 이제는 본연의 교회의 목적인 영적 기능에 더욱 촛점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죠. 전에는 여러가지를 해주어야 하는 많은 기능을 담당했는데 이제는 사회에서 다른 단체나 조직들이 감당한다고 한다면 이제는 오히려 우리는 종교적이고 영적인 기능에 힘을 기울일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합니다. 만약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이민 교회가 했던 것들을 다 할려고 하게 되면 이제는 사회 다른 조직과 경쟁하는 대상이 돼버리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질문은 오늘날 이민자들이 많이 정착이 되었고 그들의 삶이 풍요로워졌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자들의 영적 필요는 뭐냐, 이걸 우리가 파악을 해나가야 하겠죠. 이것은 제가 볼 때에 위기 가운데에도 기회이고 교회의 본연의 목적에도 충실하게 촛점을 맞추고 감당할 수 있는 시기가 되겠다하는 것입니다.
두번 째의 위기가 1세 한인 인구의 격감입니다. 이민자와 유학생이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요즘에 꼭 이민자 유학생은 아니지만 또 다른 그룹이 줄어드는 우리 한인 인구를 받쳐주는 다른 그룹이 있는데 주재원들입니다. 디트로이트에 가서 세미나를 인도하는데 제가 들었던 것하고는 다른 현상이 보여지는 거에요.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이 하락세를 계속하면서 거기 한인들도 많이 떠나고 거긴 다른 쪽보다 고령화되고 있다고 들었는데 거기 가보니 젊은 가족들이 많은 거에요. 거기 계신 목사님 얘기를 들어보니 전기 자동자들이 나오면서 베터리 산업때문에 한국에서 처음에 주재원들이 많이 들어왔다는 거에요. 그래서 목회 의욕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나 대체적으로 1세 한인들이 격감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보인 문제는 1세들이 고령화 하고 차세대가 들어오지 않는 이 상황에서 우리에게 있는 심각한 문제로 더이상 우리가 존재해야 될 목적이 어디 있나? 한인 교회로서의 존재 목적이 흔들리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위기 가운데 우리가 또 하나의 기회라고 하면 고령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70대 이분들이 웬만한 사람들은 90세 100세 시대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이 실버 제너레이션은 무궁무진하게 나옵니다. 라이프스팬(lifespan)이 길어졌기 때문에 이제는 60대 70대도 청년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나오는 실버 세대들이 우리가 교회를 어떻게 목회를 할 것이냐, 사실 1세 2세 이런 이슈를 놓고 많은 이민 교회들은 우리의 미래는 2세입니다. 그래서 2세 목회를 어떻게 할 것이냐 여기에 아주 많은 관심이 생겼어요 . 1세들은 다른 걸 희생하면서도 2세들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해 왔어요. 그런데 오늘의 현실이 우리가 그만큼 2세를 지키지 못했다고 하면, 그것 때문에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거보다 어떻게 보면 더 많은 실버 세대가 나오고 있어요. 뉴저지 실버 선교회를 가면 평균 연령이 70을 넘죠. 그런데 평신도들이 다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선교에 참여하고 이런 걸로 볼 때, 이제는 이런 선교회의 창의적인 사역 계발이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경로 대학들을 많이 했어요. 요즘은 과거와 같이 경로라 그러면 다 싫어합니다. 실버들은 노인 취급하는 걸 싫어합니다. 그러니까 얼마든지 실버 제너레이션이 의욕을 가지고 자기의 존재 가치를 펴고 보람있게 느끼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수 있는 실버 목회의 일을 해주어야 합니다. 저는 최근 2-3년전부터 죄송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교회에서 찬양집회나 찬양 경배를 하게되면 전부 CCM 복음성가를 부릅니다. 찬송가 제너레이션인 우리 실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15분 20분 동안 따라 부르지도 못하면서 서있다가 앉아요. 그들의 마음에는 언제 앉아야 되나? 이건 어쩔수 없는 차이거든요. 찬송가 제너레이션은 찬송가를 불러야 은혜가 되는 거에요. 저도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그 리드를 제대로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찬양과 경배 앞세워서 하는 건 다 젊은 사람 중심이었어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늘 이민 교회가 오늘이 있기까지 희생한 사람들은 1세대들입니다. 우리가 감사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목회를 해야된다는 것, 그것이 주 목적이 아니라 이 제너레이션은 이제 무궁무진하게 나옵니다. 그러면 이 제너레이션들은 한동안 한국 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떠나서 갈 데가 없어요. 언어적 문화적 문제 때문에.
