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미래(future)에 대하여(1:21∼31)
(21절) “어찌하여(에이카=How) 신실하던 성읍이 창기가 되었는가!
정의가 충만하였고 공의1)가 그 가운데(=in her) 거하였는데,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셋째 단락은 “어찌하여”(How=어떻게)라는 감탄사로 시작하는데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창기라는 말을 통해서 이제 예루살렘은 신실성이 없어졌음을 밝힌다. 첫째 단락과 둘째 단락은 그 시작을 “들으라”(Hear)는 명령형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이전 죄악과 현재 상태를 나열하였다. 또한 그 마지막에는 alternative(순종이냐, 불순종이냐?)를 제시하였다(19, 20절). 이제 이사야 1장의 마지막 세 번째 단락은 이스라엘이 순종할 가능성이 전혀 없으므로 탄식함(“어떻게”)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신실하던 성읍’2)(faithful city)은 곧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그 거주자들이 한때는 율법(θ)의 가르침에 대하여 충성스럽고 신실하였던 것을 상징한다. 창기(harlot)3)라는 표현에 대하여 Slotki는 ‘타락의 특징적인 모습’, ‘저질러지고 허용되고 있는 사회적인 불평등’이라고 언급하지만,4) 우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를 표현하기 위하여 이미 호세아가 사용하고 있던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적인 용어를 떠올리게 된다.
(22절)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는 물에 섞였도다.”
(23절) “네 고관들(princes)은 패역하여5) 도적과 짝들이다(동류들이다).
그 모든 자들은6) 뇌물을 사랑하고 있고(분사 서술형) 보상을 뒤따르고 있다(추구한다,
분사 서술형). 아비가 없는 자에게(고아=the fatherless, 도치하여 목적어를 강조함)
그들은 정의를 베풀지 아니하고 과부의 송사(어려움)를 자기들 앞으로 가져오지 않는다.7)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는 물에 섞였다”(22절)는 말은 은유적인 표현으로써 정의와 공의(의리)가 사라지고 폭력의 소굴이 된 예루살렘의 상태를 진술하고 있다. 특히 백성의 고관들, 재판관들,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을 창기처럼 되었다고 말한다(23절, 그의 고관들은 모두가 뇌물과 대가를 추구하면서 사회적 약자인 고아와 과부의 어려움을 결코 헤아리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은의 ‘찌꺼기’(sîgîm)로 쓰인 히브리어의 어근은 ‘금속성으로부터 제거된 무엇’을 가리킨다. 곧 순수한 은을 제련하려다가 잘못하면 가짜 은(찌꺼기)이 되는데, 쉽게 말하면 산화납(은박지)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려고 하셨다(출 19:6).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역할을 하며 중보자의 역할(하나님과 열방 사이에서)을 하도록 하였는데, 그 방법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함(성결=순결)이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본질적인 순결은 지금 완전히 변질되어서 창기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21∼23절에서도 여전히 현재 상태를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바로 셋째 단락의 핵심적 포인트인 이스라엘의 미래에 관해서는 24∼31절에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24절) 그러므로 주, 곧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이르신다.
“아하(오호라) 내가 내 대적들에게 (복수하게 함으로써) 마음이 풀려지게 하겠다.8)
그리고 내가 스스로 내 원수들에게 복수하겠다.”
(25절) “그리고 내가 내 손을 네게 대항하여(against you) 돌려댈 것이다.9)
그리고 내가, 잿물로 하는 것처럼,10) 너의 찌꺼기를 제거(녹게)하겠다.
그리고 내가 너의 모든 혼잡물//불순물을 제거하겠다.”
(26절) “그리고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에 있던 것처럼, 회복시키겠다.
너의 모사들(조언하는 자들)을, 시작 때에 있던 것처럼, (회복시키겠다)
그런 후에야 너를 ‘의의 성읍’, ‘신실한 성읍’이라고 불리워지게 하겠다.”
24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혹은 보복하시겠다는 구체적인 의미는, 25∼26절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정화(정결케)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긍정적인 뜻이었다. 즉 찌꺼기를 온전히 제거하겠다, 혼합물을 제거하겠다(녹이겠다)는 뜻이다. 그런 후에는 온전한 은으로 회복시킨다는 뜻이다.
