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자신에 관해 무엇을 말하셨는가?

예수는 자신에 관해 무엇을 말하셨는가?

이민철 목사 0 08.14 18:16

14장 예수는 자신에 관해 무엇을 말하셨는가?

(What Jesus said About Himself?)

 

 

14장 예수는 자신에 관해 무엇을 말하셨는가?: 예수가 산상수훈에서 자신에 관해 증거 하셨던 그리스도의 신성(the deity of Christ)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예수가 자신을 복음과 분리시켜 단순히 행함을 강조하고 제자들이 본받을 만한 삶의 프로그램을 소개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지지하고자 불신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바로 그 구절들을 살펴보면서그 구절들에서 예수는 다른 어떤 선지자도 소유할 수 없었던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권위(authority)를 가진 존재로 자신을 소개했음을 보았습니다.

 

지난 강연을 마치면서 특히 예수가 산상수훈 거의 끝부분에서 자신을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석에 앉아 온 세상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분으로 소개하는 구절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하지만 이 구절이 복음서에서 예수가 자신을 최후의 심판자로 소개하는 유일한 구절은 아닙니다아마도 자신을 이런 최후의 심판자로 여기셨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가리켜 인자는 명칭으로 즐겨 부르셨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처음에는 언뜻 이 명칭이 예수의 신성과 구별된 예수의 인성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겠다고 생각했습니다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인간이셨으므로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이라고 부른 것처럼 또한 자신을 인자(Son of Man)라고 불렀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요만일 명칭에 대한 이러한 견해가 옳다면분명 이 역시 대단히 고결한 명칭이며분명 그리스도의 신성과도 상충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의 입술에서 나온 인자가 그런 의미일 가능성은 아주 희박합니다즉 그분의 신성과 구별된 우리 주의 인성을 가리키려는 의도일 가능성은 없다는 말입니다다시 말해 복음서에서 인자와 '하나님의 아들'이 대조되는 경우는 없습니다이 명칭들이 인간이며 예수이신예수의 두 본성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곧 그분이 인자이자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들은설령 예수가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인간이었다고 의심 없이 믿었다 하더라도 그 명칭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예수가 말씀하신 인자라는 명칭의 진정한 열쇠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영원한 권세를 받은 인자 같은 이(단 7:13)에 관해 언급하는 다니엘서 7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이 사람이 인자 같다고 할 때 이는 하나님과 인간을 대조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거기서 대조된 것은 오히려 인자 같은 이의 나라 이전에 존재하는 세상의 제국들을 가리키는 사자표범그리고 이름 없는 짐승과 같은 짐승들입니다짐승의 모습으로 묘사된 자들의 모습을 가진 왕국들이 나타나고 난 후에 인간의 모습을 한 통치자가 다스리는 한 나라가 일어납니다그 나라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영원할 것입니다.

 

다니엘서의 이 구절은 그 후 유대인들의 메시아 대망에 엄청나게 중요한 영향을 끼쳤습니다예를 들면 이른바 에티오피아 에녹서(Ethiopic Book of Enoch) -성경에 포함되지 않고 포함될 자격도 없는 책이기는 하지만를 보면천상의 존재로서 이미 천국에 있었지만 위대한 영광 중에 온 세상의 심판자로서 나타날 이를 가리키는 인자라는 명칭이 자주 나옵니다우리 주가 에녹서를 사용하셨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하지만 이 책은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그 구절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었다는 증거는 제공해 줍니다바로 그 구절에 근거해서 곧 오실 구원자가 인자라 적어도 일부 유대인들 진영에서는불릴 것이며 하늘의 구름과 함께 나타나 온 세상의 심판자가 되시리라 이해되었으니까요우리 주가 자신을 인자라고 부른 것은 바로 이런 구약과 일치하는 유대인들의 대망에 승인의 도장을 찍으시고 자신에게 적용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사용하신 인자라는 명칭은 독특하게 메시아적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즉 신성과 구별된 예수의 인성을 가리키는 명칭이 아니라 언젠가 구름 가운데 나타나 온 세상을 심판할 심판자가 되시는 하늘에 속한 초월적인 존재로 자신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사도행전의 주목할 만한 한 구절도 인자에 대한 이런 견해를 확인시켜 줍니다사도행전 7장 55-56절에서 순교를 당하면서 스데반은 이렇게 말합니다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여기서 그는 다니엘서 7장을 염두에 두었음이 분명합니다.

