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현재(present)에 대한 평가(이사야 1장:10∼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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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현재(present)에 대한 평가(이사야 1장:10∼20절)

한삼현 목사 0 2023.03.16 07:48

2. 이스라엘의 현재(present)에 대한 평가(11020)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교훈)귀를 기울일지어다.”

 

첫 단락의 시작이 명령형인 것처럼(2), 이 단락의 시작도 동일하게 명령형이다(10). 2(들으라, 귀를 기울이라)에서는 하늘과 땅을 간접적인 증인으로 내세웠다면, 10(들으라, 귀를 기울이라)에서는 이스라엘 자체(지도층과 백성 모두)을 직접적인 증인으로 세우면서 그 죄악을 직적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당사자를 소환하였다는 뜻이다. 그리고 당시 유다(예루살렘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의 죄악의 성질이 일반적인 세속의 도시(소돔과 고모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19, 39을 참고하라). 유다의 죄악은 지도층이나 일반 백성을 무론하고 멸망 직전인 것을 알리고 있다. 결국 여호와의 긍휼하심과 오래 참으심이 아니었다면, 이스라엘 역시 소돔이나 고모라와 같이 소멸되었을 것은 너무나 당연하였다. ‘들으라그리고 귀를 기울이라는 내용은 여호와의 말씀우리 하나님의 율법1)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주 쉽게 말한다면, 하나님의 다스리심(통치)에 순종하라는 의미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 때문이냐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다. 나는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올 때, 누가 이것을 너희 ()에게서 요구하였느냐 내 뜰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가져오려고 더 많이 보태지 말라. 분향은 내게 가증한 것이라. 월삭과 안식일과 큰 집회의 소집도 (그러하니라). 죄악과 성회(거룩한 모임)를 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노라.”

 

이스라엘의 현재 상태에 대한 묘사는 바로 cult2)에 대한 지적과 평가로부터 시작한다. cult 자체의 무용성(쓸모없음)을 엄중하게 제기하면서, 회개를 촉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cult가 소용없다(무용성)는 강력한 암시는 무수한 제물내게 무엇 때문(유익)이냐(무익함)뿐만 아니라 숫양의 번제와 짐승의 기름에 나는 배불렀다’(아무런 만족을 주지 못함), 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를 나는 기뻐하지 아니한다’(아무런 소용이 없음)에서 잘 드러난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였던 이런 cult가 사실은 하나님을 진저리가 나게 하는 행위들에 불과하였다. 그 이유를 13절은 이렇게 밝힌다. 죄악과 성회(거룩한 모임)를 행하는 일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제사 의식과 실제 삶이 분리되었으므로, 제사 행위가 기계적인 형식주의(mannerism)로 빠져있기 때문에, 참된 경건이 없다는 뜻이다.3)

 

(14) “너희들의 월삭(pl.)과 너희들의 정한 절기(pl.)를 내 마음이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나는 (그것들을) 견디기에 지쳤도다(니팔).” (15) “너희가 너희의 손을 펼 때에 나는 너희에게서 내 눈을 가릴 것이고 심지어 너희가 기도를 많이 할지라도(히필), 나는 듣고 있지 아니하리라. (왜냐하면) 너희의 손이 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14절은 이사야 당시에 희생제사 그 자체가 얼마나 남용되고 악용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너희들의월삭들과 너희들의정한 절기들이라고 구별하면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아닌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곧바로 그것들은’(강조) 나에게 무거운 짐이라는 것과 내가 그것들을감당하기에 지쳤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15절은 하나님께서 보지 않으시고 듣지 않으시는 이유를 바로 너희᜶그들 손에 (폭력이나 살인 혹은 잔인한 억압에 대한 비유)가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결국 제사행위(의식) 그 자체로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음을 밝히는 것이다. 제사(의식) 자체는 아주 순간적 행위로서 전체 삶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집약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제사의식(cult)concentrated moment(농축된 순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4)


제사 // 예배의식(cult)과 삶(life)은 단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주변의 종교들은 다신교로서 자연종교(natural religion)적인 성격이 매우 강했다. 자연을 신격화해서 자연은 곧 신이라고 하였다. 비는 비의 신, 폭풍은 폭풍의 신이 나타난 것이라고 간주한 것이다. 자연 질서 자체가 신들의 활동이라고 보았다. 사계절은 곧 신의 활동이었다(cosmic order). 그러므로 신과 만나는 접촉점이 바로 cult(제사의식)라고 여겼다. 왕이 사제가 되어 cultic drama를 하면서 그 신들을 만난다. 신들의 성적행위를 모방하여 그것을 의식화하였다. 예를 들면, 봄이 되어 비가 내리면 그것은 신의 정액이고 땅은 여성적인 기관으로 생명들이 성관계의 결과로 나타났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제주(祭主)는 성창과 결합하여 cosmic order(우주질서순환)을 회복시킨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방종교는 의식 그 자체에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 의식은 결국 그 자체로서 모든 질서를 회복하는 매개(중간) 역할이라고 간주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는 의식(제사 혹은 예배)은 단연코 삶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하신다. 이사야의 시대에 그 백성은 그 당시 주변 국가들의 의식적인 성격만을 따라서 (제사의식을) 행하기만 하면 된다고 여겨왔다. 쉽게 말하면 제사᜶예배 규례만을 따라서 드리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매너리즘(형식주의타성)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의식과 삶을 분리할 수 없다는 말은 단지 (이웃에 대한) 윤리 정도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삶 전체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문제였다. 특별히 로마서 1212에서 거룩한 살아 있는 제사를 몸으로 드리라는 말은, 소마()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뜻이다. 물론 제사의 속죄적 측면(속죄제)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로 완성되었지만, 제사자의 헌신과 감사의 측면(번제, 화목제, 소제)은 우리 삶으로 계속 드려져야 하였다. 그러므로 의식(제사᜶예배)은 실제 삶에서 이루어진 경건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표현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사야가 말하는 의식과 삶은, 윤리적인 (인간관계) 측면뿐만 아니라, 전체 삶에 포함되는 포괄적인 문제였던 것이다.5)

