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예수님의 가르침의 목표는 진리를 아는 것으로 한정되었는가?
( Were Jesus’ teaching goals limited to knowing the truth?)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눅 6:40)
우리가 보아온 것처럼 예수님은 만나는 그의 청중들에게 아주 많은 다양한 내용을 말씀하셨다. 이 사실은 예수님은 사람들이 단순히 지식적인 면에서 예수님 자신이 가르치신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에 만족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예수님은 사람들이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그치도록 하지 않으셨다.
많은 성경 구절들을 살펴볼 때에 예수님은 자신이 가르치시는 내용을 사람들이 알고 이해하기를 매우 원하셨다고 밝히고 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완전한 의미에서 배우기를 원하셨다. 그것은 무슨 뜻일까? 실천하며 살아가야 할 진리는 먼저 알아야 하고 그리고 이해되어져야 한다.(Truth to be lived must first be known and understood.)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 (Knowing and understanding.)이 있다.
복음서들은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 그리고 배우는 것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 13: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받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 속에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이해하는 것) Understanding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가르치실 때에 가지셨던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드러나는 여러 헬라어 단어들이 나온다.
마 13:13-15에서 “이해하다, 통찰력을 얻다”란 의미를 지닌 시니에미(syniemi) 란 단어를 세 차례 사용하셨는데 이는 그들이 듣기는 들어도 ‘완악한’ (마 13:15) 마음으로 인해 진리를 깨닫지 못함을 강조하신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영적 실체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듣는 것 이상을 포함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그것은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듣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귀도 열려야 하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마음도 열려야 한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 13:15)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
예수님을 적대시하는 자들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요 8:27) “깨닫다” (기노스코, ginosko)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요 8:43)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셔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요 10:6)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3)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마 24:32)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만타노”(배우라)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9가지의 의미가 들어있다.
예수님은 지적으로 알고 있는 진리를 삶으로 실천하는 것에 깊은 관심을 보이셨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자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은 모래 위가 아니라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기 때문이다. (마 7:24-27, 눅 6:47-49)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야 말로 자신의 어머니요 형제라고 말씀하셨다.(눅 8:20-21)
진리를 좇는 사람은 빛 가운데 살고 어둠 속에 있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헌신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진리를 듣는 일을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정도로 여기는 일은 분명히 제자들이 주님의 가르치심을 실행하거나 순종하기를 기대하신 예수님의 뜻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 고 사람들을 여러 번 부르셨다.
(Numerous times Jesus invited others to “follow me”.)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요한복음 12:26)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마 4:19)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마 8:22)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마 9:9)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마 10: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마 19:21)
예수님께서 하신 “나를 따르라”(follow me)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같은 방식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누가복음 6장 40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을 닮아갈 것이다. (눅 6:40) “제자가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제자란 어떤 사람인가? (What is a disciple?)
단순히 앉아서 선생의 강의를 듣기만 하는 학생이 아니라 그 이상의 모습을 말한다. 제자는 가르치는 선생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학생을 뜻한다.
선생의 견해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선생의 행실도 따르는 것을 포함한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제자란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가?
주로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많은 경우에 제자란 단어는 예수님과 밀접한 관계를 지녔던 열두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며 배웠던 사람들 가운데 핵심 인물인 열두 제자들은 사도라고 불리기도 했다.
신약성경에서 제자(=마데테스(헬라어))의 가장 대표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제자는 선생 또는 모델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충성스런 추종자, 지지자, 부하가 된 사람을 말한다. 즉 이 단어는 따르는 사람의 ‘삶’ 전체를 형성하는 개인적인 밀착관계를 포함하며, 헌신과 순종을 요구한다.
그저 단순히 호기심을 지닌 탐구자가 아닌 것이다. 헌신된 제자는 구주 예수님께 배우고, 구주 예수님께 충성하며, 구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 드러나야 한다.
포기와 충성, 섬김과 고통은 헌신된 제자들의 특징이다.
그들은 주님이 가르쳐주신 신조들을 잘 알 뿐 아니라, 주님이 모범을 보이신 대로 실행한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뜻대로 행한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마 12:5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네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19-20)
(결론) 교사들을 위한 제안
지금까지 말한 것들이 교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목표는 사람들이 단순히 진리를 알게 하시는 것이었을까?
물론 그렇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는 것 거기에서멈추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같은 기반을 다지신 후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
주님과 함께하고 주님을 닮아가는 충성스런 학생이 되도록 촉구하셨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