 

스데반은 본질적으로 다니엘이 보았던 것과 똑같은 환상을 보고 있는 겁니다그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영광 중에 나타난 하늘의 인물인자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예수가 이 명칭을 사용하실 때 그 명칭의 출처는 죽어 가던 스데반의 말에서처럼 분명합니다그래서 마가복음 8장 38절에서 그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라고 했고그런 구절들이 다니엘서 7장의 영광스러운 장면을 염두에 두고 있음은 분명합니다다른 구절들에서는 그 장면이 그렇게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예수가 때로는 자신이 존귀케 되실 때보다는 낮아지실 때 인자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셨습니다가령 인자는 머리 둘곳이 없다라고 하신 마태복음 8장 20절이 그 경우입니다또한 예수가 자신의 대속의 죽음에 관해 말하면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라고 하신 마가복음 10장 45절도 같은 경우입니다하지만 위의 구절들에서 이 명칭을 사용한 것은온 세상의 심판자요 통치자이신 인자에게 마땅히 속한 엄청난 존귀함을 이 땅에서 낮아지신 그분의 삶과 대조하려는 의도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이 구절들 안에 있는 진정한 정서(pathos)머리 둘 곳도 없는 그분이 그냥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러 오신 그분이 그냥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오히려 영광스러운 하늘의 인자라는 그 엄청난 상징으로 표현된 분이지금 여우나 새보다도 거할 곳을 찾기가 더 어렵다는 사실에 있습니다예수가 여기저기서 이 명칭을 사용하실 때 그 명칭으로 불린 분의인성을 특별히 가리켰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곳은 극히 드물며이 명칭의 압도적인 중요성은 예수를 천상의 메시아 곧 다니엘서 7장에서 그의 왕국이 영원하리라 한 상징적 인물과 동일시한다는 데 있습니다.

 

지나가는 말처럼 말했지만이것이 오늘날 신자나 불신자를 통틀어 여러 다양한 진영에 속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주도적인 입장입니다여기저기서 이 명칭에 대해 다른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는 합니다하지만 신중한 학자들 안에서 주도적인 입장은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입장이라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좀 더 다루기 원한다면 제가 큰 빚을 진 게할더스 보스의 자신을 드러내신 예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하지만 특별히 언급해야 하는 것은인자라는 용어의 근원과 의미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든 나사렛 출신 예수는 분명히 어느 날 인류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고자 하나님의 심판석에 앉으리라 주장하셨다는 점입니다이미 분명하게 관찰한 대로 이 주장은 산상수훈에 나타납니다순전히 윤리적인 부분으로 여겨지는 예수의 가르침에서도 이 사실은 피해 갈 수 없습니다이는 복음서 전체를 관통합니다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모든 역사가는, 1세기경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예수라는 특정한 한 사람이 그의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면서그가 어느 날 하나님의 심판석에 앉아 그들의 심판자가 되고세상의 심판자이자 통치자가 되리라 확신했다는 놀라운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의 이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그것이 사실이라 믿는다면 예수는 여러분의 왕이요 주이십니다거짓이라고 믿는다면 저는 여러분이 어떻게 그분을 여러분의 삶에서 가치 있는 본보기 정도로 여기실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마지막 심판 때에 인간들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실 예수에 대한 확신은 그분이 지금 여기에서도 영원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확신과 맞물려 있습니다그분은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하셨습니다그의 대적들은 이 주장의 핵심을 이해했습니다사실 그들은 복음서에 포함된 내용을 너무 가볍게 다루는 일부 현대인보다 훨씬 잘 이해했습니다그들은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이는 신성모독이로다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막 2.7)라고 했습니다그들이 맞았습니다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만일 그분이 단순히 인간이었다면 신성모독을 한 것입니다이 부분에서 대적들은 제대로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예수의 이 놀라운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그래서 그분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그렇지 않다면 그분을 불쌍하고 망상에 빠진 열성분자로 여기고 거부해야 합니다거기에 중간지대란 존재하지 않습니다예수는 단순히 종교 선생의 모습으로 간주되기를 거절하십니다신성에 대한 예수의 주장은 복음서 전체를 관통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여기저기 한두 구절에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실제로 예수가 하신 모든 말씀행하신 모든 행위에 전제되어 있습니다그분의 공생애 중 자신을 그 가르침의 주체로 말씀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그것은 그분의 가르침과 사역의 배경이었습니다사실 그 배경 없이는 그분이 말하고 행한 모든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공관복음이 묘사하는 갈릴리 사역 기간에 그분은 자신의 인격의 신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그 부족함은 우리 주의 최측근 제자였던 사람이 기록한 요한복음에 의해서 탁월하게 채워집니다그러나 특히 주목할 것은이 네 번째 복음서와 다른 세 복음서가 서로 대치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요한복음에서 영광스럽게 소개하는 그리스도는 공관복음 곳곳에서 전제하는 바로 그 그리스도입니다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전혀 상충됨 없이 예수가 자신에 관해 가르친 바를 풍성하게 보고함으로써 마태와 마가와 누가에게서 들은 것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도록 하는 열쇠를 제공합니다게다가 우리는 그분의 사랑하는 제자에 의해 보고된 요한복음에서 더욱 충만하게 드러난 바우리 주가 자신에 관해 가르치신 바로 그 가르침을 공관복음 여기저기서도 볼 수 있습니다누가복음에서도 병행구절을 찾을 수 있는 마태복음 11장의 유명한 구절이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으니라(마 11:27). 여기서 우리는 네 번째 복음서에 온전하게 나타난 가르침의 내용뿐 아니라 형태도 볼 수 있지요아버지아들-요한복음에 이 두 용어가 얼마나 자주 함께 등장합니까그런데 여기서도 함께 등장합니다자신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을 얼마나 놀랍도록 풍성하게 소개하는지 이 구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라는 이 구절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선언입니다.