그렇다면 교회가 상황이 다 다르겠지만 우리가 젊은 사람이 없고 주일 학교가 없다는 것 때문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보다는, 우리의 미래는 실버 목회입니다. 그렇게 비젼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겁니다. 한가지 중요한 건 실버세대들의 전인적 필요들은 무엇인가, 건강의 문제 정서적인 문제 또 영적인 문제 거기 다 포함이 되는데 이 전인적 필요가 실버 제너리이션도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는 것이죠. 요즘에는 실버가 은퇴하고 나서도 내가 할 일이 무언가를 생각합니다. 전에는 할 만큼 했으니까 대우 받을 걸 생각 했을지 몰라도 요즘 실버들은 안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마치고 온 1.5세로서 지금 은퇴를 앞두고 있는 연령대라면 1.5세들이 실버들로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1세들과는 다른 실버입니다. 이 말은 뭐냐면 실버 제너레이션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needs가 바뀐다는 거에요. 이것을 염두에 두고 실버 세대들의 영적 필요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나가면, 또 한가지는 지금까지는 1세 실버들이 모든 관심이 한인 커뮤니티 안에 있다고만 생각했지만 저와 같은 1.5세들이 은퇴하고 나면 이들은 다릅니다. 이들이 지역사회나 타민족에게도 관심이 많아 얼마든지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변화하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동시에 위기를 말씀하시면서도 마지막에 주신 새로운 교회 디렉션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우리 한인 교회가 타민족에게 다가가야 된다는 거죠. 어차피 갑작스럽게 한인 인구의 절벽에 부딪히면서 하나님이 목적하신 한인 교회를 통해서 이 미국 교회들을 다시 회복시키고 아직도 열정과 또한 리소스가 있는 한인 교회들이 다민족을 품고 나갈 수 있는 교회의 역활을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인구 감소가 오히려 우리에게 빨리 부딪혀 온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계속해서 이민자가 들어왔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타민족에게 관심을 두지않고 한인 목회에만 치중하겠죠. 그래서 위기가 기회라고 생각이 듭니다.
세 번째 신학생및 교육전도사가 부족해서 주일학교가 운영이 어려워지고 유스그룹이 이제는 프로그램이 사라져가게 되고 이것이 현실적인 문제인데요. 그 동안에 한인 교회의 성장에 중요한 부분이었던 자녀교육중 학교 프로그램이 있어야 오는데, 운영이 어려워진 거에요. 이것은 얼마 전까지는 그래도 큰 교회에서는 여전히 괜찮지 않냐 하는데 이제는 똑같이 마찬가지로 교육전도사 찾는 게 어려워졌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쩌면 5백년 전에 종교개혁을 했을 때에 많은 제사장들을 내놓으면서 평신도와 성직자 그룹 사이의 갭을 없애려고 했던 종교 개혁의 운동이 그때는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때가 오지 않았나, 그래서 교회내에서 평신도 사역을 활성화 시키고 평신도 사역자들을 양성해내는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초이스가 된거에요. 평신도로서 교육사, 신학교를 안다녔으니까 전도사로서는 혼돈이 일어나겠죠. 그러나 디딤돌아카데미 같은 데서 적절한 교육 훈련을 받고 교육 전도사 역활을 하는 교육사, 심방 전도사 역활을 하는 심방사 또 평신도 선교사 이런 역활들을 평신도들이 감당할 수 있도록 하게 된다면 그동안 매장되어 있었던 많은 평신도들이 은사와 또한 그 역활이 활성화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되면 개척 교회에서는 전도사 한사람 데려다가 교육부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예산을 투자했던 것이 오히려 그 예산의 적지않은 부분을 다른 교회 사역을 위해서 쓸 수 있는데, 평신도 교육전도사 분들은 어느정도 생활을 유지하면서 자기들이 일을 하면서 사역을 하기 때문에 사역 일을 예산을 잡아 주시면 되지 않겠느냐, 이미 그런 케이스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포스트 모더니즘 우리도 이민 교회지만 전세계적인 흐름속에우리가 있기 때문에 포스트 모더니즘과 다원주의의 영향이라고 보겠는데요. 무서운게 뭐냐면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에요. 모든것이 상대적이라는 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핵심이에요. 그러니까 절대적 진리도 없다. 왜 성경에 가르침이 절대적이고 성경적 가치관이 절대적이라고 하는가? 그런데 이런 흐름을 보게되면 마치 정반합의 원리와 같이 모든 것에 상대적이라고 같은 포스트 모더니즘에 끝자락이라고 보여지는데요.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젊은 세대들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젊은 세대들이 뭘 느끼기 시작했는가 하면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이 드는게 우리는 절대자와의 관계속에서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더라도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하게 되면 상당히 불안해집니다. 맨처음에 그것이 좋았을지는 몰라요. 왜냐하면 내가 중심이 되니까. 문제는 뭐냐하면 자기 자신이 변한다는 겁니다. 자기 자신이 믿을 수 없다는 거에요.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와 다르다는 거에요. 이러면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제너레이션들이 교회로 돌아오지 않는 거에요. 