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고데모라는 사람 요 3 : 1 - 3

니고데모라는 사람 요 3 : 1 - 3

이윤석 목사 0 2023.05.20 08:34

니고데모라는 사람 3:1-3 


[들어가며] 

 

요한복음 1장과 2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해 중심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더불어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것도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1장에서 태초의 말씀이시며 참된 빛이신 분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지만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고, 심지어 자기 땅에 오신 그분을 영접하지 아니하였다고 고발하고 있다(1:10-11). 2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그분의 이적에 대하여 사람들이 겉으로는 믿는 것 같았지만, 예수께서는 그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2:25)라고 말씀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영적인 일에 실패하였다는 것을 말씀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말한다. 그 사람은 반드시 새롭게 되어야만 할 필요성을 말씀한다.

 

1. 사람의 한계


1) 니고데모는 사람의 대표자이다

앞으로 오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제일 먼저 니고데모가 등장한다. 니고데모는 요한의 사람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첫 번 째 실례로 등장한다. 1절에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라고 니고데모를 소개한다. 이것은 2장 후반에서 언급되었던 많은 사람이다. 예수께서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한 그 사람이며, 예수께서 친히 그 모든 마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2장과 3장은 연결된 말씀이다. 2장 마지막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2:25)라고 말했던 그 사람들이다. 바로 그 사람의 대파자로 등장한 사람이 니고데모이다.

 

2) 그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 훌륭한 인물이다

그리스도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을 대표할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 요한이 사람의 대표로 문화와 교육과 윤리와 정절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면 누구를 선택해야 했을까? 로마의 황제나 관원들은 부패된 모습으로 외면에까지 확실하게 부각되었기 때문에 선택될 수 없다. 헬라 철학자들도 선택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가진 종교의 지식이 매우 미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배우지 못한 평범한 사람을 선택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훌륭한 사람이 영적인 일에 있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은 실패자였다는 것이다.

 

3) 그는 바리새인이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의 종교는 윤리적으로 어긋나 있었다. 신약에서 예수께는 매우 책망을 받았던 부정적인 의미의 사람들로 등장한다. 그러나 원래 바리새인들은 윤리적인 생활방식에서 굉장히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유대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로 인정받고 있었다. 오천명 정도쯤 되는 바리새인들은 경건하고 거룩하였고 성경을 연구하여 아는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이었다. 당시에 신학적으로 보수주의적이며 정통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히브리 성경 타나크(토라, 느비임, 카투빔)에 대해 신뢰하고 매우 높이는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토라에 대해 그대로 적용하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목표는 토라의 의미를 정확하게 밝혀내는 일이었고, 그것을 지키는 일에 최대의 관심을 쏟았던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 더욱 뛰어난 사람들이 서기관들이었다. 그들이 바리새인으로서 종교의 삶의 의미를 찾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이고 생명을 변화시키는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고 오히려 그 진리를 방해하는 그룹의 사람들이었다.

 

4) 그는 히브리와 헬라적인 사상에 대해 익숙한 학자이다

토라에 대한 큰 연구가라고 할 수 있는 니고데모이다. 그의 이름은 헬라어로 백성들을 정복한 자라는 의미이다. 예수님 당시의 팔레스틴에서는 헬라 이름이 의미가 있었다. 유대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히브리 이름이 아니면, 아람어도 된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유대 문화 뿐만 아니라 헬라 문화를 접촉했던 상류층 사람들에게는 히브리 이름과 헬라어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아주 좋은 헬라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그는 히브리 이름으로보다 헬라어 이름으로 밝히기를 더 좋아했다. 칠십인경(Septuagint)을 읽고 헬라 철학의 범주에서 구약을 살펴보았던 헬라적 엘리트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을 찾아온 그 사람은 윤리적으로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교육적인 차원에서 칭찬받을만한 사람의 대표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영적인 불안이 있었고 밤중에 예수께 찾아와 예수님을 대면하여 영적으로 어둡고 무지한 모습을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5) 그는 정치가이다

그는 유대인의 관원(a ruler of the Jews)이다.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유대교의 최고의 입법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유대의 입법, 행정, 사법권을 장악한 주요한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기관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이단을 조사하고, 토라를 썼으며 유대인과 로마인들 사이의 공식적인 모든 문제에 대해 처리하는 해결자였다. 그는 정치가들 중에 엘리트 그룹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다. 요세푸스(Josephus)의 역사(Antiuities)에 니고데모라는 이름이 보이는데 아주 높은 유대 가문 두 번의 언급에 등장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 당시 니고데모는 매우 건실한 사람이요 고등교육을 받은 정치가요 가장 뒤어난 가문출신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사람을 뽑는다면 니고데모야 말로 사람의 대표자였을 것이다. 그가 바로 1장과 2장의 사람의 대표로 등장한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가 교육과 정치와 문화와 종교에서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신앙적으로는 실패자이며 영적인 소경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2. 사람의 시작은 거듭남으로부터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사람으로 성공한 사람이 예수님과 나눈 대화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를 향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해결책은 영적인데 있는데, 그는 그것을 전혀 갖고 있지 않으며 영적인 생명으로 태어나지 않고는 절대로 그것을 알 수 없다고 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출발은 거듭남으로부터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거듭나기 전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니고데모처럼 인간적으로 완벽에 가까워도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있고 영적인 일에 대한 이해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그의 마음 속에서 구원얻는 믿음을 심어주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다. 우리의 믿음 자체도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 오셔서 그 말씀을 가지고 우리 마음의 태속에 그것을 심어서 그 결과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잉태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다. 이 본문 자체에서 니고데모가 나타낸 반응은 그저 우스꽝스런 대답일 뿐이다. 그를 랍비이며 유대교 전통의 대변자였지만,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을 뿐이였다.