 

예수는 진실로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유일하게 하나님을 아는 분이라고 했습니다우리는 본능적으로 요한복음의 기록을 생각합니다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얼마나 놀랍습니까여러분한번 생각해 보십시오이 땅에 살던 나사렛 출신 예수가 함께 있던 당대의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나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하나님 자신이 아니고는 누가 하나님에 대해 그렇게 풍성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단 말입니까하지만 이 말씀이 말하는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훨씬 더 풍성합니다아들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라는 말도 충분히 놀라운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거기에 나타난 또 다른 엄청난 선언이 있습니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다.

 

여러분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이 말은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신비가 예수 안에 있다는 의미입니다아버지와 아들 이 두 분은 여기에서 아주 신기한상호적 관계로 놓여 있습니다두 분 모두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신비롭지만 두 분은 서로를 온전히 압니다아들은 아버지의 존재의 깊이를 알고 아버지는 아들의 존재의 깊이를 압니다이 두 분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호 간의 지식이 있습니다이것이 바로 처음부터 끝까지 복음서에 암시된 것을 의미하지 않겠습니까역사적으로 나사렛 출신 예수라고 알려진 이 이상한 사람이 그저 사람이 아니라 무한하고 영원하고 불변하신 하나님이었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1장의 이 놀라운 구절에서 우리는 우리 주의 신성에 관한 위대한 교리의 암시와 요약을 보게 되는데이는 성령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과 종합해서 생각해 볼 때 삼위일체에 관한 성경의 온전하고 탁월한 가르침입니다더 이상 본 강의에서는 이 교리에 할애할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우리의 복된 주의 신성에 대한 성경의 풍성한 증거를 더 이상 논할 시간이 없지만종합적으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그 본문은 예수를 묘사하는 복음서의 별종이 아니라 복음서 전체의 핵심적인 부분이라는 사실입니다마태복음을 읽으면서 기독론적인(Christological) 구절들을 대할 때그 구절들이 일반적으로 요한복음에서 볼 수 있는 요한의 구절이라고 불리는 구절들과 너무 흡사하다는 데 충격을 받으십니까마치 우리가 전혀 다른 분위기로 옮겨진 것 같으십니까갑자기 전혀 다른 그리스도를 대하는 듯이 느껴지십니까친구 여러분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우리는 마태복음 전체에서 대하던 같은 그리스도를 요한복음에서 대합니다우리는 산상수훈을 말씀하신 바로 그 그리스도를 대하는 겁니다사복음서 모두에서 때로는 엄격한 경고를 하고 때로는 무한히 부드럽고 은혜로운 말씀을 하시는같은 그리스도를 대하는 것입니다이번 강연에서 우리가 다루는 이 구절즉 우리 주의 인격의 영광스러움을 놀랍게 드러내는 이 구절의 문맥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구절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기 전에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옳소이다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11:25-26). 그리고 우리가 말한 구절예수가 아버지와 아들의 형용할 수 없는 관계에 관해 말씀하신 구절이 따라 나옵니다그 다음에는 어떤 내용이 따라 나올까요그 다음에 따라 나오는 것은 교회의 후기 신학을 일부 드러내는 내용일까요결코 놓칠 수 없고특징적이며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가르침을 제대로 보여 주는 데 실패한 그런 교회의 후기 신학 말이지요그 후에 따라 나오는 말씀의 의미를 여러분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증거 다음에 따라 나오는 말씀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마 11:28-30). 이 말이 예수가 한 적 없는 말을 했다고 위조하는 말입니까아니면 자기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려고 예수의 이름을 도용한 어떤 종교 천재가 한 말입니까아닙니다어떤 종교 천재도 이렇게 말하지 못합니다이 말은 사람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입니다이 말을 예수가 하셨다는 것이 얼마나 달콤합니까다른 사람의 입술에 이 말이 있었다면 그 얼마나 망령된 말이었겠습니까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듣는 자를 경멸하거나 속이지 않고 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같은 호흡으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분뿐입니다명료한 사실은 예수의 은혜의 초청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도록 보냄 받은 이가 복음서에서 달콤하게 반복하는 이 초청은바로 하나님의 초청이라는 것입니다이런 초청을 한 사람은 거짓말쟁이이거나 아니면 하나님입니다하지만 이 초청을 거부한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이 사실이 부인되고 이런 엄청난 선언을 하신 예수를 믿지 않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부인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많은 사람들이많은 학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예수가 친히 말씀하지 않았습니까예수가 자신을 구세주요주로 내어 주실 때 많은 학식 있는 사람들이 그 학식으로 그를 거부할 것이라고 말입니다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여러분은 어디에 속하셨습니까여러분은 우리 주가 말씀하신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 속하십니까이 세상의 지혜(the wisdom of this world)를 의지해서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에 속하십니까아니면 어린아이들에 속하십니까약하고 아무런 도움도 없는 그 모습 그대로 예수께 오지 않으시겠습니까어린아이처럼 예수께 나오지 않으시겠습니까여러분에게 쉼(rest)을 주시는 그분께 나오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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