뭔가 절대적인 것을 붙잡아야 되니까, 이 공허함을 채워야 하니까. 이 공허함이란 것은 영적인 것이 더 큰 것이죠. 이 세대가 교회로 돌아올 때 찾는 교회들, 그들이 선택하는 교회들이 어떤 교회들이냐? 미국에서 나온 리서치 결과들은 보면 영적 교회를 찾는다는 거에요. 성경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그런 교회를 찾는다는 거에요. 지금까지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하나님의 말씀도 내가 취사 선택할 수 있는 이런 문화 속에서 살다 보니까 공허하고 불안해지는 세대가 절대적인 것을 찾는다는 거에요. 저는 이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해 보는가 하면 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흐름이 유럽에서 먼저 기치를 올렸고 싹 쓸어 북미쪽으로 넘어 갔어요. 서구 유럽 교회들은 너무나 일찍 포스트 모더니즘과 타협되지 않았나, 그래서 그 흐름의 끝자락에 들어오면서 공허함을 느껐던 그 세대들이 의외로 돌아가서 보니까 다를게 없는 거에요. 자기들이 원하는 절대적이고 영적인 부분을 채워주지 않는 겁니다. 근데 다행스럽게도 미국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채워주는 거에요.
그런 얘기 들어 보셨습니까? 포스트 모더니즘에 빠졌던 사람들이 동양 철학. 종교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것이 바로 이런 현상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는 절대적으로 성경 중심의 목회,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영적인 체험을 경험하는 교회들은 살아 남는다는 겁니다. 그뿐 아니라 재 활성화 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창조된 것이 영적인 것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죠. 절대자를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에요. 그래서 지금은 조금 어려울지 몰라도 이 시대를 잘 극복해 나가면 되는데, 중요한 질문은 우리는 어떻게 충실한 교회로 설 것인가, 수 많은 프로그램들이 일시적으로 atractive한 것을 사람들에게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오래 머물지는 않습니다. 오래 머물러서 신앙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기본에 충실한 교회로 설 것입니다. 쉽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변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교회 평가를 숫자에 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한 거에요. 이걸 극복해야 하는 것이죠.
다섯 번째는 사회적 정서가 Anti, 특별히 주재원들이 많이 들어온다고 하는 것인데, 과거에 주재원들이 이민 교회에 찾아왔던 주재원들하고는 다릅니다. 이미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한국에서 생활하다가 미국으로 들어온 주재원들이 많아요. 또 이민 교회 교인들조차도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생겨 났다고 봅니다. 그거와 더불어 교회의 영향력이 무시 당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영적 권위가 인정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건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되는 것이죠. 어쩌면 한국 교회의 최근에 급 성장을 이루었던 그 교회 성장 추세와 함께 우리들이 양적인 성장을 추구해온 가운데 교회 본질적인 사명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한국이나 미국이나 미셔널 처치 무브먼트가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선교적 교회 무브먼트는 교회의 본질과 목적을 회복하는 부분, 혹간에 이 선교적 교회 운동을 교회 양적 성장을 위한 또 하나의 새로운 수단으로 본 사람들이 있어요, 그것은 잘못 이해한 것이죠. 선교적 교회는 쉬운 말로 얘기하면 찾아가는 교회입니다. 그게 추릭한게 뭐냐면 찾아가서 우리 교회로 데려오는 전도 목적이 선교적인 부분이란 겁니다. 찾아가서 그 찾아간 곳에서 선교적 공동체가 형성이 되는 겁니다. 이게 세계 선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놀라운 부분입니다. 소그룹으로 유지되면서 또 소그룹을 찾아가서 소그룹이 형성이 되고 그것이 재생산이 되면서 확산되어 가는 겁니다. 선교적 운동을 통해서 우리가 잃어버린 교회 성장, 양적 성장을 회복하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 이해한 것이죠. 그게 목적이 아니죠. 그래서 우리의 갈등은 우리에게 어떻게 선교적 공동체를 세울 것인가, 찾아가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그 가운데에 그것이 직장이면 직장내에서 어떻게 믿는 자들의 공동체가 형성이 될 수 있는가, 지역 사회에 남아서 그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가, 그게 무브먼트로 연결되어 이어졌을 때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나가는 운동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목회자들, 교회 장로님들, 평신도 지도자들도 이걸 잘 이해한다면 교회 안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이제는 교회 밖을 향해서 왕성하게 퍼져 나가는 교회, 이게 선교적 교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그룹 운동이 열쇠예요. 밖으로 나가서 큰 공동체를 이루겠다 하는 것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답습하는 거에요.
