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 어떤 성품이 바울을 위대한 교사로 만들었습니까?

5장 : 어떤 성품이 바울을 위대한 교사로 만들었습니까?

유재도 선교사 0 06.06 17:08

[필자 주 : 본 강의는 로이 주크의 책 [바울의 티칭 스타일]을 요약하고, 정리하고, 추가하여 만든 것입니다. 본인은 오늘날 교회 교육과 신앙 교육의 해결책이 로이 주크의 책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5: 어떤 성품이 바울을 위대한 교사로 만들었습니까?

      What qualities made Paul a great teacher?

 

40년 전에 미국 대학교 학생들 350명에게 자료조사의 질문, 교사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특성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에 대해서 응답한 학생들의 대답 은 교사의 인격이 교사가 가진 지식, 학급 운영 능력, 교수 방법보다 중요하다이었습니다.

 

신약 성경은 초기 교회의 뛰어난 사도 바울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것을 기록하였다. 사도 바울이 가지고 있던 것은

경건한 헌신

하나님이 주신 권위와 확신

인격적인 고결함

정직

일관성

예의 바름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열정적인 감성

자신과 하나님의 대적들을 대항한 담대함과 단호함

지칠 줄 모르는 열정

수많은 대적들과 어려움들을 대면하는 불굴의 끈기

흔들림 없는 평안함

가슴을 울리는 설교

교리와 윤리적 주제에 대한 포괄적인 섭렵이었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인격과 경험 중에서 이런 특성들을 연구할 때 당신도 삶과 교육에 동일한 자질들을 갖추고 있는지 질문해보라.

 

당신은 하나님께 깊이 헌신되어 있는가? 아니면 헌신되어 있는 척하는가?

당신은 그분의 권위를 갖고 교육하고 있는가? 아니면 마치 권위가 자신에게서 생긴 것인 양 교육하고 있는가?

당신은 진정으로 겸손한가? 아니면 그 속에 교만이 숨겨져 있는가?

당신은 학생들에게 예의를 갖추는가? 아니면 무례히 대하는가?

당신은 성경과 반대되는 내용을 가르치는 사람에게 단호히 대하는가? 아니면 거짓 교육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축해버리는가?

당신은 교수할 내용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는가? 아니면 단순히 과정만 따라가는가?

당신은 성경 연구에 마음을 쏟는가? 아니면 준비에 게으른가?

당신은 가르치는 주제를 알기 위해 시간을 들여 연구하는가?

아니면 가능한 적은 시간을 들여 적당히 지나가기를 바라는가?

 

경건(Piety)

효과적인 기독교 교육의 기초는 교사의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

당신 자신이 하나님께 헌신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와 동행하도록 도전을 줄 수 있겠는가?

 

바울도 경건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경건한 삶을 살도록 도전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 깊이 헌신했던 바울의 경건함은 다음의 여덟 가지 요인들을 통해 증명된다.

 

첫번째,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는 일은 그의 뛰어난 특성이요, 최고의 자질이었다.

바울에게 삶의 시작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었고, 목표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으로 그리스도와 동일시 되기를 지향했고, 그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지탱하며, 그리스도를 기대하고 즐거워 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1:21)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바울은 그리스도의 강권하는 사랑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리스도를 알며, 그리스도를 닮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다.

 

둘째로, 바울의 경건은 기도 생활로 증명된다.

사도행전은 그가 기도하는 모습을 여러 번 기록하고 있는데 아주 다양한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에게 기도는 자연스럽고 자발적이며 빈번한 것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사도행전에 바울의 기도 생활에 대해서 여덟 번의 기록이 나온다.

회심 후에는 즉시 다메섹의 유다 집에서(9:11)

그와 바나바가 첫번 째 선교 여행을 위해 임명되었을 때는 다른 선지자들, 교사들과 더불어(13:1-4)

그와 바나바가 장로들을 임명할 때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에서(14:23)

빌립보 감옥에 실라와 함께 투옥되었을 때(16:25)

에베소에서 온 장로들과 함께 밀레도에서(20:36)

바닷가 두로에서 제자들과 함께(21:5)

예루살렘 성전에서(22:17)

보블리오의 부친의 치유를 위해 멜리데 섬에서(28:7-8)

 

바울 서신들 속에는 바울이 했던 기도와 기도에 관한 말씀들이 많이 나온다.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고후 13:9)

 

바울의 기도의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바울은 교회와 교인들의 영적인 문제들을 위하여 기도했다.(3:16-19)

그의 서신들을 읽는 독자들을 위하여 기도했다.(1:9-10)

