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전 토요일 저녁 설교준비를 마무리 하고 잠시 유투브를 통해 한국에서 진행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 목사님들이 서울에서 개최되는 동성애자들의 행사를 반대한다는 취지의 행사였습니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행사였는데 여섯 시간 넘게 진행된 긴 행사였습니다. 온도를 보았더니 삼 십도가 넘는 불 볏 더위였습니다. 행사 중간 중간 여러 교회 젊은이들이 찬양을 하고 기도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아마도 그 행사에 관련된 담임목사님께서 부탁하셨기에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년들이 그곳에 와서 찬양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요즈음 같은 시대에 얼마나 귀하고 가치 있는 사역입니까? 그런데 제가 잠시 동안 그 집회를 보면서 왜 기독교가 갈수록 독선적이고 이기적이고 남을 배려하지 않느냐고 하는 비 기독교인들의 목소리가 무슨 의미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오랜 시간 동안 기도하시면서 수고하고 준비하여 개최한 그날의 집회가 잘못되었다거나 집회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말이라 모두가 바쁘고 가족들이 나들이 나온 광화문 거리 사차선을 막고 그들이 집회하고 있었기에 많은 시민들이 얼마나 교통에 불편함을 느꼈겠습니까? 그리고 그 주위에 살고 있는 분들이나 가게들 그리고 사무실에서 혹여나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소리의 공해를 끼쳤겠습니까?
그 목사님들이 그곳에 모여 집회를 한다고 해서 동성애자들이 바뀌거나 하루아침에 그들이 계획했던 행사를 취소했을까요? 서울에 다른 장소도 많았을텐데 꼭 그 시간에 사차선도로를 막고 오고가는 차량들에게 교통의 불편을 끼쳐가면서 그 집회를 그곳에서 해야 했느냐는 말입니다. 차를 타고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집회를 바라보며 얼마나 욕을 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이었는가를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언제 부터인가 기독교인들이 어떤 사회적인 이슈가 생기면 교회에서 모여 기도하기 보다는 세상으로 뛰쳐나와 고성을 지르고 소음공해를 일으키며 행사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 무엇이라 해도 전혀 듣지 않고 오직 우리는 우리 갈 길 간다는 식으로 이웃에 대한 배려를 잊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교회다움이 무엇인지를 세상에 보여주기 보다는 자신들의 목소리만 높이고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가 전하고 싶은 것들만 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에는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불편함을 느끼면 마음에 힘듬이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똑 같으니 배려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꾸려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헤어 오지 못하니까 좋은 취지의 행사라도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입니다.
얼마 전 서울 상암 축구경기장에서 십만 명이 넘는 기독교인 들이 모여 지난 오십년 전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던 빌리그래함 전도 집회를 기념한다고 모여 찬양하고 기도했는데 그 이후에 한국교회가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끼쳤다거나 세습을 한 목사님들과 한국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던 목사님들이 회개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지난 십 칠년 전 같은 장소에서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대 부흥의 기적이 한국 땅에 다시 일어나게 해달라는 마음으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모여 집회를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랑의 교회 옥한흠목사님께 눈물을 펑펑 흘리시면서 자신 때문에 한국교회 망친 것 같다고 자신 같은 죄인 때문에 한국교회의 부흥이 멈추게 되었다고 통곡을 하시면서 말씀을 전하셨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날의 집회를 통해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새로운 영향력을 끼쳤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남들이야 어떻든 내 교회 와 내 가정만 잘되면 된다는 풍조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부흥을 일으키기를 원하시거나 큰 규모의 예배당을 건축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하는 것을 원하시기 보다는 내 주위에 있는 이웃들을 돌아보며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지를 보여 주기를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화려한 삶을 살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추앙을 받으며 인기를 얻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주머니를 불리려고 돈도 모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더라도 잠은 가까이에 있는 가난한 자들이 살던 베다니 동네에서 주무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속옷한 장 입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서 부귀영화 누리실 수 있는데 주님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영원한 집이 있으심을 알기에 가난을 마다하지 않고 살다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제자의 삶을 살기 원하는 우리들의 삶 역시 대단한 일을 하려고 하기 보다는 내 이웃을 돌아보고 그들에게 인정받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전도지 나누어 주거나 거리에서 찬양한다고 사람들이 귀기울이 않는 슬픈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 우리들의 삶 속에서 주님께서 보여 주셨던 넉넉한 마음을 가진 자의 삶으로 이웃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가족처럼 여기며 살려고 하는 모습을 통해 그들이 변화될 수 있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성공자의 삶을 살기 보다는 섬기는 자의 삶을 살고 누리며 내 가족만을 위해 살려고 애쓰기 보다는 이웃의 아픔과 힘듬을 이해해 주고 위로자 와 격려자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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