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고데모 이야기- 거듭난 자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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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 이야기- 거듭난 자와 세상

이윤석 목사 0 2023.11.26 19:19

[들어가며]

 

당신은 세상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참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다. 당신이 거듭남으로 매일 삶의 됨됨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겸손해졌는가? 자신 속에 세 생명이 있음을 알고 있는가?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기에 세상과 자신 사이에 분명한 구분성을 의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에 대한 관계가 성경을 따라서 점점 더 분명하게 부각된다. 당신은 세상과의 관계에서 성경을 따르고 있는가?

 

1. 세상과 새 생명을 가진 그리스도인에 대한 말씀


거듭난 자는 세상을 통찰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파악하기 시작한다. 니고데모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그가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독실한 종교인인 것을 알 수 있다. 니고데모와 같은 종교인들은 일상적인 사회생활의 일환으로 습관에 따라 교회에 다니면서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독실한 종교인들에게도 도덕성이 있으며 자기의 잘못을 알고 정죄한다. 잘못을 피하고자 노력하며 잘못된 행동이나 생각을 하면 근심한다. 그러나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신약 성경이 세상이라고 부르는 것을 실상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사도 요한은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나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독실한 종교인은 이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거듭나서 영적인 통찰력과 지각을 얻은 자만은 성경이 말하는 세상을 인식한다.

 

2. 성경이 말하는 세상


1) '세상'이란 하나님 없이 삶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 전체를 말한다

거기에는 선한 것도 포함될 수 있고 독실한 것도 포함될 수 있고 어떤 면에서 아주 선량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실제 그들의 사고나 생활에 개입되지 않고 철저히 인간의 사고 인간의 철학과 지각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관점이나 영원한 것의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보지 않는다.

 

2) ‘세상이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사고이며, 하나님 없이 무엇인가를 만들어가는 방식을 말한다

세상은 사람들이 때로는 선이라고 부르고 때로는 악이라고 부르는 것도 다 포함하는 포괄적인 곳이다. 세상은 꼭 악한 것만을 말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선이라고 부르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미와 예술과 자선 사업에 관심을 갖는 등, 아주 문화적인 일도 포함한다. 세속성은 하나님 없이 자신과 자신의 삶과 세상의 삶 전체를 생각하는 태도이다.

 

3) ‘세상이란 마귀의 영향을 받아 생긴 세상의 정신, 세상의 시각, 세속성을 말한다

성경은 마귀를 이 세상의 신’(고후 4:4),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2:2)이라고 부른다. 우리도 전에는 세상의 방식, 세상의 정신, 세상의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따라 행했다(2:2). 여기에는 악한 일 뿐 아니라 선한 일도 포함된다. 그러나 바울 사도에 따르면 하나님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오로지 마귀의 지배를 받는 모든 사고가 포함된다. 마귀는 그리스도를 떠나게만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사람을 선하게 만들 의향이 있다. 얼마나 교묘한지 광명의 천사로(고후 11:14)까지 가장한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과거의 바울을 보라. 그는 항상 선량한 사람으로 도덕적이고 독실한 바리새인이자 열성적인 율법 선생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미워하면서, 자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대적했다. 마귀는 그렇게 되도록 우리를 부추긴다. 단순히 선량하고 도덕적이고 독실한 종교인들은 자신이 세상과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3. 거듭난 새사람은 그 모든 사실에 눈을 뜬다


1)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세상을 이긴다(요일 5:4)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세상에 압도당한다. 세상에 태어나 세상의 가르침을 받고 세상의 전통을 물려받는다. 그렇게 세상의 희생자가 되고 노예가 되어 자유롭게 사고하지 못한다. 마귀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정신이 책과 문학을 비롯한 모든 것을 사용하여 우리를 사로잡고 압도한다. 그래서 사탄의 지배를 받는 노예로 살지만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거듭나면 눈이 뜨인다. 거듭난 자는 반드시 실상을 보기 때문이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바울 사도는 말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시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 만일 우리에게 이렇게 새로운 관점이 생기지 않았다면 자신이 과연 거듭났는지 확인해야 한다.

