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년 동안 두 분의 저희 교회권사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땅을 떠나셨습니다. 그 분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아내와 함께 한 달에 두 번씩을 찾아뵙고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었었습니다.
노인 분들이시라 한번 심방 갈 때 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두 세 시간이 훌쩍 넘어 갔습니다. 어떤 때는 짧게 인사 나누고 기도해 드리고 다음 약속 장소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권사님들이 좋아하시는 빵을 사가지고 갔다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음 약속을 포기해야만 했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자식 같은 목사 내외가 찾아오니 그동안 못 다하신 이야기들을 나누시면서 때로는 자식들이 자주 찾아오지 않는 서운함 때문에 눈물을 짓기도 하시고 저희교회에 자주는 못 나오시지만 그래도 자주 찾아와 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웃음으로 표현 하시는 모습을 통해 저희 부부를 행복하게도 해주셨습니다.
권사님들 심방을 마치고 나올 때 마다 제 어머님을 뵙는 것처럼 뼈만 남아가는 앙상한 두 손을 잡아드리면서 건강히 남은여생 사시다가 돌아가실 때는 꼭 주무시다 가게 해달라는 기도를 함께 하자고 하면서 기도를 해드리고 돌아왔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두 권사님께서 이 땅을 떠나시던 날 당신들이 그렇게 자식 같았던 담임목사의 부탁의 기도에 따라 주무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두 분 권사님을 뵙고 나올 때 마다 아내의 손에 백 불을 쥐어 주시면서 목사님과 함께 꼭 맛있는 것 사드시라는 말씀에 뒤 돌아서 눈물을 닦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당신들에게 있어 백 불은 다른 사람에게는 어쩌면 오백 불 아니 천불 이상의 가치가 있는 돈이었을 텐데도 없는 형편 가운데 주시는 그 백 불을 함부로 쓸 수 없어 다음에 찾아갈 때 음식과 함께 그분들이 좋아하시는 것들을 사가지고 찾아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즈음 들어 두 권사님이 많이 그립습니다. 교회가 어렵고 힘든 시기에 찾아가면 힘내시라고 더 좋은 사람 보내주실 것이라고 하시면서 당신이 직접 겪으신 것처럼 눈물을 흘리며 부족한 종을 위로해 주셨던 어머님 같은 권사님들이 오늘 따라 더 그립습니다.
목회를 한다는 것이 때로는 기쁘기도 하고 보람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 때문에 힘들고 지칠 때면 회의를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먼저 세상을 떠나신 권사님들을 생각하면 부끄러움 없이 천국에서 다시 만나 뵈어야겠다는 다짐으로 힘을 내곤 합니다.
요즈음 들어 목사로서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성도들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라고 묻고 있습니다.
처음 신학교를 졸업하고 제가 가졌던 꿈은 작은 시골 교회에 가서 소박하게 목회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 자신의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에 도시 목회 보다는 시골에서 조용히 성도들을 돌보는 사역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보니 주님의 은혜로 이곳까지 와서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목회 은퇴의 시간이 다가옴을 느끼며 요즈음은 바른 목회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원 없이 집회도 다녀봤고 작지 않은 사역도 해 보았고 나름 주 안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사역들을 다 해보고난 지금 주님 앞에 서는 날이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의 부족함을 아시면서도 성도들을 맡겨주셨는데 주님의 마음에 들게 그들을 잘 돌보고 있고 그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늘 주님께 죄송하고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목사로 한 주간의 삶을 돌아보면 솔직히 목회 보다 다른 일로 인하여 바빴던 날들이 더 많았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만남들을 돌아보면 그리 유익하지 않은 시간들이었음도 깨닫게 됩니다.
선배 목사님이 목사가 목회하는 일보다 다른 일이 더 바쁘면 죄라고 하셨던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목사가 해야 할 일이 사람을 살리고 한사람이 주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고 그를 통하여 세상이 밝아지게 만드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점덤 여유가 없어지고 강팍해져가는 이 사대에 우리들의 삶의 우선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찾아 해나가는 지혜로운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했던 삶의 시간 보다 더 짧을 수 있고 반드시 그 분앞에 서는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대로 세상을 살지 않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지혜만이 책망받지 않고 버림받지 않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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