바울이 그의 서신을 읽는 자들에게 자주 기도하라고 격려한 것은 그 자신의 흔들림없는 기도에 대한 헌신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12:12, 살전 5:17)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바울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살후 3:1-2)

다른 사람들을 위한 바울의 중보 기도에 담긴 특징은 그의 많은 축도이다. (고후 13:13, 6:18, 4:23)

기도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도 바울이 종종 모범을 보였듯이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기도가 있다.(딤후 1:3)

바울은 편지를 받는 사람들로 인해 주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1:8, 고전 1:4)

 

의심할 바없이 기도는 바울이 학생들의 영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도입한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셋째, 하나님을 향한 바울의 충성은 그의 예배로 나타났다.

바울은 금식했고(13:2-3)

바울은 그의 서원을 한 약속을 지켰으며(18:18)

바울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으며(16:13, 16)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무교절과 오순절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연중 절기 때 참석했다. (20:6, 20:16)

(20:6) 우리는 무교절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넷째로, 바울의 영적 생활의 능력은 내주하시는 성령을 의지함으로 얻었다.

누가는 성령께서 바울을 충만하게 채우셨고(9:17, 13:9)

성령께서 그를 불러 선교 사역을 하도록 보내셨으며(13:2,4)

성령께서 아시아와 비두니아 지역으로 가지 말도록 인도하셨고(16:6-7)

성령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도록 인도하셨으며(20:22)

성령께서 예루살렘에서 당할 위험들을 알려주셨다(20:23)

성령께서 격려해주시고 의사 결정을 인도하신다고 기록했다.(9:31, 15:28)

 

사도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따라 살 것(5:16)

성령 충만하도록 강조함(5:18)으로 성령에 대해 반복적으로 기록했다.

 

바울은 믿는 자들의 삶에 역사하시는 성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성령은 중생시킨다(3:5)

성령은 의롭게 하신다(고전 6:11)

성령은 세례를 주신다(고전 12:13)

성령은 인치신다(1:13)

성령은 내주하신다(5:5)

성령은 양자를 삼으신다(8:15)

성령은 거룩하게 하신다(살후 2:13)

성령은 인도하신다(8:14)

성령은 통제하신다(8:6, 9)

성령은 가르치신다(고전 2:14)

성령은 계시하신다(고전 2:10-11)

성령은 자유케하신다(고후 3:17)

성령은 능력을 주신다(3:16)

성령은 사랑하신다(15:30)

성령은 중보하신다(8:26-27)

성령은 도우신다(1:19)

성령은 증거하신다(8:16)

성령은 부활시키신다(8:11)

성령은 믿는 자들에게 기쁨을 주신다(14:17)

성령은 영적 은사들을 주신다(고전 12:4-11)

성령은 영적 열매나 내적 성품을 맺게 하신다(5:22-23)

성령은 연합시키신다(4:3)

성령은 교제하게 하신다(고후 13:14)

성령은 믿는 자들을 기도하게 하신다(8:15)

성령은 예배를 고양시키신다(3:3)

성령은 소망을 갖게 하신다(5:5)

 

바울의 사역에서 성령의 사역을 부각시키는 이유는 성령을 따르는 것’(8:5) 성령을 따라 사는 것(5:16)이 영적 발전과 성숙에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경건함이란 불가능하다.

 

다섯 째로, 사도 바울의 경건은 주님을 향한 그의 담대한 신뢰를 통해 나타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한 많은 증거들 외에도 주님을 향한 계속적인 확신을 입증했다.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24: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4)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여섯 째로, 바울의 경건은 그의 소망으로, 그의 미래의 계획 속에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는 그의 확신이다.

죽은 자에 대한 부활의 확신(23:6, 24:15)

이스라엘에게 준 구약의 약속들의 성취(26:6-7)

그리스도의 영광을 확신(23:6, 24:15)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누는 것(5:2)

창조 세계가 현재의 속박 상태에서 해방되는 것(8:21)

우리 몸의 구속(8:23-24)

고통으로부터의 구출(고후 1:10)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완전한 의를 부여받는 것(5:5)

하나님의 부요하심의 상속(1:18)

영생(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1:2)

주님의 재림(2:13)

 

미래에 베푸실 하나님의 역사를 확신했기 때문에 바울은 독자들도 동일한 확신을 갖기를 원했다.

그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소망 가운데 기뻐하고 소망으로 넘쳐나기를 권면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12:12)

 

일곱 번 째, 사도 바울의 경건한 삶을 보여주는 요소는 그의 깨끗한 양심이다.