 

2)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겉모습에 현혹되거나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들 들어보라: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7:24). 새로운 안목이 생긴 그리스도인은 전에 굉장하게 여기던 모든 것이 허영에 불과함을 보게 된다. 아주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여도 사실은 헛된 것일 뿐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우리에게 제공할 견고하고 실제적이며 항구적인 것이 없다. 겉보기에는 굉장하지만, 가장 필요한 순간에 전부 사라져 버릴 허울이며 겉치레뿐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2:1)라고 말한다. 세상의 전성기는 지속되지 못한다. 굉장한 것을 가진 줄 알았는데 가장 위급한 순간에 보면 사라지고 없다. 터져버리고 말 것이다. 아름답고 영롱한 것 같지만 거품에 불과하다.

 

3) 그리스도인은 이런 세상의 실상을 봄으로 세상에 흥미를 잃는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도 오늘날 공동체의 삶에 수치가 되는 행동을 규탄하는 도덕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세상에 속해 있고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의 실상을 알고 흥미를 잃는 사람은 그리스도인뿐이다. 단순히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세상에 대한 흥미를 잃는 것이다. 세상의 흥미를 잃는다는 것은 세상의 유혹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유혹과 싸울 때도 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전에는 세상의 일원이었지만, 이제는 세상 밖으로 나온 사람과 같다. 물론 세상이 다시 우리 안에 들어오려 한다. 그리스도인은 성향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새롭게 생긴 원리가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간다. 세상의 실상을 잘 알기에 세상을 피하려고 억지로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

 

4) 세상을 미워하게 되며 은혜 안에서 자라기 시작한다

물리적인 세상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표방하는 것들을 미워하는 것이며, 죄를 미워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세상을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오직 주를 아는 지식과 은혜에서 자라가는 그리스도인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 거대한 조직, 인간을 노예로 붙잡아 압제하고 지배하는 마귀의 조직을 미워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주님을 시험했듯이(4:15) 자신을 에워싸고 시험하는 악한 세력을 미워한다. 왜 그럴까? 그 세력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영혼의 유익을 가로막기에 미워하는 것이다. 그토록 놀랍고 황홀해 보이는 세상의 겉모습과 그 추함과 겉치레 속 누더기를 분명하게 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듯이 세상을 미워한다.

 

4. 그리스도인은 적극적인 측면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1) 거듭난 자는 세상의 모든 실상을 보고 느끼며, 자신이 그 세상에서 건짐 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

그는 여전히 세상 속에 있지만, 더 이상 세상에 속해있지 않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하는 말씀을 보라: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1:3-4). 예수께서는 율법의 정죄와 형벌 뿐 아니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져주셨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1:12-13). 우리는 이렇게 건짐 받은 것을 인식하며 사는가? 사탄과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것을 알고 있는가? 거듭난 자라면 인식하지 못할 수가 없다. 똑같은 세상 속에서 똑같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지만 전과 달라진 것을 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분리되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 다른 나라에 소속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안다. 똑같은 환경에서 일하지만, 자신은 거기에 속하지 않음을 안다.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2) 이것은 거듭나서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자는 세상에 전혀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거듭난 자도 당연히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유혹과 죄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유혹받는다고 다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도 죄를 짓고 타락할 수 있다. 타락한 성도가 있다. 단순히 행동의 차원에서만 보면 어떤 점에서 독실한 종교인이나 세상 사람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먼저 중요한 것은 우리는 행동의 관점이 아니라 기본적인 관계의 관점, 기본적으로 성령이 그 안에 계시느냐 하는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 결정짓는 기준은 우리의 행동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과 생명이다. 보통 사람이 왕족보다 능력도 출중하고 더 훌륭한 삶을 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기준으로 왕족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수 없다. 왕족은 혈통과 태생에 달린 문제이다. 동시에 성도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성숙하고 달라지고 변화된다. 거듭난 성도가 죄를 지을 때 그 특징이 무엇일까? 성도가 죄를 지으면 비참함을 느낀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똑바로 안다. 탕자가 그랬듯이 무엇인가 마음속에서 계속 아버지와 아버지 집에 죄를 지었다고 속삭인다. 이것이 성도가 타락할 때 느끼는 비참함이다. 성도는 자신이 죄를 지을 때, 자신이 율법을 거스린 것이 아니라, 사랑을 거스른 것을 안다. 니고데모와 같은 종교인은 잘못을 범할 때 규범을 지키지 못한 것 때문에 근심한다. 항상 법적인 차원에서 생각한다. 그러나 자녀의 특징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이 아버지가 금한 짓을 한 것 그 이상이라는 것을 항상 알고 있다. 사랑을 거스린 것을 알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이다.

