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신성은 무엇인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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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신성은 무엇인가? (2)

이민철 목사 0 2023.04.14 07:43

메이첸 박사 근대세계 안에 그리스도인 신앙(1936)


11-2장 그리스도의 신성은 무엇인가? (2)
         (What Is Deity of Christ?)
 

 

11-2장 그리스도의 신성은 무엇인가?(2): 그러나 옛날의 용어들에 대한 단순한 전통적인 사용은 우리가 내버려 두고, 성경에서 그리고 교회의 위대한 신경들에서 발견되는 그 용어의 의미를 포기한 자들이 신성이라는 용어와 '하나님'이라는 용어에 돌리는 실제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현대(現代)의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신성' 을 말할 때 무엇을 의미하며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를 때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생각하기를, 두 가지 대답이 그 질문에 주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리스도의 신성' 이라는 용어와 '하나님' 이라는 용어를 예수님에게 적용시키는 불신자들은 보통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의미하고 있다.


첫째로 어떤 이들은 그 용어를 소위 범신론적(神論的) 의미로 사용한다. 즉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기꺼이 부르는 것은, 그들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과 우리의 본성 간에 단지 정도의 차이만을 두고 질적인 차이를 두지 않는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멀리 떨어진 하나님이 아니다. 그의 생명은 모든 세계의 생명을 통하여 맥박쥔다. 그는 자신을 남자들과 여자들 속에 항상 성육신시켜오고 있었다. 한 시점에서 그는 자신을 특별히 충만하게 성육신키셨다. 즉 나사렛 예수 안에 성육신시키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 성육신은 다른 사람들 속에 있는 성육신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도의 차이였지 질적인 차이가 아니었다. 땅에 계셨던 예수와 같은 사람의 나타남은 하나님과 사람이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그러한 견해가 성경이 가르치는 기독교적 견해와 정반대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성경에 의하면, 땅에 계셨던 예수님의 나타남이 계시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이하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아니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사람은 사람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아무런 혼동도 있을 수 없다. 더욱이, 사람은 죄의 무서운 심연에 의해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즉 하나님과 사람의 그러한 분리 때문에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제 2위이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성자 아들께서 스스로 우리의 본성 (nature)을 취하셨다. 그것은 여러 번 이루어졌던 행위가 아니고, 한번, 단 한번 이루어졌던 행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한 번의 행위 때문에 그는 "구별된 두 본성(nature)과 한 인격 (person)으로 하나님과 사람이셨고 계속 그러하시며 영원히 그러하실 것이다."

나는 오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있는 하나님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 간의 관계에 대해 말하지는 않겠다. 그것은 이 연속 강연의 후의 이야기 혹은 어떤 다음의 연속 강연의 이야기에 속한다. 그러나 내가 지금 말하기를 원하는 것은 단지, 만약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는 말이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이 아니다라는 보충적인신앙과 동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확실히 어떤 성경적인 혹은 기독교적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둘째로 다른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신성' 이라는 용어나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소위 반() 형이상학적인 혹은 실증주의적)인 의미로 예수님에게 적용시킨다. 내가 이렇게 긴 용어를 사용할 때 여러분에게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여러분모두가 실증주의적이라는 그 말을 처음부터 잘 이해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 말로 의미하는 것을 이해시키기를 원한다. 나는 그 말로, 인간 예수님의 인간적 생활을, 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하나님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가리키려고 한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세상의 창조자와 통치자이신 인격적인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곤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믿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는 그것에 관해 확신이 없다. 그것은, 아주 의심스러운 영역 형이상학에 속한다. 우리가 참으로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은 우리가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들, 우리가 사는 여기 이 세상에서 발견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한 하나님, 한 현대적 하나님을 가져야 한다면, 우리는 그를 여기 우리 속에서 - 여기 이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영역에서 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우리는 한 하나님을 찾기를 원한다. 우주의 창조자와 통치자이신 그러한 옛날의 형이상학적인 하나님을 믿곤 했던 사람들은, 우리가 잃어버릴 위험이 있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존경과 두려움의 고상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한 존재 (a Being)를 소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러한 감정들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일으켜 줄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경배할 어떤 대상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이러한 감정들을 일으켜 줄 어떤 것을 어디에서 찾을까? 우리는, 경배할 어떤 대상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우리가 더 이상 믿지 않는 그러한 인격적인 창조자의 자리를 대치할 종교적 헌신의 적절한 대상을 어디에서 찾을까?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것은 이 땅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어디에서 찾을까?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예수라는 이름을 가졌던 어떤 사람의 생애()에서 찾는다. 그는 물론 세상의 창조자가 아니었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도덕적인 생애는 과거의 세대들이 그 상상된, 세계의 창조자에게 드리곤 하였던 것과 동일한 존경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비록 형이상학이 사라져도 종교는 남는다. 사람들이 별이 총총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은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도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고상한 존경의 감정을 가지곤 하였다. 우리는 더 이상 그 모든 것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 예수의 인간적 생애를 묵상함으로써 우리는 그러한 동일한 고상한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것이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신성' 이라고 부르는 것의 아주 보편적인 견해이다. 우리는 그러한 견해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까? 우리는 예수님을 경배 하는 그런 방식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까? 우리가 그것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내가생각하는지에 대하여 말하겠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그것은 무서운죄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오해하지는 말라. 예수님을 경배(敬拜)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높고 고상한 특권과 의무이다. 진짜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하나님과 사람이신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오직 사람만이고 하나님이 아니었던 한 예수를 만들어 내는 것은, 그리고 당신이 그러한 순전히 인간인 예수를 만들어 낸 후 그에게 꿇어 경배하는 것은 죄이다.


