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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4장 17-25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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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의, 아브라함!(2)(도약2)

본문 : 롬 4:17-25


아브람은 어떻게 구원의 믿음에서 불가능을 부정하며 놀라운 이적을 체험하며, 심지어 이적을 일으키는 이적적인 믿음으로 도약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하여 열국의 아버지, 나아가 “하나님의 의”라고 칭함 받을 수 있었을까요? 오늘날 우리도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이 믿음이 놀랍게 도약할 수 있을까요? 지난 주 첫번째 “창조의 신앙”에 이어 후반부를 살펴 보겠습니다.


2. 둘째로, 믿음이 놀랍게 도약하려면 소망의 신앙을 가지십시오

본문 18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아브라함은 소망이 없는 때에도 여전히 소망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과 그의 부인 사라의 상태가 어느 정도로 절망적이었습니까?

본문 19절 전반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동사, 네크로오)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명사, 네크로시스)을 알고도...“

한글성경에는 자기 몸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이라고 기록되었지만, 헬라 원어와 영어 성경에는 “같음”이란 말이 없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기능과 활동이 정지되었다”는 뜻입니다. 봄이 되도 물이 전혀 오르지 않는 싹을 피우지 못하는 고목 나무 같은 절망적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소망을 포기하지 않고, 친자식을 통한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본문 18절 중반 “...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So shall your offspring be. 


그런데 이 약속은 아브라함이 아닌 아브람 때에 이미 주어졌었습니다.

“...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4-5).

그리고 이 언약을 아브람이 믿었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15:6 전반).

그렇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위대함은 깜깜한 절망 중에서도 여전히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hope for(히 11:1전반).


유대인 의사 Victor Frankle은 그 무서운 독가스의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놀라운 비결은, 주변환경과 육체를 완전히 통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굴복 당하지 않는 소망을 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겪는 고통과 공포, 절망으로 도무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수용소에서 벗어날 날”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오히려 수용소 바깥보다 더 자유로운, 더 나아가 다른 사람까지도 위로하고 격려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변의 지옥 같은 환경과 우리의 병약한 육체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앙인은 의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아의식과 상상력, 양심, 독립적 의지와 무엇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주위의 모든 영향력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자신이 고통스럽게 되는 것은 일어난 사건 자체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일어난 사건에 대해 반응하면서 우리가 고통을 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소망을 주려 하십니다. 만약 나에게 소망이 없고 절망이 가득하다면 이는 사탄 마귀에게 속아 짖눌려 있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렘 29:11).

우리 모두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는 소망의 신앙을 가짐으로 아브람처럼 한계를 국복하며 믿음의 도약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믿음의 도약이 있으려면 역동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19-21절 “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아브라함의 믿음이 얼마나 역동적인지를 실감하게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몸과 사라의 몸의 기능이 완전히 멈춘 상태임을 ‘알면서도’ 오히려 그의 신앙은 단계별로 더욱 견고해지는 역동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1)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본문 19절) 

2) 믿음이 더 견고해졌습니다 (본문 20절) 

3) 하나님의 능력을 절대로 확신했습니다 (본문 21절) 

그러자 급기야 아브라함이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을 치료하시고 그 아내와 여종들의 닫힌 태를 열어 생산케 하시는 놀라운 이적이 행해지게 되었습니다(창 20장).


그렇다면 아브람은 어떤 신앙의 사람이었습니까? 아브람은 아브라함처럼 위와 같은 놀라운 믿음을 아직 갖고 있지는 못했지만 역동적인 믿음을 이미 갖고 있었습니다.

1)하나님이 창세기 12장 1절에서 하란에 거하는 아브람에게 본토 아비집을 떠나라고 지시하십니다. 이에 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떠났습니다(4절). 이 때 그는 목적지를 알지 못하고 명령에 순종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히 11:8).

2)또한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람은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헤브론에서 무려 단까지 쫓아 올라가서 그를 구해 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신앙과 신앙생활은 결국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어떤 역경이나 난관에 부딪혀도 결코 약해지지 않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오히려 시련이나 연단을 통하여 믿음이 더 견고해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실수하고, 잘못하여 죄를 짓기도 하고, 시행착오와 실패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만큼은 의심없이 믿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도 잠자거나 침묵하는 정적인 믿음이 아니라, 또한 뒤로 물러서는 비겁한 믿음이 아니어야 합니다. 살아서 꿈틀거리며 전진하는 역동의 믿음으로 기적을 체험하며 나아가 기적을 연출하는 믿음으로 도약하는 축복이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위와 같은 신앙을 아브람이 가져 아브라함으로 도약 되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본문 22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This is why “it was credited to him as righteousness.” 크레딧, 즉 신용을 주며 하나님은 그를 의로 확정지으셨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랑하시는 큰 믿음의 거성으로 인정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이어서 오늘날 우리 믿는 자들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본문 23절).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24절).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들인 우리들도 위함이란 말씀입니다(본문 25절).


즉, 구원의 믿음을 가진 우리들이 창조의 신앙과 소망의 신앙, 역동의 신앙을 가지면, 우리들도 하나님이 “의”라고 도장 찍으시고 큰 믿음의 신앙인으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아브라함과 같은 상급과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도 이처럼 무에서 유를 만드시는 창조의 신앙과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중에서도 바라고 믿는 소망의 신앙, 

그리고 어려운 현실을 정확히 알면서도 역동의 신앙으로 헤쳐 나가는 믿음의 도약이 있으시길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의”라는 인침을 받으시는 축복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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