 

3) 거듭난 자는 단순히 이 사실을 알고 느끼는데 그치지 않고, 회개한다

선량하고 도덕적이고 독실한 종교인은 죄를 짓고 후회하지만, 회개는 할 줄 모른다. 회개에는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따른다. 성도라면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낳아주시고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분께 상처를 입힌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슬퍼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출발이다. 오직 거듭난 성도만이 회개가 무엇인지 안다. 거듭나면 기존에 세상과 맺었던 관계가 완전히 바뀐다. 행동의 영역과 구체적인 영역에 변화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거릴 수 있지만 속에서부터 원리부터 바뀐다. 자신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음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여 살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5. 거듭난 자는 세상을 미워할 뿐 아니라, 자신과 세상의 삶도 미워한다


1) 이 말은 오해하기 쉽다. 이것을 오해하여 역사적으로 수도사가 된 자들이 있었다. 또한 일종의 거짓 금욕주의나 육체를 죽이는 일에 빠진 자들이 있었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무관하며, 오히려 성경은 그런 일을 정죄한다. 주님께서는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12:25)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자기의 생명을 사랑한다는 말은 세상의 인생관, 세상의 삶을 사랑한다는 뜻이며, 그런 사람은 오히려 생명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이것이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비극이다. 세상을 붙잡은 그들은 결국 자신들이 누리고 있다고 착각했던 목숨을 잃고 빈손이 될 것이다(16:26). 반면에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할 것이다. 이것이 자아를 미워하고 세상의 삶을 미워한다는 말의 뜻이다.

 

2) 거듭난 자는 로마서 7장에서와 같이 자기의 실상을 본다.

정신이 밝아져 율법을 깨달은 자는 필연적으로 로마서 7장의 바울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는 자기 속에 죄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에 더욱 경악한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다. 옛 본성이 여전히 속에 남아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더 이상 옛 사람은 아니지만, 옛 본성은 남아 있다. 이처럼 옛 본성의 존재를 느끼고 그 본성이 내 속에 있는 것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진짜 내 속성은 아니다. 나는 내 안에 새 생명이 있음을 안다. 그 새 생명이 진짜 나이다. 그 새 생명, 새사람, 새 존재가 진짜 나이다. 죄가 성가시고 골치 아프게 느껴진 적이 있는가? 이것이 로마서 614절에 가르치는 것이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거듭난 자에게는 일종의 거룩한 초조함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만 고유하게 나타내는 특징이다. 그들에게는 중생하지 못한 종교인들이 가진 자신감, 선량하고 독실하고 도덕적이며 늘 자신에게 만족하는 종교인의 자신감 같은 것이 없다. 사도 바울이 되기 전, 다소의 사울은 자신에게 크게 만족하던 사람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사람들은 교회에 가지 않는데 자신은 간다는 것이요 그것이 훌륭하다는 것이다.

 

3) 거듭난 사람은 그런 태도와 결별한다

사도 바울처럼 고백한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전 15:10).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지금 같은 모습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새로운 시각과 감정을 얻지 못했을 것이며,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달라지고 옮겨지는 일들이 모두 전부 하나님의 은혜로 된 일이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자랑할 것은 하나도 없다. 자랑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게 된다. 거듭난 자는 자기의 감정조차 신뢰할 수 없음을 안다. 감정은 아주 기만적이라는 것, 마귀는 감정까지 위조해 낼만큼 교묘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가장 감미로운 기분조차 믿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만 기댄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라는 굳건한 반석 위에 서야만 한다. 다른 땅은 소위 위대하다는 모래밭일 뿐이다. 모든 것은 빼앗기게 되어 있다. 전에 의지하거나 자랑하던 모든 것을 사라지게 되어 있다. 유일하게 굳건한 토대이신 예수그리스도만 영원히 남는다.

 

[나아가며]


당신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는 세상에서 자기 속에 있는 감정이 자신감과 자랑과 자기 의를 심어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세상을 미워한다. 예레미야의 말씀처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17:9)임을 안다. 자기 밖에 있는 세상뿐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세상, 악한 원리, 마음과 정신과 영혼에 들어와 있는 세상을 보고 미워한다. 나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요 주님께서 전부되심을 날마다 배워간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는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우리에게 적용되어야 하며 분명한 결과를 가지게 될 진리의 음성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서 이 놀라운 일, 이 능한 일을 하셨는가? 여러분을 새롭게 창조해 주셨는가? 그 영향과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가?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철저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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