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위대한 교사로써 예수님이 보여주신 자질은 무엇인가(I)?

제5장 위대한 교사로써 예수님이 보여주신 자질은 무엇인가(I)?

유재도 선교사 1 2023.01.24 22:47
제5장 위대한 교사로써 예수님이 보여주신 자질은 무엇인가? (1)
       What qualities marked Jesus as an outstanding Teacher?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쉼을 얻으리니. (마11:29)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교사이신 예수님이 보여주신 귀한 모습들을 잘 살펴보고 그것을 본받고 따라가야 한다.

학교나 교회 혹은 그 밖의 여러 장소에서 당신이 만났던 교사들을 생각해보라.

지난 날에 우리를 가르쳤던 어떤 교사들은 정말 헌신적이고 훌륭했다.

그러나 어떤 교사들은 그냥 평범하였다. 어떤 교사들은 자질이 심히 부족하였다. 이러한 교사들은 학생들을 잘 가르치지 못하였다.

그러면 학생들을 잘 가르치지 못하는 교사들의 교수 방법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보라. 당신의 의견을 한번 말해보라.

교사들의 교수 과정에서 학생들이 흔히 느낄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조사 결과 14 가지 문제점의 사항들이 발견되었다.

서툰 교사들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를 통해 알수 있는 교사들의 부족한 점은 다음과 같다. 괄호 안에 있는 것이 부족한 점의 요약이다.

- 그 선생님은 주님을 깊이 알거나 사랑하지 못하고 또 인격이 온전하지 못해 보인다. (성숙함의 부족)
- 교사가 내용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또 자기가 가르칠 주제도 잘 알지도 못한다. (내용 이해도의 부족)
- 교사로서 자기가 말하고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확신이 없다. (확실함의 부족)
- 그가 교사라는 사실로 인하여 거만하고 교만하다. (겸손의 부족)
- 교사라고 하면서 자기가 가르친대로 살지 않는다. 심지어는 정반대로 행동할 때도 있다. (일관성의 부족)
- 교사 자신이 준비한 내용 밖의 다른 주제를 배우는 학생들이 토의하지 못하게 한다. (즉흥성의 부족)
- 교사가 앞에서 말은 많이 하는데 학생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할 수 없다. (명확성의 부족)
- 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본인 스스로 가르치는 내용에 대하여 흥미가 없다. (긴박감의 부족)
- 교사의 수업 진행 방식이 항상 똑같고 다른 보조 교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다양함의 부족)
- 교사가 수업 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가르칠 밑천이 바닥을 보인다. (충분한 내용의 부족)
- 배우는 학생들인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공감성의 부족)
- 교사가 수업 시간 외에는 학생인 우리와 따로 시간을 내서 만나지 않는다. (친밀감의 부족)
- 교사가 학생들의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어떤 때에는 우리 마음을 너무 몰라준다. (민감함의 부족)
- 교사가 가르치는 내용이 우리의 실생활에 연관되지 않고, 그것을 학생들이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 가르쳐 주지 않는다. (연관성의 부족)

물론 훌륭한 교사들은 부족함이 별로 없는 모습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 예수님은 훌륭한 교사가 지니는 이 14가지 자질들을 완전하게 모두 다 갖추셨으며 지속적으로 보이셨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14가지 교사의 자질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예수님은 유일하면서 절대적인 권세로 가르치셨을 뿐 아니라, 이와같은 14가지 자질들을 보여주심으로써 교수 과정의 모범을 보이셨다.

위대한 교사이신 예수님이 남기신 모범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도 더욱 유능한 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5강에서는 그 14가지 중에서 8가지 자질들을 살펴보고, 다음의 6강에서는 나머지 6가지 자질들을 살펴본다.

성숙함 (maturity)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균형을 이룬 성숙하신 분이셨다. 예수님은 완전한 신성을 소유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적으로 성숙하셨다.

어렸을 때 - (눅 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이것은 예수님이 신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성장하셨음을 말해 준다.

청소년기에 – (눅 2:52) “예수는 그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이것은 예수님이 정신적, 신체적, 영적, 사회적 네가지 면에서 성숙해지신 것을 잘 보여준다. 이 두 성경 귀절은 예수님의 완벽한 발달 상황을 보여준다.

오늘날 교사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교사 자신의 정신적, 영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조화를 이룬 성숙함이 요구된다.

내용 이해도 (mastery)

예수님은 가르치시는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시고 확실히 파악하셨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요 3:34)

가르치실 때에 예수님은 강의 노트에 의존하지도 않으셨고, 강의 중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잊으신 적도 없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고 모인 사람들은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눅 19:48)

예수님은 살으셨던 장소와 시간으로 인하여 세 가지 언어를 아셨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것은 아람어와 히브리어와 헬라어이다.

아람어는 히브리어와 관계있는 셈족어로서 예수님의 모국어이다.

예수님이 사용하셨던 아람어 말 “아바(아버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에바다(열리라), 게헨나(지옥), 라가(바보), 게바(베드로), 달리다굼(일어나라)” 가 성경에 나온다.