재판을 받을 때에 그는 산헤드린 공회원들에게 자신의 선한양심에 대해 말했고(23:1), 벨릭스에게 자신의 깨끗한양심에 대해 언급했다.(24: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24:16)

바울은 디모데에게 착한양심을 유지하라고 권했다.(딤전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 1:19)

집사들은 깨끗한 양심을 가져야만 한다고 진술했다.(딤전 3:9)

 

여덟 번째, 바울의 경건성을 보여주는 것은 그의 삶 가운데 주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민감성이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방문하고자 하는 바람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으로 절제되었다.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1:10)

 

고린도에 가고자 하던 계획도 마찬가지 였다.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고전 4:19)

 

권위(Authority)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당신은 권위있게 가르칠 수 있고, 또한 그렇게 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것은 지배적인 방식으로 학생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권위는 또한 당신의 지식을 자랑하거나 당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을 뜻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영적 권위를 갖고 가르치는 것권위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를 갖고 가르치는 것은 두 가지를 뜻한다.

당신의 메시지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과

당신의 능력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 요소를 동시에 가질 때 당신은 바울처럼 담대히 말하고 가르칠 수 있다.

바울은 사도였기 때문에 권위를 갖고 말했다.

바울은 자신이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해 선택되었음을 말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1:1)

또한 그의 메시지가 그 자신이 만든 어떤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은 것 임을 말했다.(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1:11-12)

 

권위있게 가르치는 것은 신적인 권위의 메시지를 갖고 있음을 뜻할 뿐 아니라, 또한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을 갖고 있음을 뜻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결코 권위를 남용하지 않았다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조심스럽게 설명했다.(고후 10:8)

하나님의 권위 있는 메시지와 영적 능력을 갖는 것은, 수줍어하지 않고, 담대히, 머뭇거리지 않고, 확실히, 두려움없이, 확신을 가지고 진리를 나눌 수있음을 똣한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 중심의 메시지와 성령이 주신 능력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심지어 반대에 직면해서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겁없이, 부끄러움없이, 전할 수 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16)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8)

 

온전성(Integrity)

영적 지도자의 가르침과 삶에 일관성이 없을 때 불신자들은 복음을 폄하하고 기독교를 조롱하게 된다.

성경을 살펴보면 사도 바울은 철저히 일관성을 보였다.

바울은 언행이 일치했고, 정직함을 보였으며, 진리를 전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퇴색시키거나 가감시키지 않고 오직 진리에 따라 일관성 있게 행동한 사람이었다.

바울의 삶은 결코 속마음을 숨기고 겉모습을 꾸밈으로 손상되지 않았다.

바울은 온전함과 정직함과 일관성에 관해 고결한 본보기를 세웠고, 그런 삶이 실제로 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오늘날의 교사들은 이 진정한 바울 사도가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한 내용에 주목하고 성령의 도움으로 그런 순전하고 일관성 있는 삶의 모범을 본받아야 한다.

이렇게 하지 못할 때 학생들은 교사들이 가르치는 진리를 배척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순전함은 물론 심지어 자신의 바른 행동을 증명해주시도록 하나님께 요청할 수도 있다는 언급도 했다.

다섯 번이나 그는 하나님께서 증인이며, 그의 삶을 알고 계시다고 천명했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1:9)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 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고후 1:23)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들에게 실천하라고 요구한 것을 먼저 자신이 실천했다.

바울은 중요한 요구들을 할 때 그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헌신을 요구하지 않았다.

만일 그에게 언행이 일치하지 않은 모습이 있었다면, 그의 많은 호소들은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교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사항이다.

 

겸손(Humility)

사도 바울은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수많은 교회를 세우며, 수 백명의 성도들에게 기독교 교리와 삶을 가르치는 일에 쓰임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하나님의 가장 겸손한 종들 중 하나였다.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가운데 그는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것과 똑같은 겸손을 보였다.(고전 11:1, 2:5-8)

1차 선교 여행 때에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을 헬라의 말하는 신 허메(Hermes) 라고 부르면서 그와 바나바를 숭배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그들에게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소리치면서 그런 행동을 그만둘 것을 종용했다.(14:15)

 

3차 선교 여행 때에는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자신이 주님을 큰 겸손과 눈물로 섬겼다고 말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모든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20:19)

 

바울의 삶에 있어서 자랑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고후 11:8)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1:1)과 하나님의 종(1:1)과 성도들의 종(고후 4:5) 의 말처럼, 주님을 겸손히 섬긴 자로서 그 자신을 언급함으로 겸손함을 표시하였다.

