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주 : 본 강의는 로이 주크의 [바울의 티칭 스타일]을 요약하고 정리하고 추가하여 만든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바람직한 기독교교육의 내용이 이 강의에 있다고 믿습니다.]
3장 : 바울의 사역에서 가르침은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What place did teaching have in Paul’s ministry?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딤후 1:11) And of this gospel I was appointed a herald and an apostle and a teacher.
인척관계나 책임에 따라서 당신은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워질 것이다.
사람들은(우리들은) 아들, 딸, 장인, 장모,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 아내, 남편, 친구, 약혼자, 학생, 교사,선교사, 목사, 노동자, 사장, 행정가, 비서, 사무원, 등으로 불리워진다.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사도 바울에게도 많은 호칭이 있었다. 그것을 성경을 통해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바리새인의 아들(행 23:6)
삼촌과 형제(행 23:16)
어린 아이(행 26:4, 고전 13:11)
종교적으로는 바리새인의 지도자(행 23:6, 빌 3:5)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영적으로는 주님의 자녀(롬 8:14, 19, 23, 갈 3:26)
그리스도의 몸인 우주적인 교회의 일원(롬 12:4-5, 고전 10:17)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자(엡 3:1)
주를 위하여 갇힌 자(딤후 1:8)
바울 사도는 이외에도 그의 사역과 관련된 여덟 개의 호칭으로 불리워졌다.
그릇(도구) instrument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교사(스승) teacher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딤전 2:7)
증인 witness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행 26:16)
종(일꾼) servant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전 4:1)
종(일꾼)이란? – 헬라어로 ‘휘페레테스’ = 다른 사람을 돕거나 섬기는 자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일꾼(고전 3:5), 하나님의 일꾼(고전 6:4),
복음의 일꾼(엡 3:7), 그리고 교회의 일꾼(골 1:25) 으로 불렀다.
노예(종) slave
다섯 번이나 바울은 자기 자신을 주님의 종(둘로스, doulos, 다른 사람에게 소유된 자) 이라고 불렀다. (롬 1:1, 빌 1:1, 갈 1:10, 딛 1:1, 고후 4:5)
구약 시대의 종들 중 일부가 주인에게 감사해서 그들 자신을 주인에게 바치듯,
바울도 기꺼이 그의 일생을 주님을 섬기는 일에 드렸다.
바울은 이런 부류의 종이 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 1:1)
전하는 자(전파하는 자, 선포자) herald
전파하는 자, 헬. ‘케릭스’ 는
공적인 사건들을 공포하거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을 말한다.
전하는 자에게 우선되는 자질은 그를 보낸 자의 신실한 대리인이 되거나 자기의 말이 아니라 그의 말을 전하는 것이다.
전하는 자는 ‘장본인’이 아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의 것이 아니고, 반드시 ‘보낸 사람의 것’이어야 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딤후 1:11)
And of this gospel I was appointed a herald and an apostle and a teacher. (2timothy 1:11)
일꾼 minister
바울이 자신을 가리켜 단 한번 사용한 호칭은 그리스도 예수의 레이톨고스(leitourgos, ‘일꾼’, 롬 15:16) 였다.
이 말은 제사장 혹은 다른 사람들의 종교적 의무에 흔히 사용되던 단어다.
바울은 복음의 선포를 통해 제사장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제사장처럼 그는 신앙을 가진 이방인들을 주님께 제물로 드렸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롬 15:16)
사도 apostle
바울에게 가장 자주 쓰이던 호칭은 ‘사도’(아포스톨로스, Apostolos) 로
이는 권한을 위임받아 파송되어 자신을 보낸 자를 대표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바울과 다른 사도들은 하나님께 위임을 받은,
신적인 권위를 가진 자들로 ‘하나님의 대리인’(representatives)이며 ‘대변인’(spokesman)이었다.
바울은 이 호칭을 그의 서신서들 중 인사말에 아홉 번이나 사용했다.
(롬 1:1, 고전 1:1, 고후 1:1, 갈 1:1, 엡 1:1, 골 1:1, 딤전 1:1, 딤후 1:1, 딛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고후 1:1)
바울의 사도권은 그가 구원받을 때에 책임이 주어졌다는 면에서 독특하다.(행 9:15) 실제로 하나님은 바울이 출생할 때부터 이 사역을 위해 그를 구별해놓으셨다.(갈 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갈 1:15)
바울의 가르침에 대한 강조를 나타낸 다른 표시들:
(Other indications of Paul’s emphasis on teaching)
위의 여덟 개의 호칭들 가운데 교사라는 호칭은 두 번 만 나온다.