예수님의 히브리어는 어떠한가? 예수님은 6살 때 부터 유대인 학교에서 히브리어를 공부하셨을 것이다. 그당시에 아동들을 위한 학교는 각 지방의 회당들 안에 있었다.

예수님 당시에 아동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가정에서 성경을 암송하고 히브리어를 읽을 수 있도록 교육받았다. 아이들은 다섯 살이 되면 가정에서 구약의 레위기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은 12 살때 성전 뜰에서 선생들과 히브리어로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눅 2:46-47)

예수님은 헬라어를 분명하게 사용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헬라어를 아셨을 것이다. 그 이유는 헬라어가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에서 멀지 않은 세포리스, 가이사랴, 디베랴 지방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헬라어를 사용하신 증거들은 신약성경 여러 곳에 나온다. (막 5:20, 눅 7:1-10, 마 15:22-28, 막 7:26)

예수님은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주제를 완전하게 이해하셨기 때문에 매우 능력있는 선생님이 되셨던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오늘날 모든 교사들이 주제를 분명히 알고 완벽하게 준비하며 가르치는 내용을 학생들의 이해 수준에 잘 맞게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을 보여준다.

확실함 (certainty)

예수님은 가르치실 내용을 확실하게 이해하셨기 때문에 확신있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가르치는 내용에 결코 의심을 가지지 않았다.

예수님은 진리를 가르치거나 진리를 주장하실 때 단 한번도 ‘아마’, ‘혹시’, ‘어쩌면’ 같은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 너희들은 그럴지도’, ‘이것이 아마 진리일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것이길 바란다’ , ‘나는 모르겠다.’ 라는 말들을 한번도 사용하신 적이 없다.

예수님은 메시지를 선포하거나 가르치실 때에 절대로 말을 더듬지 않으셨다. 흐릿하게 또는 변명하는 식으로 말하지 않으셨다.

오늘날 교사들도 얼마만큼 준비를 잘 하느냐에 따라 확실함과 확신을 가지고 가르칠 수 있다.

자기가 말하는 것에 대하여 자신이 없는 교사들은 학생들의 마음에 확신을 심어줄 수 없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교사도 ‘모르겠다’ 라고 말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답을 찾아보고서 알려주어야 한다.

겸손함 (humility)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 종의 모습을 지니고 오셨다. 겸손함의 모습을 보이셨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마 20:28, 막 10:45)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너희들 중에 있다고 하셨다. (눅 22:27)

‘섬긴다’ 는 단어는 ‘디아코네오’ 라는 헬라어로서 “하찮은 일, 즉 다른사람이 식사하는 동안 시중을 들거나 가정의 필요를 돌보는 일” 로 품위가 없는 일을 의미했다.

매우 거만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칭송과 찬양을 받으려고 했던 그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겸손을 보이셨고 제자들에게도 같은 것을 명하셨다. 이같은 가르침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사건 속에 아주 분명히 나타났다.(요 13:1-17)

가르침은 섬김의 기술로서 다른 이들을 교사 자신에게가 아니라 겸손히 그리스도와 그 분의 말씀으로 인도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교사에게 교만이란 절대로 금물이다.

교사의 교만은 불쾌감을 조장하고, 겸손한 섬김은 감사를 가져온다.

겸손한 태도가 효과적인 가르침을 낳는다. 유능한 교사들은 ‘내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니’ 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귀한 본을 따라가야 한다. (마 11:29)

일관성 (consistency)

배우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빠른 길은 가르치는 교사의 모순된 생활이다.

배우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살라고 가르치지만 정작 교사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을 때 더 이상의 배움은 없다.

교사인 우리가 ’선포한 그대로 실천하지 않는’ 모습을 학생들이 볼 때에 학생들은 교사인 우리와 성경과 예수님을 확신하지 못한다.

선생들이 가르치는 것과 사는 모습이 하나되는 것을 학생들에게 보여줄 때, 학생들도 자신들의 삶 속에 그런 모습이 형성되길 원한다.

예수님은 그의 생활과 그의 가르침이 완벽하게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고(마 5:43-48), 예수님은 친히 그렇게 원수를 사랑하셨다.(눅 23:3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고(마 6:5-15), 예수님은 그렇게 기도하셨다. (마 14:2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고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고(마 6:25-33), 예수님 자신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셨다.(마 26:39)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고(요 15:12), 그들을 사랑하셨다.(요 15:9)
- 예수님의 삶은 가르치신 내용과 조금도 모순되지 않았다.
- 예수님은 “내가 곧 진리” 라고 선포하셨고, 진리로서 사셨다.
- 예수님은 여러 해 동안 제자들과 함께 지내심으로써 가르치신 것을 직접 본으로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을 부르셔서 자신을 따르게 하셨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분과 함께 지내면서, 그분을 관찰하고, 모방하는 것을 의미했다.