이사야 1장 둘째 단락 끝에서 이스라엘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19∼20절: 즐겨 순종하면 먹음, 곧 생명을, 거절하고 배반하면 칼에 삼키움)으로 끝이 났는데, 셋째 단락에 들어오자마자 곧장 확인된 이스라엘의 현재의 상태는 “에이카”(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가!)라고 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미래의 가능성이 실제적으로 구체화되어 드러날 때, 그 미래는 이스라엘의 미래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미래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는다. 곧 하나님만이 역사의 주체(주권자)시라는 것을 깨닫는다. 쉽게 말해서, 순종이나 불순종할 수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기대감이나 가능성은 오히려 절망으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11) 이제 그 절망으로 인하여 오히려 하나님 편에서 주권적으로 혹은 주도적으로 이스라엘의 미래(‘회복’)을 이끌어 가시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27절은 가장 분명하고 명쾌하게 이스라엘의 미래(곧 ‘시온의 구속’)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잘 알려준다.12)
(27절) “시온은 정의로᜶공평으로(with justice) 구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돌아온 자들13)은 공의로᜶의로(with righteousness) (구속될 것이다).”
(28절) “그리고 거역하는 자들과 죄인들의 멸망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를 저버린 자들도 끝나게᜶멸망하게 되리라.”
(29절) “왜냐하면 너희가 기뻐하였던(desired) 상수리나무로 말미암아 너희가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선택하였던 동산들로 말미암아 너희가 수치를 당할 것이다.”14)
(30절) “왜냐하면 너희는 그 잎사귀가 시드는15) 상수리나무와 같이 될 것이다.
물이 없는 동산과 같이 (너희는 될 것이다).”
(31절) “강한 자16)는 삼오라기(=삼 부스러기) 같을 것이라.17)
그리고 그의 일(work)18)은 불티 (같을 것이라)
그리고 이들 둘(two of them)은 함께 탈 것이다.19)
그리고 아무도 끄지 못할 것이다.”
27절에서 말하는 구속(속량)이란 단어는 (히) 파다(ransom=노예의 몸값을 지불하고 해방시키는 것)를 말하고 있다. 나아가서 27절과 28절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27절=구속(속량)을 받는 자 | 28절=멸망하는 자 |
샤베이하(“그의 돌아오는/회개하는 자들”) her returning/repentant ones | 오즈베이 아도나이(“여호와를 버리는 자”) those who abandon(ing) YHWH |
남은 자들(=돌아오는 자) | 패역한 자(=죄인들) |
29∼31절은 28절에 대한 이유나 근거를 제시하는 역할도 하면서 그 결과로써 우상 숭배자나 우상 자체가 어떤 종국을 맞이할 것인지 비유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4. 이사야 제1장에 대한 요약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사야 1장의 핵심 구절로서, 다음과 같이 두 구절을 간추릴 수 있다.
8절-시온의 위기! 이방에 의하여 “에워싸인 성읍(예루살렘᜶시온)과 같이” 겨우 남았도다(남겨진 시온=남은 자, 36:1∼3, 구체적으로 산헤립과 히스기야 때의 예루살렘). 이러한 시온(예루살렘)의 위기는 하나님의 심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창기가 된 도성을 의의 도성(신실한 도성)으로 정결하게 하시는, 거듭나게 하시는, 정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런 심판의 의미를 깨닫고 회개하면서 믿음으로 남겨진 자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궁극적인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27절-시온의 구속! 전적으로, 아니 더 나아가서 주권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구속(속량)의 방식을 드러내어 알린다. 바로 시온은, 그 돌아온 자들은, 정의로᜶공의로᜶(인애로) 구속함을 받으리라고 하는 말씀에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이와 같은 시온의 구속(redemption)에 대하여 이사야 전체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➀ 2:2∼5(여호와의 성전 산의 높아짐) ➁ 4:2∼6(여호와의 싹) ➂ 7:1∼17(임마누엘의 징조) ➃ 9:1∼7(우리를 위한 한 아기의 탄생) ➄ 11:1∼16(이새의 그루터기에서 나온 순과 의로우신 통치) ➅ 여호와의 종의 노래들(41:1∼4, 49:1∼6, 50:4∼9, 52:12∼53:12) ➆ 여호와의 구원에 대한 초청장(55장) ➇ 성령을 통한 구원의 역사(61:1∼3).