바울은 자신을 가장 작은 자.(고전 15:9)죄인 중의 괴수(딤전 1:15) 라는 말로 겸손하게 자신을 묘사했다.

그리고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에게”(3:8) 라는 말처럼 자신을 극도로 낮추었다.

사도 바울은 두 번이나 자신을 (일꾼, 휘페레테스), 돕는 자로 불렀다.(26:16, 고전 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전 4:1)

 

가르치는 것은 섬기는 것이며, 겸손히 다른 사람들을 자신이 아닌 주님께 향하게 만드는 것이다.

학생들은 스스로를 높이고 업적을 자랑하고 지식을 교만하게 드러내는 그런 교사들을 결코 존경하지 않는다.

실제로 자만은 학습을 방해한다. 또한 학생들 앞에서 섬기는 자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학습 과정은 방해를 받는다.

우리는 자만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겸손을 우리가 입고 있는 의복처럼 쉽게 볼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정중함(Courtesy)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은혜롭고 정중하였다.

사도행전의 설교들에서 바울은 청중들에게 예의 바르게 말하고 행동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을 형제들로즉 그가 그들과 민족적으로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13:26)

아레오바고에서는 다음과 같은 칭찬의 말로 철학적 태도를 지닌 아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17:22)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군중에 의해 체포되었을 때, 그는 천부장에게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21:39)

바울은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그의 형제들이라고 부렀다.(23:1, 5-6)

 

그리고 바울은 다음과 같은 일곱 명의 사람들을 각기 자신의 형제라고 언급했다. 구아도(16:23), 소스데네(고전 1:1), 디모데(고후 1:1), 디도(고후 2:13), 두기고(6:21), 에바브로디도(2:25), 오네시모(4:9).

 

학생들에게 관심을 쏟는 유능한 교사라면 친절하고 은혜롭고 신중해야 하며, 학생들에게 결코 불친절하거나 퉁명스럽거나 서툴러서는 안된다.

학생들의 필요와 질문과 관심사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식들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민감성(Sensitivity)

바울 서신을 읽어보면 우리는 바울이 끊임없이 사랑을 강조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반복해서 표현하는 것을 본다.

회심 전에는 사람들을 정죄했던 그가 이제는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 모두에게 깊은 사랑과 따뜻한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을 증오했던 그가 변해서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한 것처럼 사랑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귀 가운데 하나를 쓴 사람이 되었다.

첫째, 바울에게 민감성과 진정한 긍휼과 부드러운 사랑이 없었다면 그의 가르침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바울은 사랑에 대한 솔직한 표현들을 여러번 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는 것이라”(고전 4:14)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고후 6:11)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1:8)

 

셋째, 바울의 민감성은 회심한 학생들에 대한 기쁨을 표현할 때 명백히 드러난다.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 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16:19)

 

네번째, 바울의 민감함은 죄를 지은 믿는 자들에 대한 탄식에서 나타난다.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아니하더냐”(고후 11:29)

속이 탄다는 것은 아마도 분노로 타는 것이 아니라, 수치와 고통과 회환으로 애타는 것을 뜻할 것이다.

 

다섯째, 많은 동역자들을 언급할 때 사용한 사랑스러운 용어들이 바울의 사랑과 우정과 관심을 보여준다.

나의 아들 : 디모데, 오네시모 , 신실한 종 : 두기고, 나의 동무 : 디도

 

여섯째, 바울의 민감성은 그의 친구들과 동역자들이 떨어져 있을 때 그들을 보고 싶어하던 갈망에서도 엿보인다.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17:15)

 

일곱 째, 바울의 민감성의 표시는 병 중에 있는 그의 동역자들을 향한 관심에서 나타난다.

 

여덟번 째, 바울의 민감성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소망에서 나타난다.

 

아홉번 째,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교회들과 세운 성도들에 대해 관심을 표명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8)

 

열번 째, 성도들에게 바울 자신을 위한 기도를 자유롭게 요청한 것에서도 보인다.

이런 기도의 요청은 그의 서신에 다섯 번이나 언급되어 있다. (15:30-31, 6:19-20, 4:3-4, 살전 5:25, 살후 3:1-2)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살후 3:1-2)

 

열한번 째, 교회 성도들이 바울에게 그들의 사랑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바울의 민감성을 알게 한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그들의 동료인 바울을 너무 깊고 진실하게 사랑함으로 그들 위해 목숨까지도 줄 정도라고 바울은 썼다.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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