그럼 왜 소그룹이 중요한가?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내가 설교자를 선택하는 거에요. 저도 어떤 때는 기분이 나빠요. 담임 목사님 설교만 들어도 되는 거지 뭘 또 다른 걸 들으려고 하나? 현실은 안 그렇습니다. 무슨 얘긴가 하면 설교나 교육이나 세미나, 컨퍼런스 이런 모든 것들도 다 온라인으로 참여합니다. 근데 온라인으로 채워지지 않는게 있어요. 진정한 코이노니아가 채워지지 않습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코이노니아, 성도의 교제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죠. 온라인에서도 가능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다른 말로 바꾸면 예수님 중심으로의 삶을 나누는 건데, 이게 사이즈가 커지면 어려워집니다. 조직화가 되어지고 같이 모였지만 한 군데 칠팔백명이 모이지만 한군데를 바라보는 거지 서로의 삶을 나눠지는 것은 아니죠. 포스트 모더니즘과 정보화 시대에 가장 맹점이 진정한 코이노니아를 주지 못합니다. 혼자서는 얼마든지 다 해낼 수있는 새로운 테크놀리지가 자꾸 발달이 되는데 스킨쉽이나 정서적인 만남이나, 더 깊이 들어가서 영적 만남이 이루어지는 코이노니아는 소급룹의 코이노니아를 통해서 이루어지죠 . 어떻게 보면 우리의 성도의 교제라는 것은 교회가 초창기부터 예루살렘 교회 때부터 중요하게 다루었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대형화 되면서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이건 이 시대에 이미 교회의 DNA에 담겨져 있는 코이노니아, 이 유전자가 이제는 역할을 감당해야 되는 것이죠. 다른 어디선가 채워지지 않는 그것이 선교적 공동체 소그룹 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정말로 선교적 소그룹 공동체로 활성화 시켜 나가면 다른 것들은 필요 없을 수 있단 거죠 . 모여서 에배를 드려야 하는데 교회 건축을 하고 확장할 필요가 없다, 그건 얼마든지 빌려서 쓸 수 있는 일이고 주중에는 선교적 공동체가 소그룹으로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지고 우리가 함께 모여서 에배를 드리고... 그렇다면 어떻게 선교적 공동체를 세워나갈 것인가? 또 어떻게 우리 교회를 전통적인 교회에서 선교적 교회로 전환 시킬 것인가? 우리의 갈등과 질문인 거죠.
저는 이 다섯 가지를 보면서 분명 위기인데 그 안에도 기회가 있다. 기회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알지어다 세상 만물을 새롭게 하는도다' 하는 이 말씀은 얼마나 하나님이 기억하시기를 원하실까? '이것을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지금도 세대는 위기 상황을 지나가고 있어도, 지금도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만물을 새롭게 하는 역사를 하고 게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경으로 돌아가서 찾을 수 밖에 없는거죠. 성경에 이미 다 담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원리를 회복하는 건데, 지금까지 우리가 너무나 많은 방법을 얘기해 왔는데, 위기적 상황에서 다시 성경적 원리로 돌아가서, 성경적 교회로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는 선교적 교회로 다시 거듭날 수 있다면, 그런 공동체를 개척해 나간다면, 오늘 우리가 만난 위기들은 기회가 됩니다.
녹취 정리 : Esther Kim 인턴 기자
[관련 사진 모음] https://photos.app.goo.gl/JTv1w5WZceVLx6e7A
[관련 동영상 모음] https://www.bogeumnews.com/gnu53/bbs/board.php?bo_table=movie&wr_id=166
[관련 뉴욕일보 기사] https://www.bogeumnews.com/gnu54/bbs/board.php?bo_table=nyilbo&wr_id=198
ⓒ 복음뉴스(BogEum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