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편 100:1-5)
어느 가을 토요일 하루
어느 해인가 가을 토요일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매우 바쁘고 분주하게 보낸 하루가 있었습니다. 우리 뉴욕만나교회 부설(무료) 한글학교 가을학기를 시작하는 첫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시작한 지난 봄학기 첫날과 마지막은 억수같이 쏟아지는 눈과 비 때문에 여간 큰 곤혹을 치루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날은 너무나 아름다운 가을 하늘과 쏟아져 내리는 눈부신 가을 햇살 아래, 수고의 손길을 아끼지 않았던 한글학교 교사들의 모습들이 더욱 사랑스러워 보였습니다.
지난번보다도 더 많은 전단지를 슈퍼마켓과 음식점 등에 부착했고, 지난번보다도 더 많은 신문광고(2회씩)를 실었는데, 한글학교에 등록하겠다는 전화가 거의 없어 개강하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막바지’에 크게 힘을 실어 주셔서 30명 정도 예상했는데 40명의 등록을 받고 개강 예배, 오리엔테이션, placement test, 학부모와의 대화, 교사회의 등으로 이어 갔습니다. 한글학교 교사들 중에는 ‘점심’ 식사도 거른 채 열심으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어렵고, 지친 하루였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한 하루였습니다.
시편 100편을 통한 하나님 섬김 알아가기
오늘 저는 시편 100편 1-5절에 나타난 본문을 통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 우리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하고 섬겨야 하는지, 또 교회에서 어떻게 봉사하고, 충성하고, 헌신해야 하는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시편」중에서 시편 100편의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시편 100편-일반 감사의 시를 추수감사절(주일) 예배에 설교로 전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시편 100편을 들어 오늘 새롭게 하나님 섬김을 알리려는 이유는 제가 또다시 시편 100편을 묵상하다가 시편 100편에 나오는 몇 가지 단어들에 의해 크게 은혜를 받고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그냥 무심코 지나갔던,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던 단어들이었는데- 정말 그 단어들이 저를 삼킬 듯이 제 눈에 들어와 아니, 제 영혼을 강타하면서 저를 감동시켰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전에 이 본문에서 찬양과 예배의 중요성,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우리 자신의 신분, 곧 하나님은 창조주 우리는 피조물, 하나님은 왕 우리는 그의 백성, 하나님은 목자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임을 중요시하였습니다. 물론 본문이 그것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즐거이, 기쁨으로, 노래하면서, 감사함으로 섬김
그러나 제가 놓치고 있던 부분은 우리가 그분, 창조주, 왕,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겼으며, 어떻게 섬기고 있으며, 어떻게 섬길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은혜의 감동을 받은 부분이 바로 이 제목이고, 이와 관련된 단어들입니다. 이제 그 단어들이 무엇인지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1절에 즐거운(즐거이), 2절에 기쁨으로, 노래하면서 4절에 감사함으로, 찬송함으로 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고, 섬길 때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신앙적인 자세 등입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자세,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세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 섬김, 봉사, 헌신 가운데 참으로 이러한 즐거움, 기쁨, 노래, 감사, 찬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제는 굳어질 대로 굳어져 버려 구태의연하며, 형식적인 예배 참석과 교회 봉사로 전락해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구원의 기쁨, 즐거움, 감격, 열정은 어느덧 사라지고, 그저 주일이니까 적어도 주일예배는 참석해야만 하고, 교회 직분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의 이목도 있고 해서 그런대로 그럭저럭할 수 없이 모양새만 내고 있고, 그래도 교회에 가는 편이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유익하니-교인들도 만나고,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좀 하고…-그래서 교회 출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피폐해진 한 영혼의 안타까운 모습
저는 얼마 전 다른 교회에 다니는, 제가 아주 오래전부터 알던 남자 집사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와 대화하는 가운데 그에게서 이제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기쁨, 즐거움, 평안을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는 교회생활에 완전히 burn out 되어 있어서 정말로 삭막한(dry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변화되지 않는(예수님을 닮아가지 않는) 생활로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불평, 불만, 비판, 비난만 늘어 더 이상의 기쁨, 즐거움, 만족이 없어졌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과 그 가정 식구들이 다니는 교회를 다니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자기 식구끼리, 거기다 아는 교인 한두 사람 덧붙여 자기 집에서 가정예배나 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물론 교회 자체가-교회 교역자나 장로나 집사들-그에게 참다운 기쁨을 주지 못하고 상처를 안겨다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더 큰 문제점은 그가 ‘영적으로 완전히 고갈된 상태에서 겉껍데기만 남은 형식적 신자가 되어 버렸다는 데 있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그도 한때는 한 교회에서 교회 직분을 가지고 상당히 큰 열심과 시간, 물질을 내서 봉사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경건생활의 결핍, 모나고 거친 성격 탓에 여기저기서 충돌하면서 급기야는 세상 사람들만도 못한 아주 형편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와 같은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까? 저는 성경적으로 그와 같은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영적으로 피폐해지는 원인들
첫째는 신앙생활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한 것이 아니고 자기 의를 내세우고자 할 때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물론 하나님을 섬길 때 열심으로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동기가 순수하지 못할 때, 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에 둔 것이 아니라 자기 의, 자기 영광, 자기 나라(영역) 확장에 둘 때 그 열심은 잘못입니다. 그 잘못은 엄청난 죄악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10장 2절과 3절에서 날카롭게 지적한 내용을 들어 보십시요.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여러분,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세워나가는데 열심을 품으십시오. 그러나 ‘자기 의’를 위해,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그렇게 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겸손하게, 진실되게,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둘째는 자기 자신의 양심의 자책감을 덜어 내기 위한 수단으로 열심을 낼 경우 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들에 실수했거나, 잘못했거나, 죄악을 저질렀을 경우 우리는 그 일에 대해 참된 회개를 하고 돌이킨 후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주를 섬겨야 합니다. 