상상된 순전히 인간인 예수, 즉 단지 이상적인 사람으로 간주되는 예수의 도덕적 생활에 대한 그러한 경배가 실상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러분은 알지 못하는가? 순전히 인간인 예수에 대한 그러한 경배가 실상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러분은 알지 못하는가? 그것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인간성(人性) 숭배라는 무서운 옛 죄를 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가 창조주보다 오히려 피조물을 숭배하고 섬겼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참으로 죄인 것이다.


내가 말하고 있는 바의 결론은 이것이다. 즉 오늘날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 그들은 흔히 그들이 그리스도를 높게 생각하기 때문에 가 아니고 그들이 하나님을 심히 낮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경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하는 방식이 전혀 아니다. 성경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할 때, 성경은 하나님을 끌어내림으로써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성경은 우리에게, 성경이 하나님의 크신 위엄에 대하여 말씀한 단 한 가지의 사실이라도 잊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가 그 모든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하도록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하라고 요구(要求)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 처음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성경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할 때 성경은 우리에게 위의 사실을 잊으라고 요구하는가? 아니다. 도리어 성경은 우리에게 그러한 것을 기억하라고 요구한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by him)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다고 말한다. 성경이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할 때 우리에게 그러한 것을 잊어버리라고 요구하는가? 아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가 만물보다 먼저 제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있느니라(by him all things consist)"고 성경은 말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다고 말한다. 성경이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다 라고 말할 때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을 잊어버리라고 요구하는가? 신약성경 전체가 대답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신비스러우시다고 말한다. 성경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할 때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을 잊어버리라고 요구하는가? 아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그리스도 안에는 오직 하나님께서만 알고 계시는 신비들이 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셨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최후의 심판자이시라고 말한다. 성경이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고 말할 때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을 잊어버리라고 요구하는가? 아니다. 예수님 자신께서 산상(山上) 설교에서 말씀하시기를, 그가 온 땅을 심판할 심판의 보좌에 앉으실 것이라고 하셨다.


나의 친구들이여, 모든 점에 있어서 그러하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에 대한 굉장한 견해를 제시한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모든 점에 있어서 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그 모든 것에 대해 어떤 관심을 가지는가?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아는데 대해 어떤 관심을 가지는가?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만들어졌다는 것을 아는데, 그가 가장 먼 곳까지 가득하시다는 것을 아는 데, 그가 지식과 능력에 있어서 무한하시다는 것을 아는데 대해 어떤 관심을 가지는가?


현대의 불신자들은 관심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이런 것들은 단순한 형이상학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전적으로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것들은 바로 우리의 생명의 호흡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그를 믿을 수 있는가? 단지 이 덧없는 생활에서인가? 단지 우리가 지구라고 부르는 이 작은 조각에서인가? 만약 우리가 그를 단지 그 정도로 믿을 뿐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불쌍할 것이다. 우리는 거대한 세력들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광대한 미지의세계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의 짧은 인생의 길 뒤에는, 무한한 세계로 나아가는 고비가 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두려움 아래 있다. 그것은 단지 파멸의 두려움 뿐이 아니고 무한하시고 거룩하신하나님을 대면함에 대한 더 무서운 두려움이다.


만약 우리가 단지 인간이신 그리스도만을 소유()한다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시는 분인 그리스도 우리 구주는 바로 하나님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은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의 신비이다. 그것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인다. 그러나 만약 소유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두려움으로부터 영원히 구원할 것이다. 우리에게 세상은 전적인 미지(未知)이다. 그것은 무한이라는 대양 속에 삼키 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구주께는 아무런 신비들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는 보좌 위에 계시다. 그는 가장 먼 곳까지 충만하시다. 그는 무한 속에 거주하신다. 그러한 구주와 함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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