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계시의 특성
성경을 연구하면서 의문나는 말씀들이 수두룩하다. 예를 들어 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만드셨는가, 아담과 하와가 분명 선악과를 따먹을 것이라는 것을 몰랐을까, 사단은 언제부터 있었는가, 왜 누구는 택한 백성이고 누구는 택하지 않은 백성인가.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유리하는 자가 되면 만나는 자가 자기를 죽일 거라 했는데 그러면 그때 아담과 하와 외에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단 말인가, 이런 의문에 대해 성경은 답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글에 신학을 공부하려면 하나님의 계시가 임해야 한다고 했다. 이 계시가 1차적으로 성경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특별계시이다. 특별한 계시임에도 의문투성이다.
계시란 하나님께서 감추어진 것을 들어내 보이셨다는 말이다.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해 자신을 들어내 보이신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목적으로 성경 계시를 통해 자신을 들어내 보이셨겠는가 의문이 든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들어 낸 목적이 무엇인가, 이 비밀이 성경 안에 들어 있다는 말인데 이것 안에는 계시의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보자.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먼저 말씀해 놓으시고, 계획해 놓으신 것을 추진하고 계신다. 어떻게 추진하고 계신가를 성경66권을 통해 보면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모세 5경이다. 모세 5경은 어떤 사건이나 사상에 관한 것보다 역사가 주를 이룬다.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전부 역사서이다. 역사적 사건을 핵심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을 추진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 일을 추진하면서 발생되는 것들은 우리가 요구하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전혀 우리 지식 밖의 사건을 보여주고 계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애굽에서의 10가지 재앙, 그 가운데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 홍해바다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놓으시고 바다를 가르시는 사건, 신약에 와서는 사도들이 감옥에 가고, 매를 맞고, 스데반은 돌로 맞아 죽고 마지막 사도바울은 순교를 당하고.. 사도행전의 결론은 그냥 진행형이다.
이런 성경의 사건들을 보면 우리가 요구하는 의문스러운 것을 답해 주는 것이나 인간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계시가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의 요구와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일을 보여주신 것이 계시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우리의 의문스러운 문제들을 답해 주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어떤 방법으로 일을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준 책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계시의 특성을 모르면 인간은 하나님을 오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의 전제 조건은 믿음을 요구한다. 믿음이 없이는 어떤 계시도 이해할 수 없고 어떤 문제도 해답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 믿음을 전제로 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뭘 요구하는 가를 알아야 한다. 무조건 믿어야 하는가, 그게 믿음인가?
믿음은 증명해 주지 않는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신학을 공부하면서 얻어내려는 속성은 증명이다. 증거가 있어야 믿을 것 아니냐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말씀했는데도 또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도 말씀했는데도 믿지 못한 제자들을 보라! 더 나아가 3번이나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도 제자들의 행동은 석연치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기껏 질문한다는 것이 “이스라엘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1:6)” 예수님의 다시 사심을 보고도 증명해 달라는 것 아닌가. 우리가 오해하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믿음이 증명되어야 진짜 믿음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처럼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믿음, 얼마나 믿음이 크길래 100세에 얻은 아들을 드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얼마나 믿음이 좋으면 사람들이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바울을 성밖으로 끌어내었는데 그 죽음의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성안으로 들어가는 그 믿음이 있어야 진짜 아닌가. 그런 믿음이 우리에게도 증명되어야 진짜 신자가 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눈을 열어 성경 계시를 보여주시고 하나님 뜻을 알게 하신 것은 내 믿음을 증명하여 하나님 영광을 들어내라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길래 100세에 얻은 아들을 드릴 수 있었을까,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보았기에 목숨을 내 걸고 미친 듯이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 내 목숨을 내 자식을 내 놓아도 아깝지 않은 그런 하나님의 일하심에 내가 쓰임 받고 있다는 것을 본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고 계시의 눈을 뜬사람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계시의 특성은 내가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 기도회를 하고, 금식까지 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려는 종교적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계시가 보여지면 보여 질수록 난 죽어지고 나를 통해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이 진정한 계시에 눈을 뜬 사람인 것이다.
성경 계시를 바르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 신학에 입문하는 진정한 첫걸음이라 보여진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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