나중에 동일한 랍비로서 히브리 문화와 헬라문화에 정통한 바리새인이 나온다. 그는 아마 니고데모 이상이였다. 자신의 시대의 모든 사람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서 유대교의 전통에 대해 매우 열심히 있었던 자였다. 그는 유대교를 위협하는 어떤 이단적인 그룹도 넘어뜨리는 자요 학식이 매우 풍부한 자였다. 그는 다메섹까지 가서 유대교를 위협하는 이단적인 그룹으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옥에 가두려고 공문서를 가지고 가다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새 생명을 받았다. 그는 나중에 니고데모의 것과 같은 자기의 모든 성취가 아무런 쓸데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그가 바로 사도 바울이다. 세상의 성취의 극대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참된 구원을 얻는 거듭난 믿음에 결코 도움을 줄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사람의 노력과 최상으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오직 사람의 한계를 초월하여 거듭나야만 하는 사실을 말씀한다.

 

3. 타락한 사람


1) 사람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하나님을 하는데 있어서 결코 적당한 도구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으로 사람을 만드셨지만, 범죄의 결과 그 영혼이 죽었기 때문이다. 로마서 1장이 말하는 지성적이고 영적인 부패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포기하고부터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21-23).

 

2) 사람은 하나님을 멀리 떠났다

사람들은 일반적인 방면에서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방면에서도 하나님을 멀리 떠났다. 만일 사람의 지성이 바르게 작용한다면 그 지성은 모든 진리와 기쁨과 성장과 행복을 자기의 창조주와의 교제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타락할 때 모든 것이 완전히 뒤틀리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셔서 구원을 주셨고 교제를 새롭게 하셨지만, 사람은 거꾸로 멀리 달아나고 만다. 타락이 이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하나님에 관해 무엇인가를 알려면 반드시 계시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은 이성으로 하나님께 나오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럴 수도 없다. 그래서 바울은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9-10)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먼서 사람 속에서 구원을 시작해주지 않으시면 어느 누구라도 영적인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3) 니고데모를 통해서 보여준다

유대인의 관원인 니고데모라는 사람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래서 말한다:“...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한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2). 자기는 상당한 지식을 가진 선생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는 당신이 누구인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무엇을 알고 있는가? 첫째는 예수께서 계속 많은 이적을 행하고 계시다는 것이요, 둘째는 이적들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생이라는 것을 보증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요, 셋째는 예수께서는 니고데모가 청종할만한 하나님께로 온 선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가진 모든 개념은 그의 뛰어난 지식에도 불구하고 잘못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를 책망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 예수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처럼 기적으로 자신을 입증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시지만 하나님이셨다. 예수께서는 가르치고 죽으시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보이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이셨다.

 

4) 그는 육신적인 차원에서 반응한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영적으로 사물들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먼저 거듭나야 도니다고 말하면서 니고데모의 말에 대답하셨다. 그러나 새롭게 될 필요성을 말씀하시는 예수님 말씀이 니고데모에게는 신비롭게 여겨졌다. 니고데모는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물리적인 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무엇인가? 그가 육신적으로만 반응한 대답을 보라: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4). 니고데모는 자기가 알고 있는 태어남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다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지금 성령을 통해 일어나는 새로운 탄생을 말씀하신다.

 

4. 모든 해결책은 하나님께로서 나온다


사람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완전히 끊어져 있다. 하나님과의 교제 단절이 사람의 모든 면에서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결과에 이르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이 바꾸어지기를 원하신다. 로마서의 전반부의 대한 모든 말씀을 실천적으로 옮기면서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1-2)고 말한다. 우리의 마음을 바꾸는 가장 위대한 구절은 바울이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 10:4-5)라고 말씀하는 구절이다.

 

[나아가며]


예수께서는 그냥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으로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인간의 타락한 영혼으로는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자기와 함께 있을 새로운 사람을 원하신다. 거듭난 존재와 삶을 원하신다. 새 사람들로서 새 사람의 인격을 가지고 살기를 기뻐하신다. 여전히 니고데모와 같은 상태와 질문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많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새롭게 바뀌어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중요하다.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어서 믿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 및 영혼과 모든 경험과 학문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음을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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