우리의 죄악을 씻는 일은 우리가 회개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씻음(죄용서)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꾸로 스스로의 노력, 선행으로 지난 죄의 대가를 치루려고 열심을 내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에 봉사하는 것이지, 우리의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 열심히 성경 읽고, 기도하고,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정반대로-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에 감사해서 성경 읽고, 기도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 둘은 얼마나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부모는 자녀가 실수하거나, 죄를 저지르면 그를 엄하게 꾸짖고 질책하여 그로 하여금 죄책감이 들게 해서 그를 부모가 원하는 대로 조정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그 자녀를 강제로 복종시킬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 일이 일시적으로 성공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성공은 일시적인 것이며, 결국 처참한 실패로 이끌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질책이 무서워, 부모의 눈치만 슬슬 보면서 부모가 보지 않는 데서는 더 나쁜 짓거리를 저질러도, 그 앞에서는 아주 진실한-아무 문제도 없는- 아니 오히려 착한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늘 부모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의심의 눈초리로 부모를 살펴보고, 의도적인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자녀가 비록 잘못, 죄악을 저질렀어도, 부모가 그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 자녀가 알면, 그는 후에라도 진실되게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 부모의 말에 순종하여 올바른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이렇게 대하십니다. 우리는 실수도 하고, 죄악을 저지릅니다. 그 일로 마음에 심각한 양심의 가책(감)을 느낍니다. 자신의 행동을 혐오하게 되고, 심지어 자신을 혐오하게 되며, 하나님께 커다란 수치심을 느낍니다. 하나님을 두렵게 느낍니다. 하나님께 대한 ‘공포심’을 갖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 스스로 할 일은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돌이켜 회개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미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악 중에 있을 때, 그 죄는 미워하시나 우리 자신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변치 않고 사랑합니다. 물론 그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실 수 있고, 실제로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전혀, 조금도 변치 않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인하여 다시 영적으로 회복하게 되고, 다시금 하나님을 기쁘게, 즐겁게 섬겨 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메마르게 될 때 그 원인을 살펴보고 돌이켜 거룩함과 진실함과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함으로, 찬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고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세째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억지로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다시피 하면 기쁨이 있을 리 없습니다. 가장 쉬운 예로 공부하는 일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공부하는 일을 즐거움, 기쁨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것처럼 고역(힘든 일)은 없습니다. 책 읽는 일이 기쁨이 되지 않는다면 책을 금방 덮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T.V나 스마트폰 등을 통해 드라마, 코미디 프로를 즐겨보고 있습니까? 거기서 세상적인, 인간적인 기쁨을 얻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는 일, 책 읽는 일도 기쁨으로 느낀다면 그는 참으로 훌륭한 학생, 훌륭한 학자, 훌륭한 상식인(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단지 무지막지하게 엄격하고 무자비한 분으로만 알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알면, 그는 하나님께 예배, 봉사를 해도 억지로, 기쁨과 감사가 없이 고역으로, 마치 노예처럼 질질 끌려 그렇게 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로 알면-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창조주, 또 목자로 알면- 그분에 대한 섬김, 봉사가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감사가 되어 더욱더 크게 봉사하고 헌신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섬김은 어떠해야 합니까?
우리의 봉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를 우리 각자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각자에게 직분과 달란트(재능)와 은사를 주셔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고, 교회를 세워나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내에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집사, 찬양대원, 남녀선교회회원, 주일교사, 찬양예배 찬양팀으로 세우시고 사용하십니다.
이 일을 우리가 감당하게 될 때 이 직분을 우습게,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하는)일로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행할 때는 억지로 노예처럼 감당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가면서 기쁜 마음으로 감사로 봉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 일을 제대로 감당치 못하면 벌 받을까, 우리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의 힘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비록 우리가 실수, 죄악을 저질러도 봉사에 좀(많이라도) 게을렀어도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않습니다.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돌이켜 올바르게 하나님께 예배하고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고, 때에 따라 실수나 죄를 저질러도 우리는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하고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의 확신을 갖고 하나님을 기쁘게 섬길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을 창조주로, 왕으로, 그리고 목자로 믿고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즐거이, 기쁨으로 노래하면서, 감사함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변치 않고 대대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교회를 향한 예배, 섬김, 봉사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힘으로 기쁨과 감사함으로으로 행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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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호 목사님께서 그 동안 써 주신 글들이 모든 복음뉴스 독자들의 신앙 생활에 큰 유익을 끼쳤고, 앞으로도 끼칠 것으로 믿습니다.
머지 않은 날에, 정관호 목사님의 또 다른 글들을 대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정관호 목사님의 그 동안의 수고에, 복음뉴스 독자들과 함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