그것도 두 번 모두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 기록된 것은 이상하다.
그러나 교사로서의 바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가르침과 관련된 많은 동사와 명사들이 사용되었다.
동사 디다스코(didasko)를 사용한 구절들
헬라어 디다스코는 가르침을 받는 대상을 직접목적어로 받아 자주 쓰였다.
바울은 큰 무리(행 11:26),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행 18:11),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행 20:20, 엡 4:21), 유대인들(행 21:21),
모든 사람(행 21:28), 각 사람(골 1:28)을 가르쳤다.
바울이 가르친 내용은 주의 말씀과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전통(유전) 이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살후 2:15)
(행 11:26, 행 15:35, 행 18:11, 행 20:20, 행 21:21, 행 28:31,
고전 4:17, 엡 4:21, 골 1:28, 살후 2:15)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행 28:31)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8-29)
명사 디다케(didache)를 사용한 구절들
교육의 내용, 가르친 내용, 교리을 의미한다.
(행 13:12, 행 17:19, 롬 6:17, 롬 16:17, 딛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행 17:1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디도서 1:9)
명사 디다스칼리아(didaskalia)를 사용한 구절들
교육하는 행위, 가르친 내용, 바른 교훈, 바른 말씀을 의미한다.
(딤전 1:10-11, 딤전 4:6, 딤전 6:1, 딛 2:10)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딤전 1:10-11)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딤전 4:6)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디도서 2:10)
이외에도 바울은 가르침과 관련된 몇 가지 단어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뜻을 풀어(디아노이고, dianoigo, 열다)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행 17:3)
부탁하노니(파라티테미, paratithemi, 맡기다, 의탁하다, 부탁하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강론하여 (에크티테미, ektithemi 그 의미를 말하다, 설명하다)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행 28:23)
교훈을 받아(카테케오, katecheo 가르침)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롬 2:18)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 14:19)
바울의 가르침에 대한 모습들
가르침은 때로는 주님께 순종하는 상태에서 이탈하는 위험성에 대해, 혹은 잘못된 길에 놓인 위험성에 대해 경고함으로 돌이킬 것을 권고하거나 재촉하는 것을 말한다.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거짓 교사들의 잠재적인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 20:31)
거짓 교사들을 ‘흉악한 이리’ 라고 불렀다.(행 20:31)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하는 것은 그들의 자기 만족이나 교만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서라고 했다.(고전 4:14)
골로새에 있는 교인들에게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라고 재촉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
성도들을 훈계하는 영적 지도자들을 존경하라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말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살전 5:12)
가르침과 관련된 몇 개의 단어들은 사도 바울의 사역에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지 말해준다.
교육은 초대교회의 중요한 사역 가운데 하나였다.
교회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맡은 자들은 그들의 선배들처럼 그리고 주님께서 모범을 보이신 것처럼 교육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바울은 가르쳤다.
더구나 주님은 그의 제자들이 다른 이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지도하셨다.
오순절에 구원받은 삼천 명은 ‘사도의 가르침’을 듣는 데 전심을 다했다.(행 2:42)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에서 구원의 길을 가르쳤다.(행 4:2)
다른 사도들도 예루살렘을 그들의 가르침으로 가득 채웠다.(행 5:28)
매를 맞는 일이 있어도 변함없이 가르쳤다.(행 5:40)
심지어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는 명령이 내려도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다.(행 5:42)
아볼로 역시 열정적인 전도자요 교사였다.(행 18: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행 18:25)
바울은 다수의 무리를 가르치기도 했지만 개인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바울은 주로 회당에서 가르쳤다. 바울은 광대한 지역을 여행하며 가르쳤다.
두 청년 디모데와 디도가 바울의 가르침의 대상이었다.
바울에게 교육 받은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었다.
바울은 그의 목회 서신에서 두 사람(디모데와 디도)에게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라고 계속 격려했다.
가르치는 자들이 그들의 가르침대로 일관성 있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강조했다.
그리스도와 같은 삶의 모습이 뒤따르지 않는 가르침은 위선에 불과하다.
디모데와 디도에게 가르치라는 바울의 권면들
(딤전 4:11, 4:13, 4:16, 6:2, 딤후 2:2, 4:2, 디도서 2:1, 2:2, 2:7, 2:15)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을 전념하라” (딤전 4:11- 13)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딤후 2:2)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딛 2:7-8)
바울은 장로의 자격 중 가르치는 능력을 포함시켰다.