 

1115절에서 이스라엘 편에서 하나님을 만나려는 시도(의식제사나 예배)는 외면당하여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즉 가증한 것이 되었다. 쉽게 말하면 삶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의식은 필요 없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16) “ 너희는 스스로 씻으라.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라. 너희는 내 목전에서 너희의 행하던 악을 버려라. 악한 일을 (행하길) 멈추라. (17) 옳은 일을 (행하길) 배우라. 정의를 추구하라. 무자비한 자들을 올바르게 하라᜶바로 잡아라. 6)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라(Defend the fatherless).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7)"

(19) 너희가 기꺼이 하고 순종한다면, 너희가 그 땅의 좋은 것(소산)을 먹을 것이다.8)  (20) 너희가 거절하고 배반한다면, 너희는 칼에 삼켜질 것이다. 이는 여호와의 입이 명하셨기 때문이다.

 

1617절에서 여러 개의 권고9)가 나오고, 이후의 올바른 문맥은 바로 19절과 20절로 연결되고 있는 점이 아주 특이하다.10) 19너희가 기꺼이 하고 순종하면, 생명또한 20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죽음로 연결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선택(alternative대안)을 주고 있다. 과연 이스라엘은 이런 선택을 앞에 두고 어떤 결정(불순종이냐, 순종이냐)을 하였는지 이후(2131) 단락에서 확인하기로 한다. 다른 한편 우리는 이런 문맥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게 끼어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18절을 관찰하기로 한다.

 

(18) “이제 오라. 우리가 서로 따져보자(변론하자).” 여호와께서 말씀한다. “비록 너희의 죄들이 주홍과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그것들은 희게 될 것이다. 비록 그것들이 진홍과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과 같이 그것들은 (희게) 될 것이다.”

 

18절에서 이제 오라. 우리가 따져보자(변론하자).” 야카흐([니팔] reason, 따져보자, 확인해보자, 측량해보자)11)라는 말 속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되리라고 하는 죄 사함(암시), 죄를 지적하여 없애라고 권하는 단락과 둘 중에 선택하라는 문맥(1617, 1920) 사이에 그냥 들어갈 수 있겠는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너희 죄들이 주홍과 같다면, 그것이 눈과 같이 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진홍과 같이 붉다면, 그것이 양털과 같이 될 수 있겠는가하고 따지는 것(불가능성)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그와 같은 가능성은 생각할 수 없는 암시라고 판단한다(전혀 가능성이 없는 상태를 말하고 있다고 본다).12)

 

하여간 둘째 단락(“이스라엘의 현재에 대한 평가”)alternative(선택᜶대안)의 제시로 종결되고 있다. 아주 쉽게 말하면, 선택 또 다른 반응(순종이냐, 불순종이냐)에 따라서 또 다른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각주

1) Law of our God(토라)는 반드시 제한적으로 시내 산의 율법을 지칭한다기보다는 Instruction of God(하나님의 가르침이나 교훈)이라고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제사의식혹은 예배의식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3)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5)
4) 
김성수 교수, 이사야 강의자료(합동신학교, 19861학기), 15
5) 김성수 교수, 1617
6) B.D.B.(p. 80, p.330)에 따라서 해석한 것이다. (개역, 개역개정)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라.”
7) 
알렉 모티어에 따르면, 여호와가 요구하는 것(삼중적인 명령)으로써 처음 3가지는 하나님을 향하여정결”, 중간의 3가지는 개인의 삶에서개혁”, 끝의 3가지는 사회에서관심이라고 구분한다(p. 86).
8) 
그 땅(가나안)의 좋은 것(소산)을 먹는다는 것은 바로 생존과 번영(곧 생명)을 누린다는 뜻이다.
9) 
대략적으로 9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10) 
김성수 교수, 17
11) 결국은 책망한다는 뜻이다(B.D.B. p. 407).
12) 
I. W, Slotki, IsaiahHebrew Text English Translation With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he Soncino PressLondon, 1972, p.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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