교육가들은 오래 전부터 교사가 학생들과 개인적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왔다. 관계 형성을 통해 교사가 인격적인 모범을 보일 때 학생들의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크게 증가한다. 교사는 말보다 인격을 통해 훨씬 더 많은 것을 가르친다.

예수님의 본보기가 우리에게 다음 세 가지 가르침을 준다.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라.(약 1:22)

교사가 교실 밖에서도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때 학생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배움을 활용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예수님의 본보기는 교사들이 자신의 지식이 부족한 것을 시인하고, 실수를 인정하며 용서를 구할 필요가 있음을 가르쳐준다.

즉흥성 (spontaneity)

예수님은 매일 지정된 시간에 학생들과 앉아 정해진 학습 내용을 가르치지 않으셨다. 물론 전하실 주제는 이미 분명히 정해 놓으셨고, 긴 강의도 여러번 하셨다. 그러나 대부분 사전 계획없이 주변 여건의 흐름에 맞게 즉각적으로 ‘가르치기에 좋은 순간’을 만들어 가르치셨다.

우리는 ‘가르치기에 좋은 순간’(teachable moments) 이라는 말 을 기억하자.

예수님의 가르침의 절반 정도가 학생들이 먼저 배우기를 원했던 경우였다. 학생들이 먼저 배우고자 할 때, 높은 관심과 집중 상태 그리고 개인 참여도가 크게 나타난다.

예수님이 어떤 사건들 속에서 즉흥적으로 유연하게 가르치신 경우가 4개의 복음서에 많이 나오고 있다. 예수님은 어떤 특정의 사건 속에서 어떤 주제를 가르치셨다. 마태복음에서만 약 21개의 경우가 나온다.

예를 들면, 백부장 하인을 고치시고, 천국에 관한 주제를 가르치셨다. (마8:5-13, 8:23-27)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권세를 가르치셨다. (마 9:1-8, 9:5-6)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세례 요한의 질문을 받으시고, 세례 요한을 큰 선지자로서 칭찬하셨다. (마 11:2-3, 11:7-19)

예수님이 갑작스런 질문과 방해를 흔쾌히 받아들이시고 즉각적으로 가르치신 것처럼, 오늘날의 교사들에게도 그같은 유연성이 필요하다.

교수교안도 갖추어져 있고, 준비도 충분히 된 상태 속에서도, 교사들은 학생들의 질문과 새로운 문제들에 열린 마음으로 대처해야 한다.

명확성 (clarity)

“나는 도대체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못알아듣겠어!” 라고 불평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이것은 교사의 발음과 논리과 표현의 명확성의 부족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항상 명확하게 말씀하셔서 듣는 사람들이 뚜렸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셨다.

예수님은 배우는 사람들이 전달하는 내용을 잘 이해하도록 가르치셨으며 그저 수업의 진도나 나가보자는 식으로 가르치지 않으셨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단어들은 언제나 단순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깊이가 있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에 배우는 사람들로부터 “도대체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 듣겠어!” “선생님은 내가 모르는 단어를 너무 많이 사용해!” “그 선생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지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아!”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가 없어!” 라는 불평이 없었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이런 말들이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명확하게 가르치기를 원하면 어떤 어휘를 사용하고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가르칠 내용을 철저히 준비하고, 어떤 내용을, 어떤 단어들을 사용해서 가르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긴박감 (urgency)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 긴박감을 가지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맡겨진 일을 이루셔야 하는 사명감에 이끌려서 일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번도 서두르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시간에 민감하셨기 때문에 결단과 열정에 이끌리면서도 여유가 있고 침착하게 행하실 수 있었다. 예수님은 이미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을 추수해야 하는 긴급한 사명을 가지셨다.(요 4:35)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얼마 전 하나님 아버지께 자기의 사명을 마쳤음을 보고하셨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 17:4)

가르치는 사명을 맡은 우리가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들: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책임, 곧 우리의 사명에 대한 헌신을 다른 사람들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르치는가?
 - 우리는 기대감과 열정을 품고 수업 시간을 기다리는가?
 - 학생들은 교사인 우리의 가슴이 설레는 것을 느끼는가?
 - 주어진 시간 속에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가?
 - 우리는 한정된 시간 때문에 더욱 최선을 다하는가?
 - 우리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완수하려는 헌신과 결단에 사로잡혀 있는가?

이와같은 질문들에 대하여 확고하게 대답할 때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처럼 가르치는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체 결론: 교사 자신에게 적용하는 질문들

 - 만약 당신이 현재 지적으로, 사회적으로, 영적으로 성장하는 일을하지 않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수업 준비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있다면, 충분한 시간을 마련하도록 다른 일정들을 어떻게 조정하겠는가?
 - 가르치고 있는 내용에 대하여 자신감이 있는가?
 - 가르친대로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는가?
 - 가르침에 융통성이 있고,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끔 가르치는가?
 -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고 기쁨을 누리는가?

ⓒ 복음뉴스(BogEumNews.Com)

Comments

복음뉴스 2023.01.25 05:23
유재도 선교사님께서 2023년 1월 24일 이전에 쓰신 글들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여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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