각주
1) (히) 체덱(rightness, righteousness)을 일반적으로 ‘공의’라고 번역하지만, 개역은 ‘의리’라고 번역하였던 것을 참고하라. 이 단어는 특히 정사/통치에서의 옳은 것(righteousness, in government)에 관하여 이렇게 구분하고 있다. (1) 사사들, 통치자들, 왕들의 정사(government)에서 옳은 것을 (2) 율법의 옳은 것을 (3) 다윗 계열 메시아의 옳은 것을 (4) 예루살렘의, 올바른 통치가 펼쳐지는 소재지로서, 옳은 것을 (5) 주권자로서 하나님 속성의 옳은 것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2)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는 ‘키르야’(city)로서 ‘이르’(city)와 동의어이지만, 주로 시적 표현, 격조 높은 어조로 많이 사용된다. 어근적인 의미는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서’성읍(town, city)을 뜻한다(B.D.B. p. 900).
3) 사용된 히브리어 형태는 분사의 독립적인 용법이지만(“간통하고 있는 자”), 특히 ‘윤리 도덕적인 이탈(변절)’을 뜻한다(B.D.B. p. 276).
4) Slotki, p. 7.
5) 문자적으로는 “거역하고 있다/완고하여 있다”(rebelling, 캴 분사 남성복수 서술용법)는 표현이다.
6) all of it(=성읍의 모든 고관들)
7) 고관들이 ‘고아나 과부’의 송사(lawsuit)를 외면하는 이유는 돈(대가)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8) 니팔, be relieved, ease oneself, by taking vengeance(B.D.B. 637)
9) ‘여호와께서 자기의 손을 어떤 대상에게 돌려댄다(혹은 치다)’는 말은 심판의 의미이다(B.D.B. p.999).
Slotki는 “내 손을 너에게 돌려댄다᜶얹다”는 것은 “계속해서 공격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p. 8).
10) lye, potash(잿물, 탄산칼륨), 금속을 녹이는데 사용되는 알칼리(B.D.B. p. 141).
11) 그래서 ‘이스라엘의 미래’를 소개하는 셋째 단락의 첫 마디가 바로 “에이카”(어찌하여=How!)라고 하는 감탄사인 점을 고려하라.
12) 한편 이사야 1:8∼9은 ‘시온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곧 시온은 “에워싸인 성읍과 같이”겨우 남았기(‘남은 자’의 상태이기) 때문이다(구체적으로는 사 36:1∼3을 참고하라). 시온의 위기는 한편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이기도 하겠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오히려 시온을 정결하게(정화) 하시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13) 문자적으로는 “샤베이하”(Returning ones of her, 시온의 돌아온 자들)이다.
14) “너희가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들, 너희가 선택한 동산들”에 대하여, Slotki는 ‘자연숭배의 상징물’이라고 해석한다(p. 9).
15) “시들고 물이 없다”는 표현은 멸망과 부패됨을 상징한다(Slotki, p. 9).
16) 독립적 용법으로 “the strong one”(강한 자᜶강한 것)이지만, 강력한 우상 숭배자로 보아야 할 건지, 아니면 우상 자체(딱딱한 것)로 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17) 히브리어 구문은 “하야 (전치사) 레…”(it shall be as…)인 것을 참고하라. 또한 ‘삼오라기’는 비유적으로 ‘불에 탄 것처럼 쉽게 오그라지는 것’을 뜻한다. “불탄 삼실을 끊음같이”(삿 16:9).
18) ‘우상’을 가리키지만, 히브리어의 형태적인 의미는 ‘우상을 만드는 자’(his maker)를 뜻하기도 한다.
19) 멸망을 비유한다(B.D.B. p.129). B.D.B.는 이들 둘은 바로 ‘사람(숭배자, 만든 자)과 우상들’이라고 밝힌다(p. 459).
ⓒ 복음뉴스(BogEum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