장로들의 우선되는 책임이 설교(로고스, logos, 말씀)와 가르침(디다스칼로스)에 있음을 강조했으며, 이 두가지는 교회 사역에 우선되는 항목들이다.
장로는 진리의 수호에 관심을 쏟아야 하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하며, 진리에 반대하는 자들을 대항해 변호해야 한다.
바울은 가르치는 영적 은사를 아주 중요한 위치로 끌어 올렸다.
(롬 12:6-8, 고전 12:28-30, 엡 4:11)
한 신자가 가르침의 은사를 받았을 때 바울은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섬기라고 했다.(롬 12:7)
일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을 통해 가르치는 은사가 특별히 주어지기도 하지만, 성경을 가르치고 적용하는 이 가르치라는 책임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혹 섬기는 자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롬 12:7)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며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딤후 2:24)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
바울의 가르침은 그의 설교와 어떻게 달랐는가?
바울은 평범한 교사가 아니었다. 그는 동시에 설교자이기도 했다.
설교자라는 헬라어 단어는 ‘케리소’(kerysso)에서 파생된 단어로
‘전하는 자로 알리거나 선포하다, 좋은 소식을 공적으로 알리거나, 말로 공포하다’ 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 두 가지 일을 함께하라는 임무를 주셨다.(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그리고 예수님 자신도 이 두 가지를 병행하셨다.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들을 보면, 복음 전파에 대한 사도 바울의 관심이 지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신실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신실한 전령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놀라운 소식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소망하며 설교를 했다.
바울이 선포했던 내용은 그리스도, 그의 부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로 다할 수 없는 부요함 등이다.
설교와 가르침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How did Paul ‘s teaching differ from his preaching?)
예수님, 바울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설교를 기록한 신약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그들이 강대상 뒤에서 설교했으리라고 상상해서는 안된다.
‘설교’라는 단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복음을 군중이든, 개인이든, 구원받지 않는 자들에게 말함, 선포함, 공포함, 나눔, 또는 전달함을 의미한다.
신약에서 ‘설교’라는 말은 오히려 ‘전달하다’ 라는 의미에 가깝다.
물론 그 목적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지해 사람들이 죄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그들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게 만드는 일에 있다.
이 사역은 소수의 은사를 받은 복음 전도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에게 책임이 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사가 되는 일 외에, ‘전도인의 일을 하라’ 고 말하는 데 이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을 가리킨다.
설교는 복음을 통해 죄인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사역이다.
그러나 가르침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을 가르치고 영적으로 양육시키는 성장을 위한 사역이다.
설교가 회개로의 부르심이라면, 가르침은 제자로의 부르심이다.
설교가 영적인 탄생을 이끌어내는 것이라면, 가르침은 영적인 성장을 돕는 것이다.
복음화(evangelizing)가 잃은 양을 우리로 데려오는 것이라면, 가르침은 그 양들을 먹이고 인도하는 것이다.
가르침과 설교가 다르지만, 어느 정도 서로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
복음화는 확실한 진리를 선포하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구원 얻지 못한 주님이 상태와 구원을 베푸시는 방식을 가르치는 것 모두가 포함된다.
그러나 대다수의 경우 바울에게 있어서 가르침은 이미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을 향한 사역이었다.
정열적인 선교사였던 바울은 대부분의 장소에서 그의 전도에 이어 가르침의 사역을 전개했다.
바울은 13개의 서신 중에서, 즉 빌레몬을 제외한 12개의 서신에서 가르침을 언급했다.
이렇게 바울이 가르침에 대해 자주 언급한 것을 보면서 호른( H. H. Horne, 1874-1946) 은 말하기를
“바울은 대 교사이신 그리스도 다음가는 위대한 교사였다” 라고 했다.
Paul was a master teacher second in greatness only to the Master himself.
결론 : 적용의 질문들
여러분은 바울처럼 자신을 하나님의 도구요, 교사, 증인, 일꾼, 종,
전하는 자, 사역자로 보는가?
각 영역에서 당신의 역할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러분은 교회와 가정과 학교나 세상에서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가 깨달았는가?
당신은 학생들에게 교사가 되라고 격려하는가?
다른 교사들의 가르치는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당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당신에게 가르침의 은사가 있다고 확신하는가?
그렇다면 이 은사를 개발하기 위해 여러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복음뉴스(BogEum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